‘휴대전화로 그림을 확대해 보세요’

전시 작품 옆에 붙어있는 문구다. 현대문명이 만들어낸 비닐봉투, 신용카드, 플라스틱 숟가락이 모습을 드러낸다. 고래, 보름달, 보티첼리의 비너스는 온대간대 없다.

서울 성곡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크리스조던 : 아름다움 너머(Intolerable Beauty)>이야기다. 크리스조던은 인류 문명이 만들어낸 환경파괴를 고발하며 목소리를 높이지 않는다. 대신 현대문명의 속내를 뒤집어 보여준다. 비효율적 전기 사용으로 매분마다 미국에서 낭비되는 주거용 전기 킬로와트시 숫자 전구 32만 개, 전 세계에서 10초마다 소비되는 비닐봉투 예상치 24만개 등 작품에는 통계와 수치로 무장한 현대문명의 실태가 담겨있다.

알바트로스는 이번 전시의 상징이다. 작가는 8년 간 미드웨이 섬을 오가며 알바트로스를 사진과 영상에 담았다. 죽은 알바트로스 뱃속에는 플라스틱이 가득하고, 어미는 바다에 떠있는 플라스틱을 먹이로 착각해 새끼에게 게워 먹인다. 한명 한명이 쏟아낸 플라스틱이 북태평양 환류 자이어(Gyre)를 타고 어떤 현상을 그려내고 있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자이어는 어느새 ‘태평양 플라스틱 섬’을 뜻하는 별칭이 됐다.

미드웨이 섬 알바트로스의 사체에는 플라스틱이 가득하다 / 사진 : 성곡미술관

태평양에 있는 미드웨이 섬은 ‘인간이 사는 곳’을 기준으로 했을 때 남극, 북극보다 외딴 곳이다. ‘저 멀리 대양에서 벌어지는 일은 우리 개개인의 일이다’ 작가는 비디오 아트 ‘Mandala 432’와 E Pluribus Unum’를 통해 이같이 말하고 있다. 비디오 속 작은 패턴은 끝없이 이어져 전체를 이룬다. 전 세계 환경운동단체, 시민단체 이름이 이 패턴 안에 들어있다. 패턴 안에서 끝없이 순환한다. 화면에 맞춰 울리는 성가대와 ‘움~’하고 울리는 소리는 ‘하나’라는 뜻을 품고 있다.

때문에 알바트로스의 죽음은 저 멀리 태평양 외딴 섬에서 벌어지는 일이 아니다. 우리 자신을 지켜보는 일이다. 작가는 “애도는 사랑과 같고, 우리가 잃어버리고 있는, 혹은 잃은 것에 사랑을 경험하는 행위”라고 말한다. 현대문명이 만들어낸 현장을 보며 우리는 인상을 찌푸리며 알바트로스를 애도한다. 고작 애도가 전시를 보며 할 수 있는 최대한이다. 그래서 우리는 알바트로스를 보며 사랑을 경험한다.

“희망은 우리가 사랑하는 것들을 지키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행동을 한 이후에 느끼는 감정”

작가는 우리가 품어야 할 감정은 슬픔이나 분노가 아니라 ‘희망’이라고 이야기한다. 충분히 애도하고 사랑했기에 우리는 다시 맞을 수 있다. 이미 눈앞에 벌어진 알바트로스의 죽음을 절절히 바라본 후에 뒤돌아 섰을 때 먹먹함이 아닌 희망이 피어나는 이유다.

크리스 조던은 미드웨이 섬에서 알바트로스를 사진에 담았다 / 사진 : 최범준 인턴 기자

 

◇ <크리스조던 : 아름다움너머>

장소 : 성곡미술관, 서울 종로구 경희궁길 42 성곡미술관

기간 : 2019.02.22(금) ~ 2019. 05. 05(일)

관람시간 : 화~일(10:00 –18:00), 입장 마감 17:30, 월요일 휴무

요금 : 일반(만 19세 – 64세) : 8,000원 청소년(만 13세 - 18세) : 5,000원 어린이(만 4세 – 12세) : 3,000원

이번 전시에서 상영 중인 크리스 조던의 다큐멘터리 <알바트로스의 꿈>은 https://www.albatrossthefilm.com/ 에서도 시청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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