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0년 동안 전라남도 영암에서 배 농사를 지어온 이기열 농부는 전국 명품 배 품평회에서 1등을 6번이나 거뭐진 명인이다. 그는 천연 액비 중 가장 귀하다는 생선아미노산에다 월출산 지하수를 먹인 친환경 한방 배를 생산한다. 

그런 그가 최근 배 농사를 포기할 뜻을 밝혔다. 이유는 날로 쌓여가는 재고를 감당할 길이 없어서다. 그 위기를 넘겨준 이는 바로 못생긴 농산물로 건강 간편식을 만드는 지구인컴퍼니 민금채 대표다. 

“지금껏 제가 먹어본 배중 최고였어요. 농부님은 명품 배를 연구하고, 농약을 뿌리지 않아 무성해진 잡초를 뽑느라 판매에는 소홀할 수밖에 없었어요.”

 

햇빛으로부터 배를 보호하기 위해 인쇄지를 씌운 모습. 이기열 농부는 흔히 농가에서 사용하는 성장촉진제가 묻어 있는 착색지 대신 인쇄지를 사용해 자연의 시간을 지켜 수확한다.

민 대표는 자사몰인 지구인마켓을 통해 지난해 창고에 재워 둔 배 60톤을 한 달 만에 다 팔았다. 그 덕분에 농부는 평생의 업을 이어갈 용기를 얻었고 올봄에는 아내와 함께 느긋하게 여행도 떠났다. 

“각자가 잘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해 서로 윈윈하는 것이 진정한 상생이라고 봅니다. 우리는 판매와 유통을, 농부님들은 농사에 집중하는 거죠. 서로에게 감사한 만남이라고 생각합니다.”

 
한 해 버려지는 국내 농산물 500만 톤... 그중 절반 구출

지구인컴퍼니는 못생겼다는 이유로 버려지는 농산물을 구해내 지구 환경을 지키는 것이 목표다.

크기가 작거나 표면에 흠집이 있는 못생긴 사과들. 지구인컴퍼니는 이를 원료로 사과즙을 만들어 판매한다.

못생긴 농산물에 대한 정의는 식품별로 다양하다. 먼저 맛은 문제없지만 크기가 작다거나 흠집이 있는 경우, 울퉁불퉁해 상품성이 떨어지는 것을 말한다. 지구인컴퍼니의 첫 매출도 못생긴 포도였다. 

“포도송이에서 포도 몇 알이 빠지면 듬성듬성해 보이지만 맛에는 전혀 문제가 없어요. 첫 주문이 못생긴 포도였는데 제가 서울에서 대전까지 직접 배송했어요. 그나마 알이 더 떨어질까 봐서요..”

두 번째 못생긴 농산물의 기준은 잉여생산으로 발생하는 재고다. 사과나 배처럼 후숙 과일은 저온 창고에 보관하면 사계절 내내 유통이 가능하다. 그러나 딸기, 블루베리, 복숭아 등은 보관이 한 달 이상 가지 않는다. 

“ 잉여 생산된 농산물의 절반 정도는 제철에 30~40% 저렴하게 팔아 소화하고 나머지 절반은 건강 간편식으로 만들어 사계절 내내 판매합니다.”

지구인컴퍼니가 취급하는 품목은 총 40여 개지만 이 가운데 원물로 판매하는 경우는 4가지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식품 R&D를 통해 부가가치를 높인 상품들이다.

 

민금채 지구인컴퍼니 대표는 지구인연구소를 운영하며 식품 R&D를 통해 못생긴 농산물의 부가가치를 높여가고 있다.

 

“우리는 음식을 통해 경험할 수 있는 즐거움에 집중합니다. 우박 맞은 미니 사과로는 우박 맞은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 디저트 피클을 만들거나 귤 같은 경우 흔한 쨈이 아니라 크림치즈랑 꿀을 넣어 스프레드로 만들었어요. 자두로는 병조림을 만들고요. ”

귤 스프레드는 빵집에 불티나게 팔렸고 자두 병조림은 출시 일주일 만에 완판 됐다. 이와 함께 합리적인 소비를 확산시키기 위해 ‘못생겨도 맛은 좋아’라는 캠페인도 이어갔다. 지구인컴퍼니가 지난 1년 반 동안 구출한 못생긴 농산물은 280만 톤에 이른다. 한해 국내 버려지는 농산물이 500만 톤임을 감안하면 절반 조금 넘는 양을 구해낸 것이다.

 

못생긴 귤로 만든 스프레드. 흔한 쨈 형태가 아니라 꿀과 크림치즈를 넣은 독특한 맛 덕분에 빵집에서 불티나게 팔렸다.

 

식물성 고기 4월 출시 ... 세계 시장에 도전

 

민 대표는 “보다 많은 농산물을 구해내는 것이 목표”라면서 “단순히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기술력을 고도화한 혁신적인 제품들로 다양한 경험을 선물하고 싶다”라고 말했다. 

그는 버려지는 농산물 가운데 곡물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을 알고 이를 소화할 방법을 연구하다 식물성 고기라는 새로운 시장을 발견했다. 

식물성고기인 언리미트로 만든 밥버거

언리미트. 지구인컴퍼니가 이달 출시할 식물성 고기 브랜드다. 제한 없는 고기란 뜻이 담겨있다. 언리미트는 현미와 견과류 같은 곡물을 기본으로 만들어졌다. 

“ 곡물이 연간 380만 톤 생산되는데 소비가 줄어 재고량이 엄청납니다. 뉴욕에 출장 갔다가 식물성 고기가 든 임파서블버거를 먹어 봤는데 바로 이거다 싶었죠. 곡물이 갖고 있는 식감으로 충분히 고기 식감을 만들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언리미트는 한국인 입맛에 맞추면서 칼로리는 적고 단백질 함량은 2배 높였다. 햄버거 패티, 소시지, 핫바, 밥버거, 피자, 만두 등 다양한 형태의 10여 개 제품이 연달아 출시될 예정이다. 

“ 수차례 시식행사를 진행했는데 반응이 좋았어요. 식물성 고기라고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몰랐거든요.”

그는 언리미트를 코엑스 박람회에서 열리는 카페&디저트 쇼랑 세계 최고 식품 박람회인 독일 쾰른의 ‘아누가 박람회’에 들고나가 세계 시장에 문을 두드릴 예정이다. 

 

‘나 홀로’가 아니라 ‘파트너’들이 함께 성장하는 모델 구축

 

진경환 농부는 "지난 1년 간 못생긴 사과 15톤 가량을 지구인컴퍼니가 수매해줘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경북 상주에서 20년 넘게 사과농사를 짓고 있는 진경환 농부는 지구인컴퍼니 덕분에 작년 수입이 30%가량 늘었다. 진 씨네 ‘안심이 농원’은 농약을 적게 사용하고 호르몬제를 쓰지 않다 보니 과육의 크기가 작아 다른 농장에 비해 못생긴 사과 생산 비율이 2배를 넘는다. 예전에는 이 사과를 주스 만드는 가게에 헐값에 넘겼지만 지구인컴퍼니는 2배 이상 가격을 쳐줬다. 

“못생긴 농산물은 부르는 게 값이더라고요. 저희는 농부님과 협의해서 폐기할 때 드는 비용 (평균 1킬로에 700~1000원)과 시장 경매 낙찰가와의 중간 가격 수준에서 농산물을 수매하고 있어요.”

민 대표는 “농부 입장에선 연간 평균 300~500만 원 드는 폐기 처리 비용이 절감되고 떨이로 판매할 때 보다 높은 가격을 받다 보니 20~30%의 추가 수익 효과가 있다”라고 설명했다. 농부들뿐 아니라 상품은 우수하나 판로에 어려움을 겪는 소규모 공장들도 주요 파트너다.  

“ 파트너 공장은 현재 34군데입니다. 이분들의 공통점은 연구와 생산에만 집중하다 보니 판매에 어려움을 겪지만 소비자들을 위해서라면 결코 사라지지 말아야 하는 존재들입니다.”

 
생산에서 소비까지 폐기물 0에 도전

 

지구인컴퍼니는 생산에서 소비까지 폐기물 0를 지향하고 있다. 그 첫 번째 시도는 포장재이다. 재활용이 가능하거나 생분해성 포장재를 이용하는 것이다. 지구인컴퍼니가 만든 분말수프의 경우 종이컵과 뚜껑이 사탕수수 섬유와 옥수수 전분으로 만들어져 최장 180일 안에 생분해된다. 과일즙 포장박스도 쌀 포대 자루를 작게 잘라 만들어 야채를 보관할 때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충북 진천에서 생산된 못생긴 농산물로 만든 분말수프. 포장재는 뚜껑과 컵 모두 친환경 소재인 생분해성 용기로 만들어져 있다. 

지구인컴퍼니는 또 전국에 위치한 7개 OEM 제조공장을 중심으로 인근의 못생긴 농산물을 우선 구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 분말수프는 충북 진천에서 생산된 못생긴 양송이버섯과 양파·옥수수를 분말화해 만듭니다. 충북지역에서만도 이 세 가지 농산물의 30%가 못생긴 농산물들로 추정됩니다. 농부님들은 못생긴 농산물이 생길 때마다 가까운 제조공장에 갖다 놓을 수 있어 창고 유지비와 물류비용을 줄일 수 있습니다.”

물류비용 절감은 이산화탄소의 발생을 줄일 뿐 아니라 생산부터 소비까지의 거리를 좁혀 신선도는 높이고 가격은 낮추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이런 다양한 사회적 가치를 인정받아 지구인컴퍼니는 임팩트 투자사 옐로우독이 만든 여성창업가를 위한 펀드의 첫 수혜자가 됐다.  

 

10년 동안 쌓은 내공과 사람이 최고의 자산

 

민 대표는 배달의 민족에서 PB(자체 개발 상품) 사업을 총괄하고 카카오톡에서는 커머스 마케팅을 총괄한 경험이 있다. 이때 500명이 넘는 농부들을 만났고 음식 세계에 눈을 떴다. 그 이전에는 기자로 활동하면서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을 만났다. 

 

자체 개발한 상품을 들고 있는 지구인컴퍼니 직원들. 이들은 민 대표와 함께 배달의 민족과 카카오톡에서 근무한 적이 있던 동료들이다. (사진/ 박재하)

2017년 그가 창업을 하게 된 계기는 유통의 관점에서 점점 품질 기준이 까다로워지면서 큰 하자가 없는데도 상품들이 버려지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는 데서 출발했다. 지구인컴퍼니는 지난해 거래 농가 11곳에서 ‘재고0’라는 경이로운 기록을 세웠다. 올해에는 못생긴 농산물 2000톤을 구해내겠다는 야심찬 목표도 세웠다. 이는 작년 대비 10배가 되는 수치다. 그의 남다른 판매 수완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 소비자의 불편함을 해결하려다 보면 답이 보여요. 우리가 제공하려는 상품이나 서비스에 대해 소비자들이 어떤 불편함을 겪는지, 그 불편함을 어떻게 하면 해소할지 궁리하다 보면 그 안에 해답이 있습니다.”

 

사진제공: 지구인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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