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1년 전인 1948년 4월 3일 새벽 2시. 칠흙 같은 어둠 속에 탕탕탕! 총성이 울려 퍼지고, 한라산 중허리 오름의 꼭대기에 붉은 봉화의 불길이 삽시간에 타올랐다. 남로당 제주도당의 무장봉기로 시작된 제주 4.3 사건. 이후 군경 토벌대의 강도 높은 진압 작전은 7년 7개월간 이어졌고, 한라산 통행금지령이 해제된 1954년 9월 21일까지 당시 인구의 10%에 달하는 약 3만 명의 제주 도민이 국가 권력에 의해 무참히 희생되었다.

# 제주 4.3 사건이 일어난 후 71년이 지난 2019년 4월의 어느 날, 유난히 따스한 햇살 아래 살랑살랑 봄바람이 분다. 해설사의 안내에 따라 한발 두발 제주의 오름을 내딛는 여행자들의 발걸음이 오늘따라 가볍다. 들숨과 날숨 사이 이름 모를 들꽃들과 눈인사를 하고, 억새의 노래가 귀를 스친다. 에메랄드 빛 바다와 푸른 하늘이 하나가 되는 순간, 한라산 자락이 한 눈에 담긴다. 잠시 묵념. 이어지는 4월의 인사말. “감사합니다. 오늘의 안녕을 선물해 주셔서.”

(주) 제주생태관광은 2004년 설립 이래 매년 지역역사와 문화, 사람을 아우르는 4.3기행을 진행하고 있다.

“제주 4.3 사건은 우리 현재의 자화상입니다”

제주의 봄은 흐드러지게 핀 왕벚꽃과 노란 물결로 일렁이는 유채꽃의 향연으로 시작된다. 꽃멀미에 취하고픈 관광객들의 발길이 분주해지는 이때, 또 하나 반드시 기억해야 할 꽃이 있다. 바로 ‘동백꽃’이다. 꽃봉오리가 땅 위에 통째로 툭 떨어지는 붉은 동백꽃은 차가운 땅으로 스러져간 제주 4.3의 원혼들을 상징한다.

이념 대립을 이유로 국가 공권력에 의해 자행된 민간인 대량 학살, 대한민국 현대사의 가장 끔찍한 비극으로 불리는 제주 4.3 사건이 올해로 71주년을 맞았다.

제주도 내 사회적기업 선발주자인 (주)제주생태관광은 2004년 설립 이후 현재까지 그들만의 방식으로 제주 4.3의 역사를 바로보고, 공유하고, 추모해왔다. 보조금은 받지 않는다. 오직 여행객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이어온 4.3 기행은 제주의 생채기를 진심으로 어루만져주는 치유의 시간과도 같다.

서귀포 출신의 제주 토박이인 윤순희 제주생태관광 대표는 제주의 민속과 생태, 신화와 역사학을 두루 섭렵하면서 제주학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제주를 사랑한 그녀는 생태관광의 불모지였던 제주에 '스토리텔링 투어'라는 새로운 관광 판로를 개척하며, 제주를 찾은 여행객들에게 4.3 사건의 아픔을 인권과 평화의 메시지로 풀어내고 있다.

윤순희 (주)제주생태관광 대표

윤 대표에게 제주 4.3사건은 질곡의 역사가 만든  그림자인 동시에 우리가 직시해야 할 이 시대의 자화상이다.

“비뚤어진 역사의 출발은 비뚤어진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다. 71년 전 남로당 350명이 제대로 된 무기도 없이 무장 봉기를 일으킨 이유는 단 하나다. 남한만의 단독 선거를 막기 위함이다. 결과적으로 그들은 무모했다. 그러나 그들의 삶의 끝자락은 누구보다 뜨거웠다는 생각이 든다. 제주 4.3 사건을 통해 우리의 비뚤어진 현실을 바로 알고, 부당함을 인식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제주 4.3은 아직 완전한 진상규명과 명예 회복이 이루어진건 아니다. 2000년 김대중 정부에서 4·3특별법이 제정·공포됐고, 2003년 정부에 의해 제주 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가 채택됐다. 노무현 대통령의 공식 사과와 국가기념일 제정 등이 이루어지면서 사회적 관심으로 떠올랐다.

하지만 2019년 4월 3일 현재 추가 진상조사 및 유족들의 배·보상을 위한 4.3특별법 개정안은 4.3특별법 제정 후 약 20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 여전히 국회 상임위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제주생태관광은 이러한 제주 4.3을 마냥 슬프고 아픈 비극의 역사로 되뇌지 않는다. 청년들과 랩퍼의 동행 프로그램으로 4.3의 역사를 보다 친숙하게 전달하기도 하고, 4.3 생존 할머니가 그날의 기억을 생생하게 전하는 증언 자리를 마련해 여행객들이 생존자에게 감사와 존경을 전하는 기회를 마련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4.3의 희생자들을 애도한다.

4.3의 완전한 해결이 이루어지는 그날까지, 지금 여기 제주를 찾는 여행객들에게 4.3의 흔적을 최대한 가까이 느끼도록 하는 것. 제주생태관광의 추모는 강산이 한 번 변하고 반 바퀴를 더 돈 15년의 시간 동안 사람과 시간의 관계맺기로 이어졌다.

올해도 동백꽃 피고 지는 4월이 왔다. 올해 제주생태관광의 4.3 기행의 이름은 ‘4.3과 오름 테마 여행’이다. 이달 말 제주 사람들이 태어나고 놀고 묻힌다는 오름 위에서, 4.3의 슬픔을 온몸으로 풀어내고 에너지를 얻는 힐링 투어를 진행할 예정이다. 제주 4.3 사건 당시 무장봉기의 신호탄이 되어 붉게 타올랐던 오름이 71년이 지난 지금, 위로와 안식의 휴식처로 재탄생하는 것이다.

여행객들에게 71년 전 본인이 겪은 제주 4.3의 현장을 증언하고 있는 4.3 생존자의 모습

“좋은 여행기획으로 기획자·여행자·여행지가 행복해집니다”

관광업이 주력인 제주도는 쓰레기, 상하수도, 대중교통 문제는 물론, 무분별한 난개발로 인한 환경 문제까지 더해지면서, 자연 파괴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진 상황이다. 이와 함께 관광 수용력 초과에 따른 오버투어리즘(과잉 관광)의 부작용 우려도 크다.

이에 대해 윤 대표는 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공동의 대응책을 마련할 것을 강조한다.

“오버투어리즘의 혐오 대상이 관광객이어서는 안 된다. 제주 관광은 지난 60년대부터 관광 철학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지지 못한 상황에서 정부 주도에 의해 진행됐다. 여행은 양날의 검이다. 관광객이 많아지면 문제점도 생기기 마련인데 정책이 이 상황을 예측하지 못한 것이다. 반면 정책을 만드는 주체 또한 국민이다. 결국 모든 원인과 결과가 맞물려 있는 지금의 현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실질적이고 총체적인 전략 구상이 필요하다.”

지역 주민과 여행객, 자연이 모두 행복할 수 있는 상생의 길, 제주생태관광은 좋은 여행, 질 좋은 관광 기획으로 그 길을 만들어가고 있다.

질 좋은 관광은 질 좋은 상품을 만들 수 있는 시스템이 구축되어야 가능하다. 이러한 시스템을 인증할 수 있는 정책 개발도 필요하다. 아울러 질 좋은 상품을 선택한 여행객들에게 인센티브 혜택을 제공하고, 가치 소비에 대한 인식 변화를 이끄는 동시에, 지속가능한 관광으로 견인할 수 있는 선순환 구조도 정착돼야 한다.

사회적기업 (주)제주생태관광은 '여행으로 행복한 세상'을 모토로 힐링워크숍, 장애인·교육 여행, 사회공헌 프로그램 등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 2010년 도내 여행업체 중 최초로 사회적기업 인증을 획득하면서 지역을 대표하는 여행전문 사회적기업이 되기까지 제주생태관광의 경영 전략은 급변했던 제주의 역사·문화와 궤를 같이했다.

설립 초기에는 안내자로서 제주 문화에 대한 왜곡된 해설을 바로 잡고, 자연의 소중함을 깨우치는 교육성 프로그램에 치중했다. 여행객들은 해설사의 설명을 공부라 생각했고, 직접 걸으며 자연을 즐기는 여행에 불만을 토로하는 이도 있었다.

2007년 무렵 올레길이 만들어지고 도보 여행이 확산되면서 여행객들의 인식도 바뀌어갔다. 보다 전문성이 강화된 맞춤형 프로그램이 기획되었고, 2015년부터 B2B(기업 대 기업) 시장이 열리면서 회사를 상대로 하는 기획 상품들이 시장에 나오기 시작했다.

현재 제주생태관광의 경우 ‘직무역량 강화를 위한 팀 빌딩(team building) 상품’이 매출의 80%는 차지하고 있을만큼 기업 상품의 의존도가 높다. 이 외에도 사회공헌 프로그램, 장애인·교육 여행 등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마련되어 있으며, 지난 달 중순부터 한달 간 진행되는 ‘자연놀이 지도사 양성 교육’ 참여자들의 반응 또한 뜨겁다.

‘관광으로 세상을 행복하게 만들겠다’는 경영 철학을 묵묵히 실행해 온 윤순희 제주생태관광 대표의 또다른 꿈은 무엇일까? 얼핏 들으면 거창한 것 같고, 지나치게 비장한 느낌마저 드는 그녀의 꿈은 ‘성공한 사회 혁신가'가 되는 것이다.

“보통 혁신가는 실패의 사례로 남지 않나. 나는 살아남고 싶다. 이 말은 제주생태관광이 문을 닫지 않고 지금처럼 좋은 컨텐츠로 여행객들을 맞이하고, 후배들에게 이 업을 지속할 수 있는 안정된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다. 지금껏 사회적기업에 몸담으면서 내 업 뿐만 아니라, 내 주변의 현실이 사회적 생태계 속에 놓여 있어야만 진정한 사회적 책임을 다할 수 있다는 답을 얻었다. 1세대 기획가로서 나의 일이 내 삶과 연결될 수 있는 혁신 모델을 꼭 만들고 싶다.”

어쩌면 그녀의 꿈은 혼자가 아닌 함께 만들어야 하는 이 시대의 화두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추구하려는 사회적인 가치가 내 삶 안으로 들어오는 그 순간까지, 우리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끊임없이 고민하고, 질문하고, 나름의 답을 찾는 놀이에 빠져보는 것은 어떨까.

“나는 사회적인가? 당신도 사회적인가? 우리는 모두 사회적인가?”

제주생태관광은 윤순희 대표를 포함한 6명의 직원이 몸담고 있다. 윤 대표는 후배들에게 안정적인 사회적 생태계를 조성해 주는 혁신 모델을 만들고자 한다.

사진제공. 제주생태관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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