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 시스템은 청년들이 ‘과소대표’ 되는 방식으로 돌아가고 있어요. 이들을 호명해서 이야기를 들어보고, 주체적으로 정책을 만들어보자는 거죠.”
서울시가 오는 31일 전국 지자체 중 처음으로 ‘청년자치정부’를 출범한다. 청년에 의한 직접민주주의를 강화하고, 미래 과제의 선제적 해결 대응 주체로서 청년의 역할을 확대하기 위해서다. 정책을 운영하고 집행하는 행정조직 ‘청년청’의 수장을 맡은 김영경 청장(39)을 만나 청년자치정부의 출범 이유와 향후 포부 등에 대해 들어봤다.
청년자치정부는 2013년 서울시 청년허브 설치를 시작으로, 이듬해 청년거버넌스를 도입하며 기지개를 켰다. 지난 6년 간 청년시민의 참여를 바탕으로 청년수당?청년통장?청년주택 등 다양한 정책을 발굴하고 시행했으며, 전국적 확산 효과를 거두며 존재감을 입증했다. 김 청장은 앞서 청년세대 노동조합 ‘청년유니온’ 위원장, 서울시 초대 명예부시장 등을 맡으며, 청년과 서울시 가까이에서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청년청을 이끈다.
-‘청년자치정부’라는 개념이 아직 낯설다. 현 시점에 공식 출범한 배경은?
▶청년자치정부는 입법부?행정부?사법부를 포함하는 광의의 ‘정부’를 표방한다. 사법부는 빼고 입법부는 ‘서울청년정책네트워크(이하 청정넷)’, 행정부는 ‘청년청’에서 기능을 맡는다. 청년들이 생각하는 사회문제는 기성 시스템에서 해결하기 힘든 부분이 많다. 예를 들어 서울 2030세대 인구 중 50% 가량이 1인 가구인데, 현재 복지 체계는 4인 가족이 기준이라 소외되는 경우가 많다. 청년들이 스스로 발굴하고 해결하며 운영해보자는 취지로 ‘자치’라는 이름을 붙였다.
전국 자치구 최초의 시도이기도 하지만, 지난 7년 간 서울시에서 운영해온 민간 거버넌스의 결과물이다. 특히 2015년 통과된 ‘청년기본조례’가 2년 동안 17개 광역 단위로 전파되면서 청년을 위한 조례가 전국적으로 생겨났다. 이후 국회에서 19세 이상 34세 이하 청년의 정책을 지원하는 ‘청년기본법’이 발의되는 등 아래에서 위로 ‘상위법’을 이끌어내는 성과 등을 내며 자신감 있게 청년자치정부의 시대를 열어보자는 의견이 모였다.
-서울시장 직속 기구로 설치됐다. 참여 인원은?
▶올해 1월 1일 조직개편을 통해 시장 직속 기구로 들어왔다. 박원순 시장 민선 5~6기의 핵심이 ‘협치’로 민관의 협력을 중시했다면, 7기부터는 ‘자치’로 무게 중심이 이동했다. 청년청은 서울시 내에서 4급 과장이 있는 부서지만, 직속 기구로 설치된 건 의사결정 과정을 단순화하고 독립성을 보장받기 위함이다. 또 하나는 ‘들을 청(聽)’이라고 의미 부여를 해봤는데, 청년들의 의견을 잘 듣고 시장님에게 빠르게 전달하는 신속성을 가지고자 한다.
청년청은 7개팀, 32명으로 구성돼 청년이 직접 정책을 제안하고 결정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행정조직으로 운영된다. 청정넷은 오프라인 활동을 통해 신규 정책이나 개선 과제를 제안하고, 청년시민회의를 통해 정책을 설계하고 예산을 편성하는 ‘서울청년시민위원(800명)’과 온라인에서 청년 관련 다양한 의제에 의견을 더하는 ‘서울청년정책패널(400명)’ 등 총 1200명이 참여한다. 이번 오프라인 위원 모집은 끝났고, 온라인 패널은 연내 상시 모집할 예정이다.
-2022년까지 매년 500억 규모의 ‘청년자율예산’을 편성한다. 올해 주요 계획은?
▶토론?공론화 과정을 거쳐 예산을 직접 편성할 수 있는 권한을 받았다. 최대 상한선이 500억원인데, 총액 내에서 시급하다고 생각하는 사회문제를 발굴해 우선 순위에 따라 예산의 규모를 결정할 계획이다. 이와 별도로 기존에 서울시 청년과에서 해오던 사업들이 있고 해당 예산이 417억원이 배정돼 있다. 청정넷은 기존 사업을 모니터링하는 정책 개선 작업, 신규 정책 과제 발굴 크게 2개 영역의 예산 편성에 참여하게 된다.
올해 청년자치정부의 목표는 크게 5가지다. △서울시의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200여 개 위원회에서 활동하는 만39세 미만 청년위원의 비율을 현재 4.4%에서 15%로 올리는 것을 핵심으로 △자치를 위한 청년자율예산제 △기회 확대를 위한 청년인센티브제 △미래 세대의 관점을 반영하는 청년인지 예산제 △새로운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미래혁신 프로젝트 수행 등이다.
-한국 정치에서 청년의 목소리가 잘 반영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이고, 해외 현황은 어떤지?
▶최근 청년들이 공부하는 기간이 길어지고, 사회 진출이 늦어지면서 독립하는 시점도 뒤로 당겨졌다. 29~30살 넘어도 부모와 살게 되면서 청년을 ‘아이’처럼 보는 시선이 생긴 것 같다. 청년들 역시 기존 시스템에서 자신들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니, 정치에 대한 효능감을 느끼지 못한다. 청년들이 정치에 무관심한 태도를 탓하기 전에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환경부터 조성하는 게 먼저다.
미국, 유럽 등 선진국에서는 청년의 정치 참여 역사가 깊고,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다. 유소년 축구팀을 키우듯, 주요 정당 내 젊은 신인이 등장할 기회가 많다. 최근 미국의 하원의원으로 당선된 오카시오 코르테즈는 29세 여성인데, 연설도 잘하고 정책력도 뛰어나며 소통도 잘해서 ‘정치 샛별’로 떠올랐다. 뉴질랜드 재신더 아던 총리는 39세, 스웨덴 구스타프 프리돌린 교육부 장관은 36세다. 프랑스 마크롱 총리(42세)는 캐나다 저스틴 트뤼도 총리(48세)도 젊은 나이부터 정치 역량을 쌓아 뜻을 펼치고 있다.
-청년 정책 발굴을 위해 여러 목소리를 들었을 텐데, 청년 세대가 겪는 어려움은 무엇인가?
▶만 19~39세를 기준으로 삼았는데 2030세대를 최대한 포괄하기 위해서다. 특히 학교 졸업 이후 취직하기까지 시간이 길어지면서 그 사이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과소대표성’이 두드러진다. 일단 청년들이 겪는 문제의 층위는 매우 다양하고, 20대냐 30대냐에 따라서도 전부 다르기에 몇 가지로 압축하기 쉽지 않다. 그럼에도 가장 많았던 이야기는 사회 시스템과 미래 사회가 불안하게 작동해 “뭘 해야 잘 살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토로였다.
청년들의 고민이 다양해지는 만큼, 이에 대한 해결책도 다양해져야 한다. 예를 들어 현재 일자리 위주의 대책보다는 종합적 정책으로 발전하기를 기대한다. 일자리 성과를 내기 위한 천편일률적 직업 훈련이 아닌 개인의 욕망은 무엇인지, 어떤 장단점이 있고 어떻게 발전시킬지 등 자기 탐색의 기회를 제공하는 프로그램이 작동돼야 한다.
-예산 및 집행 권한을 청년들에게 맡기고, 각종 지원책을 시행하는 것에 대한 비판적 시선도 있는데?
▶서울시에서 청년수당 사업을 시작할 때 ‘세금 퍼주기’라는 부정적 의견이 많았다. 기존 공급자 위주의 훈련기관에 청년을 끼워 맞추는 것이 아니라, 청년들이 필요한 교육 프로그램을 듣거나 월세를 내는 등 미래를 위한 투자금으로 쓰도록 자율성을 주는 것이다. 정서 진단, 진로 탐색 등 비금전적 프로그램도 제공해 참여자의 만족도가 98.8%로 나오기도 했다. 청년수당은 정책의 실효성을 인정 받아 중앙 정부와 지자체에서 벤치마킹해 전국으로 확대되는 추세다.
청년자치정부가 출범하면서 단순히 정책을 제안하는 수준이 아닌 직접 예산을 편성하는 단계로 권한이 커졌다. 청년으로만 시야를 좁히지 않고 서울시의회, 민간 전문가그룹 등과 협의해 세대 간 연대도 구현하고 정책의 완성도도 높여나갈 계획이다. 청년들의 구직이 늦어질수록 부모님 세대의 부담도 커지는데, 청년의 문제가 곧 기성세대의 문제라는 인식으로 세대?사회 전반으로 확산할 수 있도록 운영하겠다.
-오는 31일 청년자치정부 출범식을 앞두고 있다. 앞으로 계획과 포부, 시민에게 바라는 점은?
▶3월 31일 세종대학교 컨벤션센터에서 출범식 ‘청년들의 결재를 바랍니다’를 개최한다. 지난 6년간 거버넌스를 통해 꾸려온 활동들을 집대성해 전시하는 청년정책 박람회와 청년자치정부의 시작을 알리는 본식을 연다. 박원순 시장을 비롯해 청년시민위원, 시민 등 1000명 이상이 참석하는 대규모 행사로 열심히 기획하고 준비했다. 이날 청년시민위원들은 대회의에 참석해 1년 동안 활동할 분과를 나누고 정책의제 발굴, 예산 편성 등에 참여한다.
앞으로 미래 사회에는 청년들을 포함해 시민들이 겪는 문제가 더 복잡하고 다양해질 것이다. 어떤 하나의 정책만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운 상황이지만, 그럼에도 최선을 다해야하는 것이 정부의 의무라고 생각한다. 청년자치정부는 청년들에게 ‘비빌 언덕’이 되어주고 싶다. 물론 행정의 방식이라 조금 딱딱하게 느껴질 수 있겠지만, 혼자 끙끙 앓을 때 어려움을 나눠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을 꼭 알아줬으면 좋겠다.
사진제공. 서울시 청년자치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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