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만 60세 정년을 맞는 인구가 처음으로 80만 명을 넘어서면서 ‘베이비붐 세대(1950년대 후반~1960년대 초반)’의 은퇴가 본격화했다. 평균 수명이 높아지고 출산율은 낮아지면서 전체 인구의 1/4, 생산가능인구의 1/3을 차지하는 5060세대의 경제활동의 필요성이 점점 커지는 중이다. 이에 따라 은퇴 시니어들의 창업·재취업을 돕는 기관들의 역할이 강조된다. 사회적기업 '상상우리'도 매년 중장년 창업·재취업을 돕는 교육 프로그램을 실시한다. 지난 한 해에만 중장년 800여 명이 참여해 제2의 인생을 준비했다. 상상우리를 통해 인생 2막을 연 시니어들의 이야기를 이로운넷이 전한다.

 

도 파트너는 "공간을 빌리는 하루 동안 그곳은 백지장 공간이 아니라 이용자들만의 공간이다"라고 말했다. /사진=백지장 이용팀 '같이놀러갈래?'

신도림역 루프탑, 18평 독립공간, 탁 트인 하늘과 노을 뷰. 이 모든 것을 주말 하루 종일 누릴 때 드는 비용은 5만5000원이다. 심지어 마음대로 못을 박아도 된다. 파티룸이나 워크숍 장소를 찾고 있는 사람이라면 귀가 쫑긋할 터.

'백지장’은 말그대로 백지장같은 공간을 대여하는 청년 기업이다.

도시 고가도로에 맞닿은 옥탑방, 오래된 조명 공장처럼 길게 방치돼있던 노후 공실을 공유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 현재 운영하는 공간은 신도림, 대림, 문래 등에 6군데. 사용자의 취향에 따라 반짝이는 클럽으로, 멋진 전시회로 변신한다. 그래서인지 주말에는 95%가 예약이 찰 정도로 ‘핫’하다. 

이렇게 ‘힙’한 공간을 운영하려면 직원이 모두 재기발랄한 청년이어야 할 것 같다. 백지장 공동 창업자 김차근·신호태 대표는 최근 50대 남성 도현주 파트너를 고용했다. 도 파트너는 전직 대기업 부장 출신이다. 흔히 영화나 드라마에 나오는 ‘부장님’ 이미지를 생각한다면 틀렸다. 김 대표는 도 파트너에 대해 “백지장의 비전과 서비스에 진심으로 공감하고 함께 열정을 쏟는 분”이라며 “이런 동료와의 만남은 드물고 소중한 일인데, 우리에겐 정말 큰 행운”이라고 말한다.

회사 안에서 그는 ‘파트너’라는 직함을 사용한다. 일반 직원이 아닌 이사와 같은 특별한 고문의 역할을 한다는 의미에서다. 작년부터는 회사 지분의 일정 부분을 소유 중이라 실제 이사이기도 하다. 

백지장은 2017년 사회적기업가 육성사업을 거쳐 현재 예비사회적기업이다. /사진=백지장

지난 2018년 10월 입사한 도 파트너는 28년 동안 대기업 IT부서에서 근무하다 재작년 부장 자리에서 털고 일어났다. 돌봄 사업처럼 여럿이 협력해 관계를 만들고, 가치를 창출하는 데 중점을 둔 경제에 매력을 느꼈다.

“회사에서 마지막 프로젝트를 맡았을 때 공장을 돌아다녔는데, 사람을 2명 봤어요. 공장 자동화 속도가 빨라지면서 사람이 필요 없어진 거죠. 저는 이게 우리 미래라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그렇게 직장에서 튕겨 나온 사람들의 해결책은 사회적경제라고 봤습니다. 회사 생활 길어봤자 4~5년 정도밖에 더 안 남았는데, 더 일찍 나와서 사회적경제 쪽 일을 시작하는 게 낫겠다 판단했어요.”

도 파트너는 퇴사 후 쉬면서 사회적경제 영역에서 진행하는 교육 프로그램 다수에 참여하며 제2의 진로를 탐색했다. 서울사회적경제지원센터와 SE임파워 사회적협동조합이 진행한 기술기반 사회혁신 리더 양성 과정, 대안에너지기술연구소가 실시한 적정기술 세미나 등에 참가하고, 사진 수업도 들었다. 평소에 공간을 다루는 일에 관심이 많아 도시재생 관련 강좌도 찾아 들었다. 그러다 만난 게 중장년 재취업을 돕는 사회적기업 ‘상상우리’다.

50플러스재단 웹사이트를 들락날락거리다 중장년 취업 프로그램 ‘굿잡5060’을 접해 여름 한 달 동안 교육 받았다. 상상우리, 현대자동차그룹, 고용노동부, 서울시50플러스재단이 신중년들에게 교육 및 멘토링을 제공하고, 사회적기업 또는 스타트업으로 취·창업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프로젝트다. 무엇을 배웠냐는 질문에 도 파트너는 “기술보다는 마음가짐”이라며 “사회적기업, 청년기업 등에서 일하는 방법과, 어떻게 젊은 세대와 협력할 수 있는지 배웠다”고 답했다. 이후 상상우리에서 진행한 ‘사회적경제조직 총괄관리자 양성과정’도 석달 들으며 사회적경제조직 운영의 전반적인 일을 배웠다.

도 파트너는 "4차 산업혁명의 시대가 도래한 만큼 사회적경제가 더 활성화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백지장과의 인연은 어떻게 맺어졌을까. 숙련퇴직 인재와 청년창업기업을 연결하는 ‘장년인재 서포터즈’ 지원사업을 통해서다. 여기서 상상우리는 도 파트너와 백지장을 연결하는 핵심 역할을 맡았다. 백지장은 도 파트너의 경험과 사업 설명 실력을, 도 파트너는 공유경제와 공간을 합한 백지장의 사업모델을 매력으로 여겨 서로를 선택했다. 도 파트너는 “취업 교육 프로그램은 많은데 실질적으로 회사와 신중년을 연결해주는 곳은 찾기 힘들다”며 “상상우리를 통해 진짜 취업으로 연결됐다는 점이 좋았다”고 말했다. 그는 회사에 들어오자마자 모 은행에서 주관한 공모전에 뽑혀 1000만 원을 지원받는데 기여했다.

공간은 전시회, 파티룸, 클럽, 소모임 등 다양한 용도로 운영된다. /사진=백지장 이용팀 '캠핑밥차' 

도 파트너에 의하면 백지장은 공간대여 사업 뿐 아니라 직접 아마추어 크리에이터나 예술가 모임도 주도해볼 계획이다. 단순한 파티룸이 아니라, 다양한 목적을 가진 대안 공간으로 활용하겠다는 의미다. 사업을 확장해 B2B 워크샵도 생각 중이고, 어플리케이션도 출시할 예정이다.

“요즘에는 먼 곳에서 워크샵 하는 걸 지양하잖아요. 그래서 한강 공원 캠핑장, MBC 한류 테마파크 등 도심 속 공간을 활용해서 원하는 프로그램으로 워크샵을 진행할 수 있도록 해보는 것도 좋을 듯 해요.”

“부장님~!” 소리를 듣던 도 파트너가 청년들과 일하며 가장 경계하는 건 ‘잔소리’다. 퇴직 전 부하 직원들에게도 잔소리를 피했다고 한다. 그는 “경험 많다고 선입견을 갖고 앞질러 이야기하는 ‘꼰대’가 되기 싫다”고 설명했다. 도 파트너와 이야기를 나눈 1시간은 10분처럼 흘렀다. “사업이 정착돼 빨리 시장에서 성과를 더 내고 싶다”고 말하는 그의 솔직한 표정은 꿈에 부푼 신입직원의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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