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이루고 싶은 꿈입니다.”

세계 최초로 5극지(남극점·북극점·에베레스트 3극점·그린란드·베링해협 2극지) 탐험에 성공한 한 산악인의 일성이다. 이런 성공을 경험한 그에게도 실패가 있을까. 실패를 이어가는 도전, 그것도 여섯 번째 도전을 앞둔 주인공은 바로 산악인 홍성택 대장(이하 홍 대장)이다. 그리고 그의 염원 대상은 로체남벽이다. 로체남벽은 여지껏 누구에게도 완등을 허락하지 않은 미지의 영역이다.

“로체남벽은 산악인으로 지내 온 제 긴 여정의 종지부입니다.”

홍 대장은 이번 로체남벽 도전의 성공과 실패에 관계없어 ‘위험한 등반’을 끝낼 예정이다. 여섯 번 째 로체남벽 도전이자 산악인 인생의 마지막 등반을 위해 25일 히말라야행 비행기에 몸을 싣는 홍 대장을 지난 19일 강남 한 카페에서 만났다.

로체남벽은?

로체(8,516m)는 히말라야에서 네 번째로 높은 봉우리다.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8,848m) 남동쪽에 있다. 수많은 산악인들이 로체 정상에 올랐지만 로체 남벽(Lhotse South Face)을 통해 로체를 오른 공식기록은 없다.

베이스캠프부터 정상까지 약 3,300m 구간이 수직 빙벽으로 이뤄져있는, 히말라야 3대 난벽(難壁) 중에서 최악으로 꼽힌다.

산악인의 전설 라인홀트 메스너는 등반에 두 차례 실패한 뒤 “21세기에나 오를 산”이라고 잘라 말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로부터 메달을 받기도 한 폴란드 산악인 예지 쿠쿠츠카는 1989년 로체 남벽을 오르다 운명을 달리했다.

1990년 체코슬로바키아 산악인 토모 체젠은 완등을 주장했지만 거짓으로 판명됐고, 같은 해 10월 러시아 팀의 등정 주장은 근거를 제시하지 못했다.

- 8천m에 달하는 산과 수직빙벽 3천m, 쉽게 가늠이 가지 않는다. 등반과정이 어떻게 되나.

▶ 두 다리가 지면에 닿는 경우가 거의 없다. 로프를 이용해 길을 확보하고 매달려서 올라간다. 신발에 착용한 아이젠으로 벽을 찍으며 오른다. 평탄한 곳이 거의 없어서 두 발을 온전히 딛지 못한다. 캠프1까지는 캠프를 칠만한 장소가 있지만, 그 위로는 캠프를 설치할 장소조차 안 나온다. 눈을 파서 공간을 만들고, 이마저도 안 되면 동굴을 만들어 텐트를 친다. 1~2인용 텐트에 3~4명이 짐처럼 포개져서 잔다. 잠도 제대로 못 잔다고 보면 된다. 생리현상도 로프에 매달려서 해결한다.

인터뷰 초반 홍 대장으로부터 등반 과정 전반의 설명부터 들었다. 캠프 간 이동에는 하루가 소요된다. 이는 루트를 개척하고 이동하는 시간까지 포함한다. (루트를 개척하는 시간은) 보통 6~7시간, 9시간까지도 걸리는데, 사람 컨디션마다 다르다. “8천m를 넘어가면 아주 힘들죠. 100m 가는데 두 시간이 걸릴 수도 있어요.” 캠프는 보통 4까지 만드는데 안전을 담보하기 위해 이번엔 5까지 만들 예정이라고 한다. 캠프는 적재적소에 설치하는데, 보통 700~800m마다 설치한다. 캠프간 거리가 400~500m에 그칠 때도 있고, 1천m까지 가기도 한다. 상황에 따라 유동적이다.

- 등반을 할 때 날씨가 너무 추워도, 너무 따뜻해도 문제라고 들었다.

▶ 날씨가 따뜻해질 경우, 눈과 얼음이 녹으면서 얼어있던 돌이 떨어져 내린다. 날씨가 추울 때는 돌이 함께 얼어있는데, 이게 녹기 때문이다. 조그만 돌이라도 2천m 위에서 떨어져 내려오면 아주 위험하다. 낙석을 피하기 위해 새벽에 이동한다. 새벽에는 추위 때문에 낙석위험이 덜하다. 날이 밝아 햇볕이 내리쬐면 한 시간만 있어도 낙석이 떨어져 내리기 시작한다. 보통 새벽 1시 정도에 출발하고, 가능하면 낮에는 움직이지 않는다.

- 극지 5곳을 다 탐험했는데, 로체 남벽만 6번째 시도다.

▶ 로체남벽을 산행의 끝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로체남벽도 시도를 하다보니까 꿈이 되고 목표가 됐다.

- 산행의 끝이라는 게 로체남벽 도전을 더 이상 안한다는 건지, 아니면 산악인 등반 자체를 끝낸다는 말인지.

▶ 끝이라는 건 가혹한 등반, 험한, 위험한 등반이 마지막이라는 뜻이다. 로체남벽을 성공하든 실패하든, 더 이상 등반은 하지 않을 계획이다. 이번이 내 산행의 마지막 도전이다. 안전이 담보되는 한 제 자신을 가혹하게 밀어볼 계획이다. 어렵고 힘들고 처절한 등반이 될 거라 예상하고 있다. 주어지는 고난과 시련은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다. 다만 눈사태 같은 건 없게 해달라고 항상 기도하고 있다. 할 수 있는 건 다 해봤다. 여한은 없을 듯하다. 성공한다면 저 자신에게 잊히지 않는 아주 값진 기록이 될 거라 생각하고, 실패하더라도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후회는 없다. 명예로운 실패가 될 거라고 생각한다.

홍성택 대장 / 사진 : 박재하 에디터

- 산행을 위해서는 협찬(지원)이 필요한데.

▶ 이번에 후원하는 기업은 노화 관련 연구를 진행하는, 홍콩에 본사를 둔 다국적기업 ‘디파이타임’이다. 남들이 가지 않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해 나가는 회사인지라 새로운 길을 개척하려는 제 로체남벽 도전에 관심을 보여준 듯하다. 외국(서양) 같은 경우는 아직 오르지 못한 곳, 가지 않았던 방법 등을 개척하기 위한 시도에 관심을 많이 보인다. 이번 원정대는 다국적 원정대 대장을 아시아인이 맡은 첫 사례로도 주목받고 있다. 내가 내셔널지오그래픽 공식 탐험가이기도 한데, 내셔널지오그래픽과 중국다큐멘터리 촬영 팀이 함께한다.

- 국내기업에서는 관심을 보이지 않았나.

▶ 국내 기업은 도전에 인색하지 않나 싶다. 한국이 지하자원 하나 나지 않는 나라인데 경제규모 세계 10위면 대단한 나라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정신이 없다고 본다. 식민지배 겪고 전쟁 겪고 어렵게 살면서 남들보다 먼저, 더 많이 일해야 하는 경쟁 시스템이 만들어졌다. 남과 비교하고, 열등감을 느끼고, 탓하는 사회가 됐다. 경쟁심을 버리고 도전정신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경쟁 속에 있다 보니까, 기업에서 협찬이야기하면 ‘거기 가서 왜 헛고생하느냐’고 말하는 이도 있더라. 다들 돈 벌기 바빠서 돈과 연관되지 않으면 한량으로 보는 시선이 있다. 도전정신을 하찮게 보는 거다. 일본은 100년 전에도 히말라야로 원정대를 보내면서 도전정신을 장려했다. 산악인의 도전을 통해 사회와 청소년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게 있다. 한국의 경제규모, 향후 사회 성장을 생각하면 이제는 경쟁심을 버리고 도전을 장려해야 한다. 산악인 선배들은 이런 이야기를 잘 안했는데, 산악인으로서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반인에게 비치는 산악인은 대자연에 도전하는 ‘철인’같다. 철인이 아닌 일반 시민으로 일상과 생계에서는 그 역시 어려울 수밖에 없다. “영어 학원을 운영했죠, 지금은 접었지만. 하다 보니 제게 야생 기질 같은 게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양복에 넥타이 매고 살았다면 사는데 크게 문제는 없었겠지만, 내가 정말 원하는 걸 못하겠다 싶었죠. 돈이야 벌면 되고, 마침 학원을 정리해야할 일도 생기고 해서 정리했습니다.” 홍 대장은 협찬 과정을 설명하면서 국내에서 도전을 장려하지 않는 풍토에 아쉬움을 크게 나타냈다. 한국사회의 경쟁체제, 이를 극복하기 위한 도전정신을 강조했다.

- 경쟁심을 버리고 도전을 장려해야 한다는 얘기를 듣다보니 산악인의 탐험, 개척정신이 사회에서 찾기 힘들다는 말로 해석된다.

▶ 경쟁만 하는 게 아니라 각자 위치에서 목표를 향해 도전하는 정신이 필요하다. 경쟁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다. ‘도전’과 ‘정신’으로 말하고 싶다. 자기 자리에서 ‘도전’해야 한다. 학생은 학생대로, 직장인은 직장인대로 목표를 설정하고 도전해야 한다. 스스로 하게 되면 남과 비교하지 않을 수 있다. 한국은 ‘맨 파워’가 대단한 나라다. 이게 돼야 기업도 국가도 성장할 수 있다. ‘정신’은 자신이 세운 목표를 위해 스스로를 밀어 붙인다는 말이다. 혹독하게 자신을 몰아붙이되, 아니라고 느끼면 과감하게 포기할 수 있어야 한다.

- 도전정신을 가지고 자녀가 “나도 산악인이 되겠다”고 말하면 어떤 조언을 할 것인가.

▶ 자기 인생이긴 한데. 하지 말라고 하고 싶다. 견뎌야할 고난, 고통이 너무 심하다. 고난과 고통을 의무로 받아 들여야 한다. 한번 겪어보면 이게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운지 안다. 히말라야 한번 가보고 다시는 안가는 사람 많다. 계속하는 사람은 정말 적다. 다들 자기 열정과 꿈을 위해서 가지, 다른 생각가지고 갔던 사람은 99% 한번 가보고 끝이다.

- 가족들에게는 홍 대장의 로체 남벽 도전을 배웅하는 게 도전이지는 않나.

▶ 많은 사람들이 가족들이 염려할거라 생각하는데, 막연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다. 등반의 생리를 알고, 이를 거스르지 않고 무리하지 않으면 사고 날 일이 거의 없다. 조심하고 겸손하면 사고 나지 않는다. 비교가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아침에 차를 타고 출근하면서 ‘사고가 난다, 다친다’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운전하면서 ‘내가 오늘 다친다’라고 하는 사람은 없을 거다. 과속하고 신호위반을 하기 때문에 사고가 난다. 가족들은 말리지 않고 잘 다녀오라고, 제 꿈을 격려해준다. 물론 위험요소가 있지만 어떻게 등반하면 위험하지 않은지 설명도 자주 했고, 그렇게 해서 여태껏 집에 항상 돌아왔다. 이번도 마찬가지다. 다만 조금이라도 위험하다고 판단하면 주저 없이 내려올 생각이다.

- 로체남벽이 산악인 홍 대장의 마지막 등반이라고 했다. 이후 계획은.

▶ 앞서 말한 도전정신을 한국에 심고 싶다. 청소년들이 극한에서 자기를 극복하고, 인내력을 기를 수 있도록 돕고 싶다. 방학 때에 극지를 경험하면서 어떻게 대처하고, 어떤 생각을 품어야 하는지 등 내용들을 알려주고 싶다. 대한민국에 갇혀있지 말고 세상을 더 넓게 봤으면 좋겠다. 향후에 청소년 네트워크를 형성하면 저변을 넓혀갈 수 있을 거로 생각한다.

홍성택 대장 / 사진 : 박재하 에디터

- 이번 시도가 어떤 의미로 남았으면 싶나.

▶ 사람들이 각자 하고 싶은 일에 도전하도록 격려할 수 있으면 좋겠다. 내가 로체남벽에 계속 도전하는 것처럼, 자기 꿈이라면 끈기를 가지고 계속 하라고 말해주고 싶다. 다들 자기만의 로체남벽이 있을 거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남 의식하지 않고 도전했으면 좋겠다. 그렇게 했을 때 꿈을 성취할 수 있다.

내가 북극점을 갔을 때 1200km 이상을 걸었다. 그런데 첫 날에 3km를 채 못 걸었다. 너무 힘들고 추워서, ‘이거 미친 짓’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끝까지 밀어붙였다. 계속 하다보니까 가능성이 보이고, 결국 북극점이 보였다. 각자 꿈을 품은 이상 고난에 익숙해져야 한다. 고통은 반드시 따르기 때문에 의문을 가지지 말아야 한다. (그 고통과 고난을 무시하고) 각자 꿈을 위해 갔으면 좋겠다. 로체남벽을 통해 내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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