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일 열린 ‘퀘벡의 사회적경제 혁신 모델 공유 콜로키움’에 다양한 분야에서 사회적경제를 빛내는 인물들이 참여했다.

캐나다 속 작은 프랑스, 퀘벡(Québec) 주. 흔히 ‘퀘벡 모델’이라 불리며 스페인 몬드라곤, 이탈리아 볼로냐와 함께 세계 사회적경제 3대 모델로 꼽히는 지역이다. 신협 서울협의회가 2015년 발간한 퀘벡 협동조합 연수보고서에 의하면 퀘벡 지역에는 3,300개 이상의 협동조합이 있으며 사회적경제 부문에서만 2만5천 명이 넘는 사람을 고용하고, 이들이 창출하는 매출은 연간 약 17조 원을 넘는다고 한다. 이는 퀘벡주 총생산(GDP)의 약 8%를 차지한다.

지난 18일 서울혁신파크에서 열린 ‘퀘벡의 사회적경제 혁신 모델 공유 콜로키움’에서는 퀘벡 C.I.T.I.E.S(사회적경제 혁신과 지식 이전을 위한 국제교류센터) 출신 사회적경제 전문가들이 의료협동조합의 종류와 사회적경제 지식 확산 방법을 공유했다. 서울시사회적경제지원센터가 주최한 이번 행사에는 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을 포함한 보건 의료분야 관계자, 국내 대학의 사회적경제분야 교수 및 학생, 자치구 사회적경제지원센터 등 관련 분야의 다양한 사람들이 참석했다. 

C.I.T.I.E.S(영어명 International Center for Innovation and Knowledge Transfer on the Social and Solidarity Economy)는 ‘사회연대경제의 지식전수와 혁신 확산을 위한 국제 교류센터’의 약자로, 사회적경제의 혁신사례를 발굴하여 전 세계 각지의 지방 자치 정부와 사회적 경제 조직들이 서로 배울 수 있도록 지식 전수와 혁신 확산의 과정을 기획, 실행하는 조직이다. 사무국은 사회적 경제의 모범 사례로 널리 알려진 캐나다 퀘벡 주의 최대 도시, 몬트리올에 있다. 2016년 몬트리올에서 열린 GSEF 국제회의에 참가한 사회적경제 분야의 주요 리더들이 상호 교류의 중심 축 역할을 할 조직의 필요성에 공감하여 몬트리올에 센터를 만들기로 합의했다. 서울사회적경제지원센터와 협력해 사회적경제 혁신과 지속가능한 성장에 관한 연구를 진행했다.


병원 운영, 시민이 나선다!

“퀘벡 보건의료 협동조합의 역사는 1944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퀘벡 주민들은 대부분 공장 노동자였으며 가난했죠. 게다가 국가의료보건법이 생기기 전이라 아프면 병원에서 모든 비용을 사비로 지불해야 했어요. 이때 퀘벡에 최초로 의료협동조합이 만들어져 주민들에게 저렴한 가격으로 의료 서비스를 제공했습니다.”

퀘벡에서 처음 만들어진 보건의료 협동조합의 터 / 사진=C.I.T.I.E.S

퀘백협동조합평의회 위원이자 C.I.T.I.E.S 상임이사인 마틴 반 덴 보르(Martin Van Den Borre)의 설명이다. 의료 사각지대를 없애기 위해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협동조합을 만들어 운영했던 것. ‘우리 스스로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자’는 의지는 지금까지도 이어져 현재 퀘벡에는 다양한 종류의 의료 관련 협동조합이 있다. 마틴 반 덴 보르 상임이사는 “한국에도 제주녹지국제병원을 둘러싼 논의 등 의료 민영화 이야기가 나오는 중이라 들었는데 퀘벡도 비슷하다”며 공공의료체계를 위협하는 움직임 속에서 시민 참여형 사회적경제 모델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마틴 반 덴 보르 상임이사는 25년의 사회적경제 활동가 경력을 갖고 있으며, 건강협동조합 개발국장을 역임한 바 있다. “40년 동안 지역 주민들의 건강을 책임졌던 병원이 사라질 위기에 처하자 7만 명의 주민들이 병원을 인수해 협동조합 형태로 운영한 경험도 있다”고 말했다. 이날 첫 강연 순서에서 그는 퀘벡 내 보건의료 협동조합 분야 8종류를 소개했다.

지난 18일 열린 ‘퀘벡의 사회적경제 혁신 모델 공유 콜로키움’의 강연자로 나선 마틴 반 덴 보르 상임이사.

▶ 홈 케어
사용자의 자립을 목표로 청소, 요리, 가족 돌봄 등의 서비스를 제공한다. 퀘벡 내 40개 이상의 노동자 혹은 다자간 협동조합, 그리고 60개 이상의 비영리단체가 있다. 공공기관이나 전문가들이 수행하는 서비스를 대신 제공하기도 한다.

▶ 긴급의료원
퀘벡에는 응급 의료인 협동조합이 7개 있다. 이들은 퀘벡 의료협동조합 생태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최소한의 요금으로 이용자들에게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하며, 조합원들에게 더 나은 근로 환경을 제공한다는 미션을 갖고 있다. 이 중 몇 곳은 노동자 협동조합으로, 직접 응급차 회사를 인수하기도 했다. 마틴 반 덴 보르 상임이사는 “노동자들이 공동으로 소유하는 단체라 소속감, 책임감, 충성심 등이 매우 강하다”라고 설명했다. 

▶ 구매와 유통
조합원에게 의료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생산자 협동조합이었다. 마틴 반 덴 보르 상임이사에 의하면 이 협동조합은 지난해 사업을 종료했다.

▶ 보건 전문
인력보건 관련 전문 인력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만든 협동조합들이다. 종류는 마사지 테라피, 침술, 심리치료, 산전?산후 관리, 물리치료, 정신 건강 상담, 사회복지 등 다양하다.

▶ 요양 주택
조합원은 물론 비조합원에게까지 요양 주택과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모델이다. 일부 조합은 지역 보건당국과 협약을 체결했다. 2004년 4개로 시작해 현재 14개의 조합이 활동 중이다. 마틴 반 덴 보르 상임이사는 “이런 협동조합 모델은 널리 확산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 질병 예방·보건 교육
질병 예방과 3단계 의료 서비스에 집중했던 협동조합, 간호사들이 모여 보건을 주제로 한 보드게임을 만들어 확산하려 했던 협동조합이다. 둘 다 퀘벡 내 연대협동조합 형태였지만 펀딩이 잘 이뤄지지 못해 사업을 종료한 상태다. 마틴 반 덴 보르 상임이사는 “퀘벡의 의료 시스템은 3단계로 나뉘어 체계적으로 운영되는데, 투자가 잘 이뤄지지 않아 협동조합이 문닫을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 의료서비스
퀘벡 내 50개 이상의 협동조합이 있다. 의사의 급여는 주정부가, 그 외 인프라 비용은 협동조합이 부담한다. 또한 의사들이 추가적인 비용을 내고 행정이나 간호 업무 담당자 등 직원을 고용한다. 사용자-의사-노동자-커뮤니티-후원자 간의 파트너십을 유지한다.마틴 반 덴 보르 상임이사는 “도시 외곽에 분포한 의료 사각지대에서 이 프로젝트들을 실행해 의료 서비스의 적절한 분배가 가능해졌다”고 말했다.

▶ 간호사 의료협동조합
간호사를 중심으로 구성된 협동조합으로, 2곳이 활발히 활동 중이다. 소외된 지역에서 주로 일하며, 만성 질환 관련 서비스에 집중한다. 간호사의 의료 행위를 제한하려는 일부 의사들에 의해 난관에 부딪혔지만, 간호사 조합 연맹이 목소리를 키워 협동조합을 활성화할 수 있었다. 마틴 반 덴 보르 상임이사는 “보건 의료 분야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주체로 사회적경제가 점점 더 주목받으면서 의사와 전문가의 입장만을 대변하는 게 아니라, 시민 등 이해당사자들의 목소리도 대변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배워서 남 줘야지! 핵심은 ‘연구’가 아닌 ‘지식 전수’

지난 18일 열린 ‘퀘벡의 사회적경제 혁신 모델 공유 콜로키움’에서 TIESS를 소개한 쥬느비에브 위오 부대표.

2번째 강연자로 TIESS(사회혁신 연계 및 전수조직, Territoires innovants en économie sociale et solidaire) 부대표이자 C.I.T.I.E.S 재무담당 이사인 쥬느비에브 위오(Geneviève Huot)가 나와 TIESS를 소개하고, TIESS가 어떤 동기와 협력체계를 바탕으로 탄생했는지 설명했다. TIESS는 불어로 사회연대경제의 혁신공간 (Territoires innovants en économie sociale et solidaire)의 약자로서, 실무 현장에서의 적용가능성을 중심에 놓고 연구자들과 실무자들이 공동으로 지식을 생산하고 적용하는 일종의 씽크 앤 두 탱크 (THINK-AND-DO TANK) 이다. TIESS의 주요 미션은 퀘벡 사회연대경제 생태계 내에서 지식 전수와 혁신 확산을 활성화 하는 것인데, 사회혁신을 위한 최초 발안자, 연구자, 촉진자 및 사회혁신을 다른 곳에서 재현하고자 하는 다른 당사자들과 협력하여 지식전수를 통한 사회의 더 큰 변화를 추구한다. 쥬느비에브 위오 부대표는 TIESS를 “사회적경제의 좋은 관행을 확대하는 확산자”라 표현한다.

쥬느비에브 위오 부대표에 의하면 TIESS는 퀘벡대학교 몬트리올 캠퍼스에서 지역 사회와 대학의 합동연구 형태로 5년 전 시작했다. 사회적경제 관련 연구는 많지만, 실제 현장에는 영향을 주지 못한 채 항상 연구물로 끝난다는 데 사람들이 문제의식을 느껴 만들었다. 

예를 들어 사회적경제 분야 종사자들이 사회적 프랜차이즈 설립 방법에 대한 지식 전수를 TIESS에 요청했다고 가정하자. TIESS가 사회적 프랜차이즈 설립이 중요한 문제라고 판단하면 연구진뿐 아니라 관련 실무자들도 동원해 프로젝트에 착수한다. 이들의 공동 작업을 통해 사회적 프랜차이즈 설립 매뉴얼을 한 번 만들어내면, 언제든 교재처럼 활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런 프로젝트는 선정부터 완료까지 대개 몇 년이 걸리며, 재원 80%는 주 정부가, 20%는 TIESS가 조달한다.

TIESS는 '연구 조직'보다 '전수 조직'의 역할을 한다. / 이미지=TIESS 웹사이트

TIESS의 업무는 크게 3단계(전략적 관찰, 연계, 전수)로 나뉜다. 먼저 ‘전략적 관찰’은 사회적경제 조직들의 필요요건이 뭔지, 어떤 혁신이 필요한지 발견하는 단계다. ‘연계’ 단계에서는 연구를 실행하고 결과로 나타난 지식을 사회적경제 조직에 전달한다. ‘전수’는 사회적경제기업도 이 과정을 문서화 해 실제적인 변화를 유도하고자 하는 단계다. 

쥬느비에브 위오 부대표는 “연구 프로젝트를 끝낸 뒤 결과를 발표하거나 컨퍼런스를 개최하면 지식 전수 과정이 끝났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렇지 않다”며 “지식 전수는 더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설명했다.

TIESS의 신념은 ‘연구자와 실무자의 지식은 똑같이 중요하다’는 것. 학계 논의로만 끝나는 게 아니라 현장에 직접 변화를 가져오려면 둘 사이에 연결고리가 있어야 한다.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도 항상 둘을 모두 포함시킨다. 쥬느비에브 위오 부대표는 “TIESS 이사회에도 연구자와 실무자들이 함께 있어 양쪽 입장 모두를 대변한다”고 말했다. 
 

사진. 이우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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