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1.5m 좁은 다락방, 15시간씩 일했던 봉제공장 ‘시다’들
[리뷰] 1.5m 좁은 다락방, 15시간씩 일했던 봉제공장 ‘시다’들
  • 양승희 기자
  • 승인 2019.04.01 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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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기념관, 서울 청계천 조성…4월 개관 앞서 지난달 20일 개방
1~3층 전시‧문화공간, 4~6층 노동자 권익시설…‘노동 가치’ 전한다
서울 청계천로에 들어선 '아름다운청년 전태일기념관' 정면 모습. 전태일이 쓴 자필 편지를 14.4mx16m 크기로 디자인해 부착했다./사진=서울시
서울 청계천로에 들어선 '아름다운청년 전태일기념관' 정면 모습. 전태일이 쓴 자필 편지를 14.4mx16m 크기로 디자인해 부착했다./사진=서울시

햇볕 한 줌 들지 않은 좁다란 다락방에서 시다들은 하루 15시간씩 천을 자르고 미싱을 돌렸다. 높이 1.5m도 되지 않는 작업장에 갇힌 노동자들은 허리를 펴지도, 일어서지도 못한 채 기계처럼 일만 했다. 제대로 된 식사 대신 희뿌연 먼지를 먹어서일까. 이들은 젊은 나이에도 영양실조, 소화불량, 호흡기질환, 신경계질환, 눈병 등 온갖 질병에 시달렸다.

1960년대 봉제 노동자들의 삶은 위태하다 못해 참담했다. 좁다란 작업장 속에 숨겨놓은 열악한 노동현실을 세상 밖으로 꺼낸 사람이 바로 전태일(1948~1970)이다. 전태일을 통해 한국 노동운동의 역사를 재조명한 ‘전태일기념관’이 그가 분신했던 평화시장 인근 서울 청계천로에 들어섰다. 서울시는 이달 말 정식 개관을 앞두고, 지난달 20일 시민들에게 먼저 문을 열었다.

종로에서 청계천을 따라 걷다 보면, 지상 6층 규모의 갈색 벽돌 건물을 만날 수 있다. 1969년 전태일이 당시 근로감독관에게 열악한 여공들의 근로조건 개선을 요청하며 쓴 실제 편지글로 외벽을 장식했다. 기념관 곳곳에서 전태일 특유의 필체를 만날 수 있는데, 근로조건 개선 진정서, 사업계획서 등에 새겨진 그의 육필은 현재의 관람객에게 말을 거는 듯 했다.

‘한국 노동운동’의 상징 전태일, 전시‧공연 프로그램 시작

전태일기념관 내부에 1960년대 평화시장 봉제작업장인 좁다란 다락방을 재현했다./사진=서울시
전태일기념관 내부에 1960년대 평화시장 봉제작업장인 좁다란 다락방을 재현했다./사진=서울시

6개층 1920㎡(580평) 규모로 조성된 전태일기념관은 ‘노동’을 키워드로 과거와 현재를 잇는 다양한 시설이 들어섰다. 1~3층은 전태일의 일대기와 그가 남긴 유품, 당시 시대상을 엿볼 수 있는 전시실, 공연장 등이 자리했다.

특히 1960년대 전태일이 일했던 평화시장 봉제작업장을 재현한 다락방이 눈길을 끌었다. 고개를 한껏 숙여야만 몸을 넣을 수 있는 비좁은 작업장에 들어서면, 당시 노동 공간의 열악함이 피부로 다가온다. 이곳에서 하루 15시간씩, 야간 노동까지 불사했던 10~20대 어린 시다들의 고단함을 상상하니 가슴이 답답해져 왔다.

공장에서의 부당함을 알리기 위해 전태일은 노동운동에 뛰어든다. 1969~1970년 동료 재단사들을 모아 ‘바보회’ ‘삼동회’ 등을 결성해 노동실태를 조사하고, 노동청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그럼에도 근로조건이 나아지지 않자 근로기준법 화형식을 결심한다. 전시장에서 당시 그가 준비한 선언문 내용을 볼 수 있는데, “우리는 재봉틀이 아니다” “일주일에 1번만이라도 햇볕을”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라는 처절한 외침이 담겨있다.

전태일기념관 상설전시는 ‘전태일의 꿈, 그리고’를 주제로 전태일의 일대기를 총망라했다./사진=서울시
전태일기념관 상설전시는 ‘전태일의 꿈, 그리고’를 주제로 전태일의 일대기를 총망라했다./사진=서울시

이처럼 전태일의 일대기를 볼 수 있는 상설전시와 함께 연 3~4회 기획전시가 진행된다. 개관 첫 기획전은 전태일이 생전 작성한 사업계획서를 토대로 그가 꿈꿔온 모범적 봉제작업장을 재연한 ‘모범업체: 태일피복’이며, 오는 6월 30일까지 이어진다.

2층 소극장에서는 노동 관련 공연이 무료 진행된다. 첫 작품으로 지난달 31일까지 청년 전태일의 모습을 그린 음악극 ‘태일’이 무대에 올랐다. 강승연 전태일기념관 홍보담당자는 “총 5회 공연이 개막 전 매진됐고 취소표 문의가 끊이지 않을 정도로 관객들의 호응이 뜨겁다”고 말했다. 이후 어린이극 ‘안녕, 태일’, 콘서트 ‘고백’, ‘제1회 전태일 노동영화제’ 등이 이어진다.

오늘날의 노동자 위한 지원‧공유‧업무 공간도…4월 정식 개관

전태일기념관 건립 계획 당시 조감도./사진=서울시
전태일기념관 건립 계획 당시 조감도./사진=서울시

4~6층은 현재의 노동자들을 위한 지원 공간으로 꾸렸다. 4층에는 소규모 신생 노동단체, 노동조합 미가입 노동자들의 공유공간 ‘노동허브’가 들어선다. 서울시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노동단체 중 심사를 통해 입주 가능하다. 5층은 취약계층 노동자 복지증진 및 권익보호를 위한 ‘서울노동권익센터’, 6층은 기념관 운영을 위한 사무공간 및 옥상 휴식공간이다.

전태일기념관은 하절기(3~10월) 10시~18시, 동절기(11~2월) 10시~17시30분 무료 운영되며, 매주 월요일과 설날 및 추석 당일에는 휴관한다. 이달 말 정식 개관 이후 학생, 청소년을 위한 노동‧인권교육을 비롯해 사회적 이슈와 전태일 정신을 연계한 다양한 프로그램 등을 진행할 계획이다. 서울시는 전태일 다리, 전태일 동상, 평화시장, 명보다방으로 이어지는 ‘전태일 노동인권 체험투어’ 등을 준비 중이다. 

이수호 전태일기념관장은 “전태일을 다시 불러내 가난과 어려움 속에서도 결코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는 삶의 태도, 자기 자신보다 동료와 이웃을 향해 베풀었던 온정을 함께 경험하고자 한다”며 “시대를 뛰어넘어 전태일과 어깨를 걸고 현재의 우리 삶을 이야기하길 희망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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