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가치가 화두다. 현 정부의 핵심 철학으로 사회적 가치가 선포되면서 공공기관 경영평가제도에서도 공공성·사회적 가치가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많은 공공기관들이 사회적경제 조직과 협력하는 등 발걸음이 빨라졌다. 개별 공기업의 고유한 사업 가치가 여러 사회적 경제 분야와 만나 사회적 가치로 확대되도록 하기 위해서다. 본지는 사회적경제와 동행에 나선 대표적인 공공기관을 만나본다.
안영주 KOTRA 사회적가치실 실장을 최근 서울 염곡동 본사에서 만났다./사진=최범준 인턴기자

우리나라의 연간 누계 수출액이 지난해 처음 6000억 달러를 넘어섰다. 1948년 수출이 시작된 이후 70년 만의 신기록이자, 2011년 5000억 달러 달성 이후 7년 만에 기록한 수치다. 한국은 미국, 독일, 중국, 일본, 네덜란드, 일본 등에 이어 세계 7번째로 6000억을 돌파한 ‘수출 대국’이다. ‘글로벌’이라는 말이 일상화한 시대, 해외진출은 기업들의 필수 요건이 됐다.

국내 중소?중견기업의 해외시장 진출과 글로벌 일자리 창출을 지원하는 대표적 공기관이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다. 국내외 기업 간 투자와 산업·기술 협력을 통해 무역 진흥을 이끌어온 KOTRA에서 지난해 5월 사장 직속 부서로 ‘사회적가치실’을 신설했다. 중소?중견기업본부, 혁신성장본부, 경제통상본부 등에서 각각 진행해오던 CSR 사업을 총괄하는 ‘컨트롤타워’를 세운 것이다.

사회적가치실 신설과 함께 키를 잡은 안영주 실장을 만나 KOTRA의 사회적가치 창출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입사 25년 차의 안 실장은 앞서 리서치, 마케팅, 제품개발, 산업지원, 혁신성장, 미래전략 등 다양한 업무를 맡아왔다. 멕시코, 미국 등 해외에서 근무한 경험도 풍부하다. 지난 1년간 국내외 업무를 총망라하고, 여러 부서를 아우르며 KOTRA만의 사회적가치 창출에 매진하고 있다.

KOTRA에서는 지난해 사회적가치실을 신설하고, 사회적경제 기업에 대한 지원 프로그램을 본격화했다. 해외진출 지원사업 설명회 모습./사진제공=KOTRA

-사회적가치실이 사장 직속 부서로 신설됐다. 그동안 사회적 책임을 어떻게 실천해왔는지?

▶지난해 4월 권평오 사장이 취임하면서 곧바로 조직 개편을 했고, 5월 14일 사회적가치실이 출범했다. 전 조직에서 동참해야 하다 보니, 특정 본부 소속이 아닌 사장 직속으로 설립됐다. 부서별로 흩어진 CSR 업무를 모아 보다 전략적?효율적으로 사업을 추진해보자는 경영진의 의지가 컸다. 기부, 봉사활동 등 전 조직원들의 CSR 참여를 의무화해 전사적으로 사회적가치 창출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KOTRA에서는 그동안 크게 4가지 방식으로 사회적가치를 실현해왔다. 먼저 국내 청년들이 해외기업에 취업할 수 있도록 ‘일자리 창출’ 사업을 지원했다. 둘째로 해외 무대를 기반으로 한 대기업?중소기업, 협력사들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상생 협력’ 사업을 통해 동반 성장을 이끌었다. 셋째로 다문화인을 무역인으로 성장시키고, 예술가와 중소기업을 연결하는 ‘사회적 약자’ 지원을 확대했다. 마지막으로 개발 경험 공유를 통해 개발도상국의 성장을 이끄는 ‘글로벌 CSR’ 등을 선도했다.

-다양한 CSR 활동 중 ‘사회적경제 기업 지원 프로그램’이 눈에 띈다.

▶2017년 사회적경제 기본법이 본격적으로 논의되면서 사회적경제 기업을 위한 체계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내부 의견이 나왔다. 사회적경제 기업의 글로벌화를 위한 프로그램을 설계해 2018년 1월부터 시행 중이다. 기업 역량에 맞는 진단, 컨설팅을 시작으로 해외시장 조사, 마케팅, 홍보 등 지원을 단계별?맞춤형으로 진행한다. 교육 프로그램 및 출장 등 수수료 할인을 제공하고, 수출상담회 참가를 우대하는 등 다양한 혜택을 통해 해외진출 첫걸음은 물론 수출 확대를 돕는다. 

2017년 사회적경제 기업 51개사를 지원해 77만 달러(약 8억7000만 원) 수출 실적을 냈다면, 사업이 본격화한 2018년에는 154개사를 지원해 450만 달러(약 50억8000만 원)를 수출해 6배 이상 확대됐다. 올해는 증가율이 다소 둔화할 수는 있지만, 지원 기업 수가 최소 200개로 늘어나고 전체 매출액도 오를 것으로 기대한다. 무엇보다 여러 성공사례가 발굴돼서 더 많은 청년들이 인사이트를 받아 사회적경제 기업 창업에 뛰어들고, 해외진출에도 도전하길 바란다. 

2019년 사회적경제 기업 지원을 위해 KOTRA에서 운영하는 다양한 우대제도./자료제공=KOTRA

- ‘수출기업’으로서 사회적경제 기업만이 가지는 특징과 장점은 무엇인가?

▶사실 기존 중소기업과 성격이 많이 달라 사회적경제 기업만을 위한 지원 프로그램이 필요했다. 사회적가치를 창출하는 좋은 뜻은 있지만, 이익을 내는 기업으로서 기본 요건을 갖추지 못한 곳들이 많아서 진단, 교육, 컨설팅 등 패키지 1단계에서 경쟁력을 키우는 일부터 시작했다. 물론 사회적경제 기업이라고 해서 모두가 수출 초보는 아니고, 이미 역량을 갖춰서 곧바로 홍보, 마케팅 해외 판로개척 등 패키지 2~3단계로 가는 곳들도 있다.

사회적경제 기업의 특징이라면 단순히 물건과 서비스만을 파는 게 아니라, ‘스토리’를 담아 사회에 기여하는 비즈니스 모델을 갖췄다는 점이다. 물론 기술이나 품질 면에서도 우수해야 하지만, 일반 영리기업과의 차별점이 경쟁력이 될 수 있다. 특히 최근 사회적가치를 중시하는 해외 바이어들이 늘어나는 추세이고, 큰 차이가 아니라면 좀 더 가격을 주고서라도 취약계층 고용이나 환경 친화 등 사회에 기여하는 상품을 구매하려 한다.  

실제 유럽, 미국 등 사회적경제가 앞선 나라를 보면, 이른바 ‘개념 소비’가 많이 일어난다. 제품이나 서비스를 구매할 때 이왕이면 공정무역, 에코 제품 등을 선택하는 소비자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뜻이다. 한국의 사회적경제 역사는 아직 길지 않지만, 우리 사회도 어느 정도 성숙 단계에 놓여 있기 때문에 사회적경제 기업의 성장 가능성 또한 높다.

사회적경제기업과 예술인을 매칭하는 '아트콜라보'를 통해 상품 디자인 개선 및 스토리 발굴을 지원했다. 오른쪽은 사회적기업 '제리백'의 기부가방./사진제공=KOTRA

- KOTRA가 지원한 사회적경제 기업 중 주목할 만한 사례를 소개한다면.

▶예술인과 중소기업을 잇는 ‘아트콜라보’ 사업을 2016년부터 해오고 있는데, 지난해 사회적경제 기업의 참여를 본격화했다. 기업 입장에서는 제품의 디자인을 개선하고 스토리를 만들어내며, 신진 예술가에게는 지속적인 작품 활동의 기회를 제공한다. 해당 상품을 가지고 본사 내에서 특별 전시를 열기도 했고, 해외 상품전에 소개하기도 했다.

유기농 식재료를 판매하는 사회적기업 ‘유기농비건’은 현미과자 포장지에 ‘어린왕자와 구름’을 소재로 한 그림을 더해 제품의 순수함을 강조했으며, 미국 바이어와 2000만 원 계약을 체결했다. 아프리카 수질 개선에 힘쓰는 사회적기업 ‘제리백’도 우간다 아이들이 물을 나를 수 있는 가방 ‘제리캔’을 제작했다.

- KOTRA는 전 세계 127개 무역관을 운영한다. 해외에서 만난 우수 사회적경제 기업이 있다면 소개해달라.
  
▶KOTRA 직원들이 해외업무를 하면서 수집한 정보를 모아 지난해 ‘해외 사회적경제 기업 성공사례’ 자료집을 내기도 했다. 무엇보다 눈길이 간 분야는 ‘지역경제 활성화’였다. 최근 국내에서도 도시재생 이슈와 함께 쇠퇴한 지역경제를 되살리는 일이 중요한 화두로 떠올랐다. 선진국에서 소도시의 지역을 활성화하는 모범 사례를 소개해 국내에 적용할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예를 들어 캐나다의 사회적기업 ‘테크노폴 앵거스’는 지속가능한 지역재생을 목표로 건물을 리모델링하고, 사회적경제 기업에 임대해주는 등 사업을 한다. 프랑스의 사회적기업 ‘SOS그룹’은 1984년 설립 이후 30년간 지역의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보건, 주거, 교육 분야의 개선을 이끌며, 1만 7000여 개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등 모범 사례로 꼽힌다.

안영주 실장은 "단순히 사회적경제 기업의 제품을 해외에 수출하는 차원이 아니라 동남아, 아프리카, 중동 등 개발도상국에 진출해 기술과 문화를 전하고, 현지 지역사회에 기여하는 선진국가로서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고 말했다./사진=최범준 인턴기자

- 해외진출을 꿈꾸는 사회적경제 기업에 조언을 해달라.

▶사회적경제 기업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판로개척’이 중요하다. 현재 내수시장만으로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해외시장으로 눈을 넓혀야 한다. ‘국내에서 먼저 성공한 다음 해외로 가겠다’는 것보다, 창업 초기부터 해외시장을 목표로 삼아 사업을 추진해가는 방향이 바람직하다. 글로벌 시장의 문턱이 높기 때문에 해외진출부터 도전하는 게 성공으로 가는 길이 될 수 있다.

‘해외진출을 하고는 싶은데 무엇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사회적경제 기업이 있다면, KOTRA를 적극 활용하기를 바란다. 진단부터 시작해 기업에 딱 맞는 1:1 맞춤 프로그램을 제안해드린다. 지방에 위치해 서울 본사 방문이 어렵다면, KOTRA에서 직접 찾아가는 현장 컨설팅 프로그램도 있다. 수출기업이라는 꿈이 있다면, 두려워하지 말고 주저하지 말고 KOTRA의 문을 힘껏 두드려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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