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주로 혼자 여행을 하고, 혼자 일을 하다 보니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이 불편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여행 내내 정말 많이 웃고 얘기도 많이 하고 좋은 에너지를 많이 받았어요. 여성들만 모여서 이야기가 잘 통한 것도 있겠지만...” -아일랜드 음악여행 참여자 J씨-

“비혼 여성이자 직장인이다 보니 제게 여행의 목적은 일탈과 쉼이었어요...(중략)...혼자 하는 여행이 더는 재미없어진 지 오래고 남성들과 같이 가는 여행이 불편했기에 여성들끼리만 떠나는 여행이 매력적으로 다가오기도 했고요.”  -페미니스트 아카이빙 여행 참여자 L씨-

J씨, L씨 모두 지난해 여행여락에서 기획한 여행서비스를 이용한 이들이다.  

지난해 여행여락의 '아일랜드 음악여행'에 참여한 회원들

여성만 가입 가능한 회원제 여행사...“여성의, 여성에 의한, 여성을 위한” 

“여성으로 한국사회를 살아가는 일은 언제나 힘겹죠. 여행에서도 그래요. 일반적으로 여성이, 혼자서 여행하기 어려운 환경이잖아요. 끊임없이 여행에 대한 욕망을 검열당하고 여행을 떠나서도 자주 ‘여성’임을 자각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죠.”

여성을 위한 여행서비스 ‘여행여락’의 탄생 배경이다. 여행여락은 이름 그대로 여성들끼리 떠나는 여행을 기획하고 운영하는 커뮤니티다. 2017년 1월, 12명의 여성들이 함께 떠난 ‘네팔 히말라야 트래킹’을 시작으로, 아일랜드, 쿠바 등 해외는 물론 통영, 제주, 지리산 등 국내여행도 운영했다. 

여행여락이 주로 떠나는 여행지는 일반 여행상품에서도 방문하는 곳들이다. 차이라면 여행 속에 작은 가치를 담는 노력을 꾸준히 한다는 점이다. 처음으로 기획한 '네팔 히말라야 트래킹'은 지진 피해로 어려움을 겪는 주민들을 돕기 위해 마련한 여행이었다. 12명의 여성 여행자와 12명의 여성 포터들이 함께 만들어 간 네팔여행은 회원들 사이에서 지금도 가장 기억에 남는 여행서비스 중 하나로 손꼽힌다.      

지난해 4월 오키나와에서 시작해 7월 전주까지 이어졌던 ‘페미니스트 아카이빙 여행’도 그런 여행 중 하나다. 잊혀지기를 강요당한 여성의 아픈 역사와 장소들을 같은 여성의 시선으로 돌아보며 그 과정을 기록해 높은 호응을 받았다.

여행여락의 또 다른 차별성은 회원제로 운영된다는 점이다. 여행은 회원만 예약할 수 있고, 각종 행사도 회원을 대상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 현재 여행여락의 회원은 110명이다. 

허나윤 여행여락 운영자는 “여행여락은 회원가입이 필요한 멤버십 커뮤니티"라며 "회원들을 대상으로 한 네트워킹 행사나 강연회 등을 자주 진행하는데 서로 간에 기본적인 신뢰를 쌓기 위한 노력이다"고 말했다. 요즘 같이 위험한 사회 분위기에서 안전한 커뮤니티를 원하는 여성들에게 이러한 여성 네트워크는 일상생활에서도, 여행을 가서도 심리적 안정감을 제공한다. 한번 여행을 다녀온 이들이 또다시 여행여락을 찾는 경우가 많아 관계의 지속성이 보장된다는 점도 여행여락이 가진 매력이다. 

여행여락은 전국을 다니며 여행설명회를 펼친다. 

여행, 단순한 소비 넘어 사회적 관계가 확장되는 계기되길

여행여락을 탄생시킨 허 운영자는 한국 사회에서 여성이 처한 현실을 오랫동안 고민했다. 대학원에서 여성학을 전공하고, 외식업으로 국내와 아시아지역의 취약계층 여성의 자립을 지원하는 사회적기업 오요리아시아에 근무하면서도 여성들의 삶에 관심이 컸다. 2017년에는 여성 사회적경제 대표들과 의기투합해 혼자서 고군분투하는 사회적경제 여성대표자들과 조직이 함께 돕고 성장할 수 있는 방안을 찾고자 실태조사, 여성리더포럼, 여성대표자 네트워크 등을 추진했다. 여기에 공정여행사 트래블러스맵에서의 경험이 더해지면서 여성과 여행을 잇는 여행여락이 탄생할 수 있었다. 

“공정여행을 표방하는 트래블로스맵에서도 개인 고객의 90% 이상이 여성이었어요. 새로운 여행, 가치를 담은 여행에 대한 여성들의 욕구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큰거죠. 일반 여행 이용자도 여성이 더 많아요. 하지만 여행 분야에서 여성 주체에 대한 언급은 한 번도 이뤄지지 않았죠.”

크라우드펀딩에 참여한 이들에게 제공한 여행여락 잡지와 리워드 상품. 사회적경제 여성기업들과의 협업으로 만든 제품들이다.  

올해 3년차를 맞은 여행여락은 최근 새로운 실험에 나섰다. 지난 1월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여자를 위한 여행잡지 '여행여락'을 발간했다. 지난해 떠났던 ‘페미니스트 아카이빙 여행’의 기록들이다.

“여성 여행자가 근현대사에서 여성을 관통한 역사적인 공간(오키나와, 기지촌 등)을 탐방하면서 개인의 여행을 기록하고, 그걸 바탕으로 사회적인 기록을 함께 만드는 과정이었어요. 평범한 여성의 삶은 공적인 기록에 거의 남겨지지도 공유되지도 않아왔어요. 사회적 공유 작업이 꼭 필요한 이유기도 하죠. 그걸 주요하게 만드는 방법이 바로 여행이라 생각해요."

그런점에서 허 운영자는 여행이 단순한 소비행위로 그치는 게 아니라 사회적 관계 확장의 계기가 되길 바란다.  

허나윤 여행여락 운영자

여행여락은 앞으로도 여성들의 여행을 기록하는 여행잡지를 지속적으로 펴 낼 계획이다. 또한 세계 곳곳을 누비며 여성들의 여행을 지지하고, 지속가능한 사업 모델로 성장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한다. 

여행여락이 꿈꾸는 미래는 무엇일까.      

"여성들이 여자들의 여행을 서로 응원해주고 언제 어디로든 여행을 떠날 수 있는 그런 세상을 꿈꿉니다." 

 

사진제공. 여행여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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