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원에 사는 규호(가명ㆍ 중3)는 아빠랑 초등학교 5학년 동생과 함께 산다. 아빠는 직장 일로 지방 출장이 잦아 4-5일은 집을 비운다. 아직 누구를 오롯이 보살피기엔 어린 나이지만 아빠가 집을 비운 사이 집안일을 하고 동생을 돌보는 일은 규호 몫이다.

하지만 지난해 8월부터 의지할 동네 어른이 생겼다. 규호는 멘토 선생님과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 요즘 인기 영화 ‘극한직업’도 보고 동네 맛 집으로 소문난 피자가게, 만둣집, 통닭집을 두루 다녔다.

이 두 사람을 맺어 준 건 사단법인 러빙핸즈다. 러빙핸즈는 2007년부터 조손가정이나 한 부모 가정의 아이들과 동네 어른을 멘토-멘티로 맺어 줘 그들의 정서적 안정을 지원한다. 한 번 맺은 인연은 아이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계속된다. 두 사람은 어느 시기에 만나느냐에 따라 짧게는 4년 길게는 10년을 함께 한다.

 

러빙핸즈 사무실에 걸린 멘토와 멘티 사진들. 멘토들은 한 부모 가정이나 조손가정의 청소년들과 일대일 친구를 맺고 정서적 지원을 도와준다.

규호와 짝을 맺고 멘토로 활동하는 직장인 김외규씨는 규호가 3번째 아이다. 첫아이는 고등학교를 졸업해 이미 그의 손을 떠났다. 그가 만났던 아이들의 공통점은 말이 없고 무표정했다. 그랬던 아이들이 수다쟁이가 되고 약속도 잘 지키고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아이로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즐거움이다.

 

“이번 설에 함께 밥을 먹고 헤어지는데 규호가 ‘선생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하는 거예요. 상대방을 기분 좋게 하는 인사말이라곤 할 줄 몰랐던 아이에게서 덕담을 들으니 마음이 뭉클했습니다.”

 

가출·학교폭력·자살을 예방해주는 ‘ 밥토링’

 

박현홍 러빙핸즈 대표는 아동학대 예방 분야 전문가이자 사회복지사이다. 그는 현장에서 일하면서 아동학대 문제가 심각하지만 궁극적인 해결책이 없다는 점이 늘 안타까웠다.

 

“ 학대를 당한 아이들을 구출하면 잠시 격리시킬 수는 있지만 애들을 딱히 돌려보낼 데가 없어요. 결국 99%가 얼마 되지 않아 집으로 돌아가고 아동 학대는 반복됩니다.”

 

국내 가출 청소년 수는 약 60만 명으로 추산된다. 박 대표는 "한 부모나 조손가정의 경우 일반 가정보다 가출이나 아동학대·학교 폭력·자살 같은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현재 전체 가구 중 약 10%가 한 부모나 조손 가정이다.

그가 현장 경험을 토대로 내놓은 해결책은 이른바 '밥토링'이다. 정서적 지원이 필요한 아이들과 동네 어른을 멘토-멘티로 짝을 맺어 한 달에 2번 함께 밥을 먹는 것이다.

 

박현홍 러빙핸즈 대표가 손에 든 초록리본은 '한 명의 아동 ,청소년을 성인이 되는 날까지 보살핀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함께 밥을 먹는다는 것은 단지 한 끼 식사 이상의 의미를 갖습니다. 밥상머리 교육이란 말도 있잖아요. 밥을 같이 먹는다는 것이 정서적인 안정감을 이끌고 비행을 예방하는 지름길이 라는 연구결과도 있습니다.”

 

멘토들은 한 동네에 사는 어른들로만 한정 짓는다. 이유는 지속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짧고 일시적인 멘토링은 아이들에게 또 하나의 상처로 남을 수도 있습니다. 아이들에겐 지속적으로 자기만을 바라봐 주는 누군가가 필요하거든요. 만남의 횟수보다 꾸준하게 진정한 관계를 맺는 것이 중요한데 멀리 살면 중도 포기하는 사례가 많더군요.”

 

멘토가 되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다. 18시간의 기본 소양교육과 상담기법을 배운다. 추천서도 3통이 필요하다. 주변 평판을 통해 멘토의 자질을 검증하기 위함이다. 교육비도 10만 원을 받는다.

 

멘토가 되기 위한 교육 현장. 지난 12년 간 1000명의 멘토가 양성됐다. (사진제공=러빙핸즈)

 

“일련의 과정은 아무나 멘토를 할 수 없게 하기 위한 장치입니다. 가령 마음이 아프거나 자기중심적인 분 그리고 집착이 강한 분들은 곤란합니다. 또 멘토와 멘티는 동성을 원칙으로 합니다. 불필요한 오해의 소지를 없애기 위함이죠.”

 

멘토들은 월 2회 아이들과 만나면서 뭘 먹고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 일지를 작성해야 한다. 러빙핸즈는 월 3만 원 한도 내에서 식사비를 지원해주며 분기별로 봄 소풍, 여름캠프, 가을 문화행사, 겨울 송년의 밤을 통해 멘토들의 활동에 힘을 보탠다.

지난 12년 동안 이 같은 절차를 통해 1000명이 멘토 양성 교육과정을 수료했고 그중 절반인 500명이 실제 멘토로 활동했다. 현재 활동하는 멘토의 수는 240명이다. 특히 이들 가운데 3명은 멘티로서 도움을 받았다가 성인이 된 후 그 중요성에 공감해 멘토를 자처한 경우다.

멘티는 그 지역의 주민센터나 구청에 공문을 보내 추천을 받는다. 멘티가 선정되면 보호자와 아이, 멘토가 서로 만나 인사를 나누고 서약서를 작성해 상호 책임감을 높인다.

분당에 거주하는 안정호 씨는 피아노 학원을 운영한다. 그는 탈북민 출신 영미(가명ㆍ중2)의 멘토다. 학원을 운영하고 두 딸을 키우느라 시간 내는 것이 힘들지만 매달 연주회나 뮤지컬 관람 등 문화생활을 하고 다른 한 번은 집 앞에서 가볍게 만난다.

 

멘토링은 단순히 후원금만 내는 것과는 질적으로 달라요. 내 노력과 인내, 수고로 한 아이가 달라질 수 있거든요.” - 안정호 멘토

 

지난 12년 동안 멘토들의 도움을 받아 고등학교 과정을 무사히 끝내고 성인으로 성장한 멘티들의 숫자는 159명에 이른다. 러빙핸즈는 이 같은 노력의 결과로 2017년 대한민국 나눔 국민대상 휴먼 멘토링 부문에서 대통령 표창을 수상했다.

만남의 대안 공간 초록리본도서관

 

초록리본도서관은 개그우먼 김지선씨가 공동관장을 맡고 있다. 매월' 김지선아줌마와 함께 책읽기'란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사진제공=러빙핸즈)

멘토링에서 출발한 러빙핸즈의 활동은 대안문화공간과 쉼터의 형태로 계속 확장 중이다. 러빙핸즈는 2013년  서교동에 초록리본도서관을 개관했다. 이곳엔 책뿐 아니라 유기농 고구마 같은 건강한 먹거리와 아이들이 어울려 놀 수 있는 보드게임을 구비하고 사진기도 대여해준다. 교육전문기관과 협력하여 기초학습지도도 이뤄진다.

 

“일반 아이들도 시험이 끝나면 노래방이나 PC방 밖에 갈 데가 없어요. 그래서 문화공간으로 도서관을 만들었습니다. 이곳에선 애들이 주인공으로 다른 사람에게 피해가 가지 않는 선에서 자유롭게 즐길 수 있어요. 피아노도 치고 노래도 부르고 동아리 활동도 합니다.”

 

초록리본도서관은 개그우먼 김지선 씨가 공동 관장을 맡아 6년째 매달 한번 이곳에서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준다. 최근에는 광주의 한 카페랑 콜라보해 초록리본 도서관 2호점이 문을 열었다.

러빙핸즈는 또 전국에 단 1명의 멘토만 있어도 지부의 성격을 부여해 멘토 활동을 지원한다. 현재 광주·대구·강릉·청주·제주·대전 등 6개 지역에서 멘토들이 활동하고 있다. 올해에는 또 가평에 쉼터의 집이 건립돼 단기 보호소와 멘토&멘티를 위한 공간으로 활용될 전망이다.

후원 문화 인식 개선 시급

러빙핸즈는 100% 후원금으로  운영된다. 작년 한 해에는 약 10억 원의 후원금이 걷혔다. 후원금 중 70%는 아이들을 직접 돕는데 쓰고 30%는 운영비와 인건비로 쓴다. 그리고 자금의 출처와 쓰임새를 투명하게 공개한다.

 

“후원자들은 아이를 돕는 데 후원금의 100%가 쓰이길 원합니다. 하지만 사회복지사들은 ‘자원봉사자’들이 아닙니다. 미국의 사회복지 NGO의 경우 후원금의 30%를 운영비와 인건비로 쓰는 대신 투명하게 공개합니다. 대표자들의 인건비는 법적으로 공개해야만 하고요.”

 

서교동 러빙핸즈 사무실. 박 대표를 포함해 9명의 활동가들이 일하고 있다.

 

그는 몇 년 전 한 유명 아웃도어 회사가 1억 원을 러빙핸즈에 기부하려 했다가 결국 기부처를 다른 곳으로 바꾼 사례를 예로 들었다.

 

“ 1억 원을 기부하면서 100명의 아이에게 100만 원씩 전달해달라고 하더군요. 수혜자를 선발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돈은 잘 전달되지 않으면 아이들을 더 망가뜨리는 경우를 수차례 봤습니다. 이를 위해 행정비가 필요하다고 말씀드렸더니 다른 단체로 기부처를 바꾸시더군요. 전 전문가한테 행정비를 주고 대신 사용내역을 투명하게 밝히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라고 봅니다.”

 

그는 "많은 단체들이 좋은 의도로 설립이 되는데 운영이 안 되다 보니 흐지부지되고 때론 주객이 전도되는 경우들이 많다"면서 "후원 문화를 바꾸는 것이 중요한 미션 중의 하나"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후원자들의 인식 개선은 쉽지 않아서 러빙핸즈는 장학금이나 의료비 같은 지정후원의 경우에는 운영비를 15%만 책정해 놓았다. 만일 이런 원칙 등에 후원자가 동의하지 않으면 아예 후원금을 받지 않고 있다.

 

“저희도 10년 넘게 쌓인 후원자들의 빅데이터를 활용하면 훨씬 쉽게 모금할 수 있어요. 어떤 단체들은 모금을 위해 스토리를 함께 개발하자고 요청해오기도 합니다. 우리가 이런 행동을 경계하는 건 아이들에게 필요한 건 ‘일회성 지원이나 돈’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멘토링은 공이 많이 들어가지만 그 변화를 감지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는 말하자면 성과가 잘 눈에 띄지 않아 기다림의 시간을 견뎌내야 합니다. 하지만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믿습니다.”

 

?러빙핸즈는 2018년 해피빈 후원으로 연말 특별 선물로 롱패딩을 전달했다. (사진제공=러빙핸즈)?

 

그는 "일대일 어른 친구 맺기는 단지 아동들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며 독거노인의 고독사 문제나 장애인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박 대표는 "꿈을 이룬 사람들 곁에는 누구나 단 한 사람이 있기 마련"이라며 "그 한 사람이 우리가 될 수 있음"을 강조했다. 현재 러빙핸즈에서 멘토를 기다리고 있는 대기 멘티의 수는 149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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