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팅게일이 만든 로즈 벤다이어그램. 크림전쟁 부상으로 입원한 환자들의 사망원인을 월별로 구분해 나타냈다.

백의의 천사’로 알려져있는 나이팅게일(Florence Nightingale)이 밤늦도록 한 일은 환자를 돌보는 것만이 아니었다. 그는 크림전쟁 병사들의 입원/부상/질병/사망 기록 양식을 통일하고 데이터를 수집했다. 이를 바탕으로 부상보다 병원에서 전염병에 감염돼 죽는 환자가 훨씬 많다는 내용의 ‘나이팅게일 로즈 벤다이어그램’을 발표해 병원의 위생 개혁을 이끌었고. 6개월만에 병사 사망률은 42%에서 2%로 떨어졌다. 그는 영국왕립통계학회의 첫 번째 여성회원이 됐다. 

이원재 LAB2050 대표는 통계 연구를 통해 실제 병원 현장의 변화를 가져온 나이팅게일을 ‘액티비스트 리서처(Activist Researcher, 연구활동가)’의 예로 들며 “액티비스트 리서처는 연구와 활동의 경계를 넘나들며 도시문제의 해법을 찾는 활동가나 연구가”라고 정의했다. 

“나이팅게일은 현장에서 문제를 관찰하고 해결하고자 하는 사람이었다. 민간 싱크탱크를 운영하다보니 연구원들이 ‘나는 누구인며’ ‘어떤 사회의제를 설정해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이 많더라. 현장에서 활동하며 보다 구체적인 연구 영역과 주제를 갖는 이들, 활동의 전문성을 키우는 것이 연구의 목적인 사람들, 활동을 통해 발견한 것들을 일반화하기 위해 연구하는 이들이 액티비스트 리서처에 해당한다.” - 이 대표.
 

‘아시아 액티비스트 리서처 펠로우십’ 올해 런칭

지난 14일 열려 400여 명이 참석한 ‘아시아의 청년들, 도시 삶의 연구자가 되다’ 국제 컨퍼런스에서는 13명의 국내외 연사들이 참여해 경험과 의견을 나눴다. /사진 제공=서울시 청년허브.

올 하반기, 아시아 지역 액티비스트 리서처들이 모여 협력하고 연대하는 아시아 청년 액티비스트 리서처 펠로우십(이하 ‘펠로우십’)이 문을 연다. 지난 2월 14일 서울혁신파크 청년허브 다목적홀에서 열린 ‘아시아의 청년들, 도시 삶의 연구자가 되다’ 국제 컨퍼런스에서는 펠로우십의 런칭을 예고하고 활동가들의 협력을 구했다.

당시 행사에서는 400명이 참가한 열기 속 13명의 국내외 연사가 모여 경험과 관점을 나눴다. 서울시 청년허브(이하 ‘청년허브’)와 민간 싱크탱크 ‘LAB2050’, 아시아 사회혁신가 네트워킹 그룹 ‘씨닷(C.)’이 지난 6개월 간 펠로우십 준비를 이어왔다. 

박원순 서울시장도 응원에 나섰다. 박 시장은 축사를 통해 “인구의 절반이 살고 있는 도시는 문제를 앓는 동시에 해결하는 주체”라며 “이번 펠로우십 프로그램을 통해 도시를 넘어, 국경을 넘어 연구와 실천이 함께 이뤄지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기조발표를 맡은 김현미 연세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는 “아시아는 지금껏 가부장적 경제 발전 모델을 택해 국가의 빠른 성장을 위해 개인이 노동력을 제공하는 도구로 기능해왔다”며 “하지만 이 과정에서 개인의 내재적 부는 빈약해졌고 이제는 국가의 경제 성장조차 보장되지 않게 돼, 기대와 현실의 괴리를 겪고 있는 아시아 청년들 간 국가 경계를 넘는 대화와 상호연결이 필요해졌다”고 말했다. 
 

진짜 사회 변화는 구성원인 ‘개인’으로부터

캐나다 사회혁신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여한 로자문드 모스는 "자아성찰 프로그램을 통해 내 역할은 사회혁신 활동가들을 돕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사진 제공=서울시 청년허브.

사회혁신 레지던시란 사회혁신가들이 일정 기간 동안 함께 머무르며 필요한 사회변화에 대한 의견과 아이디어, 실천 방법에 대해 머리를 맞대는 프로그램이다. 대표적인 사회혁신 레지던시로 캐나다의 ‘게팅 투 메이비(Getting to Maybe)’가 소개됐다. 

게팅 투 메이비는 4주 간 캐나다 앨버타 주 반프(Banff) 국립공원에 위치한 반프 예술 창의 센터에 다양한 분야에 종사하는 사회혁신가들이 모여 기존의 사회 제도와 자신의 자아를 깊이 들여다보는 프로그램이다. 명상, 음악, 자연교류 활동, 자기 소개 등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이에 참여했던 로자문드 모스(Rosamunde Mose)는 “해결되지 못하고 있는 문제의 방안은 제도와 그 안의 개인을 면밀히 살피는 것에서 시작된다”며 “개개인이 갖고 있는 아이디어를 창의적으로 구현하고, 실천지점을 찾기 위해 중요한 것은 자연 속에서의 이러한 자아성찰”이라고 설명했다.

패널들도 ‘나’에 대한 성찰이 연구와 실천의 바탕이 된다는 이야기에 공감했다. 

“현재 독립연구자들이 먹고 살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 연구는 항상 ‘나’에서 시작한다. 개인의 문제가 어떻게 사회적 문제와 연결되고 확장될 수 있을까 생각해왔다. 개인이 세상, 사회를 바라보는 관점을 정립하기 전에 자신의 위치와 성찰이 우선돼야 한다는 점이 인상깊었다.” - 천주희 문화연구자

“분산돼있는 지역 사회복지사들이 필요한 서비스를 공급하는 것 뿐 아니라 공통의 경험을 나누고 연구과제를 설정할 수 있는 장인 ‘홍콩사회서비스위원회’를 운영하고 있다. 그간 실질적인 업무역량만을 강조하는 편이었는데, 개인의 관점이 사회를 변화시키는 원동력이라는 부분을 간과해왔다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는 사회복지사들이 조직 내에서의 역할을 스스로 생각하고 발현시킬 수 있는 기회를 열어야겠다.” - 안소니 웡(Anthony Wong) 홍콩사회서비스위원회 사업이사
 

안연정 청년허브 센터장은 "앞으로 펠로우십을 구체화하는 과정에 많은 분들이 관심과 경험, 통찰을 보태주시길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사진 제공=서울시 청년허브.

천 문화연구가는 마지막 세션에서 “현장에서 활동하고 연구하는 사람에게는 창의성, 연구역략, 실천성 등 역량을 키우기 위한 많은 자원이 필요한데, 내 경우에는 석사 과정에서 동료들과의 교류가 큰 도움이 됐다”며 “펠로우십이 한국에서 연구활동가들을 발굴하고 이들에게 자원을 연결해 힘이 돼줬으면 좋겠다”고 기대를 나타냈다. 

올 하반기 본격 시작하는 펠로우십은 다음 세대가 살아갈 도시의 삶의 방식을 연구하는 사람들의 역량 강화를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구상하고 있다. 청년허브는 올해 7월 경 공개모집을 통해 펠로우를 선발하며, 선발된 펠로우는 10월 중 2~4주 간 서울 레지던시에 참여하게 된다. 

안연정 청년허브 센터장은 “펠로우십을 액티비스트 리서처들의 교류와 협력을 장으로 만들어 연대와 논의가 이어지도록 하겠다”며 “앞으로 펠로우십을 구체화하는 과정에 많은 분들이 관심과 경험, 통찰을 보태주시길 부탁드린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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