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 만능시대. 쉽게 사고 버리는 탓에 지구는 온갖 폐기물로 몸살을 앓고 있다. 하지만 폐기물도 잘 활용하면 소중한 자원이 된다. 쓰임을 다해 버려진 물건들에 새 숨을 불어넣는 신기한 새 활용 세상을 소개한다.

김단하 단하주단 대표(왼쪽)와 임우정 디렉터. 이들은 "함께 다닌 고등학교 교복도 한복이었다"며 웃었다.

좋아하는 일과 의미있는 일 모두를 실현하는 창업은 모두가 꿈꾸지만 쉽지 않다. 온라인 한복 대여점에서 일하던 김단하 씨가 좋아하는 것은 줄곧 한복이었다. 여행을 좋아하는 그는 미국, 유럽, 동남아, 인도로 여행을 떠날 때마다 한복을 직접 만들어 입고 다녔다. 한복여행 동반자인 고등학교 친구 임우정 씨도 자연히 한복의 매력에 빠졌다. 여행지에서의 핫(hot)한 반응을 보고 ‘되는 아이템’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예쁜 한복을 더 많은 사람들이 입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야 항상 하고 있었죠. 그런데 여행을 위해 직접 만든 한복의 반응이 좋더라고요. 주목은 물론이고 ‘예쁘다’ ‘나도 입고싶다’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김단하 씨 

단하주단 로고.

그렇게 각자의 길을 걷던 두 사람은 지난해 9월 한복 브랜드 ‘단하주단’을 시작했다. 이들의 한복은 길이가 짧고 입기 편리한 현대식 한복이다. 김단하 대표는 궁중복식연구원에서 전통복식명인(名人)에게 2년째 사사(師事)받고, 성균관대학교에서 전통복식 대학원 과정도 밟고 있다. 한복의 뿌리와 기본부터 제대로 배워야 응용 디자인도 할 수 있다는 일념에서다. 한복을 제외한 모든 디자인과 디지털 업무는 아트 디렉터로 일하던 임우정 씨가 맡았다. 

파리에서 마주친 아프리카, 한복에 입히다

여행은 단하주단의 인기 상품인 ‘단하서울’을 탄생하게 했다. 정통 한복일 것만 같은 이름과 달리 ‘세계 여러 나라의 전통 원단’으로 만든 글로벌 한복 라인이다. 그 첫 번째 대륙은 아프리카였다. 

“한복은 입었을 때의 핏(fit)이 특징이라, 차별성을 둘 수 있는 부분이 원단이라고 생각해요. 파리 지하철에서 한복에 적용하면 정말 예쁠 것 같은 무늬의 옷을 봤는데, 아프리카의 전통 천인 키텡게(Kitenge)였죠. 이제껏 한 번도 보지 못한 화려한 패턴이었어요. 무려 아프리카라니, 원단 거래처를 찾는 게 제일 힘들더라고요. 건너건너 수소문해서 우리와 소통하고 천을 보내줄 수 있는 현지인에 연락이 닿을 수 있었죠.” - 김 대표
 

키텡게 원단으로 만든 단하서울 허리치마. 

디자인 면에서는 한복의 특징인 곡선의 아름다움을 더욱 살렸다. 풍성한 치마라인을 위해 홑주름보다 원단이 2배 넘게 드는 맞주름을 고수한다. 허리를 감싸는 배색 띠도 포인트다. 

“30대인 저희가 산 인생보다 긴 시간 한복을 지어오신 2분이 공임을 맡고 계신데, 저희를 좀 싫어하실 거예요. 맞주름이며 배색 허리끈이며 손이 많이 가는 디자인을 자꾸 들이밀거든요.  그만큼 공임비도 많이 들지만 디자인을 포기하지도, 공임비를 줄이지도 않을 거예요. 퀄리티가 있어야 많은 사람들이 입고 한복 업계도 성장할 테니까요.” - 임 디렉터.

이런 고집 덕에 단하주단 제품이라면 믿고 구매하는 마니아층이 생기고 있다. 단하서울 라인을 구매한 5명 중 1명은 다른 상품을 재구매하고 있다. 김 대표는 “인스타그램(instagram) 라이브에서 원단 고르기, 옷 만들기 등 작업 과정을 공유하고 있는데, 키텡게 다음 컬렉션인 베트남 전통원단은 한 고객이 인스타에서 원단만 보고 구매를 확정했다”며 “각국의 전통 원단들이 가진 고유의 색감, 느낌과 한복 디자인이 갖는 시너지를 좋아해주신다”고 설명했다. 
 

새활용플라자 416호를 방문하면 단하주단의 상품을 직접 보고 구매할 수 있으며, 미리 연락 시 간단한 새활용 체험이 가능하다.

“기부받은 중고한복 100벌, 드레스 50벌··· 현대식 한복과 악세서리로”

이들이 좋아하는 것이 ‘한복’이라면, 가치를 두고 있는 것은 ‘옷장에서 잠자는 옷들의 재탄생’이다. 지난해 9월 온라인 샵을 연 단하주단이 그간의 수익과 주말을 반납하며 집중하고 있는 일이 있다. 바로 오는 3월 초 예정된 업사이클링 한복 쇼다. 이 날 선보일 예닐곱 벌의 한복은 100% 중고 웨딩드레스로 만들어졌다. 

“웨딩드레스는 유행을 많이 타서 한 시즌만 지나도 신부들에게 환영받지 못해요. 정성들인 디자인과 장식으로 탄생한 드레스가 입혀지지 못하고 샵에 보관되다 처분되는 게 아까웠어요.”
 

웨딩드레스는 특수 세탁을 거쳐 한복으로 재탄생한다. 오른쪽은 미완성 샘플 작품.

창업 초기, 결코 쉽게 번 수익이 아니다. 이들이 사비까지 쏟아 쇼를 여는 이유는 뭘까

“새활용 제품 샘플은 정말 많이 만들어뒀지만, 시장이 부족해 적정한 가격을 매기기도 어렵더라고. 새활용에 대한 인식 개선이 우선이라는 생각이 들었죠. 저희 쇼를 찾은 사람들이 ‘버려지는 옷들이 이렇게나 많고, 이들이 예쁜 디자인으로 탄생할 수 있구나’ ‘이렇게 예쁜 게 새활용이라면 구매하고 싶다’고 느꼈으면 좋겠어요.” - 김 대표. 

한복 만들기는 웨딩드레스 해체에서 시작한다. 웨딩드레스는 큰 원단만큼 활용의 폭도 크다. 해체된 드레스의 각 부분이 저고리깃, 동정, 고름, 치마폭이 된다. 원단은 단순 박음질 대신 자수를 덮어 잇는다. 문방사우, 영기무늬, 단하주단의 시그니처 로고 등 자수 모양도 가지각색이다. 

키텡게 원단 자투리로 만든 트윌리.

이들이 지금까지 기부받은 중고한복은 100여 벌, 웨딩드레스와 일반드레스는 50여 벌에 달한다. 새활용플라자 입주기업들이 가져다주기도 하고 지하 1층 아름다운가게에서 구하기도 한다. 개인기부자들도 많다. 기부자에게는 고마운 마음을 담아 업사이클링 제품을 리워드를 제공한다. 중고한복과 웨딩드레스가 단하주단을 거쳐 트윌리(twilly), 가방, 허리치마 등으로 재탄생한다.

“기부해주신 한복 중에는 십수년 전 결혼 때 장만해서 한 번 입고 장롱 속에 모셔둔 고급한복들이 꽤 많더라고요. 이런 중고한복을 활용한 업사이클링 한복 라인도 계획 중이에요.” - 임 디렉터.
 

 

 

“대중성 낮은 업사이클링과 전통, 둘 다 살리고 싶어요”

작업 중인 김 대표와 디자이너 직원.

이제 이들이게 여행지는 더 이상 단순히 즐기고 오는 곳이 아니다. 빈티지 샵에서 만나는 커튼, 프릴, 식탁보 등 모든 원단의 쓰임을 고민한다. 원단시장은 해외여행의 필수 코스가 됐다. 

올해 상반기에는 새활용플라자 내 업사이클링 체험학교인 ‘단하학당’을 준비 중이다. 학당 방문객들은 한복 원단으로 티코스터, 트윌리, 복주머니 등을 직접 만들어볼 수 있다. 이들은 이들이 좋아하는 한복을 다른 사람도 좋아하도록, 업사이클링의 가치를 다른 이들도 알 수 있도록 계속 나아가려 한다. 

“일본은 기모노의 전통을 잇기 위해 교육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잖아요. 우리나라는 그나마 있던 전통복식학과들도 없어지고 있어서 의류학과 내 맛보기 수준에 그치고 있어요. 그 가운데 제가 2년 째 사사받고 있는 궁중복식연구원은 한복의 정수(精髓)를 배울 수 있는 곳인데, 지금 한 학기 수강생이 4명이라 유지에 애를 먹고 있어요. 전통복식은 수강생이 적어도 명맥을 이어갈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요. 업사이클링도 마찬가지로 인식 제고에 교육이 중요하고요. 단하주단이 얼른 성장해서 수익 일부를 업사이클링과 전통복식 교육 기금으로 기부할 날이 얼른 왔으면 좋겠어요.” - 김 대표.

 

사진 제공. 단하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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