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이나 건강에 관한 권리에 대한 이야기들은 흘러넘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당신의 ‘성적 권리(sexual right)’에 대해서는 얼마나 알고 있나요? 성적 권리는 건강이나 건강권과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성적 권리 없이 건강을 지키는 것이 가능할까요? 산부인과 진료실은 특히 성적 권리와 직결되는 장소입니다. 이곳에서 당신은 성적 권리를 얼마나 실현하고 있나요?
제가 있는 살림의원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찾아옵니다. 그 중에는 다른 병원에서 검사한 결과나 치료 내용에 대해서 추가적인 설명을 듣기 원하는 분들이 종종 있는데요. 이야기하다 보면 내키지 않거나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검사를 받았거나 결과에 대해 이해하지 못한 채 치료를 받게 된 경우들이 있습니다. 불편하거나 불쾌했던 감정들을 표현하지 못했던 경험, 나온 결과를 가지고 의사로부터 질책, 비난, 심지어 폭언까지 들었던 경험도 간혹 듣게 되는데요. 그럴 때마다 저의 경험들이 떠오르면서 가슴 깊숙이 뜨끔해져서 의사라는 역할이 취해야 할 태도와 윤리에 대해 성찰할 기회를 가지게 됩니다. 앞으로 제게 주어진 지면에서는 진료실 밖의 사회적 환경과 직결된 진료실 안에서의 환자의 권리, 단지 선언이 아닌 구체적인 성적 권리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국제적으로 성적 권리에 대한 논의는 현재 많은 진전이 이루어진 상태입니다. 그 중 1994년 유엔 국제인구개발회의(ICPD)와 1995년 유엔 세계여성대회는 여성의 재생산 건강(reproductive health)과 성적 권리를 문서화하여 명시한 중요한 계기로 이야기됩니다. 이런 논의들이 쌓여서 국제엠네스티는 2012년 <성과 재생산 권리 바로 알기- 인권을 위한 프레임워크>를 발표했는데요.
이에 의하면, 모든 사람은 ‘성과 재생산 건강에 관한 의료서비스 이용을 포함해, 최상의 성적 건강 수준을 유지할 권리’를 누릴 수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최상의 정보 – 포괄적이고 통합적인 성과 재생산 건강에 대한 정보 – 에 대해서 각자가 가능한 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포괄적이고 통합적인 정보란 무엇일까요? 각자가 이해할 수 있는 방식을 사용해야 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우리는 특히 진료실에서 최상의 정보를 요구하고, 그에 따른 적절한 의료서비스를 받고 있나요? 우리는 이런 권리에 얼마나 다가가고 있나요?
어려운 용어를 사용하여 이해가 힘들었던 적은 없는지, 의도도 모른 채 성생활에 관해 갑작스런 질문을 받은 경우는 없는지, 내진이나 촉진, 혈액검사와 같은 의료 행위를 하기 전에 충분한 설명을 들었는지, 원치 않는 검사나 치료를 강요당한 경험은 없는지, 의사의 주관적인 판단이 섞인 발언에 당혹스러운 적은 없는지, 내가 받는 약물과 치료 방법에 대해 항상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하는지 등. 우리가 진료실에서 겪는 어려움들을 구체적으로 이야기하고 더 나은 성적 권리를 위해 어떤 행동들이 필요한지 생각해 봅시다.
나의 건강 상태, 검사가 필요한 이유와 방법, 질병에 대한 이해, 치료의 이득뿐만 아니라 부작용 그리고 제안한 치료 대신 선택할 수 있는 대안적인 방법과 그 결과들까지도 함께 대화하기를 시도해 보세요. 진료실에서 도무지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다면 미리 말할 것들을 적어 가세요. 이해가 잘 가지 않는다면 다시 한번 쉬운 설명을 요구해 보세요. 이런 설명을 모두 듣고 나서 제안하는 검사나 치료에 대해 거부할 수 있는 권리 역시 당신에게 있습니다. 어쩌면 불쾌한 반응을 마주칠 수도 있겠지만 당신의 평생 주치의를 만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저의 경우에도 그렇지만 환자가 의사의 경험치를 미리 판단하고 무시한다고 느껴질 때에는 전략적으로 의사의 권위를 내세우기도 합니다. 하지만 자신의 경험을 솔직하게 나누어 주고 불편함을 대화로 풀어가는 환자들을 통해 조금씩 임상경험을 쌓아가게 되는 것이죠. 이런 실천들이 결국 우리가 원하는 ‘최상의 정보’를 만들어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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