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3월(9~15일)에 열린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Google Deepmind Challenge match)에서 딥마인드가 내세운 인공지능 바둑프로그램 알파고(AlpfaGo)가 세계 정상의 바둑프로 이세돌을 4-1로 꺾어 바둑계는 물론, 지구촌 전역에 충격을 안겨준 지도 벌써 3년이 흘렀다. 

인간의 마지막 보루라고 굳게 믿었던 바둑마저 기계에게 패했다는 충격과 ‘기계에게 무릎을 꿇은 바둑은 이제 지속가능한 가치와 매력을 상실했다. 존재 의미가 사라졌다’는 극단적(특히, 바둑관계자들의) 공포도 가라앉은 지금은 어떤가. 

다행스럽게 우려보다는 기대의 효과가 크다. 알파고 이후 세계 각국에서 속속 등장한 인공지능 바둑프로그램들이 모두 인간계 정상급 프로들을 넘어서거나 곧 넘어설 것이 확실한데 3년 전 딥마인드 챌린지 결과의 학습효과 덕에 이제는 그들을 경쟁상대가 아닌 지도자 또는 새로운 모험의 안내자로 받아들여 잘 적응하고 있다.

알파고 등장의 가장 큰 수혜는, 오랜 세월 진화를 거듭해온 인간의 바둑이 어느 정도 위치에 있는지 가늠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인간은, 세계를 압도적으로 제패한 실력자가 나올 때마다 ‘그곳이 더 이상 오를 수 없는 정점인가’라는 의문을 가졌는데 알파고(비슷한 완성도를 보여준 인공지능 바둑프로그램도 같다)라는 절대에 가까운 기준의 비교검증 대상이 생겼기 때문이다.

자신의 위치를 정확하게 보거나 알 수 있다. 이 말에는 대단히 중요한 의미가 담겨 있다. 일정 수준의 지적 능력을 갖춘 사람이면 누구나 자기 자신을 잘 안다고 생각하겠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진짜? 에이, 그 정도까지는 아닐 거 같은데? 

진짜다. 자신의 위치를 정확하게 알거나 본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 의미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음,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1990년 2월 14일, 지구에서 61억 Km 떨어진 태양 공전면 32도 위를 지나던 보이저 1호가 카메라를 지구 쪽으로 돌려 촬영했다. 이 촬영을 주도한 사람은 세계적인 천문학자 칼 세이건(Carl Edward Sagan, 1934~1996)이다. 

미항공우주국(NASA- National Aeronautics and Space Administration) 행성 탐사 보이저계획 화상팀을 이끌던 그가, 많은 동료 과학자들의 반대와 천문학적 비용의 손실을 무릅쓰고 보이저 1호의 카메라를 진로와 다른 지구 쪽으로 돌려 촬영한 이유가 무엇일까.

칼 세이건은 저서 ‘창백한 푸른 점(The Pale Blue Dot)’에서 “지구는 광활한 우주에 떠 있는 보잘것없는 존재에 불과함을 사람들에게 가르쳐주고 싶었다”고 밝혔다. 

“여기 있다. 여기가 우리 고향이다. 이곳이 우리다.” 이렇게 시작되는 그의 서사시(?)는 “승리와 영광이라는 이름 아래, 이 작은 점의 극히 일부를 차지하려고 했던 수많은 정복자들이 보여준 피의 역사를 생각해보라. 이 작은 점의 한 모서리에 살던 사람들이, 거의 구분할 수도 없는 다른 모서리에 살던 사람들에게 보여주었던 잔혹함을 생각해보라. - 중략 - 우리의 작은 세계를 찍은 이 사진보다, 우리의 오만함을 쉽게 보여주는 것이 존재할까? 우리가 아는 유일한 고향을 소중하게 다루고 서로를 따뜻하게 대해야 한다는 책임을 이 창백한 푸른 점보다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 또 있을까?”라는 말로 맺는다. 

나 자신의 위치를 정확하게 본다는 것, 나 자신을 정확하게 안다는 것은 그런 의미다. 알파고의 출현은 ‘보잘것없는’ 우리의 위치를 정확하게 보여주고 알게 해주었으며 우리에게 겸손의 미덕을 가르쳐준 것이다. 알파고 이후 바둑의 역할과 가치는 승부에 있지 않다. 승부란 바둑의, 극히 자극적인(재미를 추구하는) 단면일 뿐이다. 

바둑계를 이끌고 있는 지도자, 관계자, 바둑 애호가는 물론, 이 글을 보는 모든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다. 

바둑판 위의 울타리를 벗어나라. 마음의 눈을 뜨고 다시 보라. 그리하여 우리가 사랑해야 할 삶이 그 작은 판 위에 있음을 발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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