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항거:유관순 이야기' 중 만세운동을 위해 태극기를 제작하는 관순./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하나뿐인 목숨, 내가 바라는 것에 맘껏 쓰다 죽겠소!”

일제의 핍박 속 감옥에 갇혀 온갖 고문을 받던 소녀는 ‘자유’란 내 목숨을 바라는 데 맘껏 쓰는 것이라 말한다. 3.1운동을 하다 서대문 형무소에 투옥된 열일곱 유관순(1902~1920)은 하나뿐인 목숨을 ‘조국의 독립’을 위해 내던지며, 자신이 생각하는 자유를 실현해낸다. 

티끌만큼의 의심이나 흔들림 없이 확신에 차 있는 유관순의 두 눈이 훗날 창작자에게 영감을 준다. 영화 ‘항거:유관순 이야기(이하 항거)’의 각본을 쓰고 메가폰을 잡은 조민호 감독은 “우연히 서대문 형무소에 갔다가 커다란 걸개 사진으로 전시된 유관순의 얼굴을 보고 ‘슬프지만 강렬한 저 눈빛은 어디서 시작됐을까’라는 생각에서 작품이 시작됐다”고 밝혔다.

나라를 위해 헌신한 ‘열사(烈士)’가 처음부터 태어나는 게 아니라면,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항거’는 유관순이 고향인 아우내에서 가족과 더불어 살던 과거의 모습을 색채로, 3.1운동 이후 감옥에 들어온 이후의 현재를 흑백 화면으로 교차시키며, 그가 ‘만세’를 외칠 수밖에 없었던 상황들을 되비춘다.

영화 '항거:유관순 이야기'는 서대문형무소 여옥사 8호의 1년을 다룬다./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는 서대문 형무소에 잡혀 들어온 유관순의 모습으로 시작된다. 3.1운동을 주도했다는 이유로 체포돼 재판에서 3년형을 받은 관순은 죄수번호 ‘317’번을 받고 투옥된다. 관순이 갇힌 곳은 채 3평(10㎡) 남짓한 좁디좁은 ‘여옥사 8호실’. 그 안에는 관순 말고도 25명이 더 갇혀 발 디딜 틈, 숨 돌릴 여유도 없이 빽빽하다.

‘항거’는 유관순의 삶을 다루는 동시에 8호실 여성들의 이야기를 함께 조명한다. 수원에서 기생 30명을 데리고 시위를 주도한 기생 김향화, 관순의 이화학당 선배 권애라, 다방 직원 이옥이, 시장통에 장사를 하다 만세운동을 시작한 만석모, 임신한 몸으로 수감돼 아이를 낳은 임명애 등이다.

이들은 누워서 잠을 잘 수도 없을 만큼 좁은 공간에서 끊임없이 동그랗게 걷고, 누더기 같은 옷 한 벌로 4계절을 버티고 견뎌낸다. 관순은 1920년 3월 1일 만세운동 1주년을 기념해 옥 안에서 다시 한 번 만세운동을 주도하고, 8호실 사람들은 우정과 연대를 통해 관순의 뜻을 형무소 안팎에 전파시킨다. 그러나 이로 인해 관순은 끔찍한 고문을 겪고, 결국 죽음에 이른다.

영화 '항거:유관순 이야기'에서 관순은 3.1운동 1주년을 맞아 만세운동을 주도한다./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작품 속 인물들의 감정은 흑백 화면을 통해 더 간절하게 다가왔다. 특히 관순을 연기한 배우 고아성의 진심이 담긴 연기는 스크린을 뚫고 객석으로 전달돼 심장을 꽉 쥐었다 놓은 듯 했다. 고아성의 말대로 옥사에서 ‘기미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만세’를 부르는 장면에서의 떨림은 관객의 가슴에도 오랜 여운으로 남았다.

형무소의 담과 벽이 아무리 견고하더라도 소리와 빛이 통과하는 ‘틈’은 존재하는 법이다. 유관순은 어둡고 깜깜했던 일제강점기의 틈을 파고들어 우리 민족의 가슴에 희망을 전달한 진정한 열사였다. 그동안 교과서 속 위인, 신화적 인물로서만 생각했지만, ‘항거’를 통해 인간적인 면모까지 보고 나면 유관순의 강인한 신념과 의지에 또 다시 감동하지 않을 수 없다. 배우 고아성, 김새벽, 김예은, 정하담, 류경수 등 출연. 오는 27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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