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역사에서 빠질 수 없는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에 관한 이야기는 교과서에 나온 내용을 배우고, 시험을 위해 달달 외우고는 금방 잊은 것들이 대부분이다. 1909년 안중근이 만주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고, 1939년 김구가 대한민국임시정부 주석으로 취임하고…? 

역사책에 담긴 주요 사건 말고, 독립운동가들의 숨은 사연은 무엇일까? 3.1운동 및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우리가 미처 배우지 못했던 독립운동가들의 소소하지만 재미있는 스토리를 ‘TMI(Too Much Information)’ 방식으로 들여다본다. 사실 TMI는 의미있는 독립운동에 대한 이야기(Talk to Meaningful Independence movement)이기도 하다.

# ‘역대급 현상금’ 320억 걸린 요주인물 김원봉

의열단 단장 김원봉(위)과 영화 '암살'에서 김원봉을 연기한 배우 조승우.

“나 밀양 사람 김원봉이오.” 2015년 개봉해 1270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 ‘암살’에서 배우 조승우가 연기한 김원봉(1898~1958)은 국내 관객들의 뇌리에 박혔다. 김원봉은 의열단을 조직해 일제 수탈기관을 파괴하고 요인을 암살하는 등 무력 투쟁을 주도했다. 당시 일제 경찰이 김구(60만원)보다 높은 100만원(현재 약 320억원)을 현상금으로 내걸었는데, 일제강점기 통틀어 가장 높은 금액이다.

항일 무력투쟁가로 이름을 떨쳤지만, 김원봉은 잘생긴 외모로도 유명했다. 중국에서 활동할 때 수많은 ‘꾸냥(아가씨)’들이 조선의 아나키스트 대장 김원봉을 가슴에 담고 설레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미국의 저널리스트 님 웨일스는 저서 ‘아리랑’에서 김원봉을 이렇게 묘사했다.

“그는 고전적 유형의 의열투쟁가로 냉정하고 두려움을 몰랐다. 거의 말이 없었고 웃는 법이 없었다. 아가씨를 좋아하지 않았지만 아가씨들은 그를 동경했다. 미남으로 빼어난 용모를 가졌기 때문이다.”

# 키 180cm 우월한 체격의 김구, 외모 콤플렉스?

김구(가운데) 선생은 서양인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 큰 체구를 자랑했다.

‘민족의 지도자’로 불리는 김구(1876~1949)는 키가 크고 기골이 장대한 거구였다. 독립운동을 하며 숨어다닐 당시 큰 덩치를 숨기기 위해 곤욕을 치를 정도였다. 당시 160cm 초반이었던 남성 평균 신장보다 20cm 이상 큰 180cm 내외로 추정되며, 서양인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 체구를 자랑했다.

그러나 김구는 외모 콤플렉스를 가졌다. 어릴 때 천연두를 앓아 얼굴에 자국이 남았고, 강한 인상 탓에 오해를 받기도 했다. 그는 자서전 ‘백범일지’에 한탄의 말을 적기도 했다. “관상을 공부하며 내 얼굴과 몸을 관찰했는데, 오히려 더 깊은 비관에 빠지고 말았다. 세상 살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졌다.” 존경받는 지도자 이전에 보통 사람으로서의 면모를 볼 수 있다.

# ‘운동 덕후’ 여운형, 피트니스 책 모델로 나서

체육을 사랑하던 여운형 선생은 ‘현대철봉운동법’ 모델로 나섰다.

일제강점기 조선의 상황을 세계에 알린 여운형(1886~1947)은 운동을 향한 열정으로도 가득한 인물이었다. 젊은 시절 YMCA 야구단에서 활동하고 체육교사로 일한 적 있으며, 육상대회에 투포환 선수로 참가하기도 했다. 초대 대한체육회장과 2대 대한축구협회장 등 여러 체육단체의 회장직을 맡으며, 한국 체육의 발전을 이끌기도 했다.

눈길을 끄는 건 1933년 발간된 ‘현대철봉운동법’이라는 피트니스 책에 모델로도 나섰다는 점이다. 당시 48세의 나이에도 건강한 몸과 탄탄한 체력을 자랑했다. 여운형은 독립운동을 하면서도 ‘스포츠맨십’을 강조했다.

“피를 흘리면서도 싸우고, 다운되도 다시 일어나 싸우는 권투 정신은 우리 청년들이 의당 본받아야 할 훌륭한 정신이다. 남성답게 씩씩하게 싸우라. 비겁하지 않게 정정당당히 스포츠맨십으로 싸우라.”

# 일제강점기 ‘아이돌’급 인기 누린 멋쟁이 의열단원

항일 무력독립운동 단체 '의열단'은 준수한 외모와 말쑥한 차림새로 유명했다.

‘아나키스트’의 장동건, ‘암살’의 하정우, 조승우 ‘밀정’의 이병헌, 공유…? 실존 인물을 바탕으로 제작한 영화에서 의열단원들은 미남 배우들이 도맡아 연기했다. 실제 의열단은 멋과 매력이 넘치는 청년들로 구성돼 현재 ‘아이돌’ 같은 열광적 인기를 누렸다. 이들은 당시 상해 여성들에게 사랑을 받았고, 최근까지 다양한 영화, 드라마 등 문화 콘텐츠에 영감을 주고 있다.

님 웨일스의 책 ‘아리랑’에는 “의열단원들은 스포티한 멋진 양복을 입었고 머리를 잘 손질했으며, 어떤 경우에도 결벽할 정도로 말쑥하게 차려입었다”고 서술돼 있다. 사실 의열단이 준수한 외모의 청년을 선발한 이유는 일본 고위급 인사의 암살과 관련이 있다. 일본 상류사회 문화를 익혀 사교계에 침투하고 주요 인물에게 접근하기 위함이었다.

# 조선 최고의 총잡이 김상옥, 1:1000 혈전을 벌이다

김상옥 의사(왼쪽)와 영화 '밀정'에서 김상옥을 연기한 배우 박희순.

‘1대 17 싸움’이라는 전설의 이야기가 나돌지만, 일제강점기 무려 1대 1000으로 대결한 인물이 있으니, 김상옥(1890~1923)이다. 그는 1923년 1월 12일 독립운동 탄압으로 악명 높은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투척한다. 단 2자루의 총으로 백발백중 사격 실력을 자랑하는 김상옥을 잡기 위해 일본은 경찰 1000명을 동원했다. 총격전 끝에 자결한 그의 몸에는 10여 발의 총상이 남았다.

훗날 영화 ‘암살’의 하와이피스톨(하정우 분)과 ‘밀정’의 김장옥(박희순 분)에 영감을 준 실제 모델이기도 하다. 일제도 두려워한 총 실력을 지녔지만, 의거를 준비하면서 친구에게 사실상 유언을 남기고 그 뜻을 지킨다. “나의 생사가 이번 거사에 달렸소. 만약 실패하면 내세에서 만나봅시다. 나는 자결하여 뜻을 지킬지언정, 적의 포로가 되지는 않겠소.”

# 노름꾼?망나니로 위장한 김용환, 전 재산 독립자금으로

드라마 '미스터선샤인'에서 김용환 선생(왼쪽)을 모델로 한 배우 변요한.

‘파락호’라는 별명을 지닌 독립운동가가 있었으니, 독립운동가 김용환(1887~1946)이다. ‘파락호(破落戶, 깨트릴파, 떨어질락, 집호)’란 재산이나 세력이 있는 집안의 자손으로서 집안의 재산을 몽땅 털어먹는 난봉꾼을 이르는 말이다. 일제강점기, 경북 안동의 명문가 후손이었던 김용환은 노름을 즐겨 수백년 동안 종가 재산으로 내려오던 땅을 모두 탕진해 손가락질 받는다.

그러나 ‘천하의 노름꾼’ 김용환이 사실 만주에 독립자금을 대던 투사였음이 밝혀진다. 그는 독립금의 군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노름꾼’ ‘망나니’ ‘파락호’라는 불명예를 쓰고, 가족까지 속이면서 독립자금을 보내는데 헌신한다. 지난해 방영된 tvN 드라마 ‘미스터션샤인’에서 배우 변요한이 연기한 ‘김희성’이 김용환을 모델로 만든 인물로 알려져 있다.

# 할리우드 진출한 안창호 아들, Philip 아닌 必立

안창호 선생(왼쪽)의 아들 안필립은 미국 헐리우드에서 배우로 활동했다.

한국인 최초로 미국 할리우드에 진출한 배우는 독립투사 안창호(1878~1938)의 아들 안필립이다. 안창호는 신민회, 흥사단 등 국내에서 활발하게 독립운동을 하다가 선진 학문을 배우기 위해 1902년 미국으로 건너간다. 아들이 태어나자 “우리나라가 반드시 독립해서 일어서야 한다”는 강한 의지를 담아 이름을 ‘필립(必立)’이라고 지었다. 

훗날 배우의 꿈을 꾼 안필립은 아시아인 최초로 할리우드 배우로 데뷔해 ‘동양인 역할 전문 배우’로 활약한다. 1935년 데뷔한 그는 1980년까지 200여 편의 작품에 출연했으며, 미국 영화사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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