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과소셜, 창업을 향한 도전] 2. 커뮤니티 전성시대
[여성과소셜, 창업을 향한 도전] 2. 커뮤니티 전성시대
  • 백선기 책임 에디터
  • 승인 2019.02.20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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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가려면 일터 밖 동료가 필요해
학연·지연·술·골프 등 남성 중심 커뮤니티로부터 탈출
취향, 가치관이 같은 사람들끼리 서로 배움으로 역량 강화
일자리 연결이나 새로운 부업 창출의 징검다리 역할

"보육원 확충, 육아 휴직, 남녀 동일 임금 보장 등도 필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엄마의 역할'과 '커리어' 둘 중 하나를 강요하는 상황을 안 만드는 것이다. 여성을 포기하면 인재의 절반 이상을 잃는 것과 같다."(여성 국가지도자 에르나 솔베르그 노르웨이 총리)

해외 여성 지도자의 이런 일갈을 국내에 대입하면 한국 사회가 한참 멀었다는 판단은 그리 과하지 않다. 9%. 서울 스타트업(신생벤처) 창업가 가운데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이다. 그중 아이를 둔 엄마 창업가는 집계하기조차 어려울 만큼 적다. 기혼 후 버티다 대부분 육아 앞에서 백기를 드는 현실이다. 여성들이 일터에서 지속적으로 자신의 역량을 발휘하고 성장해 나갈 순 없는 걸까.

<이로운넷>은 2019년 연중 기획으로 [여성과 소셜, 창업을 향한 그들의 도전]을 준비, 현장에서 고군분투하는 여성 창업가들의 생생한 경험담과 그들의 열정에 불씨를 댕기는 지원조직의 목소리를 집중 전달하고자 한다. 이론이 아닌 현장에서 도전하고 부침을 겪는 이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통해 '인재의 절반이 제자리를 찾을 수' 있도록 돕고, 궁극적으로 추상적 남녀, 여여, 세대 갈등이 아닌 더불어 사는 삶에서 여성의 역할을 조명하고자 한다.

 

지난 1월 강남구 롯데엑셀러레이터 15층에서 열린 새해 첫 위넷 모임 현장 (사진제공=위넷)

#  임신 7개월 입니다. 한 투자 심사역이 제게 임신은 여성 CEO의 투자 리스크라고 하더군요. 충격이었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젠더에 대한 이해도가 이 정도 밖에 안 되나. 막상 제 이야기가 되고 보니 심각하게 느껴지더군요. 다른 분들은 어떻게 헤쳐 나왔는지 궁금합니다.

#  여의도에서 12년째 회사 생활을 하고 있어요. 제게 관심 키워드는 승진입니다. 회사를 언제까지 다닐 수 있을는지 모르겠고 뭘 해야 할지도 몰라 여기에서 좋은 영감을 얻고 싶습니다.

여성기업가네크워크 내일(Women Entrepreneurs Network, 이하 위넷)이 매월 셋째 주 화요일마다 진행하는 모임에 참석한 사람들의 진솔한 이야기다. 위넷은 올해로 만 6살이 된다. 참가자들은 창업을 했거나, 창업을 준비하는 사람들, 그리고 자신의 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밀어주고 당겨주고 위로받는 공간

2019년 새해 첫 연사는 두어 달 전 소셜다이닝 개념의 목금토 식탁을 창업한 이선용 대표와 3D 프린팅 기술로 고객에게 최적화된 안경을 제조·판매하는 '브리즘아이웨어' 박형준 대표가 나왔다. 이들은 왜 이 일을 하는지, 어떤 시행착오를 겪었는지 등을 솔직하게 털어놨다.

연사들은 대단한 성공을 거둔 업계의 유명 인사가 아니다. 만 6년이란 시간이 축적해 놓은 인맥을 기반으로 이야깃거리가 풍부한 사람들이 무대에 오른다. 연사들은 좌충우돌하며 몸으로 체득한 정보와 고생담을 들려주며 자신을 돌아보고 사업 모델에 대한 타인의 객관적인 평가를 듣기도 한다. 기업을 알리는 홍보의 무대는 덤이다.

목금토 식탁의 현황과 의미를 설명하고 있는 이선용 대표

객석에 앉은 사람들은 타인의 경험을 거울삼아 자신의 길을 모색하고 지금의 힘든 상황들이 '나만의 고민'이 아니라는 점에서 위안과 용기를 얻는다. 2013년부터 운영진으로 활동하는 장영화 oeclab 대표는 "위넷에선 모두가 주인공"이라며 "연사들의 이야기를 단순히 듣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참가자들 모두가 짤막한 자기소개를 하면서 서로 응원하는 것이 다른 커뮤니티와의 차별성"이라고 설명했다.

위넷은 여성기업가네트워크이지만 여성들만을 위한 공간은 아니다. '내 일'을 사랑하는 여성들을 응원하는 남성들에게도 열린 공간이다. 장소와 그날의 연사는 페이스북에 공지한다. 참가비는 1만 원식사는 간단한 김밥이나 샌드위치로 해결한다.

장소는 디캠프, 스타트업 얼라이언스, 위워크 등 창업자들을 지원하는 조직들이 무상으로 빌려줬다. 평균 50여명이 참가하는데 19명의 운영진들이 자원봉사로 모임을 이끌어간다. 그동안 모임을 왔다 간 사람 수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페이스북에 눈도장을 찍은 회원 수만도 2천 명이 넘는다.

본격적인 교류는 공식 행사가 끝난 후 이뤄진다. 자기소개 시간에 관심을 끌었던 사람들과 새로운 교류를 맺고 궁금증을 풀어간다. 이런 소중한 만남을 통해 누군가는 사업 파트너를 만났거나 창업 아이디어를 건졌고, 서로가 서로에게 충성 고객이 되어주기도 한다.

연사발표와 질의응답이 끝나면 개별적으로 만남의 시간을 통해 친분을 더 쌓는다.

 

창업은 준비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폭망합니다. 창업엔 답이 없어요. 그 답을 스스로 찾아가야 하는데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좋은 사람을 곁에 두는 겁니다. 위넷을 통해 사람들은 사업 아이디어를 검증받고 직원들과의 갈등을 수면 위에 올려놓고 해결책을 묻기도 합니다. 서로 묻고 도움을 청할 수 있는 공간이죠. 밀어주고 당겨주고 힘들 때 위로해주고...저 역시 그런 사람들이 엄청난 자산이자 든든한 백그라운드입니다.” -- 장영화 oeclab대표

기존의 남성 중심 커뮤니티 탈피

한양대 백남학술정보관에서 열린 '끝장을 보는 여성들' 포럼에 발표자로 나선 커뮤니티 운영자들.(사진제공=씨닷)

일하는 여성이 늘어나면서 '학연과 지연' 그리고 '술과 골프'라는 기존 남성 중심의 커뮤니티를 벗어난 새로운 형태의 커뮤니티들이 늘어나고 있다.

지난달 한양대학교 사회혁신센터와 씨닷(C dot)이 주관한 '끝장을 보는 여성들'이란 포럼에서는 다양한 여성들의 커뮤니티 운영자들이 나와 연대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서로 비빌 언덕이 돼 주기 때문입니다. 함께 공부하며 이를 실행해 옮길 수 있는 장을 마련해줍니다.” - 권해솜 획기적인여자들의 홍보이사

테크업계는 네트워크 기반으로 돌아가는 게 정말 많아요. 빠르게 성장하고 성공할 기회들이 네트워크 안에 있습니다.” - 옥지혜 테크페미 운영자

'스여일삶(스타트업 여성들의 일과 삶)'이란 커뮤니티를 운영하는 김지영 씨는 "작은 나비의 날갯짓이 얼마나 큰 바람을 일으킬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시작으로 셰릴 샌드버그 페이스북 최고운영책임자와 나란히 찍은 사진을 공개했다.

스여일삶은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에 근무하는 여성들이 서로 힘을 북돋워 주자는 취지로 결성된 온·오프라인 모임이다. 페이스북을 기반으로 회원 수는 1800명이 넘는다. 작년에는 한국 커뮤니티로서는 유일하게 미국 페이스북 본사가 선정한 우수 커뮤니티 115개 중 하나로 선정됐다. 리더십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김지영 씨는 페이스북 본사를 방문해 세계 각국의 커뮤니티 리더들을 만났다.

스여일삶을 만든 김지영 씨는 셰릴 샌드버그 최고운영책임자와 나란히 찍은 사진을 공개해 참석자들로부터 부러움을 샀다. 그는 사진을 찍게 된 사연을 공개하며 '나비의 날갯짓이 큰 바람을 일으킬수 있음'을 강조했다. (사진제공=씨닷)

 

그때 셰릴 샌드버그 이사로부터 좋은 이야기를 많이 듣고 사진도 찍었어요. 리더십 프로그램을 다녀온 뒤로 각 나라별 여성 커뮤니티끼리 어려움과 노하우를 공유하는 기회가 많아졌습니다. ”

그는 페이스북 커뮤니티 리더십 프로그램의 펠로 자격을 얻어 1년간 5만 달러(약 5500만 원)를 지원받게 됐다.

그가 스여일삶을 만들게 된 동기는 1년 동안 '스타트업 식사는 하셨습니까'라는 페북의 그룹 운영진으로 활동했던 경험에서 비롯됐다.

이 모임은 스타트업 선배들이 배고픈 시절을 겪고 있는 스타트업 후배들에게 따뜻한 밥 한 끼를 대접해주고 싶다는 뜻에서 시작한 거예요. 호스트들은 주로 성공한 사업가나 벤처 투자자들이죠. 운영진의 한 사람으로 그동안 수많은 호스트들을 만났는데 여성 선배는 단 1명도 없었어요. 그때 이런 의문이 들더군요. ‘다 어디로 간 걸까’ ‘여성 선배들에게 조언을 구하려면 어디로 가야 하지?'”

의문을 풀기 위해 여성 기업가들을 만나 인터뷰를 시작했고 그 내용을 공유하면서 점점 모임의 형태로 발전했다그는 참석자들을 향해 "지금 발 딛고 있는 현실에서 내가 닿을 수 있는 사람들과 당장 할 수 있는 것부터 차근차근 해나가라"고 조언했다.

이 행사를 주관한 김은정 한양대 사회혁신센터 차장은 "소셜벤처 창업 과정에서 똑똑하고 열정 많은 여학생들이 출발선에선 많이 눈에 띄지만 어느 순간 사라져 버린다"며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달려갈 수 있도록 함께 안전망을 만들 수 있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이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 줬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연대의 힘 ... 동료에서 협업 파트너로 발전

일하는 여성들의 커뮤니티는 본업이 있기 때문에 느슨한 연대에서 시작한다. 여성의 사회참여와 성장을 지원하는 (사)여성이 만드는 일과 미래의 구은경 상임이사는 2018년 리더들의 '밥 먹는 모임'을 기획했다.

밥먹는모임에 동참한 여성 창업자들

구 이사는 "작은 조직을 운영하는 여성 대표자들의 경우 남성 대표자들의 술 모임에 참여하지 못할 때 정보로부터 소외되는 현상이 생긴다"며 "이를 대체할 수 있는 모임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월 1회 정도 여성 대표자들끼리의 밥 먹는 모임은 협업이란 형태로 그 빛을 발했다. 이남희 스트레스컴퍼니 대표는 보이지 않는 스트레스를 이미지로 풀어내 다양한 상품을 만든다. 그가 만든 감정 카드와 감정 다이어리는 상담사들에게 인기다.

경제교육협동조합 푸른살림의 박미정 대표는 적정소비생활 경제 코칭을 통해 건강한 자립과 바른 돈 개념의 정립을 돕는다. 이 두 사람은 서로의 특색을 살려 지난해 1인 생활자들의 돈 스트레스를 날려버리기 위한 Mind & Money Note를 출시했다.

밥먹는 모임이 낳은 협업의 대표사례인 1인 생활자를 위한 소비노트(좌)와 페미니스트 여행잡지 여행여락(우)

예술인 출신 경력단절 여성들이 만든 문화예술 협동조합 아이야도 이 모임을 통해 든든한 협업 파트너를 만나 성장해가는 중이다. 정가람 아이야 대표는 명랑캠페인이 제작ㆍ기획한 무대에서 극작과 출연 등을 맡는 방식으로 협업을 이어가고 있다.

구은경 이사는 "작은 조직의 대표자들끼리 만남이라 의사결정이 빨리 이뤄지는 장점이 있지만 늘 성공만 있는 것은 아니다"라며 "사업을 키우려면 역량들이 쌓여야 하는데 안 좋게 헤어진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실패도 좋은 경험입니다. 실패의 요인을 데이터베이스화해서 축적하고 이를 바탕으로 어떤 준비를 해야 지원 효과를 더 높일 수 있을지 다양한 시도를 계속할 계획입니다.”

최유진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성별영향평가센터장은 '여성에게 좋은 일자리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열린 포럼에서 "사회적 관계망은 고용 안정성과 연관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다양한 사람들과의 관계 맺음은 일자리를 연결해주거나 부수입을 창출하는 징검다리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더 보기] 나를 성장시키는 별별 커뮤니티 찾기

획기적인 여자들

20대 기획자를 위한 여성들의 모임이다. 회원 수는 27명. 여성들을 위한 커뮤니티랩 선샤인콜렉티브가 기획한 <외롭지 않는 기획자 학교>에서 출발했다.

주요 활동은 자체 프로젝트 진행과 함께 소모임 그리고 사이드 프로젝트로 콘텐츠도 제작한다. 지난해 서울시 여성가족재단의 지원을 받아 일하는 여성들의 목소리를 담은 '일-상 매거진'을 펴냈고 기획의 노하우를 담은 위키피디아 형식의 플랫폼 Wanual(워뉴얼)을 만들었다.

워뉴얼은 현역에서 업무를 수행하고 있는 선배 기획자들의 노하우와 경험을 방법론으로 재정립해 놓은 오픈 지식플랫폼으로 누구나 온라인에 접속해 자유로이 체득하고 활용할 수 있다.

◆ 스여일삶(스타트업 여성들의 일과 삶)

스타트업계에 있는 여성들끼리 힘을 북돋워줘 대한민국의 스타트업계가 조금이라도 건강해지는데 일조한다는 비전을 갖고 있다.

스타트업에 종사하는 여성들이 온·오프라인에서 각종 고민을 나누고 업계 동향 등 여러 정보를 교환한다. 육아를 병행해야 하는 기혼여성들을 위해 월 1회 점심 번개를 연다. 회원 수는 1800명이 넘는다.

올해는 페이스북의 리더십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5만 달러 (약 5500만 원) 상당의 커뮤니티 지원금을 받게 됨에 따라 대규모 행사를 기획 중이다.

 

테크페미

테크 업계 페미니스트들의 모임이다. 남성 근로자들이 많기로 유명한 테크 업계에서 직무 상식과 알아두면 좋을 기사와 논문 등을 공유하고 취업과 이직도 알선해준다. 회원 수는 150여명.

테크페미는 오프라인 모임을 연결해주는 국내 대표적인 온라인 플랫폼 회사 대표가 성폭력 이슈로 기소된 이후, 사람들이 여전히 이 플랫폼을 사용하는데 문제의식을 느끼고 이를 대체할 온라인 플랫폼 '밋고(Meetgo)'를 론칭해 운영 중이다.

 

여행여락

여행을 즐기는 여성들을 위한 커뮤니티다. 여성 소비자들의 취향과 기호 라이프스타일 그리고 안전 문제를 고려한 여행 서비스를 제공하고 다양한 회원 행사를 개최해 네트워킹을 지원하고 있다.

지난 연말에는 회원들이 직접 참여해 만든 국내 최초의 페미니스트 여행잡wl '여행여락'을 창간했다. 여성들의 시각에서 본 페미니스트 아카이빙 여행은 이들만의 특색 있는 여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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