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주의 소셜리 뷰티풀] 7. 혁신의 동지들
[이진주의 소셜리 뷰티풀] 7. 혁신의 동지들
  • 이진주
  • 승인 2019.02.18 06: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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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주의 소셜리 뷰티풀 7

혁신의 동지들

동지를 찾는다고 징징거렸던 소리를 하늘이 들으신 걸까. 이번주에는 혁신의 동지들을 잔뜩 만났다. KT&G가 통 크게 후원하고 사회연대은행이 주관하는 ‘상상서밋’이라는 행사에서다. ‘언더독스’라는 사회혁신 컴퍼니 빌더가 운영했는데 섭외과정에서부터 감동이 컸다. 3년 전 TEDx 무대에 선 이후 오랜만이었다. TED라는 국제적인 이벤트의 라이센스를 받은 TEDx는 잘 준비된 매뉴얼대로 원고를 가이드하고 동선까지 체크했다. 절차의 아름다움이 주는 감동은 컸다. 행사를 마치고 연사들의 피드백을 취합하는 이메일까지 받으면서 국내 컨퍼런스의 질적 향상을 체감했다.

시작이 훌륭할 수는 있다. 결과가 창대할 수도 있다. 그러나 과정이 아름답기란 쉽지 않다. 상상서밋의 동시세션 중 과학기술을 통해 더 좋은 미래를 상상하는 ‘프론티어’ 부문의 패널로 참여하는 내내, 커뮤니케이션의 과정 자체가 고마웠다. 사전에 잘 정돈된 기획의도를 전달하고, 가능한 부분과 가능하지 않은 부분을 솔직하게 안내해 강연 수위를 조절하며, 상호 의견을 확인하는 일은 단순한 커뮤니케이션이 아니라 팀 빌딩의 과정이나 마찬가지였다. 기획자와 내가 한 팀이 되어, 그가 곤란함을 겪지 않도록 돕고 싶다는 마음이 모락모락 일었다.

내가 기획자의 입장이 되어 초대손님들을 불러모았던 몇몇 순간들이 스쳐 지나갔다. 나는 그 분들을 이렇게 모셨던가. 한번 발들인 사람들을 우리의 미션과 비전에 동의하는 완전한 동지로 만들었던가. 아니다, 명쾌하고 정돈된 언어로 우리의 비전과 미션을 정비해 먼저 우리 팀과 이런 케미를 만들었던가. 

커뮤니케이션이란 게 별 거 아닐지도 모른다. 내 머릿 속에 든 아이디어와 현재 처한 입장을 상대방과 나누는 것. 그런데 그게 그렇게 어렵다. 부처와 가섭 존자도 아니면서 이심전심 내 마음을 알아주기를 바라고, 무언가 다른 일에 쫓기다 중간고리를 놓치기 일쑤다. 특히나 필자는 생각이나 감정의 진폭이 비정상적으로 널뛰는 데다 히키코모리적인 성향은 나이가 들수록 깊어지는 중이어서 ‘정상인’의 범주에서 그걸 짐작해 맞추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터였다. 커뮤니케이션을 전공한 것과 실생활에서 좋은 커뮤니케이터가 되는 건 완전히 다른 문제였다. 

이번 발표는 놀랍게도 나와 조직의 진화과정에서 꼭 필요한 때, 꼭 필요한 만큼의 고민을 말로 풀어낼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지난 여름 이후 우리는 페미니즘을 전면에 내세우며 활동했던 걸스로봇이라는 조직, 운동, 또는 회사가 어떻게 ‘회사이되 돈을 벌지 못하는 회사’라는 형태를 벗어나 본격적인 NPO로 변신할 것인가, 혹은 어떻게 우리의 메시지를 잘 전달해 성평등한 세상을 건설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과정에 있었다. 그 과정에서 제주과학문화공간 별곶이 나왔다. 

과학기술을 떠날 생각은 없었다. 이미 그건 21세기를 살아가는 모두의 리터러시였다. 젠더감수성이나 젠더의식을 버릴 이유도 없었다. 차세대를 온전한 시민으로 키워내는 데 필수적인 교육항목이니까. 서울에 공간을 열고 싶었지만 여러 여건이 맞지 않았다. 바다에 가로막혀 한계라고만 생각했던 로컬의 장점을 들여다보고 속 깊은 커뮤니티를 구축하고자 했다. 

그 과정에서 페미니즘이라는 단어를 말하지 않고 페미니즘을 하는 것이 과제가 되었다.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않고 사랑하는 것과 비슷한 거였다. “아내를 사랑한다”고 세상에 외치면서 때리는 남편이 있는가 하면, 사랑이 뭔지 모르겠다면서 무거운 짐을 나눠들고 설거지를 하는 남자도 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페미니스트로 정체화했다”고 주장하면서 성폭력을 행하고도 반성하지 않는 자들이 있는가 하면, 오히려 “페미니스트가 아니다”라고 비껴 서면서도 여성들에게 문고리를 열어주고 성소수자들을 무대에 세우는 이들도 있는 것이다. 그이들과 함께 지평을 넓히는 방식을 고민해보았다.

그렇게 나온 것이 ‘과학적인 사실에 기반한 유니버설한 젠더교육’이었다. 우회로를 택한 것이다. 그런 전략이 서울의 청중들에게는 어떻게 먹힐지 걱정스러웠다. 한편, 한때나마 아나운서 훈련을 받았던 것이 무색하도록 평소 강연에 ‘귀여운 수준’의 욕설을 유머 코드로 섞는 편이라, 깨끗하고 정제된 언어로 말하는 일도 고민이 됐다. 그 과정에서 가장 먼저 생각한 것은, 나의 이미지나 우리 조직의 이익이 아니라 이런 페미니즘 백래시 시대에 굳이 나를 무대에 세우려는 기획자의 마음이었다. 페미니스트 동지로서, 그와 내가 여자 또는 페미인 것이 서로를 해치지 않도록 하려는 마음, 저 사람 잘 불렀다고 칭찬받게 하고픈 마음 말이다. 이런 마음이 걸스로봇과 제주별곶의 핵심 멤버들에게도 생겨난다면, 그럴 수 있도록 우리가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다면, 일은 저절로 굴러갈 게다. 아미가 방탄 챙기듯 그래 그렇게.

다행히 행사를 무사히 마무리하고, 내가 없는 동안 제주별곶을 지킨 스태프 동지들과 유관조직이나 후원사로 곧 다시 만나게 될 것 같은 기획자 동지들, 그리고 같은 세션에서 서로가 품은 절체절명의 미션과 비전에 반해버린 패널 동지들과 뜨거운 청중 동지들을 얻었다. 객석에서 올려준 질문들을 하나하나 읽고 캡처하면서 온 마음으로 울었다. 별곶의 관광전략, 유니버설한 젠더교육의 사례, 걸스로봇의 인적구조, 문과 출신으로서 이과 세상에서 생존하고 훈련하는 방법, 사회혁신가인 동시에 애엄마로서 개인적인 부대낌과 해소책, 가장 사랑하고 추천할만한 책… 이런 질문과 제언을 해줄 수 있는 이들이라면 언제고 다시 만나고 싶어졌다. 섭외부터 강연까지 근 한 달은 고민했고 그날 하루도 꼬박 행사에 바쳤지만, 아깝지가 않았다. 하나도 아깝지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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