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이라는 옷을 입은 SOC- 도시재생사업의 확대
생활SOC. 거대 토목공사를 이야기할 때나 쓰이던 SOC라는 단어가 드디어 생활이라는 옷을 입었다. 사회적경제의 중요성이 날로 커지는 오늘날, 생활SOC에 터 잡은 도시재생사업에 대한 기대는 하루하루 뜨거워지고 있다. 총 50조 원 규모의 관련 예산을 확보하기 위해 전국의 지방자치단체들이 앞 다투어 노력하는 모습을 보면 이 열기를 짐작하고도 남는다.
그 중에서도 ‘도시재생 뉴딜사업’은 사회적경제정책으로 노후화된 지역에 생활체육시설이나 도서관 등 생활밀착형 SOC를 공급하는 등의 방식으로 국민 개개인의 행복과 지역경제의 활력을 제고하는데 목적이 있다. 즉, 고도성장기 시절 도로, 철도 등을 중심으로 한 지역개발정책으로서의 좁은 의미의 SOC사업과는 확연히 결이 다르다. 바야흐로 ‘생활SOC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이러한 생활SOC에 대한 시대적 요구는 2013년 제정된 「도시재생 활성화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에 반영되기 시작했다. 이 법은 생활SOC에 있어 시민이 참여하는 위원회(법 제7, 8조)와 중간지원기구를 설치(법 제10조)하고, 주민제안(법 제18조)이 가능하도록 하였다는 점이 눈에 띈다. 시민참여를 통한 협치(governance)와 민주성 및 정당성의 제고, 수요자(시민) 중심의 정책방향·행정계획 수립에 기여할 수 있다는 점이 두드러진다. 또한 법이 정한 다양한 재정지원(보조·융자·세제혜택 등) 및 행정지원이 가능하기 때문에, 행정이나 재원조달 역량이 부족한 사회적경제조직들도 도시재생사업에 참여할 기회가 생긴다는 점에서 분명한 의의가 있다.
불편한 2인3각- 여전히 공공‘지원’형 민간개발(변형된 제2섹터) 프레임에 머물러 있는 도시재생사업
그러나 이처럼 많은 장점에도 이 법이 여전히 민(Private)과 관(Public)의 ‘혼합적 결합’에 머물러 있다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양쪽 모두 발을 맞추기 힘든, 다소 불편한 2인3각 상황과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예를 들어, 도시재생구역 A에 X억원 규모의 생활체육시설과 도서관을 포함하는 복합커뮤니티시설을 건립한다고 하자. 우선 ‘관’은 이 법에 근거하여 A구역에 관한 정책·계획을 수립(법 제2, 3장)한다. 이때 만일 복합커뮤니티시설이 ‘수익성’이 크다면 수많은 민간주체들이 경쟁적으로 이 프로젝트를 수행하려 할 것이다. 그러나 복합커뮤니티시설은 수익성이 클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커서도 안 된다. 이 시설이 가진 ‘공공성’이라는 존재의 이유를 망각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이 법은 공공성의 확보를 위해 ‘민’은 어디까지나 ‘관’의 승인범위 내에서, 관이 제공한 예산과 보조금, 세제혜택 등에 기초해 복합커뮤니티시설을 짓도록 하고 있다. 이후 준공된 시설의 운영 역시 주로 ‘관’이 위탁·승인하는 범위 내에서 ‘관’이 제공하는 재원에 의해 이루어진다.
복합커뮤니티시설과 같은 개별 프로젝트 차원에서 도시재생사업은 여전히 경직적으로 운용될 수밖에 없다. 헌법 및 국가/지방재정법에 따른 단년도 예산편성, 공공재원의 용처와 사용방법 등을 엄격히 통제하는 보조금법, 기금법 등이 정한 한계를 넘어서지 못하는 것이다. 또한 국·공유재산법, 국가/지방계약법상의 제약으로 중·장기적인 운영위탁, 민간의 자율성에 기초한 운영 등이 어려울 뿐만 아니라, 사회성과보상계약(Social Impact Bond, SIB) 등 다양한 방식의 재원조달, 계약구조를 조화시키기도 어렵다. 더욱이 설계, 시공, 재원조달, 운영 등의 통합발주(DBFO)나 프로젝트 제안자 우대 등의 조치를 취하는데 있어서도 그 한계가 분명하게 드러난다. 즉, 이 법에 따른 개별 도시재생프로젝트는 여전히 ‘민간=개발주체’, ‘공공=재정·행정지원’이라는 이분법에 기초한 제2섹터 개발프레임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공공과 사회, 민간의 협력(제3섹터)- 도시재생사업의 혁신
방법은 있다. 단기적으로 볼 때, 공공과 사회적경제조직들은 이미 존재하는 현행 법·제도를 적극 활용함으로써 위와 같은 경직성을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지방자치단체와 사회적경제조직은 「사회기반시설에 대한 민간투자법」 제2조 제1호 퍼목과 커목에 근거해 위와 같이 도서관과 생활체육시설이 결합된 복합커뮤니티시설을 경직적인 재정투자 및 민간위탁(contracting out)이 아닌 유연한 민관협력(PSPP) 방식으로 추진할 수 있다.
민간투자법은 다양한 참여자들이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는 특수목적법인을 설립(법 제14조)할 수 있게 했다. 동시에 국가/지방계약과 다른 실시협약(법 제13조)을 통해 보다 유연한 계약조건을 담을 수 있게 했다. 특히, 이 법은 민간이 조달한 재원을 회수할 수 있는 기간 동안 관리운영권을 보장(법 제25, 26조)함으로써 중·장기적인 사업의 추진이 가능하다. 뿐만 아니라 민간투자법은 제안자를 우대(법 제9조)할 수 있게 하고, 일정한 요건을 갖춘 부대사업을 허용(법 제21조)하면서, 국·공유재산의 사용(법 제19조), 정부지급금과 산업기반신용보증기금의 보증(법 제30조), 보조금 및 세제혜택 (법 제53, 57조) 등 다양한 인센티브를 제공할 수 있도록 했다.
다른 한편으로 공공성을 위해 필요한 경우에는 관이 필요한 조치(법 제47조 등)를 할 수 있게 했다. 법에 따르면 민·관은 공공성과 수익성이 조화되는 방향으로 협력할 수 있는 것이다.
다만, 위와 같은 장점에도 민간투자법은 그동안 도로, 철도사업 등을 중심으로 운용되어 왔기 때문에 그 하위법령 및 관련 규정들이 협의의 SOC 신설에 대한 그린필드형 BTO사업에 편중돼 있다. 그리고 높은 사용료와 수요예측 실패, 최소운영수입보장(Minimum Revenue Guarantee) 등 부정적인 요소들로 인해 많은 비판에 직면해 왔다.
이 같은 한계는 반드시 극복해야 할 과제다. 이에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이들 법·제도 및 정책운용의 방향을 생활SOC에 대한 BTL사업으로, 신설 및 그린필드만이 아닌 개량·개보수 및 브라운필드사업으로 확대·재편하길 제언한다. 더 나아가 사회성과보상(SIB) 등과의 연계를 통해 시설 O&M(예. 시설유지·보수 등)만이 아닌 핵심공공서비스(생활체육프로그램 등)에 초점을 둔 ‘화학적 결합’ 모델로까지 확장될 수 있다면, 전국의 수많은 도시재생프로젝트들이 날개를 단 듯 활성화될 수 있을 거라 기대된다.
* PSPP(Public-Social-Private-Partnership) : 민관협력을 의미하는 PPP(Public-Private-Partnership)에 ‘시민사회(Social)’가 함께 협력하는 것을 의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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