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경제 분야에도 대(大)기업이 있다. 전통적인 대기업처럼 매출이나 규모가 큰 기업을 얘기하는 게 아니다. 규모가 작더라도 사회변화에 기여하며 우리 사회에 긍정적인 가치를 만들어가는 기업을 말한다. 또 10년 이상 꾸준히 위기를 넘기며 성장하고 지속가능성을 고민하는 기업이다. 어느 때보다 사회적경제 분야의 양적 성장이 커지는 요즘, 그 대기업들이 밟아온 10년 이상의 경험과 고민, 그리고 위기를 헤쳐 온 힘의 원천이 질적 도약을 앞둔 사회적경제 영역에 작은 인사이트를 줄 수 있지 않을까. 규모는 작지만 큰 가치를 만들어가는 강소 사회적기업가들을 본지가 독자들에게 소개하는 이유다. 
춘천별빛산골교육센터의 농촌유학생으로 참여하는 학생들이 모내기에 참여 중이다. 

“벌레도 잡고, 고구마도 캐고...”

은수(가명)는 하교 후 친구들과 고구마 캐기에 한창이다. 학교가 끝나면 친구들과 뛰어다니며 노는 게 일상이다. 은수의 일상이 이렇게 바뀐 건 불과 6개월 전이다. 서울이 집인 은수도 여느 아이들처럼 학교를 마치면 학원으로 직행했다. 낮에 친구들과 축구를 하고 뛰어노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춘천별빛산골교육센터(이하 별빛센터)에서 운영하는 캠프 참여 후 정식으로 농촌유학 생활을 시작했다. 지역학교에 다니며 자신처럼 다른 도시에서 유학 온 친구들, 이곳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과 함께 지낸다. 숙박은 별빛센터가 연결해준 동네 어르신네에서 해결한다. 부모와 떨어지는 생활이 처음에는 익숙하지 않았지만 6개월 만에 은수의 얼굴은 까맣게 그을렸다. 이제 개구리도 제법 잡는다. 

은수는 강원도에서도 대도시에 속하는 춘천, 춘천에서도 시골마을인 사북면 고탄리에 자리한 ‘춘천별빛산골교육센터’의 농촌유학생이다. 지난해 16명이 이곳에서 생활했다. 폐교 위기에 놓였던 학교를 살리기 위해 시작된 농촌유학이 이제는 마을 활력소가 됐다. 최근에는 서울 등 대도시에서 귀촌, 귀농하는 사람들도 늘었다.

돌봄 부재한 농촌마을, 공부방→지역아동센터로 발전 

별빛센터는 2005년 마을 공부방으로 첫 발을 내딛었다. 

“귀농하고 춘천으로 내려온 지 3년 되던 해였어요. 하교 길에 동네 아이가 차사고로 사망하는 일이 있었어요. 시골이다 보니 하교 후 갈 곳도 없고, 부모들은 농사 짓느라 바쁘니 아이들은 학교 운동장에서 놀다가 어둑해지면 집으로 돌아오곤 했는데 혼자 오다 그런 사고를 당한 거죠.”

윤요왕 사회적협동조합 별빛 대표

당시 어린 자녀를 키우며 농사를 짓던 윤요왕 대표에게 사고 소식은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아이들을 함께 돌보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느낀 계기였다. 사방팔방 뛰어다니며 공부방 공간을 마련했다. 하지만 식사, 돌봄교사 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았다. 윤 대표는 학부모들과 머리를 맞대었다. 부모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필요성에 공감한 부모들이 십시일반 낸 돈으로 운영비를 마련했고, 식사는 돌아가며 도시락을 싸기로 했어요. 그렇게 방학에만 운영되는 공부방이 시작 된 거죠.”

오전에는 농사를 짓고, 오후에는 부모들이 돌아가며 돌봄 교사가 되었다. 2005년 ‘별빛공부방’의 탄생 배경이다. 별빛공부방은 2008년 안정적인 운영을 위해 지역아동센터로 또 한 번 탈바꿈 했다. 

“폐교 위기 학교를 구하라”...산골유학으로 도시-농촌 학생 연계    

지방의 시골마을에 학생들이 줄어드는 현상은 고탄리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마을의 유일한 초등학교였던 송화초등학교 학생들이 매년 급감했다. 신입생이 1~2명인 해도 있었다. 학생 수가 줄어드니 마을로 들어오던 학원 차도 운행을 멈췄다. 그나마 버티던 부모들도 하나둘 자녀를 시내로 전학 보내기 시작했다. 

당시 마을 이장이던 윤 대표는 ‘이러다 학교가 없어지겠다’는 위기감을 가졌다. 학교가 없으면 이곳에 들어오는 청년도 줄어들고, 마을의 지속가능성도 떨어지기 때문이다.  

윤 대표는 마을사람들과 함께 농촌유학으로 고탄리 내 폐교 위기에 놓였던 초등학교를 살렸다.   

“작은 학교의 아이들도 행복할 권리가 있잖아요. 학교가 없어지는데도 어른들이 손 놓고 있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자신과 비슷한 생각을 가진 부모들과 공부 모임도 만들고 해외 견학도 가면서 대안을 찾아갔다. 그때 알게 된 게 ‘농촌 유학’이었다. 

<농·산·어촌 유학은?> 
농림부에서는 침체된 농·산·어촌에 활력을 불어넣고 소규모학교를 부활시킬 해법으로 2006년부터 농어촌유학센터 지원사업을 시작했다. 현재 전국적으로 10개 지역에서 운영 중이고, 5개 지역에서 준비 중이다. 농어촌유학은 도시에 사는 아이들이 6개월 이상 농어촌지역에서 생활하는 교육·지역적 프로그램이다. 아이들은 농어촌 마을의 농가나 기숙사에 머물면서 지역과 자연을 체험함으로써 몸과 마음이 함께 성장한다. 이때 기초교육은 지역의 공교육 학교 등을 이용하고 농어촌유학은 아이들의 돌봄과 체험을 통한 성장에 초점을 맞춘다.

이를 통해 유학생들에게는 자립심과 자신감을 형성하는 것은 물론, 생태계에 대한 감수성과 타인과의 관계 맺는 법 등을 배움으로써 몸과 마음이 함께 성장하고, 센터가 운영되는 지역의 경우 학생 수 부족으로 폐교 위기에 처해있던 시골 마을의 학교에 도시아이들이 유학 오면서 폐교 대상에서 제외되거나 본교를 유지하고 있으며, 젊은 귀농인이 농어촌에 정착하는 사례도 생겨나고 있다. 반면 유학을 교육적 목표 없이 인구 유입 방안만으로 추진하는 경우도 많아 전문가들은 농촌유학이 성공하려면 학생이 지역 공동체에 융화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공부방을 매개로 먼저 자연캠프를 시작했다. 부모와 아이들의 생각이 궁금했다. 우선 부딪쳐 보자는 생각으로 2007년부터 2010년까지 여섯 번의 캠프를 진행했다. 

“그때만 해도 제가 전문 교육학자도 아니고 농촌유학에 대한 확신이 없었어요. ‘부모 없이 낯선 곳에서 아이들이 잘 적응할 수 있을까’ 고민이 많았죠.”

처음 농촌유학을 시작한 것은 폐교 위기에 놓인 학교를 살리고 시골 아이들의 친구들을 찾고자 함이었다. 하지만 캠프를 진행할수록 도시 아이들에게도 농촌유학의 경험이 큰 도움이 된다는 걸 깨달았다. 

유학생들은 방과후에는 별빛센터를 통해 목공, 텃밭 등 자연을 있는 그대로 즐기는 시간을 가진다.

“막상 해보니 농촌 자연이 아이들과 너무 잘 맞았어요. 도시에서 와 낯설어 하던 아이들도 시간이 지날수록 깜짝 놀랄 정도의 에너지를 보였죠. 논바닥에서 축구하고, 냇가에서 물놀이하고, 불 피우는 거 하나만으로도 행복해하는 아이들을 보며 ‘아이들은 이렇게 성장해야 한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어린 시절 자신들이 놀던 기억을 더듬으며 아이들과 함께 할 농촌유학 프로그램을 하나둘 만들어갔다. 그렇게 스스로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 꼬박 3년이 걸렸다. 

국내 첫 ‘농가 홈스테이’ 시도, 마을과 함께하는 농촌살이    

별빛센터가 문을 열고 유학생과 동네 아이들은 학교에서부터 센터까지 늘 함께 생활했다. 목공, 텃밭, 연극 등 도시 학교에서 경험하기 어려운 활동들이 이어졌다. 봄이면 벚꽃나들이, 여름이면 모내기, 가을이면 벼 베기, 겨울이면 눈썰매를 타며 계절의 변화를 온몸으로 만끽했다. 직접 배운 재능을 발휘해 마을 축제에도 참가했다. 

특히 윤 대표가 가장 주력한 부분은 ‘마을과 함께하는 생활’이었다. 

“국내 유학센터 중에서는 마을 아이들과 유학생이 함께 어울리도록 운영 하는 곳이 없었어요. 마을에서 유학생들을 뜨내기로 보는 등 서로 갈등도 컸죠. 우리보다 20년 앞서 이런 제도를 시행했던 일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어요. 그들이 준 교훈은 ‘마을 속으로 들어가 함께 어울려야 한다’, ‘함께 하지 않으면 유학센터가 섬이 된다’는 거였어요. 기존 마을에 아이가 남아 있지 않으면 아무리 외부 유입을 해도 재생이 몇 배나 힘들기 때문이죠.”  

별빛센터는 다른 유학센터와 달리 '농가 홈스테이'를 시도해 유학생들이 진짜 농촌살이를 할 수 있도록 했다.

교육센터가 마을과 함께하기 위해 시도한 것은 농가 홈스테이였다. 유학생들만 머무는 기숙사가 아니라 지역의 어르신들 집에 아이들이 함께 거주하는 방식이다. 유학생들은 어르신들과 함께 생활하며 공동체의 중요성을 알게 되고, 어르신들은 새로운 소득원이 생기는 것이다. 국내에서는 첫 시도였기에 ‘도시 부모들이 불안하지 않을지’, ‘농가 관리는 어떻게 할지’, ‘유학생 관리가 제대로 될지’ 주변의 우려가 컸다. 

그럼에도 ‘마을 속에서 함께하지 않으면 지속가능할 수 없다’는 윤 대표의 결심은 확고했다. 

“일상에서 벌어지는 농촌의 삶은 기숙사 생활로는 절대 느낄 수 없잖아요. 유학센터는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곳이 아니에요. 농촌유학은 농촌살이가 되어야 합니다.

처음부터 농가 홈스테이가 원활했던 건 아니다. 유학생들은 농가에 머물며 처음 맡는 메주 냄새에 코를 막았고, 기름 값 많이 나온다며 목욕을 매일 하지 말라는 황당한(?) 이야기도 들어야 했다. 세대 차이는 때로 소통을 가로 막았다. 여러 우려들이 있었기에 유학생을 받는 농가 선택에도 신중에 신중을 기했다.

윤 대표는 '농촌유학은 농촌살이가 되어야 한다'는 확고한 생각으로 농가 홈스테이를 이어왔다.

“동네 분들이 다들 여기서 평생 산 분들이라 주변 여론도 들으며 찾았어요. 그 과정에서 지역 분들과 갈등도 있었지만 그때마다 제 원칙은 아이들이었어요. 홈스테이 하다가 배제된 분들도 처음에는 화도 내고 하셨지만 그런 원칙을 끝가지 지키고 가니 나중에는 이해를 하더라고요.”  

2018년부터 유학생들 중 일부는 새로 지어진 기숙사에서 생활한다. 농촌사회가 점차 고령화되면서 홈스테이가 가능한 가정이 점차 줄어들어서다. 그렇지만 농가 홈스테이를 멈출 생각은 없다.  
  
교육→지역돌봄 확대, 선순환 되는 마을공동체로 시즌2 준비 나서 

현재 송화 초등학교 전교생은 40명이다. 지난해 16명의 유학생이 이곳으로 전학을 왔다. 조금씩 입소문이 나면서 귀농자, 교육 귀촌자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제는 아이들이 행복한 마을을 넘어 노인, 지역주민들이 함께 행복한 마을을 꿈꿀 수 있게 되었다. 2014년 설립한 사회적협동조합의 명칭도 ‘별빛 사회적협동조합’으로 변경했다. 지역아동 돌봄, 농촌유학 등 농촌교육을 넘어 노인돌봄으로까지 사업을 확대하고 마을 전체가 선순환 되는 삶을 고민하기 위해서다. 마을공부방을 시작한 지 14년째인 올해 본격적으로 시즌2를 시작하는 셈이다.

올해는 지역 어르신들의 어려움을 돕는 '별빛 산골마을 119' 사업을 확대한다.

시즌2의 일환으로 올해부터는 노인돌봄센터도 운영한다. 꾸러미사업을 비롯해 기존에 소규모로 진행했던 ‘산골마을 119’ 사업도 확대한다.  

“차로 가면 10분이면 될 거리를 마을 어르신들은 버스를 타고 보건소에가 약을 타려면 1시간이 넘게 걸려요. 고령화된 농촌에 정말 필요한 서비스지만 행정이 직접 나서기는 어려운 사업들을 주민들 힘으로 직접 하며 일자리도 만들고 복지도 향상시킬 생각이에요.”

별빛센터 야외공간에서는 올해부터 말을 이용한 테라피 사업도 시도한다. 유학생뿐 아니라 지역 어르신, 주민들이 일상의 화를 다스리는 치유센터 격이다. 비어 있는 낮 시간에는 지역 발달장애인 등을 위한 말 테라피 치유프로그램도 함께 운영할 계획이다.

농촌의 아이들을 위해 시작된 사업은 이제 마을공동체 복원으로 확대되고 있다. 꼬박 14년을 달려온 덕분이다. 인터뷰 말미 윤 대표에게 성공 비결을 물었다.

“성공은 아니고 아직 과정이죠. 내가 사는 마을에서 아이를 키우다 보니 이곳이 더 건강하고 안전해졌으면 한다는 절박함에서 시작했고, 그 절박함이 여기까지 오게 한 힘이에요. 대신 우리 수준에 맞게 느리게 걸어왔어요. 여기 고탄리가 특별한 곳이거나, 저희가 전문 교육자도 아니었잖아요. 많은 분들이 우리를 보면서 ‘저런 곳도 하네. 우리도 할 수 있겠다’는 희망을 가져줬으면 좋겠어요.”  

춘천 별빛산골교육센터 전경. '사회적협동조합 별빛'은 지역아동 돌봄, 농촌유학 등 농촌교육을 넘어 노인돌봄으로까지 사업을 확대하고 마을 전체가 선순환 되는 삶을 고민한다. 

 

<윤요왕 대표가 말하는 강소 사회적기업의 포인트>

1. 자발적인 내적 동기가 있나? 
어려움을 이겨내는 힘은 대명제와 당위성이 아니라 주체의 필요와 자발성에서 나온다. 자신에게 ‘얼마나 절박함이 있느냐’를 살펴봐야 한다는 얘기다. 특히 요즘같이 외부 지원사업에 휘둘려 시작하는 사업들이 많기에 이러한 내적 동기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 조금 더디더라도 이를 바탕으로 사업을 시작하고 유지시켜 간다면 더 건강하고 지구력 있게 갈 수 있다.   

2. 자립적인 구조가 있나? 
사업을 하려면 일, 사람, 돈 3가지가 동시에 돌아가야 한다. 이 중 하나가 있으면 나머지 두 개를 끌어갈 수 있는데, 그 하나가 ‘사람’이다. 사람을 가장 중요시 하되, 자립적인 구조를 만들기 위해 늘 고민해야 한다. 자금이 없으면 확장성, 지속성을 가지기 어렵기 때문이다. 

3. 현장에서 답을 찾고자 하나? 
여러 마을이 모여서 한 정부를 만든다. 행정은 마을을 서포터 하는 역할일 뿐이다. 현장을 중요시 여기고 귀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현장에서 답을 찾고자 하는지 묻고 싶다. 

 

사진제공. 사회적협동조합 별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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