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에 르완다에 다녀왔습니다. 저희 펠로우 중 하나인 소셜벤처 키자미테이블(식당을 매개로 아프리카 청년들에 일자리 제공 및 자립 기반 마련)이 수도 키갈리에서 작년말 사업을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아프리카 대륙은 처음 가보는 곳이라서 여러가지로 신기하고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어마어마한 비행 시간이며,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과 풍경들 모두 새로운 경험이었습니다.

아프리카 방문 소식에 많은 지인들이 안부 인사를 보냈습니다. 연초인데다 잘 알려지지 않은 나라 방문이 신기한지 “정말 덥겠네”, “무척 위험할텐데 조심해” 등의 메시지가 주였습니다. 키갈리가 한국의 1월 보다는 덥고, 서울보다는 물론 위험하겠지만, 아프리카에 대한 우리의 선입견이 담겨 있는 말임에는 분명합니다.

아프리카는 하나의 나라가 아닙니다. 다양한 인종과 문화, 상황이 어우러진 거대한 대륙입니다. 이를 우리 머리에 있는 하나의 상으로 치환시키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실제로 키갈리는 적도에 위치한 도시임에도 해발고도가 1000m가 넘습니다. 우리가 방문했을 때는 17도에서 26도 정도의 화창한 날씨였고, 이는 일년 내내 비슷하다고 합니다. 작년 여름 서울이 39도일 때도 키갈리는 27도 정도에 그쳤습니다. 서울이 더울 때 우리는 흔히 '서프리카'라는 말을 하는데, 이런 점을 고려보면 그리 적절한 표현은 아닌 듯 합니다. 길거리는 서울 중심가에 비견될 만큼 혹은 그보다도 깨끗합니다. 서울만큼은 아니지만 안전해서 밤거리를 돌아다니는데도 부담이 없습니다.

키갈리는 고지대라 선선하고 길거리가 정말 깨끗하다.

우리는 수많은 편견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스스로 학습한 인식도 있고 어찌보면 문화적으로 주입된 것도 있습니다. 아프리카와 같이 우리와 관계없어 보이는 대륙에 대한 편견도 그 중 하나입니다. 그러나 제가 르완다에서 가진 경험처럼, 직접 그곳에서 겪는 현실 속의 삶은 편견을 벗어버리지 못할 경우 당연히 큰 오해와 문제 해결 접근의 오류에 봉착하게 됩니다. 

임팩트비즈니스의 경우에도 그렇습니다. '어떤 사회문제는 당연히 어떠할 것이다'는 편견은 정말 무섭습니다. 특히 특정 집단의 성격을 하나로 고정시켜버리는 일은 위험합니다. 몇 년 전부터 점자와 관련된 소셜벤처 및 비영리의 노력이 전세계적으로 커졌습니다. 국내에서도 새로운 점자 기기 혹은 그에 연결된 서비스들이 선을 보입니다. 각각의 제품과 비전은 충분히 박수칠만 합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기업이 너무 쉽게 전제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바로 ‘시각장애인들은 점자를 읽을 줄 안다’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어떨까요? 국내 시각장애인 중 점자를 읽을 줄 아는 비율은 10%가 되지 않습니다. 전세계적으로는 5%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일단 점자를 가르쳐야 점자 기기건 점자서비스를 사용할 수 있겠지요. 

이러한 문제는 생각보다 자주 발견됩니다. GE가 인도에서 영아사망률을 낮추기 위해 시도했던 위대한 도전이 있었습니다. 연구개발팀의 오랜 노력끝에 자신들의 인큐베이터를 최소한의 기능으로 최적화하여 무려 90% 저렴한 가격으로 제공하는데 성공했지만 사용자의 미숙이나 전기 인프라의 불안정성으로 금새 고장나서 쓸모를 다하지 못했습니다. '통계적으로 인도 의료수준이 다른 개발도상국에 비해 괜찮은 편이'라거나 '병원에 대한 전기 보급률이 높다'는 정보가 실제로 인큐베이터가 효과를 낼 수 있다는 결론에 직접적으로 길을 내주는 것은 아닙니다.

언젠가 한 대기업이 노인 관련 임팩트비즈니스를 설계하고 싶다고 연구 의뢰를 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제시한 가설이 잘 이해되지 않아 한참을 고민했습니다. 맹점은 노인을 하나의 그룹으로 묶어서 이야기하는 데에 있었습니다. 노인은 기본적으로 나이로 구분되어 있을 뿐입니다. 그들 중에는 경제적으로 수입이 필요한 그룹이 있고, 그렇지 않은 그룹이 있습니다. 또 건강해서 무엇을 직접 할 수 있는 그룹이 있고,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이렇게만 나누어도 4개의 큰 그룹으로 구분됩니다. 

우리는 생각보다 사회문제와 그 사회문제의 현장에 대해서 비전문가인 경우가 많습니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뛰어들어 경험이 부족하다거나, 원래 완전 비즈니스 쪽에 있다가 전환을 한 경우, 혹은 그저 관심이 없었다거나 등의 경우입니다. 물론 모든 일을 다 직접 경험할 수 없고 또 그래야만 하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자신이 해야 하는 일에 대해서는 이미 가진 생각과 이해를 내려놓고 직접이건 간접이건 현실을 알기 위한 노력이 먼저 선행되는 것이 스스로와 함께하는 이들에 대한 기본 태도입니다. 그 올바른 이해야 말로 진짜 문제를 해결하며 혁신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가장 튼튼한 발판 중 하나겠죠.

저는 엑셀러레이팅 대상 기업 선정심사를 할 때 가장 먼저 확인하는 것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탈북민의 소득을 개선하겠다’는 기업가라면 스마트폰을 꺼내어 카톡이건 통화건 가장 최근에 탈북민과 연락한 흔적을 보여달라고 합니다. 진짜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를 직·간접적으로 경험했는지, 혹은 경험하기 위한 노력을 시작했는지 확인하기 위함입니다. 편견은 누구나 가질 수 있습니다. 다만 현장, 경험, 정직한 관심이 그 제약을 벗어나게 할 것이라 믿습니다. 우리 마음 속에 있는 또 다른 ‘서프리카’를 조심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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