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이 가지 않는 길은 저도 가고 싶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두둑한 보상이 따른다니 가보겠습니다.” - 이상희 교수 / 고인류학자, UC Riverside
새해가 밝은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첫 달이 지나갑니다. 모두 새해의 다짐 한 두 개쯤은 하셨죠? 출근길 한숨 속에 지난 밤의 소주 냄새가 묻어나는 당신이 오늘만큼은 절대 술을 마시지 않겠다고 주먹을 불끈 쥐는 것 같은 크고 작은 많은 다짐 말입니다. 금연, 금주처럼 ’금’자를 붙일 수 있는 것들이 물론 단골손님이겠고요. 저 역시 그랬습니다. 열댓 가지의 결심들이 메모장을 가득 채웠습니다.
하지만 작심삼일이란 말이 아니 땐 굴뚝의 연기 같은 말은 아닌 모양입니다. 아무리 굳게 먹은 마음이라도 천적 같은 유혹이 뒤따르니까요. 바위도 한낱 얼음의 팽창으로 쪼개져 나가는 마당에 말랑한 마음이야 오죽하겠습니까. 저는 금주의 다짐이 가장 먼저 무너졌습니다. 마음은 간사합니다. 쉬운 것과 어려운 것 사이에서 늘 쉬운 쪽으로 기울어집니다. 물이 아래로 흐르는 것처럼 자명한 사실입니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그냥 물리적 법칙이라고 퉁 치고 넘어갑시다. 아등바등 매일 후회하며 사는 것보다 정신건강에 좋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작심삼일의 다짐 속에 흐지부지 사라지는 것들일지라도, 누구나 그 중 놓치고 싶지 않은 하나 정도의 결심은 있겠지요. 저는 금주와 다이어트가 이미 무너져 나갔지만, 놓칠 수 없는 하나의 패는 아직 손에 쥐고 있습니다. 퇴사입니다. 다른 다짐들과는 무게가 다른 오래된 계획이고 올해가 실천하는 해입니다. 학교를 그만두는 일은 드라마가 그려내는 것처럼 하던 일 멈추고 상자에 짐 담아 나오는 것과는 아주 다릅니다. 제자를 길러내는 일에 드는 시간만큼의 긴 냉각기가 필요합니다. 올해 겨우 그 지루한 정리가 끝나는 셈입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일인데도 막상 그 앞에 서니 무섭습니다. 타성에 젖은 생활에서 벗어나 새로운 여행을 떠나려니 겁이 덜컥 납니다. 준비 기간이 길었다 하더라도 두렵기는 매한가집니다. 가던 길로 10년은 더 편히 걸어갈 수 있을 텐데, 애써 옆길로 새는 셈이니까요. 네, 머리로는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크고 작은 계획을 세우고 이런저런 다짐을 하는 것은 삶이라는 여정에서 작은 이정표를 하나씩 꽂아나가는 일일 뿐이라고요. 여정이 항상 만족스러울 수는 없고, 실망하고 좌절하는 일은 숱하게 일어날 것을. 같은 인생을 두 번째로 사는 것이 아니니 모든 것이 처음이고 서툰 것이 기본이라는 것 머리로는 잘 압니다.
그러니 제가 선택한 이 길에서 때때로 고통이 따르더라도 그건 매우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때마다 자기 생각에 의을 품고, 능력에 의문을 제기하고, 소유했다고 생각했던 모든 미덕을 부정할지도 모릅니다. 이 길은 참기 힘들 정도로 외롭게 보일 것이고, 경험하는 순간순간의 고통이 일상이 될 수 있음도 압니다. 새해 다짐이 무너질 때 느꼈던 고통보다는 더 많이 아플 겁니다.
반면 마음은 제게 이렇게 속삭입니다. 그 길은 이유가 있어 고통스러운 거라고. 새로운 길을 걸으려는 사람들에게만 주어지는 특별한 기회라고 말합니다. 어려서 읽은 동화들을 떠올려보세요. 모든 위대한 모험에서 주인공은 고난과 역경을 거쳐 엄청난 보물을 발견합니다. 왕좌에 오르거나, 미로를 탈출하여 집으로 가는 길을 찾는 것과 같은 큰 보상을 받습니다. 전리품은 승자에게 가고, 승자는 항상 끝에 드러나는 법이죠. 이 미지의 길을 여행하고, 보람 있는 것을 창조하기 위해 용기와 담대함, 때로는 광기가 필요한 것은 자명합니다. 가치가 있는 모든 일에는 난관이라는 장애물이 놓여있습니다.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획득할 가치가 있는 모든 다짐은 기대 이상의 보상을 안겨줍니다.
그렇다면 다짐이란 현실에 안주하는 것과 눈에 보이는 고난을 통과하여 남이 밟지 않은 길로 들어서는 갈림길의 이정표 정도가 되겠습니다. 머리는 안주하기를 원하고 마음은 탐험은 원합니다. 사실 어느 쪽으로 기울든 그것이 당신입니다. 누구도 뭐라 하지 않을 우리의 모습입니다. 자, 우리에게는 아직 열 한 개의 한 달이 남아있습니다. 어느 쪽으로 떠나든 다시 여행을 시작해보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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