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에서 만들어진 창조경제혁신센터(이하 혁신센터)는 현재 17개 지역에 19개 혁신센터가 설치돼있다. 혁신센터를 적폐로 보는 시선도 있었지만, 일부 지역에서는 지역 자원을 활용해 창업을 유도하고, 투자 인프라가 부족한 곳에서는 창업 생태계와 스타트업을 연결하는 지역의 창업 허브로 자리매김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역별 창조경제혁신센터 특화 프로그램/사진=창조경제혁신센터 웹사이트

대표적인 곳이 강원창조경제혁신센터(이하 강원혁신센터)다. 2015년 5월 개소한 이래 지난 4년 간 정부·지자체의 정책자원과 네이버를 비롯한 협업기관의 사업 인프라를 연계해 지역 문화와 생활기반을 바탕으로 지역경제 생태계를 바꿔나가는 359개(2018년 기준 누적) 청년·지역 혁신기업을 육성했으며, 이들의 투자유치액은 67억원(2018년 기준 누적)이다. 특히 빅데이터를 활용하여 데이터 인프라와 데이터 유통을 위한 거버넌스를 구축해 관광, 의료기기, 농업 등 강원도의 특화산업 분야 기업 육성에 힘쓰고 있으며, 강원지역 중소상공인들에게 모바일 커머스를 통한 매출향상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

또한 혁신센터의 주무부처가 미래창조과학부에서 중소벤처기업부로 바뀌면서 강원혁신센터에서는 스타트업에 대한 공간, 인큐베이팅 지원을 넘어 투자 생태계 조성 등 지역 차원의 개방형 혁신을 만드는 허브 역할을 자임하고 있다. 그 일환으로 지난해 6월 강원도에서는 최초로 중소벤처기업부에 `액셀러레이터' 등록을 마쳤다. 청년기업들이 지역 내에서 투자를 유치할 수 있는 체계를 마련한 셈이다. 이를 통해 도내 창업기업 3곳을 최종 투자기업으로 선정·지원했다. 강원혁신센터는 투자금을 창업기업에 계속 공급하기 위해 `엔젤투자' 성격의 로컬 투자펀드와 지역투자조합 구성을 계획하고 있다. 올해 강원혁신센터의 사업 예산은 약 40억원이다.    

이러한 강원혁신센터를 4년째 이끌어 오고 있는 수장이 네이버 출신의 한종호 센터장이다. 21일 춘천 강원혁신센터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센터 방문 전 몇몇 지인들로부터 전해 들은 '소탈', '탈권위', '창의적' 인물이라는 평이 그의 사무실 분위기에서도 그대로 전해졌다.  


한종호 강원창조경제혁신센터 센터장

- 7개의 시(춘천-원주-강릉-태백-속초-동해-삼척)와 11개의 군(홍천-횡성-영월-평창-정선-철원-화천-양구-인제-고성-양양)으로 구성된 강원도 지역 특성상 사업 전개에 어려움이 있을 듯하다. 

▶ 강원도는 82%가 산악지대다. 인구 대비 산과 바다가 많다. 전국 면적의 17%를 차지하지만 강원도의 대도시격인 춘천, 원주, 강릉시만 해도 인구가 각 30만 명 안팎이다. 관광지가 많다 보니 서비스업 비중이 높은 반면 금융, 디지털 등 고부가 신산업 부문은 취약하다. 대부분의 사업체가 중소기업, 자영업 혹은 영세 소상공인이다. 사회적으로는 노인 자살률이 전국에서 가장 높고, 학생 수 감소로 폐교 위기에 처한 학교들이 많다. 매년 2만여 명의 청년들이 일자리를 찾아 지역을 떠난다. 

- 강원도에 4년 간 머물면서 바라본 지역 현실은 어떠했나.  

▶ 센터장으로 처음 춘천으로 내려왔을 때, 다른 지역처럼 강원도도 4차 산업혁명으로 천지개벽이 일어날 거라는 유행병(?)이 돌고 있었다. 우리도 처음 1년은 네이버와 함께 IT 기반 창업기술을 구현하고자 노력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았다. 우선 사람이 없었다. 생태계가 만들어질 수 없는 상황이었다. 탈산업사회 패러다임의 핵심은 인간, 창조적인 아이디어, 기술이다. 공간, 설비 등은 돈으로 어떻게든 만들어낼 수 있지만, 사람은 대체할 수 없지 않나. 

센터에서는 e-커머스활성화를 위한 스토어팜 교육을 제공한다./사진=강원창조경제혁신센터 

- 그러한 현실에서 강원혁신센터는 어떻게 사업 방향을 잡았나.   

▶ 꼼꼼히 살펴보니 사람이 없는 건 아니었다. 다만 지역 청년들의 관심이 생활·문화형 창업에 있었다. 지역의 자원을 활용해 새로운 디자인과 적정기술을 적용한 창업 시도가 눈에 들어왔다. 기술혁신형 창업만을 고집하지 않고, 지역 기반 창업으로 방향을 잡았다. 지역의 잠재적 가치를 살린 창업가들을 발굴하고 지원하며 새로운 창업지원 영역을 찾아갔다. 지난 4년은 지역의 현실을 둘러보고 그에 맞게 새로운 기술 흐름과 창업을 연결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시간이었다. 

- 앞서 ‘지역 기반 창업’이라 표현했는데 ‘지역 기반’이란 어떤 의미인가. 

▶ 아시다시피 자본주의 흐름이 바뀌고 있다. 인터넷의 발달은 대형 공장, 제조업 쇠퇴를 불러일으키고, 온라인으로 뭐든지 해결이 가능한 세상을 가져왔다. 또 인공지능의 발달은 기계로 대체가 가능한 사회를 만들었다. 조기에 은퇴하거나 생산조직에 끼어들지 못하는 청년실업자가 늘고 있다. 더 이상 대도시만 고집할 필요가 없어진 세상이 왔고, 사람들은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찾기 시작했다. 소확행, 워라밸 등도 그런 현상의 일환이다. 일본은 이미 20년 전에 이러한 현상들을 겪은 바 있다. 미국도 자영업자, 프리랜서의 수가 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을 그저 현상으로만 바라볼 게 아니라 기회로 삼아야 한다. 요즘같이 휴식, 안전한 먹거리, 친환경을 중요시 하는 사회에서 강원도는 제주도와 같이 이러한 조건을 골고루 갖춘 지역이다. 대안적 삶의 근거지가 될 수 있는 다양한 삶의 조건을 가졌다. 그런 강원도에서 새로운 삶의 모형을 만드는 것을 비즈니스화하면서 지속가능한 창업의 형태를 찾아간다면 분명 희망이 있다. 좋은 인재가 모이면 투자자들이 뒤를 이어 생태계가 만들어진다. 지역에 좋은 인재들이 남아 결국 지역경제에도 활력이 생긴다. 

- 강원혁신센터 사업의 가장 큰 차별성은.  

▶ 청년창업을 지원하는 여러 정부 정책들이 있지만 대체로 청년을 약자라는 관점으로만 바라본다. 지역 청년 소상공인들이 지역경제를 살리는 가장 중요한 대안이라는 관점을 가진 정책이 없다. 지자체도 별반 다르지 않다. 그 지역에 필요한 욕구에 기반 한 사업계획이 아니라 정부 지원에 맞춰서 사업이 구상된다. 자기 전략이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런 환경에서 청년 소상공인이 지역의 유일한 성장 동력이고 대안이라 판단하고 지원한다는 점에서 차별성을 가진다. 그런 믿음으로 청년들이 강원도 고유의 생활문화에 대한 아이디어를 직접 사업화시키고 이를 통해 지역문화를 보존, 미래가치를 높일 수 있도록 지원한다. 강원혁신센터도 탑-다운으로 정부 지원을 받고 사업을 실행하지만, 결국 핵심은 한정된 자원 속에서 그걸 누구에게 지원하느냐다. 

강원창업주간 중 경진대회 심사를 하고 있는 한종호 센터장./사진=강원창조경제혁신센터

- 지역 기반이라고 해서 기술 기반을 도외시할 수는 없을 텐데. 

▶ 강원도에서 기술창업을 한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기술이 중요한 시대지만, 4차 산업혁명과 같이 하이테크(High Tech)는 접근도 어렵고 우리 일상생활과도 거리가 있다. 오히려 단순하고 간단한 적정기술과 같은 ‘로우테크(Low Tech)’ 창업으로도 변화를 만들 수 있다. 우리가 주목하는 기술은 로우테크다. 

예로 낙후된 지역에서 버스가 끊기면 노인들은 생활에 큰 타격을 입는다. 운전을 못하니 먼 거리에 있는 병원에 갈 수 없는 등 직접적인 생활에 영향을 받는다. 서울에서는 카풀서비스가 여러 논란으로 어렵지만, 지역에서는 그런 시도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데 효과적일 수 있다. 오히려 없어서 못한다. 이 같은 로우테크 창업이 촘촘히 잘 짜여 진다면 좋은 사회시스템이 될 수 있다. 강원혁신센터에서는 이처럼 누구나 잘 쓰고 있지만 지역에 적용하면 더 잘 활용될 것 같은 기술을 개발하고 창업으로 연결하는 역할을 하고자 한다.  

- 스타트업을 위한 공간 및 인큐베이팅 지원을 넘어 투자 생태계 조성 등 지역 차원의 개방형 혁신을 만드는 허브 역할을 자임하고 있다. 어떤 방법으로 생태계를 조성하고 있는가.   

▶ 박근혜 정부에서는 혁신센터의 역할을 인큐베이션으로 한정했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는 주무부처를 미래창조과학부에서 중소벤처기업부로 바꾸면서, 투자 생태계 조성 등 지역 차원의 개방형 혁신을 만드는 허브 역할로 진화하고 있다. 혁신센터를 적폐로 보는 시선들도 있지만, 오히려 혁신센터의 역할이 더 커진 셈이다. 

보통 기업을 키우려면 돈(투자)과 기업이 가진 문제해결(솔루션)이 필요하다. 이 두 가지를 기업들에게 제공할 수 있느냐가 결국 생태계다. 강원혁신센터는 기업들이 '보육'과 '투자' 두 개의 날개로 날 수 있도록 돕는다. 

우선 지역의 여러 협업 체계를 보유하고 있다가 지원기업이 필요할 때 해결 방안을 찾도록 연결해주는 것이 우리의 중요한 역할이다. 센터 내부가 그 역할을 잘 할 수 있도록 직원들의 역량을 고도화해야 한다. 

투자도 중요하다. 지역에는 돈을 가진 투자자들이 없다. 서울에 몰려있다 보니 그 투자를 받기 위해 청년들이 지역을 떠나 서울로 간다. 강원지역 내 청년 창업가들이 일방적인 지원금 이외에 투자금을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한 이유다. 강원혁신센터에서는 네이버와 함께 지난해 5억원의 투자펀드를 만들어 지역의 3곳(더웨이브컴퍼니, 하울바이오, 노드)에 투자하기도 했다. 투자금을 창업기업에 계속 공급하기 위해 `엔젤투자' 성격의 로컬 투자펀드와 지역투자조합 구성도 계획하고 있다. 강원혁신센터가 씨드머니를 제공하면 기업들이 모이고, 그 기업들에게는 자금뿐 아니라 투자를 매개로 다른 후속지원(공간, 전문가 연계 등)도 제공할 생각이다. 

- 전통적인 경제 패러다임이 위기라는 목소리가 나온 지 오래다. 이에 대안으로 사회적경제도 주목받고 있다.   

▶ 지금 지역 청년들에게 필요한 것은 기존의 전통적인 경제가 채우지 못하는 빈자리를 메울 수 있는 새로운 경제다. 은행권이 무너지면서 핀테크가 치고 들어가는 것처럼 말이다. 사회적경제 등 대안 경제를 표방하는 곳들이 그런 점에서 한발 늦은 한계가 있다. 스스로 자족하는 사이에 전통적인 경제 패러다임이 무너지고 있고, 그 빈자리를 누구도 채우지 못하고 있다. ‘경제’를 표방하는 만큼 제대로 비즈니스를 해야 한다. 정부도 직접 돈을 지원하는 방식이 아니라 구매자로서 기업들이 자생력을 가지고 성장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강원창조경제혁신센터와 함께 성장한 지역기업들> 

①칠성조선소(속초) 1952년부터 3대째 이어져 내려오며 배 수리를 하던 조선소를 손자가 레저용 선박인 카누와 카약을 만들고 배 박물관, 체험, 카페, 공연장 등의 기능을 겸하는 복합문화공간으로 재단장해 속초의 핫플레이스로 만들었다.   

②나린뜰(원주) 양계장 가업을 이은 청년 대표가 무항생제 유정란, 구운 계란, 계란 장조림을 만들어 네이버 스토어팜과 푸드윈드 입점으로 매출이 500% 이상 올랐다. 강원센터가 판로개척, 쇼핑몰 운영 방법, 홍보마케팅 등의 교육 및 수수료 혜택 등을 지원했다. 

양양의 서피비치/사진=서피비치 홈페이지

③서피비치(양양) 40년간 출입이 통제됐던 양양의 군사제한구역을 국내 최초의 서핑전용 해변으로 탈바꿈 시키며 연 30만 명의 관광객이 찾는 지역의 관광명소로 발전시켰다. 또한 국내 천편일률적인 해변가 모습에서 벗어나 새로운 해변문화를 만들고 지역 상권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④ 무브노드(태백) 무브노드는 태백시 하장성에 대지 96㎡, 연면적 96㎡의 소형 건물을 디지털 노마드들이 여행하면서 일할 수 있는 공간으로 재탄생시켰다. 공간 디자이너와 게임 디자이너가 협업해 조성한 이곳은 일반 카페 기능에 더해 지역사회 청년들이 다양한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장으로, 도시 직장인들의 워크숍 장소로, 특색 있는 지역문화 개발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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