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하반기 7개월 간 진행된 '지역의제에 기반한 마을기업 신성장사업'이 12월 성과공유회를 끝으로 마무리됐다. /사진=백상훈 사진작가.

공동체가 해체되고 있는 대도시에서도 ‘마을기업’의 역할을 찾을 수 있을까. 서울 내, 이웃이 사촌만큼 가깝던 전통적인 마을 형태는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그렇다 한들 지역의 중요성이 퇴색된 것은 아니다. 돌봄?일자리?골목 활성화 등 지역 단위로 풀어내야 할 의제는 여전히 남아있다. 이러한 수요를 해소하는 동시에 경제 가치를 창출하려는 마을기업의 노력이 여전히 이어지고 있는 이유기도 하다. 

지난해 하반기 서울시의 ‘지역의제에 기반한 신성장 사업’을 통한 7개 마을기업의 도전도 그 중 하나다. 이들이 주목한 방향은 ‘지역관계망 구축’이다. 마을기업 혼자가 아닌, 지역 내 협력기관과의 네트워트를 통해 공동으로 지역의제를 발굴하고 해결하는 것이다. 

서울시 사회적경제지원센터가 사업을 주관하고 서울시 마을기업연합회(이하 ‘연합회’)가 현장지원을 맡았다. 참여기업이 지역에 필요한 사업을 기획하고 실행하되, 연합회는 지원기관의 역할에 집중했다. 연합회 내 이사회와 사무진을 구성해 각 마을기업과 협력기관의 협동을 모니터링하고, 필요한 사업비와 경영컨설팅 및 멘토링·협력기관 네트워크를 지원하는 방식이었다. 

신성장사업을 총괄한 강순영 마을기업연합회 프로젝트매니저(PM)는 “문제 해결을 통해 지역사회 변화를 실현하는 동시에 마을기업이 이어갈 수 있는 시범사업으로 자생력을 높이고자 했다”고 지원 방향을 설명했다. 

강북행복한돌봄사회적협동조합, 건강한농부사회적협동조합, 광진담쟁이협동조합, 모해교육협동조합, 바늘한땀협동조합, 서대문부모협동조합, 우리동네나무그늘협동조합 등 총 7개 마을기업이 신성장사업을 완주했다. 그 중 ‘돌봄’에 방점을 찍은 모해교육협동조합(이하 ‘모해교육’)과 도시재생지 일거리 창출에 나선 바늘한땀협동조합(이하 ‘바늘한땀’)이 지난해 말, 사업을 마무리하는 성과공유회에 대표 사례로 소개됐다.
 

◇ 3개 마을학교에 370명 주민들이 학생으로··· 모해교육의 ‘동단위 돌봄거점’ 시도

지난해 9월부터 11월 가양1동 도란도란도서관에서 열린 향교마을학교에서 아이들이 공예팔찌를 만들고 있다. /사진=이우기 사진작가.

지역의 자연과 문화자원을 활용해 돌봄·교육사업을 이어오고 있는 모해교육은 이번 사업에서 ‘동 단위 돌봄’ 실현에 나섰다. 기존 방과후 교육이 학교에만 집중돼있고, 오후 4시 30분이면 종료돼 대안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모해교육은 3개월 간 강서구 내에서 각기 다른 3개의 콘셉트를 가진 동 단위 마을학교를 운영했다. 화곡권역에는 8개의 부스에서 아이들이 직접 물건을 제작, 홍보, 판매할 수 있는 ‘경제마을학교’가, 가양 1동에서는 전통공예, 폼아트 체험부터 유튜브 제작까지 5개의 프로그램을 진행한 ‘향교마을학교’가 운영됐다. 김포공항권역에는 친환경 먹거리와 문화예술을 결합한 ‘맛있는 이야기 마을학교’가 만들어졌다. 16곳의 마을공동체가 모여 운영한 세 학교에 총 370명의 가족들이 참여해 성황을 이뤘다.

최정희 모해교육 운영팀장은 "강서혁신지구 사업에 동단위 마을학교 조성을 편성해 단계별 사업지원을 체계화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사진=백상훈 사진작가.

최정희 모해교육 운영팀장은 “신성장 사업에서 마을학교를 운영한 경험을 토대로 2019년 강서혁신지구 사업에 동 단위 마을학교 운영을 정식 편성하게 됐다”고 이후 계획을 소개했다. 

“마을학교에 참여한 공동체들이 추후 마을학교 설립 방향을 논의하고 있어요. (1)지역 내 공동체 네트워크 구성 (2)거점공간 중심 참여자 모집 (3)학교·기관 등 연계해 교육협의체 구성 이라는 단계별 접근으로 의견을 모았어요. 사업의 목적을 주민과 사전에 공유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견에도 다들 동의해서 주민설명회 등 소통 채널을 확대해야겠다는 시사점도 얻었죠.” - 최 팀장.

학교밖 청소년들은 미니마을축제 부스에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제품설명지를 작성하는 등 적극적으로 판매를 지원했다. /사진 제공=모해교육협동조합.

지역돌봄에 대한 모해교육의 고민 한 축에는 ‘학교 밖 청소년 자립지원’도 자리했다. ‘위기 청소년 선교 연합회’, ‘청소년상담센터’와의 협력으로 학교 밖 청소년들의 현황을 파악하고 적절한 교육 인력을 연결했다. 총 8명의 청소년들이 천연비누 만들기 과정(6회)과 봉제교육(7회)에 참여했다. 이들이 만든 제품의 판로도 지원했다. 지난해 10월 모해교육이 부스를 열고 천연비누와 파우치 등 봉제품을 판매한 ‘강서구 미니 마을축제’가 그 예다. 시민들의 반응은 긍정적이었다. 이 날 부스는 개시 전부터 축제 방문객들의 시선을 끌었고 제품은 완판됐다. 

최 팀장은 “활용 가능한 지역자원, 마을학교의 필요성과 방향성을 확인한 것이 신성장 사업의 가장 큰 성과”라며 “이후에는 주민들이 원하는 교육을 수요 조사해 적절한 프로그램과 공간, 강사를 연결하는 방식으로 마을학교를 운영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바늘한땀, 어르신 바느질 동아리로 향림마을 도시재생지에 활기 불어넣다

향림마을 바느질 동아리에서 불광 2동 주민들이 모여 투톤에코가방을 만들고 있다. /사진 제공=바늘한땀협동조합.

은평구 향림마을은 20년 이상 거주한 노인 인구 비율이 30%에 달하는 근린재생형 도시재생지다. 바늘한땀은 노인들이 소일거리를 필요로 하는 점과 비닐쓰레기 문제에 주목하고, 이러한 이슈를 해결하기 위해 불광 2동 주민들에게 ‘향림마을 바느질 동아리’를 열었다. 한복, 전통소품 등을 주력 상품으로 한 바늘한땀이 학교·주민모임에 전통상품 만들기 강의를 줄곧 해온 경험을 살린 것이었다. 안감과 겉감을 모두 활용할 수 있는  ‘투톤에코가방’은 주민들에게 호평을 샀다.  

“‘주민들이 과연 바느질 동아리에 많이 올까’ 의문이었어요. 저희에게도 실험이었죠. 그래서 당초 10명 정도 모집을 계획했는데 25명의 어르신이 신청하셨어요. 두 번의 클래스를 마치고 나니 어르신들의 반응도 좋았어요. ‘비용을 지불하고도 할 의향이 있다’, ‘1년짜리 사업으로 계속해 달라’는 얘기들을 하시더라고요. 마을공예학교를 만들어 지속적으로 강의를 여는 것은 어떤지 제안도 하셨어요.” - 곽경희 바늘한땀 이사장

곽 이사장은 "신성장사업은 마을기업 당사자들이 모여 머리를 맞댈 수 있는 기회라 뜻깊었다"고 회고했다.

바늘한땀의 활동에는 은평구 내 탄탄한 사회적경제 네트워크가 바탕이 됐다. 불광도시재생지원센터는 향림마을 내 주민모임을 통한 동아리 홍보와 장소 지원에 힘썼다. 센터에서 연계한 ‘친환경 생리대 만들기 클래스’에서는 주민들이 천연염색을 접목한 상품개발이 이뤄지기도 했다. 

은평구사회적경제허브센터와의 협력은 지역 내 다양한 판로를 확대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센터가 진행하는 친환경 상품개발 프로그램을 통해 투톤에코가방 등 바늘한땀의 상품을 은평두레생협 등 10곳에 입점하게 된 것이다.  

곽 이사장은 신성장 사업을 통해 마을기업의 역할에 대해서 느낀 바가 크다고 한다. 그는 “2013년부터 불광동 마을기업으로 열심히 활동해왔다고 생각했는데, 바늘한땀을 모르는 주민들이 많은 걸 보고 ‘그간 주민과의 소통이 부족했구나’ 생각이 들었다”며 “주민과 직접 만나 이들에게 필요한 일을 발굴했다는 점이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앞으로도 친환경 제품을 개발하면 불광동 마을주민에 무료 체험강의를 자주 열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마을기업 알리고 지역 내 역할 확인하며 성장··· 협력업체 지원 강화해 ‘성공’으로”

강순영 마을기업연합회 PM(왼쪽)과 김낙경 서울시사회적경제지원센터 대외협력실장(오른쪽). /사진=백상훈 사진작가.

이번 사업은 마을기업 주도의 지역의제 해결을 본격적으로 지원한 첫 시도였다. 이를 통해 마을기업 맞춤형 지원 체계에 대한 방향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는 것이 관계기관의 설명이다. 

강순영 마을기업연합회 PM은 “지원 TF를 구성해 중간중간 사업을 점검·조정하고, ‘쿱비즈협동조합’을 경영컨설팅 기관으로 선정해 정형화된 교육이 아닌 맞춤형 교육을 진행한 것이 효과적이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과제도 있다. 효과적인 신성장사업을 위해서는 마을기업의 부담을 덜어줘야 한다는 것이다. 강 PM은 “서울사회적경제지원센터의 컨설팅 프로그램과 연계해 지원을 강화하고, 가급적 지역 내 가까운 멘토와 연결해 멘토링에 필요한 시간을 줄이면 더욱 효율적인 지원이 가능해질 것”이라며 “마을기업에 대한 직접 지원 뿐 아니라 다른 마을 공동체들과의 협업 시스템을 마련하고, 단계별 지원을 세분화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대도시형 마을기업 모델과 단계별 마지원방향 수립에 대한 필요성도 제기됐다. 사경센터 내 마을기업 지원을 총괄하고 있는 김낙경 대회협력실장은 “마을기업을 주축으로 지역의제를 해결하는 대도시형 마을기업 육성이 중요하다”며 “이번 경험을 교훈으로 삼고 단계별 지원방향을 마련해 2019년에는 더욱 체계를 갖춘 신성장사업이 될 것”이라고 기대를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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