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주의 소셜리 뷰티풀 6

동지를 찾아서
 

동지, 뜻을 함께하는 친구. 삶의 대장정을 나누고 때로는 죽음마저 동행하는 벗. 마르크스에게는 엥겔스가, 유비에게는 관우 장비 공명이 있었다. 내게는 누가 있을까. 동지를 찾아야겠다고 마음 먹은지 4년째다. 딱히 내 반쪽이라 생각되는 파트너를 찾지 못한 것도 마찬가지로 4년째다. 서울과 제주를 오가며 매일 전심전력으로 일하느라 시간이 없다는 건 어쩌면 핑계일 뿐이었다. 그럴수록 더 절실히 동지를 찾아야 했다. 

지난 10월 제주에 <별곶>이란 공간을 열어놓고, 거의 매 주말 과학살롱을 열었다. 별곶은 문경수 탐험대장, 오준호 KAIST 교수, 황정아 한국천문연구원 대표교수, 이소연 우주인 등 육지의 톱 과학자와 과학 커뮤니케이터들이 줄지어 다녀가는 과학기술계의 핫플레이스로 단박에 떠올랐다. 미처 강연을 요청드리기 전에 먼저 오시겠다고 자원해주신 선생님들도 많으셨다. 삼청동에 ‘과학책방 갈다’가 있다면, 남해에는 ‘믿는구석 통영’이, 제주에는 ‘과학문화공간 별곶’이 있는 셈이었다. 김상욱 경희대 교수와 싱어송라이터 요조의 콜라보 행사로 연말 행사를 마무리하면서, 동지에 대한 갈증은 더욱 심해졌다. 나는 왜 여기서 이러고 있나? 누가 나와 이 일을 계속해 줄까? 만약에 내가 사라지면 이 일은 지속될 수 있을까?

마냥 흑자였다면 하지 않았을 고민이다. <걸스로봇> 시절에는 밀레니얼 여대생들이 캠페인의 타깃 오디언스였기에 그들을 대상으로 돈을 벌 생각은 언감생심 하지 못했다. 그 때보다야 판매 실적은 나았지만, 천체 망원경과 가구, 정원 등 기본적인 설비투자가 워낙 셌던 까닭에 BEP를 넘기기란 아직 멀었다. 행사마다 연사들의 개런티를 겨우 맞추는 정도의 적자가 계속됐다. 셰프가 차리는 화려한 식탁, 해외에서 공수해온 각종 차와 쿠키, 고급 브랜드의 향초 같은 것들도 다 비용이었다. 애초 지역에서 보지 못했던 고품격 프라이빗 살롱을 표방했기에 감수해야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고가의 멤버십에 가입해주신 분들은 걸스로봇 크라우드펀딩의 고액 후원자 그룹과 거의 동일했다. 제주에 몇 번 오고 갈 것을 계산해보고 이문이 남을 것 같아 신청한 이들이 아니라, 그저 이진주와 걸스로봇이 하는 일이라면 팥으로 쑨 메주라도 덥석 사 주실 양반들이었다. 과학기술계 외 시장의 확산은 미미했다. 그것도 젊은 독서그룹 <트레바리>가 회원권을 세 매나 사주며 펼친 협조적인 마케팅 덕분이었다. 초창기 트레바리 때 걸스로봇 멤버들과 두 시즌을 연달아 들었던 것의 화답이었을까. 스타트업계에는 아직 이런 품앗이 정신이 면면히 이어져오고 있었다.

1월과 2월에는 겨울방학을 선언했다. 쌓여가는 영수증을 계산하는 것도 일이었지만, 내가 없어도 돌아갈 시스템과 그 시스템을 함께 만들 사람을 찾는 것이 급선무였다. 결혼이야 철없는 시절 멋모르고 대충 했어도, 동업마저 대충할 수는 없으니까. 
공식적으로 문을 닫아걸고 리뷰를 해보았다. 겨울방학 두 달은 멤버들에게는 개인의 관점에서든 조직의 관점에서든 거대한 되새김의 시간이었다. 또 앞으로의 계획을 세우는 숨고르기 기간이기도 할 것이다. 나 역시 대표라고는 하지만 돈을 벌기로 작정한 것은 4년만에 처음이었기에, 그간 눈여겨보던 신뢰할만한 멘토들을 찾아다니며 여쭈었다. “사회적 기업이란 무엇인가?” “사회적 기업은 어떻게 돈을 벌어야 하나?” “A를 하기 위해 B에서 돈을 버는 전략은 올바른가?” “C라는 진짜 목적을 위해서 D로 포장하는 전략은 어떠한가?” 어떤 대화는 <와호장룡>의 대결과도 같았다. 

멘토들은 저 모든 질문들을 떠나 한결 같은 것을 되물었다. “출장을 다닐 때, 아이가 아플 때, 본인을 대신할 동지가 있습니까?” 공연히 변명을 하고 싶었다. “다른 운동과 마찬가지로 젠더 운동 역시 압도적인 헌신을 요구합니다. 수련 과정이 길고 수적으로도 소수인 이공계에서, 인생을 걸고 그런 헌신을 함께 하자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직까지 없었어요. 생존하기에도 급급한 거 뻔히 아는데.” “그래도 사람을 발굴해 키웠어야죠.” “저도 사람을 키우기는 했습니다. 어떻게든 쓸만한 여학생들을 찾아내서 기회를 주려고 노력했고요. 장학금이든 학회든 밋업이든 무엇이든 만들면서요. 그러나 대학원을 가든 결혼을 하든 각자의 길을 가는 걸 막는 일은 옳지 않았어요.” “그건, 사람을 키운 게 아닙니다. 그런 분들은 동지가 아니죠. 직원 말고, 장학생 말고, 동지 말입니다. 이 일을 왜 하는가에서부터 저기서 돈을 벌어서 여기에 돈을 쓰는 게 과연 우리가 원하던 바인가까지를 함께 고민하는 사람이 동지지요.”

나는 말문이 막혔다. 어느 행사에 진행자로 초대돼 왔다가 조언을 남기고 간 언니가 있었다. 그런 사람이 나의 동료라면 정말 좋겠다고 자주 생각했다. “사업을 하려거든 행사마다 최소한 70퍼센트는 보전해야 다음이 있어요. 인건비를 제외하고 단 몇 만원, 몇 십 만원이라도 수익을 남겨야 해요.” 그가 업계의 몇 안되는 여자 선배로서 종종 해주었던 다른 말들도 떠올랐다. “진주씨, 이렇게 운동하는 거 안쓰럽고 대단하고 도와주고 싶은데요, 본격적으로 같이 하면 나도 죽을 것 같아. 여기서 응원은 하겠지만 함께 하라면 못하겠어요. 문제는 다른 사람들도 그럴 거란 말이지. 일을 그런 식으로 매번 전심전력으로 하면 어쩌자는 거에요. 이것만 하고 죽어버릴 거야?” 그건 어쩌면 사람들이 정의당이나 녹색당 같은 정당의 활동가들에게 느끼는 안타까움과도 닮아 있었다. 

하다 못해 <원피스>처럼 해적질을 하는 데에도 동료가 필요한데, 나는 어찌 살았기에 동지 하나 구하지 못하나. “너 내 동료가 돼라!” 이렇게 인생을 걸라고 권할만큼도 자신이 없는데, 어떻게 세상을 바꾸겠다는 말인가. 반성이 휘몰아칠 때마다 돈 생각을 했다. 내가 아주 부자였다면, 아니 어차피 탕진할 거 처음부터 재단으로 시작했다면, 더 많은 동지들을 더 빨리 만날 수 있지 않았을까. “돈이 흘러 넘쳐서 물 쓰듯 퍼부었을 때에도 찾지 못한 사람을, 자원이 다 고갈된 마당에 어떻게 찾죠? 사무국장이든 누구든 찾아내야 일을 계속할 거 아닙니까?” 멘토는 씩 웃으며 대답했다. “아니에요. 더 쉽죠. 아무 것도 없고 가난할 때 비로소 밑바닥부터 함께 할 수 있는 동지가 보여요. 찾으세요. 다른 것보다 그것이 먼저입니다.” 대화는 숙제를 남기며 끝났다.

뭐 했다고 벌써 새해도 스무날이나 지났다. 남은 방학 한 달은 스스로의 밑바닥을 더 들여다보며 속내를 나눌 동지들을 더 찾아보기로 했다. 어쩌면 별곶 주위에도 걸스로봇의 정신을 공유할 ‘페미마마’들이 서식하고 있을지 모른다. 당장 포틀럭파티를 기획하고 운을 띄웠다. “스카이캐슬 같은 거 보면서 대치동으로 돌아갈까 속 끓이지 마시고 우리 같이 한 번 놀래요? 성미산 마을학교까진 못되더라도 애 키우자고 여기까지 내려와 너무 외로워지지는 맙시다.” 둘째네 반 스무 명이 거의 다 오기로 했다. 아이들이 폐품을 가지고 과학적인 아무거나를 만드는 동안, 엄마들은 싸온 음식들을 나누며 품앗이 교육, 지역 커뮤니티의 자생을 도모해 볼 참이다. 이번에는 화려하지도 않고 시끄럽지도 않은 방식으로 말이다.

별곶을 실험하며 처음 세웠던 가설 하나, “국제학교 엄마들은 외롭다.” 둘, “돈지랄도 외로워서 하는 것이다.”, 셋, “정신무장한 페미마마 1프로만 있어도 대한민국 교육을 바꿀 수 있다.” 이들 중 어떤 것도 아직 본격적으로 검증해보지 못했다. 그저 돈이 흘러 넘치는 현상만이 아니라 돈을 쓰는 마음 이면에 있는 존재의 근원적인 외로움에 포커스를 맞추고 다시 시작해볼까? 어쩌면 우리 동지들은 등잔 밑에 있었을지도 모른다. ‘마마토모(엄마동지를 뜻하는 일본어. 보통은 속내를 감추고 가면을 쓴 인간관계를 뜻한다.)’가 아니라 진짜 엄마동지들 말이다. 나의 타깃 오디언스와 동료를 일치시키는 작업을 이제 막 다시 시작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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