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미국에서는 인종차별의식과 성차별의식 때문에 ‘진짜’ 흑인 오페라 수퍼스타는 나타나지 못했습니다.”
미국 흑인 오페라의 길을 이끌었다고 할 수 있는 1세대 흑인 오페라 가수 앤드류 베니 프라이어슨(Andrew Bennie Frierson)이 1997년 책 <오페라와 아프리카계 미국인 경험에 대한 대화>를 통해 한 말이다. 그는 관객들이 백인 남성이 흑인 여성에게 구애하는 장면은 받아들이지만 흑인 남성이 백인 여성에게 구애하는 장면은 용인하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앤드류 프라이어슨은 1963년 8월 28일, 인권운동가 마틴 루터 킹 주니어의 ‘나는 꿈이 있습니다(I have a dream)’ 연설로 잘 알려진 ‘직업과 자유를 위한 워싱턴 행진’에서 노래를 부른 바 있다.
앤드류 베니 프라이어슨은 1924년 3월 29일, 미국 테네시 주 콜롬비아 시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철도직원, 어머니는 주부였으며, 프라이어슨은 그들의 7자녀 중 막내였다. 뉴욕타임즈(NYT)에 의하면 그는 3살 때부터 혼자 피아노를 쳤으며, 8살이 되어 첫 레슨을 받기 시작했다. 그는 테네시 주도 내슈빌의 피스크 대학교에서 음악 전공생으로 입학했지만, 졸업 전 육군에 징집돼 제2차 세계대전에서 남태평양 전투에 참가했다.
전쟁에서 돌아온 후 그는 다시 노래를 배웠다. 그의 선생은 뉴욕시의 줄리아드 음악대학교 지원을 권장했고, 프라이어슨은 지원 후 합격했다. 줄리아드 음악대학교는 미국에서 가장 명성이 높은 공연예술학교다. 프라이어슨은 그곳에서 훗날 자신의 아내가 된 학생인 ‘빌리 린 다니엘’을 만났다.
1948년 프라이어슨은 뉴욕시 카네기홀에서 데뷔했다. 그의 데뷔 공연에 대해 현재 NYT의 음악 기사 편집자이자 당시 줄리아드 학교에 있던 로스 파멘터는 “그는 이미 아름다운 목소리, 좋은 기법, 음악적 기교, 공감력, 그리고 훌륭한 풍채 등 필수적인 요소들을 갖고 있다”고 평했다.
프라이어슨은 1950년대에는 루이지애나 주도 배턴 루지의 서던 대학교에서 강의했고, 1958년 뉴욕시티오페라단에서 프로 데뷔를 했다. 1970년대에는 오하이오 주 오베를린 음악원에서 교수로 지냈으묘, 1980년대에는 동료와 함께 흑인 오페라 가수들을 지원하기 위한 단체 '독립 흑인 오페라 가수'를 만들었다.
2000년에 그는 국립오페라연합(National Opera Association)에서 매년 미국 오페라에 기여한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에게 수여하는 공로상을 받았다. 상의 이름은 ‘모두 목소리를 내라(Lift Every Voice)’로, 흑인들의 국가로 통하는 노래 ‘모두 목소리를 내어 노래하라(Lift Every Voice and Sing)’에서 차용한 것으로 보인다.
프라이어슨은 83세 되던 해에 과거에 노예로 지낸 할아버지가 다녔던 교회에서 콘서트를 열었다. 그는 2013년까지 보컬 레슨 강사로 일하다 은퇴했으며, 2018년 12월 6일 오하이오 주 오베를린 시에서 94세로 사망했다.
참고자료 :
https://www.nytimes.com/2018/12/14/obituaries/andrew-frierson-dead.html
https://www.npr.org/templates/story/story.php?storyId=15816115
https://www.youtube.com/channel/UCi7NS4TtoFnn_rngDU1uG3w/about?disable_polymer=1
https://www.noa.org/about/legacy-project.html
https://www.youtube.com/watch?v=vwFLrGnsiK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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