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아트의 연말 재능기부 공연의 '나도 오케스트라' 코너에서 리듬악기를 든 아이들이 클래식 연주팀 '오르앙상블'과 함께 연주할 준비를 하고 있다. /사진 제공=도봉 기적의 도서관.

“여러분, 코끼리의 뒤뚱뒤뚱한 걸음걸이를 소리로 표현하는 악기가 있어요. 코끼리 코와 닮은 이 악기를 찾아보세요.”

“저거요~” “바순이요!”

오늘 공연에 오른 곡은 생상스의 ‘동물의 사육제’. 그런데 여느 조용하고 엄숙한 클래식 공연과 다르게 MC와 청중들이 대화를 주고받는다. 악기를 연주하는 앙상블 뒤로 동물들의 스토리가 담긴 애니메이션이 재생된다. 클라리넷 소리는 반찬투정하는 병아리를 어미닭이 꾸짖는 소리가 되고, 우아한 백조의 움직임에는 첼로 선율이 입혀진다. 악기와 선율이 의미하는 동물 소리를 하나하나 듣고 나면, 모든 악기가 어우러지는 동물의 사육제 전곡이 이어진다. 

‘오르아트’와 ‘오르앙상블’이 연말을 맞아 연 재능기부 공연의 모습이다. 손을 맞잡은 아이와 부모들 100여 명이 클래식 공연을 보기 위해 도봉구 기적의 도서관을 찾았다. 공연을 기획한 박설란 ‘오르아트’ 대표는 “클래식이 익숙지 않은 사람들을 위해 기존 클래식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다양한 방식을 적용해 시장에 내놓고 있다”며 “만화영화, 동화, 그림 등 스토리와 클래식을 결합하고 미디어아트 등을 활용해 시각적 요소를 더한다”고 설명했다. 

공연이 끝나고, 기적의 도서관 홈페이지 공고를 보고 찾아온 한 도봉구 주민은 "아이가 클래식 악기에 관심을 가지고 있어서 왔는데, 아이들 맞춤 클래식 공연도 보고 악기도 만져볼 수 있는 기회라 좋았다"고 말했다. 이날 연주한 오르앙상블의 연주자들은 "연주자들도 관객과 소통을 하고 싶어한다"며 "오르아트의 공연은 클래식은 무겁고 지루하다는 인식을 깬 신선한 공연의 시작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클래식 연주에 그리스 신화, 동화 등 이야기의 시각 콘텐츠를 결합한 '보이는 클래식'. /사진 제공=오르아트.

오르아트는 클래식 콘텐츠를 기획하는 플랫폼 기업이다. 박설란, 박승은 오르아트 공동대표는 2013년 재능기부 공연을 위해 자발적으로 모인 클래식 연주팀 오르앙상블의 플루티스트였다. 이들은 ‘기존의 딱딱한 클래식 공연이 아닌 재미있는 공연을 만들어보자’는 생각에서 작년 4월 오르아트를 시작했다. 

박설란 대표는 “조카에게 클래식을 쉽게 알려주고 싶어 기획했던 게 어린이 눈높이 공연의 시작이었는데 외부의 반응도 좋았다”고 한다. 아이들에게 클래식과 악기를 접하게 해주려는 젊은 부모의 수요와 꼭 맞아떨어진 것이다. 그리스 신화, 디즈니 이야기, 동화 등 스토리가 있는 영상에 절묘하게 들어맞는 악기의 선율이 아이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는다. 

아이들 맞춤 클래식 콘텐츠인 ‘만지는 클래식’과 ‘영어 클래식’은 특히 반응이 좋다. 만지는 클래식은 아이들이 직접 악기를 만져보고 연주해볼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아이의 신체적 특징과 성향에 따라 적절한 악기를 추천해준다. 팔이 짧은 아이에게 이것이 불리하게 작용하지 않는 악기를 추천하는 식이다. 아이의 흥미와 특성에 맞는 악기로 부담없이 클래식에 첫 발을 내딛을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동물 울음소리를 영어로 바꿔 프로모션했던 영어클래식도 인기가 있었다. 오르아트는 이러한 긍정적인 반응에 힘입어 동화, 디즈니, 만화 등과 결합했던 기존 클래식 콘텐츠의 영어 버전을 계속 확대할 계획이다. 
 

‘클래식의 대중화’, 영상 콘텐츠와 공연형식 다양화로 접근하다

오르아트의 '보헤미안 랩소디' 커버 영상. /출처='클잼' 유튜브 채널

박설란 대표는 “락, 힙합 등 장르도 그 뿌리는 클래식”이라며 “클래식은 곡과 공연 형태가 변화해가며 이뤄질 수 있다“고 말했다.

“‘아무개 앙상블의 ○○회 정기연주회’ 형태의 실적 쌓기용 공연과, 고전 클래식을 그대로 재현하는 내에서만 ‘클래식의 대중화’를 한정짓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이제는 낡은 관행을 버려야 할 때인거죠. 우리도 그런 시도를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설

오르아트는 사람들과 소통하는 클래식을 만들고자 한다. 클래식과 친하지 않은 사람들을 만나기 위한 소통창구는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콘텐츠를 연재하는 것이었다. 지난 8월 시작한 페이스북 ‘오르의 뻔(fun)한 클래식’ 페이지는 매달 700~800명씩 팔로워를 늘려가고 있다. 

“‘클래식의 대중화는 꼭 공연으로만 해야 하나? 영상콘텐츠로 친숙하게 다가가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시작이었어요. 클래식 전공자의 일상을 담은 웹툰 ‘오르막내 일기’, 사람들이 댓글로 연주에 참여하는 ‘모두의클래식’, 클래식 분야 종사자들의 진로 고민 사연을 나누는 ’오르의결정장애‘ 등 요일별로 다양한 콘셉트의 영상을 올리고 있죠.” -설

?오르아트의 SNS사업을 지원한 '예술경영지원센터 사회적경제 활성활 사업'에서 1위에 선정된 오르아트. /사진 제공=오르아트.

“우리 영상을 보는 분들이 ’이런 재밌는 영상도 클래식의 일부구나!‘라고 생각해주셨으면 해요. 다른 페이지보다 유저와 소통이 활발한 편인데, 꼬리에 꼬리를 물고 댓글이 이어지고 있어요. 콘텐츠를 통해 쌓인 정보는 사람들의 관심을 만들고 언젠가 그들에게 하나의 장르로 스며들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그렇게 클래식이 사람들이 오늘 들을 음악의 선택지 중 하나가 됐으면 해요.“ -승

오르아트는 예술경영지원센터의 ‘문화예술분야 사회적경제 활성화 사업’ 선정으로 4명의 SNS 콘텐츠 전담 인력을 꾸리며 SNS 마케팅을 진행할 수 있었다. 12월 16일 열린 사업 성과공유회에서 오르아트는 참여한 14개 팀 중 1위를 차지했다. 
 

“클래식공연도 지역기반으로 접근해야”

오르아트는 공공 지원사업을 통해 많은 지자체와 기업 공연에 연결될 수 있었다. 이들은 지원사업을 통해 지역기반으로 시장을 확대할 가능성을 확인했다. 

“올해 서대문구에서 6번 공연을 했었는데 이틀만에 150~200석 규모가 매진됐어요. 지역 내 부모 커뮤니티 내에서 자연스레 공연홍보가 되더라고요. 클래식 공연도 예술의 전당에서만 할 것이 아니라 지역기반으로 찾아가야겠다고 생각해요. 먼 곳으로 시간을 내서 공연을 보러가기 어려운 사람들이 지역 내에서 볼 수 있도록 하는 거죠.” -설

오르아트가 제주 플루티스트앙상블과 협업한 공연 모습.
/사진 제공=오르아트. 

비수도권 지역에서의 시도도 있었다. 오르아트는 제주문화재단의 사업을 통해 제주플루티스트앙상블과 협업했다. 지역에서 이루어지는 클래식공연들은 수도권에 비해 관객수요가 적거나 공연팀의 지인들이 주 관객이 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 때 처음으로 일주일만에 440석을 모두 채웠다. 박설란 대표는 “비수도권 지역에서도 스토리가 있는 영상을 접목한 재미있는 클래식 콘텐츠의 수요가 있음을 확인했다”며 “지역에서의 공연 기회도 계속 찾아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예술가들의 자립을 함께 고민하는 중”

박설란, 박승은 오르아트 공동대표(각각 오른쪽에서 첫번째, 두번째)와 오르앙상블. /사진 제공=도봉 기적의 도서관.

오르아트는 초기에 많은 공연과 많은 연주자를 고용하는 것에 집중했었다. 이제는 함께하는 연주자들과의 동반성장으로 고민을 확대한 오르아트는 3개의 예술가 자립지원 사업에 수익 일부를 재투자하고 있다. 

이들은 진로와 자립에 대해 고민하는 예술가들이 모여 함께 해결방법을 찾아가는 ‘예술가로 살아남기 모임’을 만들었다. SNS 채널에서 예술가들을 위한 정부행정, 세금꿀팁 콘텐츠를 제공하다 관심을 보이는 예술가들과 오프라인 모임으로 확장한 것이다. 그리고 보다 현실적인 도움을 위해 2개의 프로젝트도 시작했다. 

올해 처음 시작한 ‘작곡가 발굴 프로젝트’는 최소 5달의 공모전을 통해 작곡가를 선정하고 이들의 곡을 오르아트의 콘텐츠개발 또는 오르앙상블의 정기공연을 통해 선보인다. 박설란 대표는 “작곡가가 자신의 곡을 연주할 팀을 구하려면 연주자 한 명 당 50만 원 정도가 드는 데 이 부담을 없애주는 것”이라며 “내년 4월 첫 공연을 계획 중”이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프로젝트인 ‘예술가 포트폴리오 제작’은 예술가들이 스스로 예술환경에 정착하고 자립할 수 있도록 커리어 관리를 돕는 것이다. 

“자신의 커리어를 관리해가는 예술가는 많지 않아요. 그래서 그들이 우리처럼 지원사업에 도전할 수 있도록 포트폴리오 제작을 지원하는 것이죠. 지금까지 15명의 포트폴리오를 만들었는데 이 중 5명이 정부지원사업에 연결됐어요. 앞으로도 이러한 예술가 자립지원 사업에 재투자하는 수익 비율을 유지해나갈 계획이에요. 스스로 자신의 무대를 찾아가는 예술가들이 많아지도록 그들에게 힘을 보태고 싶어요.” - 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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