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 감독인 박항서 감독이 플랜비스포츠의 이사장을 맡고 있다. /사진=최범준 청년기자

“이력서를 보내 달라고 했는데, 파일이랑 사진을 따로 보내더라구요. 여기에 한마디가 덧붙어 와요. ‘파일에 넣을 줄 몰라 사진은 따로 보냅니다’.”

플랜비스포츠(이사장 박항서, 이하 플랜비) 윤소라 매니저가 말하는 체육 은퇴선수 실상이다. 

플랜비는 체육 은퇴선수 일자리를 창출하고, 지역 소외아동, 취약계층 등을 대상으로 스포츠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사회적 협동조합이다. 2017년 봄, 협동조합을 설립했다. 

장보미, 윤소라 매니저(이하 장 매니저, 윤 매니저)는 2년 간 프로축구팀 경남FC 사무국에서 일했다. 장 매니저는 이 후 스포츠용품 회사에서 일하기도 했다. 스포츠 업계에서 꾸준히 일해 온 경험은 협동조합 설립에 큰 도움이 됐다. 

“이름값 있는 주축 선수들이야 다른 팀에 가서도 충분히 경력을 이어갈 수 있어요. 2군에서 운동하는 선수들은 계약해지 당하면 끝이더군요. 열심히 준비하지만 선수경력이 하루아침에 끊어지는 거죠.” 장 매니저가 현장에서 직접 본 선수들의 현실이다. 

이들은 구단에서 직접 보고 느낀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고민했고, 협동조합에서 길을 찾았다. 

윤 매니저는 “처음에는 사단법인을 생각했지만 법인을 만들 수 있는 여건이 안됐다”며 “다른 방법을 찾다보니 협동조합이 우리 여건에 부합했다”고 돌아봤다. 협동조합을 준비하면서 전 직장동료였던 김은애 매니저가 합류했다.

직장생활과 협동조합 준비를 병행하던 2016년, 기획재정부가 주관한 ‘청년협동조합 공모전’에 수상하며 본격적인 협동조합 설립준비에 나섰다. 당시 상주상무 감독직에서 물러나 있던 박항서 현 베트남 축구대표팀 감독이 함께하며, 플랜비의 틀을 갖췄다. 현재 매니저들로 구성된 직원조합원과 은퇴선수, 후원자 등 150여 명이 조합원으로 있고, 박항서 감독이 이사장으로 있다.

플랜비 활동을 발판, 은퇴선수들이 자리 잡을 때 가장 보람차

플랜비는 설립 초기부터 어린이 축구교실을 진행해오고 있다.

그들은 지난 시간을 돌아보며 “운이 좋았다”고 입을 모은다. 설립 초기 신협사회공헌재단과 함께 ‘어린이 축구교실’을 진행했고, 박 이사장의 ‘리더십 축구교실’도 진행할 수 있었다. 축구교실을 시작으로 플랜비스포츠는 현재 야구, 양궁, 농구, 피트니스 등 다양한 체육활동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협동조합이 자리를 잡으면서 직접 전화를 걸어오는 은퇴선수도 생겼다. 윤 매니저는 “초기에는 선수조합원에게 협동조합 가치와 개념 등을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다”고 말했다. ‘돈을 벌 수 있다’거나 ‘봉사활동’을 위해 찾아오지만 플랜비의 취지에 공감하면 회사에 관심을 가지고 자연스레 함께 활동하게 된다는 것이다. 현재 은퇴선수 조합원 중 20여 명 내외가 정기적으로 플랜비와 함께하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플랜비 교육프로그램을 통해 일자리를 얻는 사례도 생겼다. 초창기에 함께했던 한 은퇴선수는 플랜비 수업과, 개인공부를 병행해 현재 포천에 있는 유소년 축구팀 코치로 활동하고 있다.
  
강의를 개설해 은퇴선수들의 일자리가 생기기도 한다. 플랜비는 기업이 후원하는 체육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수업은 무료로 진행하는데 수강생 만족도가 높을 경우 유료 수업을 개설해 이어가는 식이다. 

장 매니저는 “선수들의 일자리 문제를 사회문제로 인식하는 기업들도 있지만, 선수들에게 ‘재능기부’를 바라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접근은 위험하다는 게 그들의 생각이다. 스포츠로 성공한 극히 일부 선수에게만 해당하고, 대다수 선수들은 평생해온 운동에서 빛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장 매니저는 “은퇴선수가 진행하는 수업에 정당한 댓가를 지불하는 인식이 퍼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체육 외 사람은 일반인” 운동선수 출신 재교육 및 사회화 필요

플랜비 협동조합을 만든 김은애, 윤소라, 장보미(좌측부터) 매니저들.

장 매니저는 “운동선수들이 여자친구 혹은 남자친구가 생기면 ‘일반인이랑 사귀어?’라고 서로 묻더라”면서 체육선수들이 가지고 있는 인식을 설명했다.

“엘리트 체육선수가 은퇴 후 사회에 적응하는 일은 ‘새로운 세계’에 뛰어든다는 면에서 ‘북한이탈주민’이 한국사회에 적응하는 경우와 별반 다르지 않다고 봅니다.”

이를 돕기 위해 플랜비가 체육수업을 진행하지만 일부 선수들은 적응하지 못해 더 깊은 슬럼프에 빠지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선수 생활을 하며 어릴 때부터 자리 잡은 ‘계층인식’도 문제다. ‘너는 메달리스트’, ‘프로진출 했는지 아닌지’ 등으로 스스로 선을 긋고 거기에 수긍하면서 차별을 당연히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은퇴선수 문제는 플랜비 뿐 아니라 체육계 내부에서도 사회문제로 보고 있다. “은퇴선수 채용과 사회화 관련 프로그램을 만들어 선수들을 지원하고 있지요. 하지만, 이마저도 선수시절 내세울 만한 수상경력이 있는 선수가 유리하죠. 대다수 은퇴선수들은 기회를 잡기 힘듭니다.”

선수 수요에 비해 프로그램이 아직은 부족하고, 정보를 찾는 능력도 부족해 자신들을 위한 지원 프로그램이 있다는 사실 마저도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장 매니저는 “은퇴선수들에게는 정보를 찾고 지원하는 일은 그 자체가 일”이라며 “간단한 문서작성 조차 해본 적이 없어 이력서를 쓰지 못해 도와주는 경우도 있다”고 심각성을 토로했다. 

소외 계층 대상 체육프로그램 운영, 해외운동수업?워크숍?걸스클럽 등 계획

플랜비는 비정부기구(NGO)의 초청으로 몽골에서 축구교실을 진행하기도 했다.

플랜비의 교육 프로그램은 주로 사회 내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한다. 소외계층, 도서벽지지역 학생, 장애인 등이 그 대상이다. 물론 일반인, 지역주민, 기업 직원 대상 체육교실도 진행하고 있다. 올해 수업은 서울 성북, 경기 성남, 인천, 창원, 순창 등 전국 각지에서 열렸다.

성북에서는 중증장애인을 대상으로 체육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수업은 장애인들이 가능한 범위에서 신체활동을 하는 식으로 이루어진다. 장 매니저는 “학교를 다닐 때는 장애인들이 몸을 움직여 괜찮지만 방학하면 집에만 있어 목조차 가누지 못한다”며 “체육활동을 통해 이를 해결할 수 있어 부모님들이 좋아하신다”고 말했다.

그들은 앞으로 진행하고 싶은 수업 구상도 밝혔다. “몇몇 선수는 자기 슬럼프 극복, 은퇴 이후 삶 등을 주제로 강연이나 토크프로그램을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남들보다 일찍 ‘은퇴’를 했으니 청소년뿐 아니라 시니어 세대와도 함께 할 수 있고요.”

기존에 진행하고 있는 프로그램을 확장한 ‘플랜비 해외 체육교실’, ‘여학생 체육프로그램’ 등도 미래 계획이다. 

장 매니저는 “해외 NGO 활동이 우물파기, 집짓기 같은 하드웨어 활동에서 소프트웨어 활동으로 바뀌고 있다”면서 해외 축구교실 가능성도 제기했다. 이들은 올해 몽골에서 활동하는 NGO초청으로 몽골에서 축구교실을 열기도 했다. 

윤 매니저는 “체육활동이다 보니 남학생 비율이 높아 프로그램에 참가한 여학생이 수업 말미까지 잘 적응하지 못한 경우가 있었다”며 “현재 여학생만 참가하는 플랜비 체육프로그램은 없는데 해외처럼 여학생 대상 체육프로그램을 활성화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사진제공. 플랜비스포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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