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을 보내며] 옥스퍼드사전과 교수신문의 사자성어(四字成語)
[2018을 보내며] 옥스퍼드사전과 교수신문의 사자성어(四字成語)
  • 윤병훈 이로운넷 대표
  • 승인 2018.12.28 06: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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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하기 어렵거나 불합리한 일이 자주,지속적으로 나타나면 그 상황을 설명하고자 많은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사용하는 말이 등장합니다. 그 말은 다양한 맥락에서 폭넓게 사용되지만, 대개는 공동체 모두의 불편하고 불안한 내면을 반영하거나 희망을 바라는 말(단어)이 되어 인구에 회자되곤 합니다. 영국의 옥스퍼드대학과 한국의 교수신문이 선정하여 발표하는 ‘올해의 단어(사자성어)’에는 그 사회의 세태(世態)를 함축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상징이 담겨 있습니다.

post-truth vs 昏庸無道

3년 전 입니다.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브렉시트)가 점점 현실화 되어가고 유럽 내륙국가들에서는 반이민정서를 등에 업은 극우정당들이 지지층을 넓혀가던 때입니다. 미국에서는 대선기간 중 온갖 혐오와 배타주의를 부추기는 발언을 쏟아낸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된 해이기도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혼란스러워할 때 옥스퍼드사전은 그 해 자주 쓰였던 1억여 개의 단어를 분석하여 가장 많이 거론된 주제들을 기술한 용어로 “post-truth"를 '올해의 단어'로 선정하였습니다. ‘탈진실(脫眞實)로 번역된 이 단어는 객관적 사실은 따지거나 중요시하지 않는,심지어 외면하거나 무시해버리는 시대흐름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팩트와 진실의 자리를 아집과 독선,억측과 거짓의 씨앗이 되는 ‘느낌’과 ‘감’이 차지하는 세태를 이르기도 합니다. ‘그냥 싫어’,‘왠지 좋아’,'그(녀)는 우리와 같은 편일거야‘와 같이 개인의 감정이나 신념이 사실(혹은 진실)을 덮어버리는 현상입니다.

우리사회 ‘탈진실’의 역사는 뿌리 깊지만 근래 들어서 가장 돋보였던 때가 2012년 18대 대선입니다. 지역감정을 뿌리로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 편향성이 배타적 집단의식을 강화하고 이념적,사회적 양극화를 촉발합니다. 확신은 대개 지식보다는 무지에서 나옵니다. 연말이 되면 교수신문이 대학교수 1천명의 의견을 물어 그 해와 다음 해를 아우르는 사자성어를 발표합니다. 박근혜정권이 출범한 2013년의 사자성어 도행역시(倒行逆施,순리를 거스르다)와 2014년 지록위마(指鹿爲馬,거짓을 우겨서 속이거나 농락함)에 이어 2015년의 '나라꼴이 말이 아니다'라는 혼용무도(昏庸無道)는 자조적인 쓴소리로 대통령의 무능을 질타한 것입니다. 브렉시트와 트럼프,박근혜의 등장이 가능했던 것은 객관적 진실보다는 자기가 보고 싶고 믿고 싶은 것만을 원하는 사람들의 시대상(時代相) 때문이라는 것을 옥스퍼드는 사용된 언어의 분석으로, 교수신문은 여론을 감안한 지성인들의 선택으로 파악한 것입니다.

youthquake vs 君舟民水

2016년 교수신문과 2017년 옥스퍼드사전은 탄생 배경이 비슷한 ‘군주민수(君舟民水)와 ‘youthquake'를 각각 올해의 단어(사자성어)로 선정하였습니다. 젊음과 지진의 합성어인 'youthquake'는 젊은이들의 행동이 야기하는 사회적,정치적 ’중대한‘ 변화를, 물은 배를 띄우지만 엎기도 한다는 ‘君舟民水’는 민중이 정권을 뒤집는 것을 의미합니다. 젊은이들의 적극적 행동으로 예상치 못했던 결과를 낳은 영국의 총선과 무능하고 부패한 정권을 교체한 한국의 촛불혁명이 있었던 해입니다. 

toxic vs 破斯顯正

2018년을 상징하는 단어로 옥스퍼드사전은 ‘건강과 환경에 해롭다’는 의미의 ‘toxic’을, 교수신문은 2017년 연말에 올해의 사자성어로 파사현정(破邪顯正)을 선정했습니다. ‘톡식’은 ‘미투운동’이 전세계로 확산되면서 남성성(masculinity)의 해로움을 수식하는 어휘로 관용구화 되었고, 생태계 오염에 관한 심각한 우려가 반영되어 사용용례가 가장 많았다 합니다. 破邪顯正은 정의가 이루어졌다는 선언이 아니라 촛불혁명 이 후 적폐를 뿌리 뽑아야 한다는 모두의 간절한 희망이 묻어 있는 단어입니다. 파사현정의 ‘사(邪)’와 ‘독화살’이란 원뜻을 지닌 ‘toxic’은 동의어입니다. 도리에 어긋나고 타락한 행위나 인간세계와 지구생태계에 독(毒)이 되는 것들을 말합니다. 영국이나 한국이나, 동서양 모두 올 해는 민중의 삶이 순탄치 않았던 듯 합니다. 

세계화의 여파인지, ‘올해의 단어’와 ‘올해의 사자성어’는 피폐하고 거칠어진 우리의 내면을 투영하는 단어 일색입니다. 2018년의 사자성어는 임중도원(任重道遠)이 뽑혔지만, 특이하게도 더 많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은 2등을 한 밀운불우(密雲不雨)입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任重道遠은 웬지 애만 쓰다 지쳐 좌절할것만 같은 느낌이, 密雲不雨는 인내하기만 하면 언젠가는 이루어질듯한 미묘한 어감의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교수신문은 올해의 사자성어와 별도로 1월이 되면 새해에 대한 바람이 담겨있는 ‘희망의 노래’를 선정하여 발표합니다. 2016년 ‘곶 됴코 여름 하나니’와 2017년 ‘내가 이루어져 바다로 가느니’는 보거나 듣기만 해도 평온(平穩)해지는 노래 같습니다. 2016년 옥스퍼드사전 올해의 단어 후보에 오른 명사 ‘hygge'는 소박한 일상에서의 안락하고 아늑한 상태를 의미합니다. 이 또한 뭔가 통하는 느낌이 들지 않나요? 새해 벽두에 모두를 미소짓게하는 ’희망의 노래‘가 우렁차게 울리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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