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영리-영리라는 전통적인 구분 방식이 희미해지고 있다. 풀고자 하는 사회 문제는 더 명확히 하되, 이를 해결해가는 방식에서는 기존에 영리가 가진 효율적인 프로세스(새로운 기술, 창의적인 생각, 빠른 의사결정 등)를 도입하는 시도가 늘고 있다. 비영리스타트업, 사이드프로젝트, 벤처기부 등 다양한 이름으로 정의되고 있지만 아직은 태동기다. 이러한 움직임을 주시하고, 지원에 나선 중간지원기관들도 최근 2~3년 사이 눈에 띈다. 경계를 넘나드는 공익활동을 선보이는 하이브리드형 개인과 조직, 그리고 이들을 지원하는 중간지원기관들의 움직임을 들여다봤다.
# 지난해 11월 14일 서울 커뮤니티하우스 마실에서는 ‘2018 비영리 스타트업 쇼케이스’가 열렸다. 지난해에 이어 서울시NPO지원센터(이하 NPO센터)가 주최하는 두 번째 행사다. NPO센터는 지난해부터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비영리스타트업’이라는 이름으로 인큐베이팅 프로그램을 시도했다. 창의적인 생각, 빠른 의사결정, 유연한 조직 등 스타트업의 장점을 가지면서도, 영리를 목표로 하지 않고 사회적 가치를 최우선 가치로 두는 개인이나 조직을 선정해 지원하는 사업이다. 기존에 비영리단체 지원에 적용되지 않던 맞춤형 인큐베이팅 프로그램도 새로운 시도였다. 이날 쇼케이스에는 모두 7개 단체가 참여해 투자자 유치 등을 목표로 자신들의 사업을 발표했다. 이들 중에는 법인을 만들어 소셜벤처로 진입하려는 곳도 있지만, 대다수가 수익이나 상장이 목적이 아닌 비영리 형태로 사회문제를 해결하고자하는 개인 혹은 모임이다.
# 같은 날, 연세대학교에서는 아산나눔재단이 주최하는 ‘파트너십 온 데모데이’가 열렸다. ‘파트너십 온’은 2015년부터 미래세대 문제 해결에 나선 비영리기관을 지원해온 사업이다. 아산나눔재단은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비영리기관을 육성하는 ‘액셀러레이팅 프로그램’을 시도했다. 스타트업을 발굴·육성하는 프로세스를 비영리기관 지원에도 도입한 셈이다. 박지훈 아산나눔재단 사회변화교육팀장은 “사업 초기에는 비영리기관에서 잘 쓰지 않는 ‘효율성’, ‘임팩트’, ‘비즈니스모델’ 등의 단어를 불편해하는 분들이 많았다”고 말했다. 지난해 11월에는 국내 최초로 비영리기관 데모데이를 진행키도 했다.
비영리-영리의 경계를 넘나드는 혼종(混種)이 비영리영역 내에서도 확대되고 있다. 뿌리는 비영리에 두고, 스타트업의 문화, 성장 방식 등을 이식하고 믹스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활동을 추동하는 건 그간 전통적인 비영리기관을 지원해온 NPO센터, 아산나눔재단과 같은 중간지원기관들이다.
2001년 설립해 미래세대를 지원하는 일을 꾸준히 해온 다음세대재단도 최근 비영리스타트업 생태계를 만드는데 동참했다. 서울시, 언더독스와 함께 청년프로젝트 투자사업 ‘어웨이크(www.awwwake.kr)’ 사업이 그것이다. NPO센터와 같이 ‘비영리스타트업’이라는 표현을 썼지만 이곳의 목적은 뚜렷하다. 수익을 목적으로 하는 소셜벤처 등 사회적경제로의 발전보다는 비영리단체가 추구하는 ‘사회문제 해결’에 더 초점을 두고 개인 및 기관을 육성한다는 계획이다.
서울혁신파크와 청년허브도 올해 유사한 방식의 실험에 나섰다. 서울혁신파크는 개인의 관심사나 문제의식이 어떻게 나의 일, 우리의 일로 이어지는지 실험하는 프로젝트 ‘자업자득 스타트업’을, 청년허브는 4차 산업혁명, 저성장시대, 취업난, 양극화 등을 창의적으로 해결하려는 청년들의 시도와 실험을 지원하는 ‘청년업’ 사업을 시도했다.
이영동 서울혁신센터 매니저는 “기존에 직업을 가진 이들 중에서도 다른 사회문제 해결에 관심 있는 이들이 늘고 있기에 새로운 기회를 모색할 수 있는 경험을 제공하고자 이번 사업을 준비했다”고 말했다.
올해 20주년을 맞은 사회복지공동모금회도 최근 미래 비전을 선포하며 변화되는 환경에 발맞춰 복지전달 체계의 확장, 전통적인 모금 방식을 넘어 자원이 선순환되는 지속가능한 모금 전략을 모색한다는 계획이다.
경계를 넘나드는 활동이 늘어나는 이유
이 같이 ‘비영리’와 ‘영리’의 경계를 뛰어넘는 공익활동이 비영리영역 내에서 본격화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점차 다양해지고 복잡해지는 사회 문제를 직접 해결하려는 다양한 주체들의 출현이 가장 큰 이유다.
최근 ‘사이드 프로젝트’에 대한 활동가연구 총서를 공동으로 낸 손호석 씨는 “촛불집회 때 나온 '장수풍뎅이 연구회' 깃발, 지역구 국회의원에게 탄핵 관련 의견을 보낸 '박근혜닷컴'과 같은 활동은 기존 사회운동과는 다른 내용 및 방식의 변화를 보여주었다”며 “이러한 흐름의 연장선상에서 좁게는 비영리·소셜영역 주변, 넓게는 사회 전반에 ‘명함’으로 상징되는 기존 조직에서 벗어나 탄력적이며 유연한 프로젝트로 다른 경험을 하는 모습이 자주 목격되고 있다”고 말했다.
박지훈 아산나눔재단 사회변화교육팀장도 “과거에는 사회문제 해결에 나서는 이들이 비영리기관 내에서 활동하는 이들 뿐이었다면, 이제는 사회문제에 관심 가지는 사람도, 새로운 방식으로 해결하려는 사람도 많아지고 솔루션도 다양해져셔 영리, 비영리로 구분하는 것이 의미가 없어진 느낌”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지난해 NPO센터가 추진한 비영리스타트업 사업에는 총 62개의 지원팀이 지원해 13대 1을, 올해도 8:1 경쟁률을 보였다.
문제는 기존과 다른 주체들의 등장에도 이들을 지원하고 육성하는 곳이 없다는 점이다. 영역 간 경계를 허무는 지원이 나오게 된 가장 큰 이유다.
양석원 열린옷장 사외이사(전 디캠프 팀장)는 “스타트업, 사회적경제 등은 정부에서 대대적으로 육성정책을 펴며 지원해왔지만, 수익 창출 및 창업 목적이 아닌 이러한 형태의 사업이나 아이디어를 지원하는 곳은 찾아보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공익적이고 가치 있는 일임에도 기존에 정의된 영역에 속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주목 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오랜 기간 사회문제 해결에 앞장서왔지만 최근 빛을 보지 못하는 비영리영역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고민도 이러한 움직임을 촉진시키는 계기가 됐다.
방대욱 다음세대재단 대표는 “최근 들어 사회혁신을 얘기하는 자리에 그동안 사회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해온 비영리기관은 늘 빠져있다”며 “젊은 리더가 보이지 않고, 청년들이 진입하지 않는 이유를 잘 따져보면 현재 비영리영역 내에 성장의 경로가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고 말했다. 방 대표는 이러한 문제 해결을 위해 다양한 종이 나올 수 있는 건강한 생태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목소리는 앞서 조직을 발굴하고 육성하며 생태계를 만들 온 스타트업, 사회적경제 등의 프로세스와 효율성에 주목하는 이유기도 하다.
하이브리드형 공익활동, 앞으로 더 늘어 날 것
전문가들은 앞으로 이러한 움직임이 더 확대될 것이라 전망했다.
양 사외이사는 “촛불집회, 이화여대 투쟁 등과 같이 기존에 비영리활동을 하지는 않았지만 사회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직접 해결에 나서는 이들이 10년 후에는 더 많아질 거라 본다”며 “사회가 점점 효율성, 전문성, 사회적 가치 등을 요구하기에 기존의 비영리기관이나 민간 기업 등도 이러한 방향으로 이동해 나중에는 서로 간의 구분이 모호해질 것”으로 전망했다.
아산나눔재단 한 관계자는 “현재는 수익을 고민하는 비영리기관을 지원하거나 수용할 수 있는 제도가 거의 없다”며 “만약 그게 완화된다면 하이브리드 성격의 조직이 더 생겨날 것”이라며 영역 간 경계가 점차 허물어지고 있다고 시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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