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경제’가 지역에 스며들며 주민들의 삶에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지역에 뿌리내린 사회적경제 조직들은 지역이 겪는 사회 문제에서 출발해 해결에 나서고, 이는 지역 내 고용창출로 이어져 가장 작은 단위의 경제를 살리는 마중물 역할을 하고 있다. <이로운넷>은 지역이 가진 특색을 살린 맞춤형 모델로 양극화 해소, 일자리 공동체 회복 등 사회적가치를 창출하는 사회적경제 현장을 찾는다.

그 첫 번째는 성동구편이다. 성동구의 소셜패션, 안심돌봄, 자활 일자리, 마을치과, 뚝도시장 등 성동만의 색깔을 자랑하는 사회적경제 조직들의 이야기를 프롤로그 포함 총 7부에 걸쳐 소개한다.

 

한국의 고령화 속도는 세계 최고로 빨랐다. 노인대국 일본도 24년이 걸렸는데 한국은 17년 만에 고령화사회(노인인구 7% 이상)에서 고령사회(노인인구 14% 이상)로 진입했다. 지난 7월 기준 65세 이상 인구수는 738만 명(14.3%). 통계청 장래인구 추계에 따르면 2025년에는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의 20%가 넘는 초고령화 사회가 된다. 2060년에는 전체 인구 10명 중 4명이 노인이 될 전망이다. 고령화 속도가 워낙 빠르다 보니 노후 대비는 부족한 상황이다. 65세 이상 노인 빈곤율은 45.7%로 OECD 회원국 중 가장 높다. 노인 빈곤율이 가장 낮은 프랑스(3.1%) 와는 10배 이상 차이가 난다.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은 이미 2015년 올해 태어난 아기는 특별한 사고나 질병이 없는 한 142세까지 살 수 있다” 고 전망했다. 100세 시대를 넘어 140세를 바라보는 지금, 장수가 재앙이 아닌 축복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최근 노인 문제를 노인 스스로 해결해 보자는 작은 움직임이 포착됐다. 이른바 성수동의 ‘ 떳다할매’ 들이다. 노인들을 단순히 돌봄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노인을 잘 아는 동네의 할머니들이 노인 문제 해결에 나선 것이다. 그 몸부림 뒤에는 마을의 사회적경제 조직들이 거들고 있다. 2년 전부터 노인이 행복한 안심마을을 설계해가고 있는 성동구의 떳다할매 4명을 성동희망나눔에서 만났다. 떳다할매 세계에선 중년에 속하는 임옥순(76)· 김병순(75) 할머니 그리고 젊은 할매로 불리는 백한순(69) · 이난순(69) 할머니가 그 주인공들이다. 이들은 행복한 노후를 위한 안심마을을 위해선 일과 친구·건강이 필수라고 입을 모았다.

 

참석자

사회= 백선기 이로운넷 책임에디터

좌담= 김병순, 백한순, 이난순, 임옥순 (가나다순)

성수동 어벤저스 떳다할매들.왼쪽부터 이난순,백한순,김병순,임옥순씨

 

사회떳다할매는 떳떳한 노년, 다 함께 만드는 안심마을을 꿈꾼다. 노노 친구 맺기를 통해 도움이 필요한 어르신들에게 마을 차원의 돌봄 체계를 구축해가고 있다던데.

김병순(이하: 김) = 떳다할매는 60~80대에 이르는 시니어 40명으로 구성돼 있다. 이중 젊은 층에 속하는 60대 8명은 떳다할매 특공대라는 특별 임무가 주어져 있다. 특공대는 동네에 홀로 살거나 거동이 불편한 70대 후반 노인 30여 명과 친구를 맺었다. 2인 1조로 한 팀이 돼 일주일에 한 번 어르신 댁을 방문해 말벗이 되어 드린다. 나와 임옥순 씨는 70대 후반이지만 특공대로 활동한다.

임옥순(이하: 임) = 말동무도 중요하지만 그 집안 상황을 파악해 필요한 걸 찾아내는 일이 주요 임무다. 청소가 필요한지. 집수리가 필요한지. 반찬이 필요한지, 아파서 병원에 가야 할지 말이다. 도움의 필요성이 감지되면 떳다할매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하는 지역의 기관과 단체들이 나서서 문제를 해결해준다. 우리들이 눈여겨 본 덕분에 무릎 수술도 받고 우울증도 이겨낸 분들을 보면 마음이 뿌듯하다.

백한순(이하:백) = 특공대들은 어르신 댁을 방문할 때 푸드뱅크에서 제공한 빵과 음식을 가져간다. 한 달에 두 번 정도는 특공대들이 함께 반찬을 만들어 가져간다. 살림에 이골이 난 세대들이라 손발이 척척 잘 맞는다.

이난순(이하:이)= 처음에 말문을 트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혼자 계시니까 그냥 친구로 찾아오는 거라 해도 어르신들은 ‘뭘 바라는 것이 있나’라는 의구심을 거두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고 나니 우리가 올 때만 기다린다. 남편이나 자식한테 털어놓지 못하는 속내를 우리에게 털어논다. 그분들도 그 과정에서 스트레스를 푸는 거다.

김= 아쉬운 점은 있다. 시간제한이 있어 빨리 나와야 하는 점이다. 한 가정에 약 30분씩 머물다 온다. 하루에 3분을 만나야 하기 때문이다. 방문할 때면 차와 과일을 내놓으시니 먹다 보면 30분은 후딱 지난다. 어떨 땐 들어가자마자 나오는 것 같아 괜히 수선만 떨고 오는 것 같다. 특공대 숫자가 늘어나면 좀 더 시간 여유가 있지 않을까.

 

김병순(왼쪽)씨와 임옥순(오른쪽)씨는 성수동에 수십년을 살았지만 서로 모르고 지내다 떳다할매에서 만나 절친이 됐다.

사회= 떳다할매분들도 누군가의 돌봄을 받을 나이 아닌가. 힘들지 않나

임= 나이도 비슷한데 몸이 불편해 거동을 못하시는 분들을 뵐 때면 나는 건강해 이렇게 다닐 수 있고 다른 이들을 돌볼 수 있다는 점에서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이= 예전 60~70대는 그냥 집에서 편히 지내는데 우리 세대는 부모님 연세가 90살이 넘다 보니 그 나이에도 부모님을 돌봐야 하는 상황이 도래했다. 그래서 얼마 전 한 분도 떳다할매 활동을 중단했다.

백= 80이 넘으신 분이 혼자 건강하게 지내시는 걸 보면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노노돌봄을 하고 활동비로 20만 원을 받는다. 좋은 일을 하면서 용돈도 버는 셈이다. 넉넉한 돈은 아니다 보니 금전적인 이유에서라기보다는 봉사하는 기쁨으로 한다.

 

 " 80대에도 일은 필요하다.... 일은 삶의 활력소”

사회=은퇴하고도 남을 시점에 왜 일이 필요한가

김= 나와 임 씨는 주 4회 공동작업장에서 자동차 부품을 조립한다. 30명이 하루 평균 2~3시간 일한다. 기동성은 떨어져도 성실한 세대들이라 단순 작업의 일은 잘 해낸다. 일은 삶의 활력소다. 이런 과정들이 수월했던 건 아니다. 처음엔 각자 일한 만큼 일당을 챙기다 보니 정이 없어지고 삭막했다. 어떤 사람은 혼자 더 많이 하기 위해 부품을 자기 앞으로 감춰놓기도 하고. 지금은 서로가 조금씩 배려해 공동으로 생산하고 책임지고 이윤을 나눈다.

백= 맞다. 저 같은 경우 코바늘뜨기를 못해 남들이 수세미 3~4개를 만들 때 1개 밖에 못 만든다. 손이 느린 사람은 맞춰가려는 노력이 필요하고 빠른 사람은 조금 손해 본다는 느낌이 들어도 기다려주는 마음이 필요하다.

김= 작업장에는 86살 할머니들도 3분이나 있다. 일이란 게 정신적으로 좋은 게 나이 한 살이라도 젊은 친구들에게 안 지려고 허리를 구부리고 앉아서 한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일은 사람을 발전시키고 건강하게 만든다.

임= 나이와 관계없이 일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시간을 쪼개 쓰려는 마음이 생겨 부지런해진다. 오후 1시에 출근해 일이 있을 때면 4시, 보통은 3시에 끝난다. 노노 친구 방문이 없는 날은 떳다할매 친구들과 맛있는 것 사 먹고 차 마시고 어디 싸게 물건을 판다 하면 구경 가고 그러다 보니 늘 바쁘고 항상 시간이 모자란다.

 

백한순(오른쪽)씨와 이난순(왼쪽)씨는 60대로 떳다할매특공대로 활약한다. 특공대는 노노친구맺기에 주역들이다.

백= 우리는 새로운 일거리를 만들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노인 일거리 분야에서 가장 큰 고민이 노동 강도에 비해 수입이 적다는 점이다. 우리는 돌봄 리더 양성과정에서 다양한 교육을 받으면서 노인에게 적합한 양질의 일자리가 무엇일까를 계속 고민하고 있다. 손뜨개로 수세미를 만들어보고 올봄에는 항아리에 유기농 매실청을 담갔다. 잘 숙성되면 내년 봄 장터에 내다 팔 거다.

이= 노인 일자리 창출을 위한 배움에는 동네 청년들이 도와준다. 올해에는 청년기업 라잇루트와 함께 잠옷과 안대를 만들어봤다. 내가 이런 일을 해보리라곤 상상도 못했다. 아직 확실하게 잡히는 건 없다. 계속 도전해보는 거다.

 

“ 내가 건강해야 남도 돌본다”

 

떳다할매사업은 2017년부터 서울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지원을 받아 성동희망나눔이 주축이 돼 시행되고 있다.
성동희망나눔은 지역에서 20년 넘게 취약계층 돌봄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비영리단체다.

사회=떳다할매 활동이 노년기의 삶에 어떤 영향을 주었나.

임= 떳다할매의 슬로건은 내가 건강해야 남도 돌볼 수 있다는 것이다. 신체도 정신도 건강해야 한다. 난 노노 돌봄 이외에도 이곳 성동희망나눔에서 요일마다 라인댄스, 노래교실, 스트레칭을 배운다.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고 나면 마음이 밝아진다.

백= 내 평생 안 해보던 것. 하지만 마음 한구석엔 한번 해봤으면 하는 것들이 누구에게나 있다. 벽화도 그려보고 옷 디자인도 해보고 힘들 때도 있었지만 완성이 되고 나면 ‘우리가 해냈다’는 뿌듯함을 느낄 수 있다.

김= 노인의 마음은 노인이 잘 안다. 안심마을 만들기의 하나로 노인들의 관점에서 ‘노인친화골목지도 그리기’를 했다. 노인 관점에서 골목들을 바라보니 맨 차들이고 쉼터가 없더라. 공중화장실도 모자랐다. 노인들은 소변 참기가 어렵다. 말하자면 걷기가 건강에 좋다는데 걷기 힘든 형편이다. 쉬어갈 평상을 만들면 좋겠다는 의견을 관련 기관에 냈고 그 결과 이리쌀집앞에 평상이 만들어질 계획이다. 마을에 도움을 줬다는 점이 즐겁다.

이= 난 배우기도 하지만 가르치기도 한다. 월요일마다 노래교실을 진행한다. 비슷한 연배들과 만나 목청껏 노래도 부르고 노인친화마을을 만들기 위해 열띤 토론도 하고.. 집에 가만있는 것보다 훨씬 낫다.

 

“ 내가 머무는 공간에서 노후를 보내고 싶다.”

 

사회=2019년 말이면 서울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떳다할매 지원 사업이 끝난다. 1년 후에는 자생해야 할 텐데.

김= 없어지면 안 된다. 내가 하지 못하더라도 말이다. 용돈벌이를 떠나서 이 어르신들은 우리가 없어지면 옛날로 돌아간다. 혼자 아무도 없이..감옥살이하는 거다.

백= 지금은 여럿이 모여 함께 반찬도 챙기고 웃고 떠들면서 재미있게 한다. 각자 한다면 누가 이분들을 매주 만나러 갈까. 처음 몇 번은 정 때문에 찾아갈 수 있다. 하지만 그게 몇 번으로 끝나지 않겠나?

이= 할매들이 자꾸 떠들어야 치매도 덜 온다고 한다. 우리가 안 가면 하루 종일 혼자 계신데 누구랑 뭔 말을 하겠나. 할머니들의 닫힌 입을 열어주기 위해서라도 우리가 가야 한다. 할머니들의 속내도 들어주고 우리도 배울 점이 많다.

임= 맞다. 우리보다 먼저 산 분들이라 듣고 배우는 게 많다. 그맘때 면 대부분 병 한 가지씩을 달고 산다. 어쩌다 그리됐는지 말하는 걸 듣고 나면 우린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 역시 혼자 산다. 이웃과 친하지 않으면 나 홀로 죽는 일도 있겠다 싶다.

이= 떳다할매 활동 중 119를 불러드린 적도 있고 긴급 연락처로 우리 번호를 알려드려 안심시켜드린 적도 있다. 한 80살 어르신은 담석 때문에 배가 아픈데 진땀만 바작바작 흘리고 있었다. 우리가 마침 방문하는 날이라 대처가 가능했다. 어떤 할머니는 무슨 일만 생기면 딸을 부르는데 그 딸은 자동차로 2시간 걸리는 먼 곳에 떨어져 산다. 급한 일이 생기면 대처하기가 힘든 상황이다.

김= 우린 떳다할매뿐 아니라 떳다할배도 필요하다고 본다. 부부가 함께 있으면 말동무라도 해드릴 수 있는데 혼자 사는 할아버지는 돌봄이 힘들다. 떳다할배들의 모집이 어렵다면 혼자 사는 할아버지들이 문 밖으로 나올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남자들에게 요리와 치매예방 운동을 가르치는 생활살림교실을 성동희망나눔에서 시작한다는데 이런 활동이 늘어나야 한다고 본다.

임= 떳다할매  활동을 하면서 나도 나이가 들면 누군가 찾아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여러 번 했다. 내가 지금은 가지만 나도 언젠가는 필요한 때가 올 것이다.

 

김병순할머니와 늘 붙어다니는 떳다할매 4인방들. 김할머니는 친구가 있어 인생이 즐겁다고 한다.
사진제공=성동희망나눔

사회=어떻게 나이 들고 싶나.

김= 곱게 늙었으면 한다. 나이를 먹는다는 건 늙는 게 아니라 익어간다고 하지 않나. 제대로 익어가는 인생을 살아가면 좋겠다. 지금처럼만 살 수 있다면 좋겠다. 노인네가 집에 들어앉아 있으면 뭐 하겠나 공상이나 하지. 여기 오면 시간이 금방 가고 내가 성장하는 기회로 삼을 수 있다. 내겐 떳다할매로 인연을 맺은 친구 셋이 있다. 그중 하나가 임 씨다. 우리 넷은 4년째 꼭 붙어 다닌다. 즐거운 일이든 힘든 일이든 함께 한다. 친구가 있어 그런가 인생이 즐겁다.

임= 운동이란 게 내가 해보니 힘들고 하기 싫더라. 그런데 꼭 해야 한다. 곱게 늙겠다고 가만히 있음 진짜 안된다. 다리 성할 때 많이 다니고 즐겨야 한다. 그래서 난 떳다할매를 그만두라고 할 때까지 계속 할 거다. 애들이 그런다. ‘ 엄마 좋은 일 하고 있다고 그러니 열심히 다니라고’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이렇게 활동하며 친구들과 지내면 치매도 안 걸릴 것 같다.

백= 이웃과 나누는 삶을 살고 싶다. 내가 방문하는 한 어르신은 자식도 없고 남편도 없다. 그런데 주변에 많이 베풀고 산다. 지나가는 말로 누가 입고 있던 옷이 참 예쁘다 하면 ‘ 입어’ 라며 벗어준다. 한 번은 어르신이 연락 없이 며칠 집을 비웠더니 ‘ 무슨 일이 난건 아닐까’ 라면서 이 사람 저 사람이 와서 문을 두드려보고 전화도 해보고 하더라. 나도 이다음에 자장면 한 그릇이라도 살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생각했다. 내가 베풀면 이런 대접을 받고 돈이 아무리 많아도 나누지 않으면 요즘 애들 마냥 왕따 당하겠다 싶더라.

 

대담을 끝내고 정리하려는데 김병순 할머니가 지나가는 소리로 다른 떳다할매들에게 말을 꺼냈다.

“ 난 어르신들 가운데 박임순(가명) 할머니가 자꾸 생각나. 이 동네 재개발로 집값이 뛰면서 작년에 집 팔고 멀리 아들 사는 동네로 이사 갔어. 근데 그 할머니 당시 횡설수설하고 치매에 걸린 것 같았어. 그런 분이 낯선 곳에 가면 얼마나 힘들겠어. 가까이 있다면 들여다라도 볼 텐데 말이야..”

사진= 이우기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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