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7월 협동조합박람회에서 선포식을 가진 보리네생고기협동조합 손재호 대표(왼쪽에서 일곱 번째)와 조합원들.

“창업박람회에서 이벤트로 가맹점 복권을 나눠줬었는데, 지방 가맹점주님께 누구 동의 얻고 하는 거냐고 전화가 오더라니까요. 그럴 때마다 ‘아 우리가 정말 협동조합이구나!’ 싶어요.” 

손재호 ‘보리네협동조합(이하 ’보리네‘)’ 대표가 너털웃음을 짓는다. 보리네는 프랜차이즈 본사가 나서 가맹점이 조합원인 형태의 협동조합으로 전환한 첫 케이스다. 20년 동안 육류 유통업을 해온 보리네생고깃간은 10년 동안 프랜차이즈를 운영해 23개 지점을 보유, 작년 11월 협동조합으로 전환했다. 프랜차이즈 본사의 갑질이 고질적인 문제로 거론되고 있는 지금, 협동조합 1주년을 맞은 보리네 손 대표는 “내 사업에 대해 ‘옳다’는 자부심과 애정이 커졌다”고 한다. 

사실상 영구적이던 대표직을 스스로 3년 임기로 전환한 손 대표. 그 결정에는 “가맹점들이 대표자를 해임할 수 있어야 소위 프랜차이즈의 ’갑질‘이 사라진다”는 의식이 있다.

“기존 프랜차이즈 운영 방식은 본사에게만 유리한 불공정계약이죠. 그래서 본사 점주와 가맹점 구분 없이 모두가 회사의 주인이 되도록 한 겁니다.” 12개 지점주들은 조합원으로 1인 1표 의결권을 갖고 총회에서 이사장을 선출·해임한다. 자연히 대표직도 5명으로 구성된 이사회에서 선출한다. 기존 본사의 역할인 사업 결정은 이사회와 총회가, 실무는 협동조합 실무진이 각각 맡고 있다.

“보리네협동조합이 각 지점에 육류를 공급해요. 조합원에게는 일반 가맹점에 붙이는 마진 20% 없이 원가로 공급해요. 대신 조합원들은 매달 운영분담금을 냅니다. 본사는 운영분담금과 비조합원 가맹점들에게 받은 재료비 마진으로 사업을 운영하고, 한 해 수익을 결산해 조합원들에게 배당하고 있어요.” 
 

손 대표(오른쪽)는 정창윤 한국협동조합창업경영지원센터 이사(보리네협동조합 이사장. 왼쪽)를 만나며 협동조합을 알게 됐다.

◇높은 매출은 곧 고배당··· 본사와 지점 함께 성장

손 대표는 “협동조합이야말로 본사와 가맹점의 상생에 딱 맞는 모델”이라고 본다. 보리네의 사업 모델이 ‘이익공유형 프랜차이즈 모델’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바로 ‘배당’에 있다. 

“배당은 ‘출자배당’과 ‘이용실적배당’으로 구성돼요. 출자배당은 출자금에 따라 지급되니 다들 동일하게 받는데, 이용실적배당은 본사(기자 주-보리네협동조합)에서 재료를 산 금액에 비례해 분배됩니다. 즉, 장사가 잘 돼 재료를 많이 사가면 배당도 많이 받고, 장사가 안되면 배당도 적어지는 거죠. 각 지점들의 매출이 오르면 본사도 성장하고 지점들에게 돌아가는 배당도 커지므로 조합원과 본사의 공생 모델이라고 할 수 있어요. 일반 프랜차이즈는 배당 자체가 없으니까, 가장 큰 차이점이죠.” 

물론 배당이 얼마나 생길지는 사업 운영 능력에 따라 다르다. 마이너스가 될 수도 있다. 작년에는 당시 8명의 조합원에게 세후 약 2700만 원을 배당으로 분배했다. 손 대표는 “조합원들이 재료를 원가로 공급받는 대신 매달 ‘운영분담금’을 내지만 배당으로 각 지점에 돌아간 이익이 더 크다”고 설명했다. 
 

◇브랜드 신뢰도 제고 위해 '협동조합' 선택

재료마진이 모두 본사 몫인 기존 프랜차이즈 모델이 협동조합보다 본사에게 더 득이 됨은 틀림없다. ‘회사를 협동조합으로 바꾸겠다’는 손 대표의 선언에 주변의 만류는 당연했다. 그럼에도 그가 협동조합을 선택한 이유는 역설적으로 ‘살아남기 위해서’였다. 

“프랜차이즈로 10년 정도 보리네를 끌어왔는데, 생각만큼 잘 안됐어요. 회사가 성장하는 데 필요한 자본이 없으니까 투자를 유치해야 했죠. 결국 투자와 고객 유치는 회사의 공신력, 신뢰가 필요한 부분이고, 협동조합이라는 올바른 사업모델은 공신력을 가질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협동조합이 사업적 어려움을 즉각 해결해주는 만병통치약은 아니었다. 전체 가맹점도 오히려 2곳 줄었다. 그럼에도 손 대표는 ‘고객이 ‘옳다’고 인정하는 기업만이 살아남는다‘는 생각을 바탕으로 협동조합형 프랜차이즈의 미래가치를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물가인상과 인건비 부담, 경기악화는 근본적인 문제에요. 새롭게 경쟁력을 갖추는 것은 보리네가 헤쳐나가야 할 과제인데, 중요한 건 기업에 대한 고객의 신뢰에요. 기업이 광고, 마케팅 비용을 엄청나게 쏟아붓는 이유도 결국 신뢰성 때문이고요. 가맹점과 본사의 상생을 가능케하는 협동조합형 프랜차이즈 모델은 대외 신뢰도를 얻을 수 있는 장기적으로 괜찮은 사업모델이라고 봅니다.”

실제로 보리네를 협동조합으로 전환한 후 정부기관, 기업, 미디어의 관심이 이어졌다. 프랜차이즈 공정 운영, 나아가 공정거래로의 변화에 대한 사회의 논의와 요구를 확인해나가고 있다는 것.
 
그는 “전국 5000개 프랜차이즈 가맹본부 중 1000개는 잘 되고, 3000개는 안 되고, 1000개는 보리네처럼 더 성장하고 싶지만 자본이 부족한 곳”이라며 “이런 1000개 업체들이 협동조합으로 전환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말했다.
 

조합원들이 모인 총회. 보리네의 주요 사업 결정은 총회의 승인과 이사회의 감사를 거쳐 결정된다.

◇출자금 2천만 원, 조합원 참여도 높인다··· “절차 존중 바탕으로 한 경영전문성, 문제해결에 중요”

1년 간 보리네의 지점은 2곳 줄었지만 조합원은 4곳이 늘어 현재 23지점 중 12지점이 조합원이다. 기존 프랜차이즈들은 가맹점주 간 만나 협의할 일이 없지만 협동조합이 된 보리네는 조합원들이 총회에 모여 사업 방향을 승인해야 한다. 소통에 알력이 있을 만한데, 손 대표는 “협동조합 자체가 의사소통 절차를 잘 규정하고 있어 합의가 원만하다”고 한다.

결국 소통은 ‘관계’더라고요. 협동조합 본사에게 필요한 것은 두 가지에요. 조합원들의 의견을 들으려는 열려있는 마음이 기본이고, 중요한 것은 가맹점주의 의견을 수용할 수 있는 전문성입니다. 가맹점주분들이 갖고 있는 어려움이 뭔지 이해하고, 요구사항을 사업적으로 실현시킬 수 있어야 해요.”

그는 “협동조합이라서 소통이 안 되는 게 아니라 소통하고자 하면 어려운 게 당연한 것”이라며 “직접 지점을 운영한 경험을 통해 가맹점주들이 갖고 있는 어려움을 이해하려 노력하는 중”이라고 덧붙였다. 

조합원들이 운영에 참여하고자 하는 의지도 소통에 한 몫 한다. 2000만 원의 높은 출자금을 감안하고 가입한 조합원들은 그만한 각오와 적극성을 갖고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 

배당 시스템도 가맹점 간 협업의 바탕의 된다. 각 가맹점의 매출이 커지면 전체 배당액의 파이가 커지기 때문이다. 손 대표는 “매출이 높은 지점주가 매출 적은 지점에 컨설팅을 하거나, 새로 들어오는 지점을 위해 오픈 디렉터(현장교육), 슈퍼바이징(정기방문관리) 역할 등을 자처하고 있다”며 “특히 직원 휴무 유연화 등 가까이에 있는 지점들이 협업할 수 있는 일을 계속 고민 중”이라고 기대를 보였다.
 

“공정 프랜차이즈 확대하려면 자금 인센티브 있어야”

손 대표는 "중견 프랜차이즈들에 자금 인센티브가 주어진다면 협동조합으로 전환할 유인이 충분하다"고 말했다. /사진=unsplash.

보리네는 1년 간 기획재정부 간담회 등을 통해 프랜차이즈형 협동조합 활성화 방안을 정부와 꾸준히 논의해왔다. 소상공인 협동조합 활성화 사업 중 협동조합 프랜차이즈 본사를 직접 지원하는 ‘체인형’을 신설한 것이다. 손 대표는 “잘되고 있는 프랜차이즈들은 협동조합으로 전환할 유인이 없다”며 “공정 프랜차이즈를 확대하려면 그만한 인센티브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가 꼽은 가장 필요한 지원은 ‘프랜차이즈형 협동조합 인증제’와 ‘전용기금’이다. 

“비즈니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인력, 자본, 인프라에요. 협동조합으로 전환하는 프랜차이즈들은 이것들이 부족할 수밖에 없는데, 인증제도가 있으면 금융, 광고, 인력 등 모든 외부 자원이 한 번 더 기업을 주목하는 기회가 돼요. 그리고 실제 투자와 금융 지원으로 이어지도록 정부와 민간이 공동 출자한 전용 기금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더 많은 프랜차이즈들에게 ‘협동조합’이라는 길을 알리기 위해서는 자금난을 겪는 프랜차이즈들을 주목해야 해요.”

보리네생고깃간 매장 내부.

보리네의 올 한 해는 브랜드 기반을 구축하고 정비하는 시기였다. 점포 아이덴티티(SI)와 브랜드 아이덴티티(BI)를 새로 확립하고 운영 시스템 전반을 매뉴얼화했다. 불판의 성능도 개선하고 메뉴도 개발하는 등 준비기를 거쳤다. 눈에 띄는 점은 ‘안정적인 직영점을 확보해 가맹점주에게 양도할 자회사’를 만든 것이다. 

좋은 상권에 직영점을 내고 자리가 잡히면 이를 운영하고자 하는 사람에게 양도하는 일을 전문으로 할 자회사를 설립했어요. 처음 시작하는 점주들에게 안정적인 지점을 줘서 실패율을 낮추기 위해서가 기본이고, 가게 운영이 잘 안되는 기존 조합원들에게 양도하기 위한 안전장치기도 해요. 내년에는 조합원도 계속 늘려가고 자회사를 통해 성공적인 직영점 창업 모델 구축의 기반을 만들고 싶습니다."

 

사진 제공. 보리네협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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