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승용 신협중앙회 사회적경제추진기획반 반장.
사진=권선영 이로운넷 에디터

흔히 금융은 ‘자본주의의 꽃’이라 불리며 시장에서 주요한 역할을 해왔다. 여러 사람들이 맡긴 자금을 모아 필요한 기업에 빌려준다는 측면에서는 그렇지만, 때때로 금융은 더 많은 수익을 위해 탐욕적, 약탈적 성격을 드러내기도 했다. 

‘신협(신용협동조합)’은 기존 금융권이 지닌 병폐를 탈피하고, 금융 혜택에서 소외된 서민과 영세상공인 등 사회적경제 약자들을 위해 설립된 비영리 금융기관이다. 1960년 5월 탄생 이후 현재 597만 조합원, 895개 조합, 1645개 영업점을 보유한 국내 대표 금융 협동조합으로 성장했다. 

최근 사회적가치 창출에 대한 각계각층의 요구가 높아진 가운데, 신협에서도 ‘사회적금융 활성화’를 위해 시동을 걸었다. 지난해 10월 경영지원부 내 사회적경제추진기획반을 만들고 사회적경제 기업에 대한 금융 공급을 늘리고, 금리 부담을 낮추고, 사회적경제 기업의 창업을 지원하는 등 박차를 가하고 있다. 안승용 신협중앙회 사회적경제추진기획반 반장을 만나 신협이 추진하는 사회적경제 활성화 방안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사회적경제 약자를 위한 금융을 꾸준히 해왔기에 사회적금융 활성화에 나선 것이 낯설지 않다. 사업 본격화 계기는?

▶2012년 협동조합 기본법이 제정됐을 때 ‘협동조합을 위한 은행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신협이 ‘금융 협동조합’이니까 금융 지원의 역할을 맡았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나왔지만, 여러 어려움 때문에 당시에는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했다. 지난해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이후 ‘사회적경제 활성화’가 국정과제에 포함이 되면서 신협의 역할이 다시 중요해졌고, 이번에는 전담팀이 꾸려져 구체적인 사업계획을 세워 시작할 수 있게 됐다.

금융 분야에서 ‘사회적가치’ 창출은 신협에서 오래 전부터 추구해오고 힘써왔던 내용과 매우 유사해서 크게 무언가를 바꾼다거나 아예 새로운 것을 수행해야 하는 건 없었다. 사회적경제 활성화를 위한 사업 계획을 세울 때도 전국 임직원들의 동의를 얻어내는 게 어렵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신협이야말로 사회적금융을 가장 자연스럽게 실천할 수 있는 기관이라 생각한다.

전국 각지의 '거점 신협'을 통해 지역 내 사회적경제 조직의 파트너 역할을 수행한다.
사진제공=신협중앙회

-여타 금융기관에서도 ‘사회적금융 활성화’에 나서고 있는데, 신협과의 차이점은?

▶사실 금융업무 면에서는 다른 금융기관과 똑같다. 그러나 신협은 협동조합이기 때문에 운영방식이나 철학 면에서 협동조합의 원칙을 그대로 따른다. 협동조합이 자본주의 폐단에 대한 대안 역할을 하기 때문에 사회적기업, 협동조합, 마을기업 등 사회적경제 기업들이 추구하고는 목표나 가치가 신협과 일치한다고 생각한다. 

또 다른 한 축은 그동안 신협의 자산이 늘이나고 몸집이 커지면서 ‘다른 은행과 다른 게 무엇이냐’라는 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받아왔다. 1997년 IMF 사태 당시 모든 금융기관이 구조조정 요구를 받았는데, 신협 역시 담보대출을 위주로 하면서 재무 구조를 개선하고 경영 안정성을 확보하는 게 급선무였다. 이번 사회적금융 활성화 사업이 ‘서민과 소상공인을 위한 금융인가’라는 신협의 정체성에 대한 비판을 해소하는 데도 도움이 될 거라 본다. 

-신협의 대표적인 ‘사회적금융’ 추진 사업을 소개해달라.

▶사회적경제 활성화 위해 연간 1000억원을 공급하기로 했다. 영세한 사회적경제 기업들의 상황을 고려해 금리 부담을 최대한 낮추는 방안을 첫 번째로 생각했다. 지난달 22일부터 신용대출은 3.5% 내외, 담보대출은 3.0% 내외로 대출이 가능하다. 다른 은행에서는 신용보증기금이 보증할 경우 그 보증서를 담보로 3.5%, 보증료 0.5%를 더해 보통 4% 정도로 대출해주는 것이 가장 낮은 금리인데, 신협에서는 이보다 낮게 자금을 빌릴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대출을 심사할 때도 단순 재무제표상 실적이 아닌, 일자리 창출이나 취약계층 고용 등 사회문제 해결 및 혁신성?성장성 등을 볼 수 있는 ‘사회적가치 평가표’를 운영하고 있다. 지역 내 사회적경제 조직의 금융 파트너 역할을 할 거점 신협 137개를 지정하고, 간접적으로 사회적경제 기업에 지원을 원하는 개인, 기업을 위해서 ‘사회적예탁금’을 출시하기도 했다.

신협은 청년 협동조합 창업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해왔다.
내년부터는 전국으로 확대 시행할 계획이다. /사진제공=신협중앙회

-사회적경제 활성화 사업도 다양한데, 이를 통해 기대하는 점?

▶사회적경제 생태계 조성을 위해 내년부터 전국 단위로 사회적경제 기업의 창업을 지원할 계획이다. 준비자금 대출, 공간 공유, 판로 확대, 컨설팅 지원 등의 방식이다. 또 사회적경제 기업들이 어려워하는 회계?세무 분야를 도울 프로그램 ‘씨유 비즈 쿱(CU-biz COOP)’을 무료로 공급하고, 국토교통부와 도시재생 뉴딜 사업을 함께 진행해 마을관리 협동조합 운영을 지원하기로 했다.

사회적경제 조직들이 사업 초기 단계인 곳이 많아 지금은 영세해 보이지만, 향후 5~10년만 지나면 많이 달라져 있을 거라 기대한다. 금융기관 입장에서 성장 가능성이 큰 기업이 우리 고객이 되고, 신협이 금융 공급자가 돼 상생모델을 만들 수 있다면 ‘윈윈(win-win)’ 하는 거라 생각한다. 지역사회에 좋은 영향을 끼치고 양극화를 해소하고 일자리를 만드는 등 사회적경제 기업이 만드는 긍정적 효과가 신협이 기본적으로 추구하는 목적과 맞닿는다는 ‘원론적 측면’이 강하다. 그러나 신협 역시 사업적 목적을 빼놓을 수 없으니, 수익 창출이라는 ‘세속적 측면’도 함께 만족시키는 것이다.

-올해 들어 ‘사회적금융’에 대한 관심이 특히 높아졌는데, 풀어야 할 과제는?

▶현재 사회적경제 기업에 대한 지원은 획일적, 통합적 방식이 대부분이다. 비교적 낮은 대출 금리인 3.0~3.5%도 부담스러운 초기 단계 기업을 위한 지원과 제법 괜찮게 이익을 내는 성장 단계의 기업을 위한 지원은 서로 달라야 한다. 초기 단계 기업에 대해서는 보다 과감한 지원을 해주고, 성장기에 접어들어 어느 정도 금리를 부담할 수 있는 기업은 적정 수준을 낼 수 있도록 각 단계에 맞는 선별적, 맞춤형, 중층 구조의 지원이 필요하다.

두 번째로 사회적금융 활성화 역시 수도권과 지방의 격차가 너무 크다는 점을 꼽고 싶다. ‘수도권과 지방은 천국과 지옥의 차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인데, 서울과 경기 이외의 지방으로는 대부분 물이 흐르지 않는 상황이다. 지방의 중간지원조직들이 물꼬를 트는 역할을 해야 하는데, 그런 조직이 없거나 지역적 편차가 크다. 정부가 올해 출범을 선언한 ‘사회가치연대기금’의 역할 중 하나가 지방에 중간지원조직을 만드는 것인데, 편차가 좁혀지기를 기대한다.

안 반장은 "신협이나 사회적경제 조직들이 '지역'을 기반으로 한다는 면에서 공통점이 있다"며
"협업을 통한 시너지를 내기 위해 먼저 네트워크 형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사진=권선영 이로운넷 에디터

-마지막으로 ‘사회적경제 금융공급자’로서 신협의 목표는?

▶신협은 사회적가치를 창출하면서 재무적 지속가능성도 있는 사회적경제 기업들의 ‘적극적인 금융공급자’가 되고자 한다. 신협 역시 비즈니스를 하는 금융기관이기 때문에 자선이나 기부와 같은 시혜적 방식으로는 사회적경제 기업을 지원할 수 없고, 그런 역할은 정부의 몫이다.

다만 사회적경제 조직을 운영하는 기업가들이 대출하려고 금융기관을 찾았다가 맞닥뜨리는 심리적, 실질적 장벽을 조금이라도 낮추고 싶은 것이 바람이다. 기업가들은 많은 고민과 진정성을 품고 은행의 문을 두드리는데, 금융기관이 사회적경제 조직의 특성을 몰라 재무제표로만 기업을 평가하고 담보를 요구하는 등 창구에서부터 느끼는 소외감을 줄이고 싶은 것이다. 사회적경제 기업가들이 금융기관에서도 무시당하지 않는다는 그 ‘느낌’을 신협이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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