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외출 후 집에 돌아와 보니 현관문 앞에 가로 60cm x 세로 50cm 크기의 제법 큰 박스가 놓여있었다. 짐작은 했지만 생각보다 풍성했다. 상자를 여는데 마치 산타 할아버지가 보낸 선물 보따리를 풀어보는 느낌이 들었다.

커피, 꿀, 명함 지갑, 차, 화장품, 비누, 치약, 칫솔, 바구니, 보조배터리, 팔찌, 종이엽서, 텀블러 등 종류도 다양했다. 이에 앞서 사흘 전에는 멀리 전주에서 사회적기업 천년누리가 우리밀로 빚은 갓 구운 빵을 보내왔고 앞으로 며칠 후면 나무로 만든 볼펜이 배송될 것이다. 서로 아무런 관련이 없어 보이는 이 제품들 간에는 보이지 않는 끈이 있다. 바로 사회적경제란 공통의 배에 올라탔다는 점이다. 

 

사회적경제주체들이 연대해 만든 리워드 패키지 상품

 

이 선물 보따리는 임팩트 투자 플랫폼을 운영하는 사회적기업 비플러스가 협동조합 ‘ 온리’ 에 50만 원이상 투자한 고객들에게 보낸 리워드 상품들이다. 협동조합 온리는 폐종이를 새활용해 종이 엽서를 제작해 판매한다. 종이엽서 안에는 씨앗이 숨어있어 물을 주면 싹이 자라나 '종이정원'이라는 이름이 붙여져 있다.

전통을 살린 제작기법에 친환경, 창의성을 겸비한 덕분에 탄탄한 성장세를 이어온 '온리'는 국내 사드도입에 대한 역풍으로 중국 관광객이 급감하면서 심한 경영난을 겪었다. 이 펀딩은 협동조합'온리'의 재무 구조를 개선하기 위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었다.

대출형 크라우드 펀딩에서 투자자를 끌어모으기 위해서는 2가지  요소가 필요하다. 부도가 나지 않을 것이란 믿음과 고수익이다. 수익률이 낮다면 안전해야 하고 위험을 감수해야만 한다면 이자가 높아야 한다. 자금 회수 기간은 짧을수록 좋다.

하지만 협동조합 온리의 투자 조건은 그 어느 것에도 해당되지 않았다. 고위험에 상대적으로 낮은 이자 그리고 자금 회수는 최장 5년 이다. 펀딩 상세 페이지에는 "이 펀딩은 투자 위험이 높습니다. 내용, 상환조건, 펀딩 이유 등을 자세하게 살펴보는 것을 권합니다"라고 적혀있었다.

투자자가 쉽게 모일 리가 없었다. 5000만 원의 자금을 모으는 펀딩에 첫 일주일 동안 모금한 금액은 20%에 불과했다. 그러자 사회적기업, 협동조합, 지원 조직 등 사회적 경제 주체들이 연대(連帶)라는 이름으로 뭉치기 시작했다. 펀딩뿐 아니라 기사 노출, 종이 엽서 구입, 후원 등 다양한 방식의 도움이 이어졌다. 동료 기업가들은 리워드 상품을 내놓았고 일부는 십시일반의 마음으로 쌈짓돈을 투자하며 마음을 보탰다. 아름다운가게와 LG소셜캠퍼스는 리워드 패키지 구성비용의 일부를 지원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only, 연대> 패키지 상품에 들어가는 물건들은 점점 불어났고 최종 리워드 상품의 숫자는 무려 14개로 늘어났다. 시가 총액으로는 26만 9900원에 이른다. 투자자 입장에선 예상치 못했던 기분 좋은 소득이었다.

3년 전 전주에서 취재차 만난 김명진 협동조합 온리의 대표는 신뢰감을 주는 기업가였다. 인터뷰 내내 한국 전통의 명맥을 이어가야겠다는 자긍심과 ‘ 일자리’ 를 찾아 고향을 등지는 청년들을 비롯해 취약계층을 끌어안고 가려는 진정성을 느낄 수 있었다. 그가 지난 10여년 간 보여준 이같은 신뢰자본은 '연대'라는 이름으로 만개하는 데 밑거름이 됐다.

박기범 비플러스 대표는 펀딩 페이지와 투자자에게 보낸 감사의 편지에서 협동조합 온리의 투자 결정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 어려운 상황이지만 여유시간을 벌어준다면 추후 정상화 가능성이 존재한다고 판단했습니다. 또한 사회적 경제 분야, 특히 친환경 분야에서 오랫동안 꾸준히 활동해온 김명진 대표 개인이 지닌 진정성과 잠재력을 높이 평가했습니다. 모집이 쉽지 않으리라 예상했고 우리가 감당해야 할 리스크가 걱정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늘 이야기하는 임팩트 투자. 사회적 금융의 의미와 우리의 역할을 돌아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나눔과 공생이 목적인 사회적 경제 안에서 기업 또는 개인이 처한 최악의 상황을 모면해 줄 수 있는 기회가 조금이라도 있다면 그 기회를 살리는 일이 비플러스가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펀딩은 성공리에 끝났고 연대의 힘과 소중함을 일깨워 준 <only, 연대 패키지> 리워드 상품 배송도 거의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김 대표는 "앞으로 긴 터널을 지나야 겠지만 정성을 다해 헤쳐 나가겠다"며 " 큰 도움 잊지 않겠다"는 감사의 메시지를 남겼다.  각자가 소중하다고 여겨지는 가치를 위해 십시일반 형평껏 보여준 성의 표시들이 보다 나은 내일로 되돌아오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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