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동청년 협업촉진 컨퍼런스 ‘버팀[벗+힘]’이 열린 용산구 N90센터.

지난 10월 26일. 용산구 N90센터 지하 1층의 천장에는 호박이 주렁주렁하다. 입구에서 손님을 맞이하는 이는 해골이다. 할로윈 분위기다. 저승에서 협동청년들을 응원하기 위해 간식을 준비했다. 

“네 가지 게임을 다 통과해야만 받을 수 있답니다. 참,참,참!” 

시작부터 화기애애한 이 곳, ‘버팀[벗+힘]’은 협동(조합)하는 청년들이 상호교류와 협업을 위해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해결방안을 모색하는 자리로 마련됐다. 버팀[벗+힘]은 친구(벗)와 서로 힘이 되어주며 버티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행사를 주최한 서울시협동조합지원센터, 신나는조합, 한국대학생활협동조합연합회, 아카데미쿱 관계자들 외에도 협동조합 조합원과 중간지원조직 등 다양한 사회적경제 분야 관계자들이 이날만은 나이에 관계없이 ‘협동청년’으로 모였다.

“협동조합을 멀리서 봤을 때는 멋있고 이상적이지만 내부 활동을 하다보면 생각과 다른 실상에 실망하는 부분이 있고 힘들다. 하지만 ‘나만 이런 고민을 하는 게 아니라 다른 협동조합들도 마찬가지구나’하고 공감하게 되면 다른 사람들과 문제를 함께 해결할 의지가 생기고, 또다시 현장에 돌아가 부딪힐 힘을 얻는다. 이 자리가 그런 자리가 됐으면 좋겠다.” 김보하 서울시협동조합지원센터장의 격려다. 
 

‘대학 시간강사는 무엇으로 존재하는가?’ 문제의식 공유로 작가의 길 오르다

김민섭 작가.

청년들이 고민을 나누기 전 인문학협동조합 소속 김민섭(‘나는 지방대시간강사다’, ‘대리사회’ 저자) 작가가 자신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모두 연결돼있다’는 주제를 협동청년들에게 전달했다. 내가 겪는 문제가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대학에서 시간강사로 일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한 청혼에 붙인 조건은 다름아닌 혼인 신고를 하지 말자는 것. 혼인신고로 세대가 분리됨으로 인해 부과해야 하는 건강보험료는 4대보험 보장이 안 되는 월급 80만원 시간강사에게 너무 큰 부담이었기 때문이다. 동료 강사들에게 이를 이야기했더니 돌아온 반응은 “여기 혼인신고한 사람 아무도 없어”였다. 

혼인신고를 하지 못했어도 신혼집은 마련해야 했다. 대출을 하려면 상환능력을 증명해야 했지만 시간강사는 대학에서 ‘재직증명서’를 발급받을 수 없었고 결국 빈손으로 나와야만 했다. 그리고 아이가 태어나자 정말 4대 보험을 보장받아야겠다는 생각에 일주일에 3일 맥도날드에 출근하기 시작했다. 

“가장 합리적으로 상식적일 거라고 흔히 기대되는 ‘대학’이 왜 나의 노동을 사회적으로 인정해주지 않는지 회의가 들었습니다. 이 얘기를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렸는데, 많은 분들의 공감을 샀어요. 한 대학 시간강사는 ‘내 이야기를 대신 해줘서 고맙다’는 댓글을, 모 대기업에 다니는 사람은 ‘내 삶도 다르지 않다’는 댓글을 달았습니다. 그 때 느꼈죠. 아, 이게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 ‘나와 닮은 우리 모두의 문제’구나.”

이를 계기로 탄생한 책이 ‘나는 지방대시간강사다’다. 이어 그는 “개인적인 슬픔은 곧 사회적인 슬픔일 수 있다”며 “주체적인 문제의식을 잃지 않고 공통의 문제를 발견하기 위해 끊임없이 의구심을 가지라”고 메시지를 전했다.
 

슬픔과 고민은 나누면 반이 된다잖아요?

김민섭 작가의 강의에 이어 협동청년들이 현장에서 느끼는 고충을 나누고 공감하는 테이블 컨퍼런스가 이어졌다. 
‘협동과 연대’ ‘워라밸’ ‘나는 왜 협동조합을 하는가’ ‘행정, 현장과의 밀당’ ‘협동조합에 협동이 있나?’ ‘지속가능성’ ‘자유주제’ 등 7개의 테이블로 구성됐으며 테이블 배정은 사전조사를 통해 이뤄졌다.

청년들의 고민이 적힌 포스트잍.

청년들이 크게 공감한 문제 중 하나는 실제로 ‘협동’이 일어나지 않고 있다는 것이었다. 협동조합 조직구성과 가치에 대한 조합원들의 이해도가 낮고, 조합원 간 역할이 불분명하다는 문제가 제기됐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협동조합 내부에서 정체성을 제고하는 교육을 진행하고 조합원들이 협동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경험을 직접 해보는 것을 통해 조합원들의 ‘주인의식’을 키우는 것이 필요하다는 얘기가 오갔다. 

참여자들은 협동하기에 녹록치 않은 현실을 토로하기도 했다. 

조합원들이 실무에 정말 참여하려면 제대로 돈을 줘야 하지 않겠나”
“그런데 실상은 ‘보상 없는 협동’이니 동기부여가 안 될 수밖에 없죠...”

‘협동과 연대’ 테이블에서 오간 대화다. 그들은 낮은 임금 수준을 해결하기 위한 움직임으로 ‘정부규제 완화’ ‘협동조합의 정책옹호 강화’ ‘대기업과 연대’ ‘안정적인 사업모델 확보’ 등 다양한 의견을 내놨다. 

“협동하기엔 실무가 너무 많고, 일이 잘 되기 위한 실무자는 부족하다”는 한 참여자의 말도  다른 이들에게 큰 공감을 샀다.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인력이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인력의 질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협동조합 등 사회적경제 기업 실무에 관한 대학원 과정 확대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1년에 가족을 3번 만나고, 집안일은 밀려가고, 업무연락은 끊이지 않고...’

일과 개인의 삶을 얼마나 떨어뜨릴 것인지 ‘워라밸’에 대한 논의도 뜨거웠다. 
“나 자신이 주체적으로 행복을 찾고, 온전히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시간이 없으면 결국 일에 대한 신념이 무너지는 것 같아요. 단기적으로는 버틸 수 있을지 몰라도 ‘10년 후 이 일을 하고 있는 내 모습을 그려볼 수 있느냐’까지 워라밸의 범위로 포함해야 하지 않을까요?” 심우열 아카데미쿱 이사장의 고민이다. 
또다른 협동조합 실무자도 이에 공감하며 “일을 더 할 수 있음에도 ‘나’를 잃지 않기 위해 멈추는 것과 일의 진행을 위해 자신을 더 채찍질하는 것 사이에서 균형을 찾기가 참 어렵다”고 말했다. 

“내가 ‘업무시간 끝나서 연락 안돼요’ ‘더 이상 일을 맡을 수 있는 컨디션이 아니에요’라고 말 할 수 있는 상황이었는지 돌아보니 시간 여유가 없어서 그렇지 않았다”며 현실적 어려움을 설명했다. 

이외에도 청년들이 각자 자신이 일하는 분야에서 겪은 다양한 고충이 쏟아졌다. <행정, 현장과의 밀당> 테이블에서는 사회적경제 중간지원조직 관계자가 “10원 단위까지 예산 산출근거를 맞추는 데 시간이 너무 낭비된다”는 고질적인 비효율을 토로했다. 또, 가이드협동조합 등 프리랜서 협동조합의 구성원들은 ‘프리랜서’의 4대 보험 보장 등 사회보장제도권 진입이 필요하다는 의견에 입을 모았다. 

'협동과연대' 테이블이 그들이 생각한 '협동이 안 되는 이유'를 발표하고 있다.

우리는 속으로 앓고 있던 문제를 누군가에게 털어놓는 것만으로도 위로를 받는다. 비슷한 지향점을 두고 달려가는 이들 간에는 더욱 그렇다. 1시간 반 동안의 짧지 않은 테이블 토론이었지만 문을 나서는 참여자들의 얼굴이 시작 전보다 밝다.

서울시협동조합지원센터는 이 날 공유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실현 가능한 방안을 찾기 위해 오는 22일 각 테이블 진행자들과 희망자가 모여 후속간담회를 열 예정이다.
 

사진제공. 서울시협동조합지원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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