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과 일상의 균형’을 맞추는 삶, ‘워라밸(워크라이프밸런스)’이 사회의 큰 흐름이 됐다. 그렇지만 직장 속 개인이 여전히 워라밸을 위해 각오 아닌 각오가 필요한 현실. 물론 기업이 워라밸을 보장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서울 은평구 혁신파크에 입주한 커피직원협동조합 ‘이피쿱(이사장 최연식)’은 그래서 한 번 더 주목받는다.

이피쿱은 스스로 협동조합이면서도 ‘적정기업’을 강조한다. 적정기업은 워라밸을 조직차원에서 보장하기 위해 ‘적정기술(표준화한 기술이 아니라 문화, 정치, 환경 등을 고려해 만든 기술)’이라는 단어를 차용해 만들었다. ‘적정한 노동, 적정한 이윤, 적정한 보수’를 지향한다는 의미다. 지금 많이 사용하는 워라밸이라는 단어는 회사를 만들 당시에는 없었다. 협동조합으로 기업을 운영하면서도 적정기업의 룰을 꼭 지키겠다는 의지를 천명한 것이다.

이피쿱은 공정무역 원두를 사용하는 커피 사업 중심이지만, 커피 원두만이 아니라 먹거리 전반을 고민한다. 이피쿱은 혁신파크 50플러스서부센터 1층 ‘모두의 카페’와 미래청 ‘협동상회’를 운영하고 있다. 

이피쿱 협동조합 매장 내부. /사진=최범준 청년기자.

최연식 이사장은 이피쿱을 설립하기 전부터 공정무역 분야에 몸담았다. 그는 2013년 8월 협동조합을 설립하기 전 공정무역 원두를 취급하는 회사에서 근무한 것. 

“회사 안에서는 하고 싶은 일을 하기 힘들었어요. 직접 해보자는 마음으로 뜻 맞는 사람들과 이피쿱을 만들었죠.” 이피쿱은 현재 6명이 함께 일하고 있다.

이피쿱 그 이전부터 이어져온 공정무역에 대한 그의 관심은 원두에 그치지 않고 다른 재료들에도 적용된다. 녹차라떼의 녹차 본연의 맛을 내기 위해 공장제 가루녹차 대신 제주도에서 직접 재료를 공급받는다. 생강청 진액을 공수해 진저라떼 맛을 더하려 노력하는 게 대표적이다. 일부 손님들이 낯설어 하기도 하지만, 대다수 손님들은 ‘다른 맛이 나고, 맛이 좋다’는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다고 한다.

그 중 유자차는 먹거리를 대하는 이피쿱의 태도를 잘 보여준다. 11월 즈음까지 판매를 중단했다. 유자청을 구입하는 경남 남해 현지에 물량이 떨어져서다. 

“재료가 떨어지면, 다른 곳에서 재료를 구해 유자차를 판매할 수 있긴 해요. 하지만 이피쿱만의 재료와 레시피가 있기 때문에 원재료를 유지하고 싶었어요.” 

가능한 좋은 먹거리를 만드는 마을기업, 협동조합 등과 함께 일하고 있다는 최 이사장은 손님이 특정 재료 구입을 원하면 해당 제품을 만드는 협동조합을 소개해 준다고 한다. 다른 협동조합의 홍보대행 역할까지 하는 셈이다.

이피쿱의 이런 선택은 ‘식품정의’를 중시하기 때문에 가능하다. “누구나 좋은 재료, 좋은 식품을 접할 수 있어야 해요. 사람들에게 좋은 음식을 알리고 소개하면서 음식 접근권을 강화하는데 기여하고 싶은 마음이 크죠.” 

최 이사장은 이피쿱의 공정무역을 “식품정의 실현 방법 중 하나”라고 말한다.

더불어 이런 고집은 소비자에게 ‘신뢰’라는 재료를 더하는 것이기도 하다. 소비자도 재료를 고민하고 따지지만, 모든 음식에 관심을 두기는 힘들다. 이에 판매자를 ‘신뢰’함으로써 음식과 재료 고민을 덜어낼 수 있다. 우리가 음식에 지불하는 비용에는 판매자에 대한 신뢰가 함께 담겨있다고 봐야 한다.

“일반 프랜차이즈에서 직원 교육을 하면 ‘시럽을 몇 번 펌핑해라, 휘핑을 어느 정도 사용하면 된다’는 식으로 가르쳐요. 공장제 제품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이런 거 대신 저희가 직접 만들거나, 더 좋은 먹거리를 구해서 사용하려고 해요” 

최연식 이피쿱 이사장 /사진=최범준 청년기자.

재료에 대해 항상 고민한다는 최 이사장은 “카라멜 마키아또를 만들면 카라멜 시럽대신 카라멜을 직접 사용하면 어떨까? 핫초코 만들 때 직접 초콜릿을 녹여서 사용하면 어떨까? 하는 식으로 이리저리 고민하고, 실천에 옮겨 본다”고 말한다. 

손이 많이 가겠다는 질문에 최 이사장은 “당연히 손이 더 간다”면서도 할 수 있는 한 좋은 먹거리로 손님들께 음료와 음식을 대접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고 답했다. 가르칠 게 많아 직원을 채용할 때도 아르바이트보다는 정직원 일자리를 만들려 노력한다고 밝혔다.

혁신파크에 자리하기 까지 이피쿱은 케이터링 서비스를 제공했다. 현재는 매장 관리에 치중하고 있어 초창기만큼 케이터링을 많이 나가지는 않는다. 월 1~2회 정도 케이터링을 나가는 대신 매장에서 원데이클래스를 통해 일반 시민들에게 커피 관련 지식을 알리고, 기술을 체험할 수 있도록 한다.  
 
현재 이피쿱의 사무, 대외업무는 최 이사장이 혼자 담당하고, 다른 직원들은 매장관리를 맡고 있다. 혼자하기 때문에 조심스럽고, 힘에 부치는 일들도 많다는 그는 “내실을 다지는 기간”이라 말했다. ‘소셜 프랜차이징’은 이피쿱이 다진 내실을 기반으로 앞으로 이루고 싶은 일이다. 

프랜차이즈 가맹문제는 한국사회에서 민감한 주제다. 새로운 프랜차이즈 모델을 만들기 위해 이미 한차례 시도했었다고 한다. 

“소셜 프랜차이징을 위한 단체 설립까지는 진행했는데, 흐지부지 돼버렸어요. 단체를 크게 만들기만 하면 세부 내용들이 이뤄지겠다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죠.”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모였기 때문에 의견을 수렴하기 힘들었다는 최 이사장은 “앞으로 소셜 프랜차이징을 시도한다면 같은 이해관계를 가진 곳과 먼저 의견을 모으고, 이 후 모임이 다른 조직과 의견을 수렴해가는 방식으로 조금씩 크기를 키워 보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는 아직까지 소셜 프랜차이징을 명확하게 정의하기는 힘들다고 말한다. 

“당장은 ‘그게 어떻게 프랜차이즈인가’라는 의문이 들겠지만, 조금씩 시도하고 방법을 찾아가면 현재 프랜차이즈 문제를 해결하는데 기여하는 대안으로 자리할 수 있을 거로 봅니다.”

기업모토 적정기업을 워라밸이 사회적 화두가 아닐 때 만든 것처럼, 한국사회에서 아직 생소한 소셜 프랜차이징을 가장 먼저 설명하는 사례를 만드는 게 그의 꿈이다. 식품정의를 대하는 진정성으로 똘똘 뭉친 이피쿱의 미래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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