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이 '양심적 병역거부'가 병역법 제88조 제1항의 '정당한 사유'에 해당한다고 사상 처음 판단했다.

대법원이 종교적 신념 등을 이유로 입영을 거부하는 ‘양심적 병역거부’가 형사처벌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인정했다. 정당한 병역거부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유죄를 선고한 2004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14년 만에 뒤집혔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1일 병역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여호와의 증인 신도 오모(34)씨의 상고심을 진행했다. 대법관 다수 의견으로 징역 1년 6개월 유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창원지법으로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양심적 병역거부가 병역법 제88조 제1항의 ‘정당한 사유’에 해당하는지에 대해 “개인의 양심과 종교적 신념을 근거로 병역을 거부하는 것은 형사처벌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봤다. 대법원이 ‘양심적 병역거부’가 병역 거부의 정당한 사유에 해당한다고 본 첫 판단이다.

피고인 오씨는 지난 2013년 7월 현역 입영통지서를 받고도 입영일로부터 3일이 지나도록 입영하지 않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그는 여호와의 증인 신도로 “종교적 양심에 따라 입영하지 않았으며, 병역법에서 정한 정당한 사유가 있다”고 주장했다.

현행 병역법 제88조 1항은 현역 입영 또는 소집 통지서를 받은 사람이 정당한 사유 없이 입영하지 않거나 소집에 불응하면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1심에서는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는 정당한 입영 기피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징역 1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2심에서도 “종교적 양심에 따라 현역병 입영을 거부하는 것이 병역법 88조 1항의 정당한 사유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며 1심과 같이 유죄로 판단했다.

13명 중 4명의 대법관은 국방의 의무와 안보현실을 근거로 형사처벌이 유지되야 한다는 반대의견을 내놨다.

그러나 대법원 판결에서는 김명수 대법원장 등 대법관 13명 중 9명의 다수의견으로 “양심적 병역거부를 형사처벌 해서는 안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국가가 개인에게 양심에 반하는 의무 이행을 강제하고 형사처벌 등 제재를 가하는 것은 기본권에 대한 과도한 제한이 되거나 본질적 내용에 대한 위협이 될 수 있다”며 “이 경우 형사처벌 등 제재를 감수하지 않는 이상 내면적 양심을 포기하거나 자신의 인격적 존재 가치를 파면시켜야 하는 상황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재판부는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은 병역의무 불이행에 따른 어떤 제재도 감수하겠다며 이를 거부하고 있다”며 “집총과 군사 훈련을 수반하는 병역의무를 강제하고 형사처벌을 하는 것은 양심의 자유에 대한 과도한 제한이 되거나 위협이 된다고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다만 13명 중 4명의 대법관은 국방의 의무와 안보현실 등을 근거로 형사처벌이 유지되야 한다는 반대의견을 내놨다. 김소영·조희대·박상옥·이기택 대법관은 “양심적 양병역거부는 병역법 제88조 1항의 ‘정당한 사유’ 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개인적인 신념이나 가치관, 세계관 등과 같은 주관적 사정은 정당한 사유로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들 대법관들은 “세계 유일의 분단국으로서 그 어떤 나라와도 비교할 수 없는 우리나라의 엄중한 안보상황, 병역의무의 형평성에 관한 강력한 사회적 요청 등을 감안하면, 양심적 병역거부는 인정될 수 없다”며 “기존 법리를 변경하여야 할 만한 명백한 규범적?현실적 변화도 없다”는 의견을 덧붙였다.

대법원 측은 이번 판결의 의의에 대해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하고, 병역법 제88조 1항의 처벌조항에서 규정 하는 정당한 사유의 해석론을 판시한 최초의 판결”이라고 평했다. 

헌법재판소가 지난 6월 28일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대체복무제를 마련해야 한다는 결정을 내리고, 이번에 대법원에서도 양심적 병역거부는 형사처벌 대상이 아니라는 판결이 나오면서 향후 진행될 양심적 병역거부 사건들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31일 기준 대법원에 계류 중인 관련 사건은 227건이다.

사진제공. 대법원, 국제엠네스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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