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0년대 미국, “콩으로 고기와 치즈 맛을 낼 수 있다”고 주장하는 중국인 여성이 나타났다. 중국 출신 의사이자 유명 영양사였던 금윤미였다. 대두(콩)는 동양에서 두부 등 각종 요리로 활용됐지만, 당시 미국인들은 단지 사료나 거름으로 취급했다. 미 농무성은 금윤미에게 요청으로 중국으로 건너가 대두가 어떻게 미국에서 음식으로 활용될 수 있는지 연구해달라고 부탁했다.
뉴욕타임즈(NYT)는 “‘중국인 배척법(Chinese Exclusion Act)’을 시행했던 미국에서 금윤미가 커리어를 이어갈 수 있었던 건 대단한 일”이라고 평했다. 중국인 배척법은 미국에 중국인 노동자가 많이 이주해오면서 미국인들의 반중 감정이 커지자 1882년 체스터 아서 대통령이 서명한 법률이다. 숙련·비숙련 노동자와 광산에 고용된 중국인들이 10년간 입국하지 못하도록 배제시킨 법으로, 몇 차례 개정을 거치고 1943년 폐지됐다.
금윤미는 1864년 중국 동부에 있는 항구 도시 ‘닝보(寧波)’에서 태어났다. 그는 2살 때 전염병으로 부모를 모두 잃어 남동생과 함께 미국인 선교사 가족에 입양됐다. 양아버지 맥카티는 선교사를 그만두고 중국 상하이에서 미국 영사관에 소속돼 일했다. 또한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 대학에서 자연과학을 가르치는 교수로도 재직했기 때문에 금윤미는 어린 시절 대부분을 중국과 일본에서 보냈다.
1880년 가족이 미국으로 이사해 금윤미는 고등학교를 뉴욕에서 다녔다. 졸업 후 뉴욕 여자의과대학(Women’s Medical College of New York)에 입학했는데, 본명인 ‘Yamei Kin’이 아닌 ‘Y. May King’이라는 이름으로 등록했다. 연구원들은 이에 대해 그가 중국인이라는 사실을 가리기 위해서였다고 해석한다.
NYT는 “금윤미의 지인 야로슬라프 프루섹이 쓴 회고록 ‘나의 중국인 자매’에 금윤미가 “길거리에 노동자들이 내게 욕설을 퍼붓고, 내 동기들도 나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라고 말한 부분이 있다“고 전했다. 동양인 여성이 19세기 미국에서 마주했던 현실이다.
1885년 금윤미가 대학을 졸업할 때, 아이오와 지역신문이었던 ‘섬너 가제트’는 금윤미에 대해 “미국에서 중국인 여성으로서는 처음으로 의학박사 학위를 받았다”고 소개했다. 그는 2년 후 뉴욕 의학 저널현미경 사진 촬영을 의학 연구에 활용하는 방안에 대해 극찬하는 글도 실었다.
NYT에 따르면 금윤미는 미국에서 여성 동호회에 참가해 콩으로 만든 음식들이 어떻게 고기를 대체할 수 있는 지에 대해 설명하곤 했다. 1917년 미 농무부 요청으로 중국에 콩 음식을 연구하러 가게 됐을 때, 그는 NYT 매거진과의 인터뷰에서 “미국인들은 대두를 어떻게 활용하는지 모른다”며 “미국인들이 먹게 하려면 맛있는 음식으로 만들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중국에서 돌아온 그는 미 농무성 실험실에서 두유, 두부 등 미국인의 입맛에 맞는 콩 요리를 개발하는데 매진했다.
금윤미는 미국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그는 의료 선교사로 중국과 일본을 오갔으며, 중국 임페리얼 페이양 여자 의과 대학을 운영하고 간호학교를 설립했다. 또한 1920년부터는 베이징에 살며 노후를 보냈고 1934년 70세 되던 해 폐렴으로 사망했다.
중국인에 대한 반감이 어느 때보다도 심했던 미국 사회였지만, 금윤미는 ‘초국가적 엘리트’로 분류돼 대접받았다. NYT에 의하면 루즈벨트 대통령이 1904년 금윤미를 미국 시민권자로 만들어주지 못해 유감이라고 직접 그에게 서신을 써서 보낼 정도였다. 1897년 미 농무성 ‘외래 종자·식물 도입부’의 책임자였던 데이비드 페어차일드는 훗날 그의 책에서 “금윤미 박사는 콩에 대한 열정으로 우리 모두를 사로잡았던 비범한 중국 여성이었다”고 회고했다.
자료출처:
https://www.nytimes.com/2018/10/17/obituaries/yamei-kin-overlooked.html
http://www.soyinfocenter.com/books/192
https://www.smithsonianmag.com/history/chinese-born-doctor-who-brought-tofu-america-180969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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