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동조합 2.0 시대-기본법 5년 현주소] 끝. “경쟁에서 협동…사회 패러다임 바꿀 수 있다”
[협동조합 2.0 시대-기본법 5년 현주소] 끝. “경쟁에서 협동…사회 패러다임 바꿀 수 있다”
  • 양승희 기자
  • 승인 2018.10.29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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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우 서울지역협동조합협의회 대표 “국감서 당사자 의견 전달 ‘3법’ 통과 가능성 반반”
“공무원‧국민‧당사자 교육 필요, 지방정부에 권한‧예산 내려 지역특색 맞는 사업 개발해야”
“현재는 과도기, 규모화 단계서 ‘정체성’ 잃지 말아야…협동조합 간 협동도 중요 과제”
2012년 12월 ‘협동조합 기본법’이 시행된지 5년이 지났다. 5명만 모이면 누구나 설립 가능하다는 조항에 덕분에 그동안 전국에 1만개 넘는 협동조합이 생기며 ‘붐’을 이뤘다. 일자리 창출, 취약계층 고용, 지역사회 기여 등 긍정적 영향을 미쳤지만, 복잡한 행정과 미흡한 법 때문에 운영에 어려움을 겪는 이들이 많다. 설립만 해놓고 사실상 미운영‧폐업 상태인 협동조합도 절반 수준에 달한다. 사회적경제 활성화에 적극적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기본법 개정 및 인식 개선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현 상황의 핵심 쟁점들을 짚어본다.
유영우 서울지역협동조합협의회 대표를 만나 건강한 협동조합 생태계 구축 방법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유영우 서울지역협동조합협의회 대표를 만나
건강한 협동조합 생태계 구축 방법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사진=권선영 에디터

‘서울지역협동조합협의회 대표, 논골신용협동조합 이사장, 한국사회적경제연대회의 공동대표, 성동살림경제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한겨레두레협동조합연합회 감사, 주거실현을위한국민연합 상임이사….’ 

유영우 대표에게 건네받은 명함에는 현재 그가 맡은 직함 여러 개가 나열돼 있었다. 유 대표는 토론회, 포럼, 출범식 등 협동조합에 관련한 주요 논의가 오가는 자리에 늘 참석해 좌장을 맡아 토론을 이끌거나 정책‧제도 개선에 대한 발언을 하기도 한다.
 
지난 18일에는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의 기획재정부 국정감사에 서형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제안으로 참석했다. 유 대표는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에게 협동조합 활성화를 위해 앞서 토론회 등을 통해 수렴한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전했다. 유 대표를 만나 국내 협동조합 생태계가 건강하게 구축되기 위해 필요한 과제는 무엇인지 들어봤다.

유 대표는 지난 18일에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부 국정감사에서 협동조합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전했다.
유 대표는 지난 18일에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부 국정감사에 참석해
협동조합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전했다./사진=서형수 의원 페이스북

-협동조합 한 우물만 파셨습니다. 협동조합과 인연을 맺은 계기를 말씀해 주시죠. 최근 달라진 사회적 분위기를 실감하나요?

▶성동구 행당동에 사는데 30년 전 해당 지역이 재개발될 때 도시빈민 문제가 생기면서 ‘주거권 운동’을 시작했어요. 그때 주민들과 힘을 모아 문제를 해결해 나가면서 공동체의 힘을 느꼈죠. ‘우리 스스로 삶의 질을 바꿀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를 고민하다가 협동조합을 떠올렸고, 지역 내 신협, 생협 등을 설립해 운영하게 됐어요. 

꽤 오랜 시간 협동조합 분야에 몸을 담아왔는데, 특히 요즘 사회적경제 분야 전반에 우호적 분위기가 생기고 있다는 걸 체감해요. 문재인 정부에서 100대 국정과제로 사회적경제 활성화를 포함했고, 6월 지방선거 이후에 사회적경제에 우호적인 자치단체장이 여럿 당선되면서 확실히 흐름이 바뀌고 있어요.

- 그럼에도 기본법 시행 후 설립된 협동조합 1만4000개 중 절반이 미운영 상태입니다. 부실하다는 평가가 나오는데요.

▶절반은 운영된다는 점에서 그래도 ‘긍정적’이라고 봅니다. 일반 소상공인도 창업해서 폐업하는 비율이 80%를 넘을 만큼 경제 전반적으로 어려운 상황이잖아요. 협동조합이 아직 역사도 짧은 데다 여러 진입장벽이 높고 역차별적 법‧제도도 많은 상황에서 50%라도 운영되는 것은 나름대로의 성과라고 생각해요. 올해부터가 딱 ‘과도기’라고 보는데, 향후 2~3년간 살아남을 곳은 남고 정리될 곳은 사라질 거라고 보고 있어요.

과도기 이후에는 살아남은 협동조합을 중심으로 ‘어떻게 성장‧발전시킬까’를 고민해야 합니다. 설립에서 규모화‧안정화 단계로 넘어가면 우리 경제의 영역 속에 어느 정도 중요한 포지션을 차지할 거예요. 현재는 전체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극히 적지만, 조직과 영향력이 커지면 자본주의  경쟁 위주의 사회에서 서로 협동하는 사회로 나아가는데 기능적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해요. 사회 전체의 패러다임을 변화하는데 협동조합이 기여하는 것이죠.

- 이번 국정감사에서 김동연 부총리에게 어떤 것을 제안했나요?

▶협동조합 직간접 관계자들이 협동조합 기본법 개정과 관련해 토론회, 포럼 등을 열어 의견을 모았어요. 지난 4일 국회도서관에서 열린 ‘2018년 협동조합 제도 개선 과제토론회’에서 당장 시급한 10대 과제를 선정했습니다. 서면투표‧전자투표제도, 성립정족수 불산입제도, 해산간주‧해산명령제도 도입 등인데, 제도 개선이 왜 필요한지에 대해 부총리에게 의견을 전달했습니다. 

현재 전국에 1만4000개 협동조합이 운영되고 있지만, 50% 정도는 사업을 안 하거나 못하고 있는 상황이거든요. 이러한 원인이 어디서 오는지를 분석하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법과 제도 개선 사항을 정리한 겁니다. 협동조합으로 사업을 할 때 다른 법인과의 역차별 문제도 있고, 세금이나 정부 지원 등에서 진입장벽도 높거든요. 이러한 부분을 해결해야만 건강한 생태계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 당사자들의 입장입니다.

- ‘사회적경제 3법’ 등 활성화 법안 통과에 대한 목소리도 높은데요?

▶2013년 발의된 이후 5년째 국회에서 계류 중인데, 이번 국회에서 통과될 가능성은 ‘반반’이라고 생각해요. 사회적경제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고 있지만, 여전히 다른 법안에 비해 우선순위가 높지 않은 게 사실이거든요. 10월 국정감사가 끝나고 나면 사회적경제 진영에서 기본법 통과를 위한 여러 활동을 하려고 준비 중이에요. 정당에 요구를 하든 캠페인을 하든 이번 국회에서 통과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힘을 모아야죠. 전 지구적 흐름이 사회적경제 쪽으로 기울고 있으니, 좋은 결과를 기대해보려고 합니다.   

유 대표는 협동조합 법, 제도 관련 개선이 필요한 토론회 등에서 좌장을 맡아 의견을 수렴한다.
유 대표는 협동조합 법, 제도 관련 개선이 필요한 토론회 등에서 좌장을 맡아 의견을 수렴한다.
/사진=서울시협동조합지원센터

- 개점휴업 협동조합을 줄이고, 지속성장을 위한 정책 방향은 어때야 할까요?

▶ 관심은 높아졌지만 대다수가 사회적경제 분야에 대해 명확히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문제예요. 각 부처별로 여러 사업들을 진행하고 있는데, 이해도가 떨어지니까 단순히 ‘일자리 창출’ 쪽으로만 사회적경제를 보려고 하거든요. 물론 일자리 창출도 중요하지만 그거보다 훨씬 중요한 경제적 역할이 있어요. 부의 창출에만 집중하던 자본주의가 가진 병폐를 보완하는 측면도 있고, 그동안 정부나 민간에서 맡지 못했던 사회적 영역을 담당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국회, 정부 등 일부 공무원들은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수단 정도로 인식하니까 아쉬운 부분이 있죠. 예를 들어 협동조합의 원리가 뭐고 어떤 원칙에 따라 운영되는지를 이해하는 게 먼저인데, 그런 이해 없이 정책을 만들고 시행하면 사회적경제의 특성이 무시되기 쉽거든요. 현재의 법과 제도만 봐도 사회적경제 조직의 가치를 충분히 담고 있지 않은데, 공무원들은 이를 바탕으로 운영하니 당사자들의 의견과 충돌하는 지점이 생기는 겁니다. 일선 공무원들의 사회적경제 조직의 특성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기 위한 교육 프로그램이 있어야 합니다.

- 사회적경제 분야에 대한 국민 관심을 높이기 위해 필요한 것이 있다면요?

▶역시 교육과 홍보에서 출발합니다. 사회적경제 조직이 발달한 선진국 사례를 보면, 학교 교육과정에서부터 협동조합에 대해 가르쳐요. 어렸을 때부터 학교에서 배우고 지역사회에서도 실제 협동조합이 운영되는 사례를 가까이에서 보면서 자라니까 성인이 돼서 사회적경제를 받아드리는 게 자연스러워요. 우리나라도 사회적경제 조직이 발전하려면 이런 식의 교육이 필요한데, 정규 과목에 넣든 따로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든 초중고 아이들에게 사회적경제에 대해 가르치려고 계획하고 있어요. 

또 하나는 중앙정부도 중요하지만 오히려 지방정부의 역할이 더 커요. 사회적경제 조직은 지역 사회를 기반으로 하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중앙정부는 법과 제도를 만들고 정책을 입안해서 지방정부에 권한과 예산을 같이 내려주는 겁니다. 이를 받은 지방정부는 지역적 특성과 환경을 고려해 지역주민들의 관심을 모으고, 지역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여러 아이템을 개발해 지역 내 사회적경제 조직을 통해 목표가 실현되도록 하는 방향이 바람직하죠.

유 대표는 "협동조합 안에서는 조합원들끼리 협동조합의 원칙과 운영원리, 의미, 가치를 충분히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 대표는 "협동조합 안에서는 조합원들끼리 협동조합의 원칙과 운영원리,
의미, 가치를 충분히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사진=서울시협동조합지원센터

- 건강한 협동조합 생태계 조성을 위해 협동조합과 종사자들의 주체적 노력도 필요하다고 봅니다만.

▶협동조합의 규모가 커지면 생기는 문제는 ‘정체성’을 잃어가는 거예요. 자발, 개방, 민주, 참여, 자율, 독립 같은 협동조합의 기본 가치가 훼손되지 않도록 끊임없이 성찰하고 논의해야 합니다. 스페인 몬드라곤, 이탈리아 볼로냐처럼 세계적으로 성공한 협동조합을 보면 규모가 커졌음에도 정체성이 잘 지켜지고 있거든요. 자세히 들여다보면 치열한 논의와 조합원들 간의 이견을 민주적으로 조율해가는 과정을 반드시 거치더라고요.

또 신협이나 생협 같은 선배 협동조합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이들이 나서 사회적경제 활성화의 방향을 잡고, 연대와 협력의 폭을 넓혀가는 게 필요합니다. 협동조합끼리 뭉친 연합회 조직도 중요한데, 이들이 협동조합을 관리하는 권한을 정부로부터 위탁받아서 운영한다면 훨씬 효율적일 수 있거든요. 연합회에서 법과 제도에 따라 투명하고 공정하게 협동조합을 운영한다면, 발전 속도나 질적 측면에서 빠른 성장을 이룰 수 있을 거예요. 

유 대표는 "사회적경제 분야에 있으면서 사람의 관계가 중요함을 깨닫고 있다며, 사람 먼저의 사회적 분위기가 확산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유 대표는 "사회적경제 분야에 있으면서 사람의 관계가 중요함을 깨닫고 있다며,
사람 먼저의 사회적 분위기가 확산되길 바란다"고 말했다./사진=권선영 에디터

개개인의 역량도 중요하다고 봅니다. 우리나라 사회적경제는 아직 역사가 짧다보니 당사자 조직의 역량이 충분히 크지 못한 측면이 있어요. 그러다 보니 행정이 주도해가는 경향이 있는데, 민과 관의 수평적 거버넌스를 통해 현장의 다양한 욕구가 반영하는 것이 숙제죠. 민간의 역량을 키우기 위해선 스스로 성찰하면서 무엇이 부족한지 평가를 하고, 어떤 것을 해나갈지 면밀히 계획을 세워야 해요. 어디에 의존하는 게 아니라 ‘자주‧자립’ 원칙에 따라 스스로 커야 하니까요.

협동조합 안에서는 조합원들끼리 협동조합의 원칙과 운영원리, 의미, 가치 등을 충분히 이해하고 공유하는 게 필요해요. 서로의 필요와 욕구에 따라 조합을 만들어 이용하는 건데, 참여도 안 하고 제대로 이용도 못하면 당연히 협동이 안 되고 깨질 수밖에 없는 거죠. ‘5명만 모이면 협동조합을 만들 수 있다’고 했는데, ‘자신이 왜 참여하는지, 조합을 통해 뭘 실현하는지’를 제대로 성찰하지 않으면 무책임해지는 겁니다.

- 마지막으로 협동조합을 위해 개인적으로 목표한 바가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지금처럼 제게 주어진 역할을 수행하고, 앞으로도 함께하는 분들과 힘을 모아야죠. 사회적경제 분야에 있으면서 세상을 살아갈 때 가장 중요한 건 돈도 명예도 아닌 ‘사람’이라는 걸 깨달았거든요.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중시하는 ‘인본정신’에 따라 주변에 있는 사람과 발을 맞추고 손을 맞잡으며 같이 노력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당장 성과가 나지 않더라도 협동조합의 가치를 아는 사람이 하나둘씩 늘어나고, 사회적으로 확산되는 지금이 옳은 방향이라고 믿어요. 저의 세대에서 무언가 이뤄지지 않으면, 다음 세대에는 분명 이뤄질 거예요. 발전할 수 있는 밑거름을 잘 닦아두면 10~20년쯤 뒤에는 유럽처럼 우리도 훌륭한 사례가 나오지 않을까요? 한국 사람들이 하면 또 잘 하니까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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