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노인영화제' 개막작인 권순중 감독의 '꽃손' 포스터

시골에 가면 어느 정도의 불편함은 피할 수 없다. 차가 없으면 하루에 3번 있는 버스를 타고 시내에 나가야 하고, 새 신발이라도 장만했다면 비포장도로에 흙먼지는 달갑지 않다. 하지만 그럼에도 시골에는 거부할 수 없는 따스함이 있다. 도시가 익숙한 네 청년이 시골에 묶인 이유도 비슷한 것 때문이었으리라.

주인공 ‘진다’는 어렸을 때 키워주신 할머니를 하늘로 보냈다. “할머니 사시던 집이 아직도 있을까?”는 궁금증에 친구 ‘정남’과 함께 할머니의 고향 남해로 내려간다. 정남의 여동생, 여동생의 친구까지 한 자리에 모일 일이 없을 것 같은 넷이 남해에 모인다.

이곳은 “집주인 계쇼?”하면 “왜 누가 죽었나~”하고 대답이 돌아올 만큼, 이별이 먼 얘기가 아닌 마을이다. 이들이 마을에 머무는 동안 특별한 사건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저 동네 할머니, 할아버지들과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음식을 만들어 먹으며 하루하루 시간을 보낼 뿐이다.

이들이 예정보다 오래 시골에 머물게 된 이유는 하루하루가 편안하고 즐겁기 때문이다. 시골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내어주는 곶감과 감자, 몸빼 바지와 이부자리에는 진심어린 ‘위함’과 ‘애정’이 있고, 그것은 퍽 ‘위안’이 된다. 네 청년들도 마을 어른들이 좋아하실지 모르지만 요란스럽게 파스타를 만들어 내본다. 

꼭 ‘접점’이 있어야 사람이 사람을 만나고 알아가는가. 우연히 만난 누군가가 그가 모르는 내 삶 속의 고됨을 들여다본다. 그 방식은 서툴지만 분명 위로가 된다. 전혀 공통점이 없고 섞일 수 없을 것 같던 젊은 세대와 시골 할머니와 할아버지도 그렇게 서로의 아픔을 어루만진다. 

모든 것이 그렇지만, 평온한 하루와 소중한 사람들과 인연은 언제까지고 이어지지 않는다. 내 주변에는 진심어린 위로를 건네는 ‘꽃손’이 있는지, 더 늦기 전에 나는 ‘꽃손’을 건네고 있는지 돌아보게 한다.

이는 지난 24일 서울 충무로 대한극장에서 시작한 ‘2018 노인영화제’의 개막작 ‘꽃손’의 이야기다. 권순중 감독의 작품이 개막식 스크린을 장식한 이유는 소중한 이에게 전화 한 통을 걸고 싶도록 하기 때문인 듯 했다. ‘꽃손’은 이번 영화제에서 처음 선보였으며, 내년 상반기 극장 개봉이 예정돼 있다.

'2018 노인영화제' 개막식 입장을 위해 줄을 서있는 시민들.

24일 개막식은 세대를 막론하고 즐길 수 있는 분위기로 꾸려졌다. 식전 공연으로 초등학교 3~6학년을 이뤄진 조계사 어린이밴드가 윤도현 밴드의 ‘나는 나비’와 아이유의 ‘너의 의미’를 불러 행사장을 찾은 사람들을 미소짓게 했다. 또한 영화제 홍보대사 국악인 박애리와 팝핍현준 부부가 제주민요 ‘너영나영’을 부르고, 팝핀과 전통춤사위를 결합한 춤을 선보여 ‘세대가 함께하면 못할 것이 없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올해 11회를 맞은 올해 노인영화제의 슬로건은 ‘있다, 잇다’다. 노인과 청년이 모두 존재하고 있지만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없는 현실에서 영화를 매개로 서로의 존재를 인식하고, 서로를 잇고자 하는 뜻을 담았다. 집행위원장인 희우 스님은 “노인은 늙음을 인정하고 주어진 시간 내에서, 청년은 젊음에 감사하며 다들 충실히 살아간다”면서 “노인영화제는 편하게 세대가 어우러지는 가족같은 분위기의 축제”라고 말했다. 

영화제에 출품된 203편 중 본선 진출작 24편에 대한 서울시장상 시상식도 진행됐다. 노년 부문과 청년 부문으로 구분해 두 세대가 바라보고 표현하고자 한 시대 속 노인의 다양한 면을 볼 수 있도록 했다. 영화제 측은 “노년 부문은  지난 역사와 인생에 대한 회고, 수용, 치유가 묻어났고, 청년 부문은 어두운 노년 문화를 조명하되 이를 따뜻하게 바라보는 시선과 깊은 이해를 담았다”고 평했다. 수상작은 단편경쟁 5편으로 구성해 오는 27일까지 연이어 상영된다.

영화도슨트 어르신이 직접 해설하는 마츠타니 미츠에 감독의 '타샤튜더' 스틸컷.

이번 노인영화제에서 특히 주목할 만한 세션은 ‘도슨트 초이스’다. 서울노인영화제의 영화학교에서 전문교육을 수료한 영화도슨트 어르신이 마츠타니 미츠에 감독의 ‘타샤튜더’와 직접 고른 단편 4편을 해설한다.

‘어르신 도슨트’는 이전의 찾아가는 노인영화제에서 ‘노인의 삶을 담은 영화 해설을 노인의 시선을 통해 듣는 것이 색다르다’는 평을 받았다. 오는 26일 오후 5시 7시에 각각 도슨트 초이스 1~2를 상영해 ‘만나요 우리’ ‘자유로’ ‘아버지와 아버님’ ‘미화원’ 등을 만나볼 수 있다.

이밖에 역대 노인영화제 출품 감독들의 차기작으로 구성된 ‘시스프렌드 감독특별전’, 국내특별장편 4편, ‘노인’을 알아가는 ‘노잉(Know-ing)’ 하위 노인영상자서전, 미얀마 특별전, 예술농부 프로젝트 ‘완주로컬푸드, 예술이 되다’ 등 총 81편의 작품이 관객들을 맞이한다.

노인영화제는 누구나 무료로 관람할 수 있으며, 자세한 상영시간표와 상영작에 대한 정보는 노인영화제 공식홈페이지(http://sisff.seoulnoin.or.kr)에서 확인 가능하다.

사진제공. 노인복지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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