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재민 서울시사회적경제지원센터 기획전략실장이 '패션과 사회적경제'를 주제로 의류 산업이 환경?지역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설명했다.

최근 우리 사회에 환경(Eco)을 생각하는 시민(Citizen)이라는 뜻이 담긴 ‘에티즌(Etizen)’의 역할이 중요하게 떠올랐다. 에티즌은 단순히 어떤 제품과 서비스를 선택하는 것뿐만 아니라 제품 관리, 분리수거, 재사용, 업사이클링 등 한발 더 나아간 과정들을 생각한다. 자신의 효용에서만 그치지 않고 소비 활동이 사회?환경적으로 미치는 영향까지 고려하는 ‘책임 구매’를 수행하는 것이다.

‘환경친화적 소비’라고 할 때 깨끗한 먹거리(食), 안전한 주거환경(住)을 주로 떠올렸지만, 몇 년 전부터 패션(衣) 분야로 확대되는 추세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의식주’의 모든 분야에서 상호작용이 일어나야 하기 때문이다. 지난달 18일 불광동 서울혁신파크에서 열린 제4회 콜로키움 ‘윤리적 패션과 도시혁신의 만남’은 패션의 사회적 영향에 대해 논의하는 자리로 마련됐다.

빨리 만들어 많이 버리는 ‘패스트 패션’…디자인?생산?유통의 지속가능함은?

9월 18일 서울혁신파크에서 서울시사회적경제지원센터 주관으로 제4회 콜로키움 ‘윤리적 패션과 도시혁신의 만남’이 열렸다.

패션의 사회적 영향에 대해 생각하게 된 주요 계기는 최신 유행을 즉각 반영해 저렴한 가격으로 빠르게 유통하는 이른바 ‘패스트 패션(Fast Fashion)’이 전 세계적으로 퍼지면서다. H&M, UNIQLO, ZARA, FOREVER21 등 직접 제조해 유통까지 하는 글로벌 SPA 브랜드를 필두로, 싼값에 대량 생산하고 단기간 폐기하는 의류의 양이 급속도로 늘어나기 시작했다.

패스트 패션의 문제는 빠르게 생산하는 과정에서 심각한 환경 파괴와 노동자의 인권 착취가 발생한다는 점이다. 신재민 서울시사회적경제지원센터 기획전략실장은 “제품?서비스의 콘셉트부터 생산, 사용, 폐기 등 모든 단계에서 경제?사회?환경적 임팩트를 고려해야 한다”며 “윤리적 소비에 대한 인식이 향상됐지만 아직 ‘가치-행동’간 격차가 존재한다”라고 설명했다.

사회적경제 영역에서는 기존의 패션 산업이 품고 있는 여러 문제를 노동?사람 중심의 경제 방식으로 풀어내려 한다. 단순히 소재뿐만 아니라 디자인, 생산, 유통에 이르는 전 과정에서 ‘지속가능함’을 생각해보는 것인데, 그 결과 윤리적 생산부터 공정무역, 에코웨딩, 재활용, 업사이클링, 도시재생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혁신이 일어나고 있다. 

범죄율?실업률 높던 ‘네덜란드 아른헴’…패션 프로젝트 통해 ‘가보고 싶은 도시’

다니엘 반더스 ‘아른헴 패션 지구 프로젝트’ 매니저는 "인간에게는 자원이 한정돼 있기 때문에 창의적 사고가 더욱 중요하다"면서 "옷 한 벌을 구매할 때도 누군가는 돈을 벌고 누군가는 착취당하지 않는지 생각해야 하고, 자원이 균형적으로 배분되는지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에서는 패션 산업을 통해 도시재생에 성공한 네덜란드의 사례가 공유됐다. 2005년 시작된 ‘아른헴 패션 지구 프로젝트’는 지역 예술가와 주택협회 등이 참여해 범죄율?실업률이 높은 낙후 동네를 유명 관광지로 탈바꿈시켰다. 프로젝트 팀은 정부의 지원을 받아 해당 지역의 건물을 구입해 보수한 뒤, 패션 산업에 종사하는 1인 예술가들에게 임대했다.

도시 재생의 키워드로 ‘패션’을 잡은 이유는 아른헴 지역에 60년 전통의 ‘패션 스쿨’이 있기 때문인데, 재학생 및 졸업생 46명이 참여해 지역만의 독특함과 정체성을 반영했다. ‘패션 지구’로 마을을 조성한 결과 의류, 가방, 신발, 액세서리 등을 판매하는 상점 54개가 문을 열었고 이후 레스토랑, 카페, 문화 공간 등이 차례로 들어서면서 ‘가보고 싶은 도시’로 변신했다.

네덜란드 아른헴 패션 지구의 대표적 건물의 모습.(사진 출처=주한 네덜란드 대사관 공식 블로그)

다니엘 반더스 ‘아른헴 패션 지구 프로젝트’ 매니저는 “초기에는 정부에 인프라를 지원받으며 시작했지만, 10여 년이 지난 현재는 민간에서 스스로 운영하고 있다”며 “네덜란드를 방문한 관광객들이 수도 암스테르담이 아닌 지방 도시인 아른헴에 들러 쇼핑을 하고 음식을 먹고 콘서트를 즐기는 모습을 보며 패션 산업이 지역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음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프로젝트는 10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변화하며 발전하는 중이다. 반더스 매니저는 “시간이 지나면 산업의 특성, 소비자의 취향이 바뀌기 때문에 지역 내에서도 끊임없이 ‘창의성’을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태양이 내리쬘 때 특수 의류를 입으면 옷 속 휴대폰이 충전되는 등 앞으로 기술과 디자인이 접목된 패션 산업이 주목받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서울시, 자치구 ‘패션 산업’ 혁신 나서…성동?성북?강동?노원 다양한 실험

서울시 자치구별 사업체 분포도. 21개 자치구에서 ‘의복, 액세서리 및 모피제품 제조업’ 종사자가 가장 많다.(출처=서울연구원)

 

국내에서는 특히 서울시를 중심으로 지역 내 패션 산업의 혁신을 보여주기 위한 실험을 시도해왔다. 서울연구원에 따르면, 2016년 기준 서울시 제조업 종사자 약 28만 명 중 의복 제조업체 종사자는 9만여 명으로 최대 비중인 32.2%를차지한다. 자치구별로 봐도 ‘의복, 액세서리 및 모피제품 제조업’에 가장 많은 종사자가 일하며, 25개 자치구 중 21곳에서 1위에 올라 있다.

예를 들어 성동구는 전체 제조업 종사자 가운데 의류 봉제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18.4%로 가장 많다. 봉제 기술인 대부분이 근로자 10인 내외의 소규모 사업체에서 일하는데, 이들의 임금은 소비자 가격의 1%, 공장 이윤은 0.2% 수준으로 브랜드가 가져가는 수익 20%에 비하면 분배 구조가 불공정하다.

이에 문제의식을 느낀 봉제 기술인들은 △패션 산업에서 노동자의 근로조건 개선 △디자이너와 생산자 간 상호존중 문화 형성 △친환경 원자재 사용 및 제작 △생산과 소비의 과정에서 지역사회의 일자리 창출 등을 목적으로 2014년 한국패션사회적협동조합을 세워 ‘소셜패션’을 시작했다. 각자도생이 아닌 협업의 방식으로 공동이 이익과 사회적 가치를 구현하는 것이다.

성북구에서는 사회적기업 ‘대지를 위한 바느질’을 중심으로 이웃과 더불어 만드는 착한 결혼식 ‘마을웨딩’을 진행한다. 재생지나 천연종이에 천연잉크로 인쇄한 청첩장, 소재 선택과 공정 시 환경 문제를 최소화한 예복 디자인, 천연섬유를 사용한 웨딩드레스 제작, 뿌리 있는 식물을 이용한 꽃장식 및 부케, 장식용 화분 사용 등을 통해 환경과 사람을 생각하는 식이다.

서울 성북구의 사회적기업 '대지를 위한 바느질'은 지역 주민들과 함께 환경 친화적인 결혼식 '마을웨딩' '에코웨딩' '스몰웨딩'을 연다.(사진=대지를위한바느질)

이밖에도 서울 가죽 산업의 30% 이상이 밀집된 강동구에서는 ‘청년가죽창작마을’을 조성해 청년 중심의 공방 거리를 만들었으며, 노원구에서는 의류, 소품, 장난감 등의 기부?기증과 재사용?새활용을 통해 자원순환 문화를 확산하는 ‘되살림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한편, 이번 콜로키움을 함께 주관한 ‘지속가능 윤리적 패션허브’에서는 지난달 15~16일 서울 동대문, 명동, 양재동 등을 달리면서 쓰레기를 주워 에코백에 주워 담는 운동 캠페인 ‘플로깅(plogging)’을 열기도 했다. 같은 달 19일에는 ‘지속가능 윤리적 패션’ 포럼을 열어 ‘윤리적 패션과 지역 변화’를 주제로 환경 친화적 패션 산업에 대해 논의하는 행사를 이어갔다.

사진. 전석병 작가

이로운넷은 서울시사회적경제지원센터가 온라인으로 발행하는 세모편지와 함께 서울지역의 사회적경제 울타리 안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소식을 전하고 있습니다. 세모편지의 더 다양한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여기를 클릭하세요.

저작권자 © 이로운넷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