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2월 ‘협동조합 기본법’이 시행된지 5년이 지났다. 5명만 모이면 누구나 설립 가능하다는 조항에 덕분에 그동안 전국에 1만개 넘는 협동조합이 생기며 ‘붐’을 이뤘다. 일자리 창출, 취약계층 고용, 지역사회 기여 등 긍정적 영향을 미쳤지만, 복잡한 행정과 미흡한 법 때문에 운영에 어려움을 겪는 이들이 많다. 설립만 해놓고 사실상 미운영?폐업 상태인 협동조합도 절반 수준에 달한다. 사회적경제 활성화에 적극적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기본법 개정 및 인식 개선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현 상황의 핵심 쟁점들을 짚어본다.

#부산 지역 시장 상인들이 모여 만든 A협동조합은 2013년 지역 내 직거래 매장 4곳을 열어 질 좋고 값싼 농산물을 공급해 소비자들에게 좋은 평가를 얻었다. 5년 후 현재 매장 수는 여전히 4곳으로, 10곳으로 늘린다는 당초 계획은 실행하지 못했다. 업력이 짧고 실적과 담보가 없다는 이유로 금융권에서 자금 지원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대구 지역 B협동조합은 집행부의 부실?불법 경영으로 인해 최근 폐업 절차를 밟았다. 업체 대표가 협동조합 설립 후 출자금을 빙자해 조합원에게 높은 비용을 요구하거나, 폐업 이후에도 출자금을 돌려주지 않아 각종 분쟁을 일으켰다. ‘민주성’ ‘투명성’이라는 협동조합의 기본 원리가 구성원 사이에서 제대로 작동되지 않은 탓이다.

설립 신고 및 인가된 협동조합은 1만 615개, 그 중 절반에 가까운 4447개가 ‘사업 미운영 상태’다. 기획재정부가 지난 2월 발표한 ‘제3차 협동조합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폐업 및 사업 중단한 협동조합의 대다수는 △사업모델 미비(25.5%) △자금 부족(22.1%) △조합원간 의견불일치(17.6%) 등으로 문제를 겪는다.

미운영 중인 협동조합 중 5개 중 1곳은 '자금 부족'을 어려움으로 꼽는다./디자인=유연수

사업모델 미비에 이어 ‘자금 부족’은 협동조합을 어렵게 하는 대표적인 걸림돌이다. ‘제3차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2016년 말 기준 협동조합의 매출액은 평균 2억 9000만원으로, 2년 전 시행한 2차 조사(평균 2억 3000만원)때보다 증가했다. 자산 역시 총 자산 7133억원, 자본금 2343억원, 부채 4790억원 등으로 늘어나 전체적으로 ‘규모화’가 진행 중이다.

하지만 대다수 협동조합은 자금 가뭄에 시달린다. 조합원으로부터 출자금을 받지만 사업 운영을 위해서는 큰 규모의 돈이 필요한데, 일반 금융권에서는 대출, 융자 등을 받기 어려운 탓이다. 자금조달 방법이 조합 내부 자금에 지나치게 의존한다는 점은 문제점으로 꼽힌다. 실태조사에서도 금융기관을 이용(21.1%)하기보다 출자금을 확대(42.3%)하거나 이사진 및 조합원(27.4%)의 돈을 차입하는 등 내부에서 자금을 충당한다고 답한 비중이 70%에 육박했다.

고질적 자금 부족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사회적금융’을 비롯한 재정 지원의 필요성이 제기된다. 기획재정부 측은 “공공 부문 주도로 △사회가치기금((Social Benefit Fund) 조성 △사회적경제 기업에 대한 신용대출 및 특례보증 확대 △중소기업 및 소상공인을 위한 정책자금 확대 △전용 펀드 조성 및 크라우드 펀딩 활용도를 높이는 등 자금조달 경로 다양화를 위해 지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기획재정부는 사회적경제 조직의 자금 부족 해결을 위해 공공 부문 주도로 다양한 정책을 지원할 계획이다.

사회적경제 기업이 가장 어려워하는 ‘판로 개척’ 지원도 정부의 주요 추진 정책으로 꼽힌다. 국가 및 지자체의 물품 및 용역 입찰에 대한 가점을 확대하고, 공공기관 구매실적 지표의 배점을 상향하는 등 ‘우선구매’ 등을 통해 협동조합 등 사회적경제 기업의 제품이 선택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사회적경제 활성화를 위해 전국 38개 지방자치단체장들이 모인 ‘전국 사회연대경제 지방정부협의회’의 회장을 맡은 정원오 서울 성동구청장은 “정부?지자체 차원에서 공공구매를 통해 사회적경제 기업의 판로를 열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정 구청장은 “이를 위해서는 ‘사회적경제 기업 제품 구매 촉진 및 판로 지원을 위한 특별법’ 등 사회적경제 3법이 하루빨리 국회에서 통과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밖에 일반 조합원이 아닌 투자 조합원, 후원자 조합원, 자원봉사 조합원 등 조합원 특성의 다양성을 넓히는 제도도 거론된다. 출자금을 내고 1인 1표의 의결권을 가지는 일반 조합원과 달리, 의결권을 제한하면서도 조합 내 필요한 자금을 모을 수 있는 방법으로 꼽힌다.

제4기 지방정부협의회 회장으로 선출된 정원오 서울 성동구청장은
"정부?지자체 차원에서 사회적경제 조직의 판로 개척에 나설 것"이라며
"사회적경제 3법의 국회 통과"를 강조했다.

협력과 연대, 신뢰가 기본인 협동조합에서 ‘조합원간 의견 불일치’는 사업 운영을 힘들게 하는 주요 원인으로 지적된다. 애초에 제대로 된 사업 계획이나 운영 목표 없이 협동조합을 시작하면 장기간 사업을 이어가기 어렵고, 손실이 생기면 조합원들이 고스란히 떠안아야 한다.

이종제 협동조합공작소 이사는 “조합원간 갈등이 발생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사업이 잘 안됐을 때 ‘왜 만들었냐’를 놓고 다투게 되고, 둘째는 사업이 잘 됐을 때 ‘이익의 배분’을 놓고 분열이 생긴다”고 말했다. 이 이사는 “갈등을 막기 위해서는 설립 전 정관, 규약 안에 협동조합을 어떻게 운영하고 이익을 어떤 방식으로 배분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 논의를 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합원 간 갈등이나 문제가 발생했을 때 이를 조율할 기구나 기관의 역할의 필요성이 제기된다. 전문가들은 갈등이 발생하지 않거나 커지지 않도록 조합원 전체가 설립부터 운영까지 민주적으로 합의해나가는 과정 자체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김성오 한국협동조합 창업경영지원센터 이사장은 “협동조합은 ‘동업’인 만큼 동업계약서인 정관과 규약부터 심도 있게 설계해야 한다”며 “설립 후에도 동업자끼리 토론하고 합의하지 않으면 만들어봐야 1년도 안 돼 깨질 가능성이 커진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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