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2월 ‘협동조합 기본법’이 시행된지 5년이 지났다. 5명만 모이면 누구나 설립 가능하다는 조항에 덕분에 그동안 전국에 1만개 넘는 협동조합이 생기며 ‘붐’을 이뤘다. 일자리 창출, 취약계층 고용, 지역사회 기여 등 긍정적 영향을 미쳤지만, 복잡한 행정과 미흡한 법 때문에 운영에 어려움을 겪는 이들이 많다. 설립만 해놓고 사실상 미운영?폐업 상태인 협동조합도 절반 수준에 달한다. 사회적경제 활성화에 적극적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기본법 개정 및 인식 개선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현 상황의 핵심 쟁점들을 짚어본다.

1만3957개. 올해 10월 기준 협동조합 설립 개수다. 지난 2012년 12월 ‘협동조합 기본법’이 발효된 이후 5년, 국내에서는 전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을 정도로 설립 열풍이 불었다. 협동조합 기본법은 자본주의 대안적 경제 모델로서 시민사회의 필요에 따라 민관 합동 노력으로 제정됐다.

기본법은 금융, 보험업을 제외한 어떤 업종이든지 5명 이상이 모여 신고하면 협동조합을 설립할 수 있도록 했다. 그 결과 2013년 3211개 설립을 시작으로 매년 개수가 늘어나 1만개를 돌파하며 ‘눈을 감았다 뜨면 하루 사이 협동조합이 1개씩 늘어난다’고 할 정도였다.

기획재정부는 협동조합들의 사업운영, 고용, 재무현황 등을 조사해 발표했다.(디자인=유연수)

단기간 내 양적으로 급격히 확대된 협동조합은 어떻게 운영되고 있을까. 기획재정부는 올해 2월 협동조합들의 사업운영, 고용, 재무현황 등을 들여다본 ‘제3차 협동조합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해당 조사는 2016년 말 기준으로 설립 신고 및 인가된 협동조합 1만 615개를 대상으로 했다.

일반 협동조합 9954개(93.8%, 신고), 사회적 협동조합 604개(5.7%, 비영리법인?인가), 일반 연합회 57개(0.5%, 3개 이상 협동조합 모일 시) 등 정부에 등록된 곳만 1만개가 넘었지만, 이 중 실제 운영되는 협동조합은 절반 수준에 불과했다. 수익모델 미비, 사업운영 자금 부족, 조합원간 의견 불일치 등 이유로 사업을 중단했거나 폐업한 곳은 무려 4447개에 달했다.

유형별로 신고만 하면 되는 일반 협동조합이 90% 이상으로 절대 다수다. 이 중 이미 사업체를 가진 이들이 공동생산 및 판매의 목적으로 만든 ‘사업자 협동조합’이 7456개(70.2%)로 가장 많다. 이미연 서울지역협동조합협의회 사무총장은 “소상공인, 자영업자, 취약 노동계층 등 경제적으로 어려운 이들이 모여 설립한 협동조합이 대다수라 자본금 및 기술력이 취약하고 조합원 수도 적어 영세한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협동조합 실태조사 세부 현황 정리 표.(디자인=유연수)

업종별로는 도소매업(23.6%), 교육?서비스업(13.7%), 농림어업(10.3%), 제조업(8.7%), 예술·스포츠업(8.6%), 협회 및 단체(7.2%), 보건 및 사회복지(5.2%), 출판, 영상(3.9%), 숙박 및 음식점(3.5%), 과학기술 및 서비스(3.3%), 사업시설 관리(3.2%) 순으로 나타났다.

전체 조합원수는 31만 3000명을 넘어섰으며 평균 조합원 수는 61.1명, 조합에 고용된 평균 근로자 수는 4.3명이다. 특히 근로자 가운데 여성이 평균 2.6명(61%)으로 남성(1.7명)보다 많았으며, 50대 이상 또한 2.3명(53%)으로 비중이 높았다. 이들에 대한 월 평균 급여는 주 34시간 기준으로 정규직은 147만원, 비정규직은 92만원 수준으로 조사됐다.

기본법이 시행되면서 자본주의 시장에서 생존에 어려움을 겪던 사회적 약자들이 힘을 모아 협동조합의 설립 및 운영자로 나서고, 사회적경제의 주체로 진입하는 좋은 모델이 됐다. 기획재정부 측은 “제정 5년이 경과함에 따라 ‘설립’ 단계를 거쳐 ‘규모화’가 진행되고 있다”며 “일자리 창출, 취약계층 고용, 지역사회 기여 등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고 밝혔다.

협동조합은 5인 이상 모이면 '신고'로 시작할 수 있는 일반협동조합과 정부의 '인가'를 거쳐야 하는 사회적협동조합, 협동조합 3곳 이상이 모여 만드는 연합회 등으로 나뉜다.(사진=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

협동조합 당사자들은 “현 시점이 기본법의 개정을 추진해야 할 적기”라고 입을 모은다. “짧은 시간 내 협동조합이 우후죽순 늘어났지만, 건강한 생태계 조성을 위해서는 제도 개선이 필수적”이라는 공통된 의견이다. 더욱이 기본법이 제정된 2012년과 지금의 사회 분위기가 크게 달라진 점도 작용한다.

김기태 한국협동조합연구소 소장은 “기본법 제정 초기 행정부 내에서 ‘협동조합은 사회주의가 아닌가’라는 우려가 있을 정도로 법?제도 및 정책적 환경 자체가 협동조합 활성화에 우호적이지 않았다”며 “최근 문재인 정부,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사회적경제에 우호적인 상황으로 변하면서 ‘해빙기’를 맞았다. 기본법 전면 개정을 통해 협동조합 주체들이 지속가능한 생태계를 만들 수 있도록 변화를 주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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