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여름 전기요금 누진제 논란은 폭염만큼이나 뜨거웠다. 사상 최고의 무더위로 가정마다 에어컨과 선풍기를 끼고 살아야 했지만 요금 폭탄이 무서워 노심초사였다. 이젠 내가 쓴 전기량은 물론 수도, 온수, 난방의 실시간 사용량과 예상금액을 카톡을 통해 쉽게 확인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이런 환상적인 일은 빅데이터와 알고리즘 기술 덕분이다. 오는 10월 말 본격적인 아파트 전기료 통합관리시스템 서비스를 앞두고 있는 혁신 사회적기업 투파더 김진성 대표를 강동구 사무실에서 만났다

2016년 9월 창업한 투파더는 데이터를 기반으로 각종 사회문제를 해결하려는 사회적기업이다. 엔지니어 출신이지만 오피스텔의 관리사무소 소장을 맡은 경험이 있는 김 대표는 건물관리에는 다양한 이해관계가 얽혀있고 주민들의 민원 중 가장 큰 것이 관리비임을 절감했다.

 

김진성 투파더 대표는 플리즈마전자공학을 전공했다.

“ 아파트처럼 공동생활을 지원하고 관리하는 데는 최소한의 인적 서비스가 제공돼야하기 때문에 인건비를 줄여 관리비를 절감하는 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관리비 고지서를 들여다보니 공동전기료가 무척 비쌌어요. 우선 이것부터 줄이면 관리비를 낮출 수 있다 생각했어요.”

대학원에서 플리즈마전자공학을 전공한 김 대표는 1년 동안 관리사무소에서 밤을 지새워 가며 문제점을 파헤치고 해결책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 2003년 이후 지어진 아파트나 집합건물에는 세대 에너지 사용량의 원격 검침이 가능한 계량기가 설치됐어요. 검침 데이터는 관리사무소 컴퓨터에 모이고요. 이 데이터가 플랫폼으로 연결되는 순간 새로운 세계가 펼쳐지리란 희망을 가졌습니다.”

김 대표는 아파트 원격 검침 컴퓨터와 한전으로부터 받는 아파트 총량 데이터를 연동하는 시스템을 구축해 아파트 유형별로 전기 요금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변수를 분석했다. 그 결과 실시간 맞춤형 전기 요금 통합관리시스템이 탄생했다.

 

오는 10월 말 본격적인 서비스를 앞두고 있는 투파더의 '아파트 전기료 통합관제시스템' 화면

2년 동안 분당구의 한 주상복합 오피스텔을 관리해 온 투파더는 이 건물을 연구소 삼아 태양광 설비 혹은 기타 에너지 생산 설비나 요금체계 변동없이 2016년 평균 4900만 원이던건물의 공동 전기료를 2017년에는 2100만 원으로 약 50%이상 절감했다.

이 시스템의 특징은 계약방식이나 검침일 차이 그리고 관리사무소의 관리방식에 따라 전기 요금을 낮출 수 있는 최적 요금제를 알려준다. 아파트가 한전과 계약하는 전기 요금 방식은 크게 단일 요금제와 종합 요금제 두 가지이다. 어느 요금제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전체 전기료에 큰 영향을 끼친다.

판교의 00아파트 (400세대)는 한전과의 계약을 단일 요금제에서 종합 요금제로 변경키로 하고 지난 2년 동안의 한전 데이터를 투파더에 의뢰했다. 그 결과 아파트 자체 계산과 달리 단일요금제가 연가 1800만 원 유리한 것으로 확인돼 요금제 변경을 철회했다.

김 대표는 “이 밖에도 통합관리시스템을 이용하면 최근 사회적으로 큰 논란을 빚었던 최적 검침일도 정확히 이해하고 찾아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개인정보제공에 동의하면 카톡을 통해 전기, 온수, 수도, 난방의 검침 양과 사용금액, 순위 등을 실시간으로 알 수 있다.

투파더 시스템은 아파트 전 세대의 에너지 사용량이 연산돼 실시간으로 사용량과 부과요금을 관리비 고지서와 오차없이 정확하게 알려준다. 개인 정보 제공에 동의한 세대에 한해 전기 사용량과 요금뿐 아니라 수도와 난방 사용료를 간편하게 카카오톡을 통해 열람할 수 있다. 세대별 등수도 실시간 계산돼 자신이 다른 세대에 비해 현재까지 얼마나 많은 전기를 썼는지도 알 수 있다. 실시간 에너지 정보는 누진제 구간에 적용되지 않도록 사용량을 절제하는 효과를 누릴 수 있다.

김 대표는 “ 데이터란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게 하는 중요한 지표다“라며 "각종 정보를 DB화하면 난방 열사 김부선 사건이나 관리비 부정 시비도 원천봉쇄함은 물론 검침과 부과에 따른 관리사무소의 업무스트레스를 상당 부분 줄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투파더에서 아파트에 제공하는 모든 서비스는 무료다. 김 대표는 “ 과기부, H-온드림, 창업진흥원, 정보통신 응용기술개발사업의 정부 자금으로 시스템을 개발한 만큼 모든 서비스를 무료로 개방한다” 밝혔다.

무료 서비스로 더 많은 아파트들이 이용하고 더 많은 정보를 수집해 정확도를 높여 다양한 에너지 관련 서비스를 개발한다는 목적이다. 김 대표는 3개월 동안 200여명의 관리사무소장을 만났고 70여개 아파트에 대한 전력데이터를 분석한 바 있다.

“ 페이스북이나 카카오톡 모두 처음부터 서비스를 무료 개방해 이용자 수가 폭발적으로 늘었습니다. 저희 사업의 승패는 주민들한테 얼마나 가치 있는 서비스를 지속적으로 제공할 수 있는 가에 달려있습니다.”

투파더는 사회적기업으로는 처음으로 산업통상자원부의 허가를 받는 지능형 전력망 사업자 등록을 올해 7월 마쳤다. 이를 바탕으로 수요반응 사업자로서 수익을 창출한다는 계획이다.

 

투파더는 기술력을 바탕으로 사회적기업이자 벤처기업으로 일반 기업들과의 치열한 경쟁에서 좋은 성과를 내고 있다

“ 수요반응 사업은 신뢰가 제일 중요한 요소입니다. 전력거래소가 요청할 때 사업자가 수요를 반드시 줄여줘야 하기 때문이죠. 전력거래소는 줄어든 전력량으로 절감된 비용보다 약 9배의 금액을 기본료로 산정하는데요, 이는 곧 신뢰금이라 생각합니다. 따라서 신뢰를 지키지 못하면 패널티로 물어내거나 관계가 끊어지기도 하지요.”

김 대표는 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하는 대신에 아파트 관리사무소에 1년에 4~5차례 1시간 동안 약 6%정도의 수요를 줄여 줄 것을 요청할 계획이다.

      “ 아파트의 경우 공동전기가 전체 사용향의 20~30%를 차지하고 이를 관리하는 곳이 관리사무소입니다. 전력거래소의 감축 발령이 떨어지면 관리사무소는 주차장의 조명을 낮추거나 일부 승강기의 일시 정지 등의 방법으로 약 4% 정도의 수요를 낮추고 세대에서 2% 정도만 낮추면 충분히 도달할 수 있는 수치입니다. 6%는 저희가 서울에너지공사의 에너지 자립마을 11개 아파트에서 시험 운용을 해본 결과를 바탕으로 산정한 수치입니다.”

전력수요반응 제도는 전기 공급을 늘리기 위해 발전소를 더 짓거나 화력발전소 같은 환경에 유해한 발전소를 더 돌리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비용과 환경적 측면에서 유익하다.

투파더는 또 현행 한전의 단일 요금 체제가 갖고 있는 공동전기료 분배의 한계성을 인식하고 이를 보완한 사회적 요금제도 개발했다. 사회적이란 말에는 누구도 배제하지 않는다는 뜻이 담겨있다.

 

서울 강동구 천호대로에 위치한 투파더 사무실

“ 현재 70% 이상의 아파트가 이용하는 단일 요금제의 공동전기료는 전력 사용량에 따라 계산되는 방식이 아니라 전체 전기 사용료에서 세대 요금을 제외한 부과차액으로 계산됩니다. 이를 관리사무소에서 공급면적에 비례해 1/n로 나눠 부과합니다. 이 경우 적게 쓴 세대에 불리할 때도 있지만 여름철에는 많이 쓰는 세대가 공동전기료를 많이 부담할 수도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전력 빅데이터 관리의 중요성이 언급되는 부분입니다. ”

투파더 요금제는 실제 세대가 공동 전기료에 기여한 만큼을 정확히 계산해 공동전기료를 배분하는 계산법을 만들어 이 같은 불합리성을 해소했다. 아파트 전기료 통합관리 시스템은 특히 임대아파트에 적용하면 취약계층의 관리비 절감에 큰 몫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투파더는 더 나아가 취약계층들에게 제공되는 에너지 바우처가 효율적으로 시행될 수 있도록 위험수위에 이르렀을 때 지역 사회복지사와 연계해 통지해 주는 알림기능 서비스를 LH측에 제안했다.

     “사회복지사분을 만나보니 독거노인들과 같은 취약계층은 자신이 쓴 사용량을 몰라 무조건 아끼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더 써도 되는데 춥거나 더워도 그냥 참고 지내는 거죠. 알림 기능은 이런 분들의 삶을 향상시켜 주리라 기대합니다.”

김 대표는 25살 때 부모님이 이혼하는 아픔을 겪었다. 퇴직 후 아버지가 방황하고 사회적 일탈로 망가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직장과 일’의 중요성을 깨달았다고 한다. 그는 SK 하이닉스반도체 연구소에서 병역특례로 군 대체 복무를 하면서 남들보다 이른 나이에 안정된 직장과 가정을 꾸렸다. 하지만 아버지로부터 받은 상처로 혼란과 우울함을 겪으며 특별한 이유 없이 회사를 그만뒀다.

 

투파더는 첨단 기술을 다루지만 그의 사무실에는 기술책보다는 철학과 심리학, 고전들이 가득히다. 김 대표는 "그의 상상력은 이곳에서 나왔다"고 설명했다.

 

그는 우울함의 근원을 찾기 위해 3년 반 동안 철학 책과 심리학 책에 파묻혀 지냈고 통잔 잔고가 바닥 날 무렵 한 건물의 관리사무소장을 맡으며 또 다른 고민에 빠졌다.

“ 오피스텔은 공동주택법에서 벗어나 박봉에 분쟁도 많고 갑질도 견뎌 내야 합니다. 한 달도 버티기 힘들어 그만두려 했을 때 저를 바라보는 나이드신 경비나 미화원으로 일하는 분들의 삶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당시 24시간 맞교대 근무를 하는 경비원의 급여는 115만 원. 60대 후반에서 70대 초반의 노인들이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정말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분들을 위해 안정된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김 대표와 에너지 연구소 팀원들

투파더는 건물위탁관리와 에너지 연구소로 크게 나뉩니다. 투파더는 모든 직원을 정규직으로 채용했고 직원 10명 중 관리사무소 운영을 맡은 6명은 고령으로 70대 중반도 3명이다. 에너지 연구소 구성원들은 청년들로 컴퓨터 프로그래머, 전기설비 전문가, 데이터 분석가들이다.

투파더는 설립 후 8개월 만에 예비사회적기업을 거치지 않고 초고속으로 인증 사회적기업이 됐지만 그간 사회적기업에게 주어지는 정부 지원금을 단 한 차례도 신청하지 않았다. 각종 경진대회에 나가 받은 수상금과 일반 기업들과 치열하게 경쟁해 얻어낸 정부 지원금으로 꾸려가고 있다.

       “ 좋은 서비스는 그 자체로 생명력이 있다고 봅니다.”

김 대표는 올해 말 산업자원부에서 진행 예정인 전력 데이터로 새로운 비즈니스모델을 만드는 경진대회에 출전할 계획이다. 여기서 1등을 차지한다면 국가적 차원에서굵직한 R&D 과제가 주어지고 이 연구비로 수학, 디자인, 통계하는 전문가를 뽑아 블록체인을 도입한 에너지 거래라는 더 큰 그림을 그리겠다는 포부를 갖고 있다.

     “ 저희에겐 시스템 사용료로 당장 몇 천만 원의 월 매출을 올리는 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과연 이 서비스로 고객의 문제를 해결하고 더 나아가 근본적인 문제를 보완할 수 있는 혁신을 일궈낼 수 있는가가 문제죠. 물론 실패할 수도 있겠지요. 우리는 성공보다는 결승선까지 얼마나 열심히 달려갔는가에 더 의미를 둡니다. 그래서 끝까지 가보려고 합니다.” 

사진. 이우기(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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