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10월이면 홍대거리가 책의 물결로 일렁인다. 국내 첫 책축제를 표방하며 2005년 시작된 ‘서울와우북페스티벌(이하 북페스티벌)’이 올해로 14회를 맞았다. 명실상부 국내 최대 책축제로 자리 잡았지만, 14년 전만 해도 북페스티벌은 점잖은 ‘책’과 시끌벅적한 ‘축제’가 만나는 낯선 조합이었다.

“당시만 해도 책은 책꽂이에 가지런히 꽂혀 있어야 하는, 막 다루기 힘든 고고한 존재라는 이미지가 강했어요. 그런데 책과 축제를 엮은 행사니 어울리지 않는 만남 같았죠.”

사단법인와우책문화예술센터(이하 와우센터) 이채관 대표의 설명이다. 와우센터는 북페스티벌을 처음 기획하고 14년을 끈기있게 이끌어온 단체다. 페스티벌뿐 아니라 책 문화와 관련된 다양한 연계 사업을 통해 책 읽는 문화를 만들어가는 단체로 인정받아 2012년에는 노동부 사회적기업으로 인증받기도 했다. 

3일 개막, 7일까지 홍대 거리에서 이어지는 북페스티벌을 준비 중인 이 대표를 만났다.      

이채관 와우책문화예술센터 대표

 

‘취향의 시대’ 주제로 3-7일까지 홍대거리에 북페스티벌 열려  

- 올해는 어떤 주제로 진행되나. 

올해 주제는 ‘취향의 시대’다. 이를 주제로 거리도서전을 비롯해 강연, 작가 북토크, 전시, 공연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이 펼쳐진다. 5일부터는 홍대 주차장거리에서 100여개가 넘는 출판사가 참여하는 ‘와우거리도서전’이 열린다. 1인 출판사 특별부스도 마련되고, 도서 할인 판매와 독자 참여행사 등의 이벤트도 진행된다. 5일부터 6일까지는 한국을 대표하는 인디레이블의 음반과 개성있고 다양한 머천다이즈 판매 및 뮤지션을 직접 만날 수 있다. 신나는 공연에서부터 귀에 쏙쏙 들어오는 낭독까지, 아이들의 오감만족 어린이책놀이터도 5일부터 진행되니 온 가족이 함께 와서 즐기길 추천한다.  

페스티벌 첫날인 어제(3일) 레드빅스페이스에서 역사학자 심용환과 변상욱 CBS기자가 ‘살롱 드 역사:취향의 역사’를 주제로 토크쇼를 진행했다. 비평가 황현산을 추모하는 낭독회도 열렸다. 이 행사는 나름 공을 들였다. 그는 유연하면서도 첨예한 감각의 소유자이자, 대중들과 글로 나누는 소통을 중시했다. 황 선생의 글을 함께 소리 내어 읽으며 그를 추억했다.  KT&G 상상마당 6층에서는 피규어 아티스트 이찬우의 아트토이에 대한 강연과 천문학자 이명현의 교양과학 강의, 여행작가 환타와 만화가 마사오, 시타르 연주가 배언니가 여행책에 관한 강연도 있었다. 특히 1인 출판 작가들이 직접 참여해 1인 출판사의 가치를 공유하는 릴레이 강연회가 6일까지 진행된다. 이 외에도 다양한 주제의 강연과 토크쇼들이 페스티벌 기간 동안 계속된다. 

- 매년 축제 주제가 다르다. 올해 주제를 '취향의 시대'로 잡은 이유는. 

주제 선정에 공을 많이 들인다. 내부는 물론 외부 자문도 받으면서 몇 개월에 걸쳐 고민한다.  초기에는 대중들의 관심을 끌 수 있는 주제를 중심으로 잡았다면, 7회 이후로는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에서 책 축제가 함께 고민해봐야 할 의제들을 담는데 초점을 두고 있다. 

지난해 주제는 ‘다음에 오는 것들’이었는데, 촛불 이후 우리사회가 급속한 사회변화를 겪으면서 그 이후를 준비해야 한다는 고민들이 있을 때였다. 그런 사회 의제를 우리 행사에서도 함께 고민하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현 사회 문제점을 진단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시민사회가 연대할 수 있는 지점 등을 얘기하는 강연 등을 진행했다.  

올해 주제를 ‘취향의 시대’로 잡은 이유는 우리 사회가 점차 다원화되면서 다양한 가치들이 드러나고 있다는 점에 주목햇다. 유연성, 지속가능성 그런 가치들을 다뤄볼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으로 잡은 주제다. 

14회 서울와우북페스티벌 주제는 '취향의 시대'다.

점잖았던 책의 변화, 국내 첫 책 축제 시도   

- 북페스티벌이 올해로 14년째다.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책 문화예술축제를 표방한 행사였다. 

북페스티벌이 처음 시작된 게 2005년이다. 당시 홍대에는 5000개가 넘는 출판사가 있었다. 여기에 출판과 연관된 업종인 디자인, 일러스트, 아티스트, 기획자 등의 자원이 밀집되어 있었고, 갤러리, 대안 공간, 공연장 등 물리적 자원까지 풍부해 출판에 영감을 주는 여러 활동들이 일어날 때였다. 이런 외부적 환경을 보며 책이 기존에 소비되거나 다뤄지는 방식에서 벗어나 확장성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그때만 해도 매체가 다양하지 않을 때라 책은 책꽂이에만 꽂혀져 있어야 할 소중한 것, 막 다룰 수 없는 존재로 인식되었다. 홍대의 풍부한 인·물적 자원을 활용해 책이 다양한 문화예술과 결합된다면 새로운 문화예술 콘텐츠가 생겨날 수 있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탄생한 것이 책 문화 축제다. 지금은 책 축제를 표방하는 행사들이 수천 개로 늘어났지만 당시만 해도 그런 행사는 처음이었기에 좋은 선례가 되고 간접적으로나마 책문화가 확산되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자부심을 가진다. 

- 출판 산업이 어려움을 겪으며 행사에도 영향을 미쳤을 것 같다. 

아무래도 그럴수밖에 없다. 출판사가 행사의 핵심 주체들이기 때문이다. 장기적으로는 출판 생태계가 활발해져야 축제도 더 부흥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단순히 ‘행사 하나 성대하게 한다’가 아니라 꾸준히 책을 매개로 다양한 단체들의 독서 진흥을 돕는 역할을 하고자 한다. 이번 북페스티벌에서도 1인 출판 작가들이 직접 참여해 1인 출판사의 가치를 공유하는 릴레이 강연회를 한다. 또 1인 출판사들의 홍보를 지원하는 프로그램도 꾸준히 하고 있다. 

- 많은 단체들과 협력하며 자원도 더 풍부해지지 않았나. 

물론 1회 때에 비하면 후원처가 많이 생겼다. 브랜드의 힘도 커지고, 문화적 자산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많이 달라졌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규모는 초기와 비슷하다. 예산 규모도  2억원이 채 되지 않는 예산으로 준비하고 있다. 5일간 진행되는 행사비로는 사실 많이 부족하다.  

앞으로 북페스티벌이 더 성장하기 위해서는 자생적으로 만들어진 이 행사에 더 많은 자원이 확보돼야 한다. 그래야 더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다. 해외에 좋은 작가들도 더 많이 초청하고, 국내외 문화교육 비교도 해보고, 지역사회 역할 등을 고민하는 매개체로서 역할을 하고 싶다.

지역 문화예술인들이 일궈온 문화적 가치 지속가능 방안 고민해야 

- 북페스티벌 역사에서 빠뜨릴 수 없는 게 홍대 얘기다. 14년 전 홍대와 지금, 많이 달라지지 않았나. 

물론이다. 그때는 역동적인 도시였다. 대안 공간들이 새로 생기기 시작할 때였고, 문화예술 주체들이 유입되는 초기였다. 하지만 지금은 다들 알다시피, 대기업의 자본 등이 홍대에 진출하면서 땅값이 오르고, 결국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수많은 문화예술인들의 대안 공간, 새로운 문화 공간들이 다른 곳으로 이전되고 밀려났다. 문화예술 관점에서 보면, 기존에 가졌던 에너지, 다양성이 지금은 상대적으로 저하됐다고 본다. 다른 상업 도시, 표준화된 도시로 가고 있는 느낌이다. 

- 오랜 기간 홍대와 함께 성장해온 문화예술기업으로서 홍대의 이런 변화에 우려가 클 것 같다. 

지역의 문화를 만들어갔던 이들이 내몰리는 현상, ‘문화적 젠트리피케이션’이다. 도시는 변화하는 생물이다. 변화를 완전히 거부할 수는 없다. 다만 급속한 변화 속에서 나를 포함해 문화예술인들 모두가 고민해야 한다. 여러 변화에도 우리가 살아왔던 도시공간에서 지키며 살아 갈 것인지, 우리가 생각했던 문화에 대한 사회적 의미가 사라졌기에 불태우고 다른 삶을 살 것인지. 

물론 문화예술인들만의 고민은 아니다. 공공도 더 적극적으로 그동안 지역 문화를 일궈온 문화예술인들의 문화적 가치를 어떤 방법으로 보존하고 유지시킬지 방법들을 고민해야 한다. 소모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지역 문화생산을 할 수 있는 자산들을 확보해서 공간 기반으로 안정된 사업이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그런 게 없으면 그동안 쌓아온 수많은 문화자산이 등장했다 소비되고 금세 사라지는 과정만 반복하게 될 것이다. 

- 와우책문화예술센터는 사회적기업이기도 하다. 

2010년에 서울형 예비 사회적기업으로 선정되고, 2012년 4월에는 노동부 사회적기업으로 인증을 받았다. 인증 후 인건비 지원을 받았던 것이 큰 힘이 되었다. 보통 축제는 한시적 성격을 가질 수밖에 없고, 큰 수입을 내기 어려운 구조다. 우리도 마찬가지였는데, 어려운 시기 북페스티벌을 유지하고 임의조직이었던 곳을 상시조직으로 발전시킬 수 있던 원동력 중 하나가 인건비 지원을 받으며 안정적으로 인력을 유지했던 거다. 지속가능한 조직으로 발전하는데 도움을 받은 셈이다. 

다만 우리처럼 자기 미션과 비즈니스 모델을 확고히 가진 상태에서 사회적기업 인증을 받고 지원을 받으면 큰 도움이 되지만, 주객이 전도되어 지원을 위해 사회적기업을 시작하는 경우들이 있는데..이건 결국 조직을 어렵게 만들게 된다.   

- 북페스티벌이 앞으로 어떤 책 축제로 남겨지길 바라나. 

홍대거리에서 오랜 기간 진행하면서 지역 축제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지만 앞으로는 여기서 더 나아가 세계적인 책 축제로 성장해가길 바란다. 세계적인 도서전도 물론 있지만 책과 축제를 연결한 새로운 문화콘텐츠이자 훌륭한 자산으로 지금의 북페스티벌이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다고 확신한다. 

그렇게 성장하기 위해서 홍대 커뮤니티가 지금보다 더 적극 참여하는 환경이 되면 한다. 지금보다 더 규모화 되어 더 많은 시민들이 도심 속에서 책과 즐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가는 날을 꿈꾼다. 
 

사진제공. 와우책문화예술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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