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 할머니들 허리가 유독 구부정한 이유…‘여성농민’ 권리로 바로세우기
농촌 할머니들 허리가 유독 구부정한 이유…‘여성농민’ 권리로 바로세우기
  • 양승희 기자
  • 승인 2018.09.29 08: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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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자 협동조합 언니네텃밭, ‘오늘을 가꾸는 여성들’ 주제로 27일 강연
‘가부장문화’ 강한 농촌에서 소규모‧자연농법 통한 ‘대안적 농사’ 주도해
‘꾸러미’ 통해 소비자 건강 지키기…농민수당‧노동시간 정책 도입 기대해
지난 27일 서울 대학로 예술가의 집에서 열린 인문예술콘서트 ‘오늘’에서는 여성농민 생산자 협동조합 ‘언니네텃밭’의 김정열 단장(가운데)과 현애자 운영위원장(오른쪽)이 연사로 참여했다.
지난 27일 서울 대학로 예술가의 집에서 열린 인문예술콘서트 ‘오늘’에는 여성농민 생산자 협동조합 ‘언니네텃밭’의 김정열 단장(가운데)과 현애자 운영위원장(오른쪽)이 연사로 참여했다.

“할아버지들은 꼿꼿하신데, 왜 할머니들만 허리가 구부정할까?”

농촌 마을에 첫발을 디딘 청년의 눈에 비친 사람들의 모습은 조금 의아했다. 똑같이 농업에 종사하는 농민인데 성별에 따라 겉모습이 나뉜 이유는 무엇일까. 답은 간단했다. 남성과 여성이 하는 ‘농사일’의 영역이 다르기 때문이다. 

지난 27일 서울 대학로 예술가의 집에서 열린 인문예술콘서트 ‘오늘’에서는 청년 시절부터 농촌 일에 뛰어든 여성 농민들과 지역 농촌 공동체에 대한 이야기가 오갔다. 여성 농민 생산자 협동조합 ‘언니네텃밭’의 김정열 단장과 현애자 운영위원장이 ‘오늘을 가꾸는 여성들’을 주제로 강연했다.

김 단장과 현 위원장은 대학생 시절 ‘농활’을 통해 농사일에 매력을 느껴 농촌에 정착했다. 이들이 ‘여성 농민’으로서 겪은 어려움은 성별에 따라 일이 구분된다는 점이었다. 밭을 갈거나 씨를 뿌리는 일, 비료와 농약을 주는 일 등 힘이 들어가거나 기계를 쓰는 ‘큰 일’은 대부분 남성의 몫이다. 반면 잡초를 뽑고 열매를 따는 등 밭에서 하루 종일 머물며 하는 노동은 여성이 맡았다. 여기에 집안일과 육아까지 전부 담당하면서 여성 농민의 허리는 점점 아래로 굽었다.

김 단장은 “최근 한국 사회에서 ‘미투(Me too) 운동’을 비롯해 성평등에 대해 적극적으로 이야기하고 있지만, 농촌은 여전히 1970~1980년대 같은 가부장 문화가 살아있는 곳”이라면서 “남성 중심적인 농촌에서 조금이라도 여성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곳이 전국여성농민회이며, 이곳에서 언니네텃밭의 창업을 이끌었다”라고 말했다.

'언니네텃밭'은 여성 농민이 자신을 드러내고 해온 역할 많큼 지위를 확보하도록 하며, 화학비료에 의존하는 농업 대신 자연 농법으로 친환경 먹거리를 재배해 지속가능한 농업을 추구한다.
'언니네텃밭'은 여성 농민이 자신을 드러내고 정당한 지위를 확보할 수 있도록 지지하며, 화학비료에 의존하는 농업 대신 자연 농법으로 친환경 먹거리를 재배해 지속가능한 농업을 추구한다.

‘언니네텃밭’은 2009년 사회적기업 ‘우리텃밭’으로 시작해 현재 전국 13개 지역의 여성 농민들이 친환경 방식으로 농사를 지어 작물을 파는 생산자 협동조합으로 발전했다. 이곳의 생산자가 되면 가장 먼저 할 일은 ‘자기 이름의 통장’을 개설하는 것이다. 여태껏 여성 농민 중 자신의 통장이 없는 이들이 다수였고, 경제력이 없어 남편에게 의존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여성 농민이 생산한 물건을 팔고 직접 돈을 벌면서 점차 자기 자신의 권리를 찾게 된다.

그동안 농사일을 할 때 어떤 작물을 재배할지, 어떤 비료와 농약을 쓸지, 언제 수확을 하고 어디에 내다 팔지 등을 결정하는 것은 대부분 남성의 몫이었다. 농협 조합원으로 가입할 수 있는 사람도 정부에서 하는 영농교육의 대상자도 주로 남성이었다. 여성 농민의 지위를 찾기 위해 무엇보다 시급한 과제는 ‘생산’을 주도하는 것이었다.

언니네텃밭은 이윤 극대화를 위한 기존의 대규모 농사 대신, 자연 농법을 기반으로 한 소규모 농사 방식을 택했다. 작은 텃밭에서 화학 비료나 농약 없이 친환경으로 토종작물을 재배해 내 가족과 이웃이 먹어도 안전한 먹거리를 생산해낸다. 현재 언니네텃밭 생산자 회원은 전국에 약 250명이며, 이들이 키운 제철 농산물은 ‘꾸러미’로 모아 도시 소비자 회원 1000여 명에게 발송된다.

'언니네텃밭'의 주요 사업인 '꾸러미'에는 제철채소와 유정란, 두부, 콩나물, 간식 등으로 구성한 먹거리를 담는다. 월 2~3만원의 회비를 내면 매주, 격주로 꾸러미를 받아볼 수 있다.
'언니네텃밭'의 주요 사업인 '꾸러미'에는 제철채소와 유정란, 두부, 콩나물, 간식 등으로 구성한 먹거리를 담는다. 월 2~3만원의 회비를 내면 매주, 격주로 꾸러미를 받아볼 수 있다.

현 이사장은 “올해 9년 차로 10년 정도 언니네텃밭을 해오면서 여성 농민들의 삶이 달라지고, 공동체와 지역에 의미 있는 파장이 일어났음을 느낀다”며 “앞으로 지속가능한 농업이 될 수 있도록 국가 정책을 소농 중심으로 바꾸고, 식문화를 개선을 이끌어 국민들의 건강을 증진하는데 기여하고 싶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최근 농업계에서 가장 뜨거운 이슈는 ‘농민수당’이다. 사람들이 농촌을 떠나고 농민이 소멸해가는 시대, 농업을 지키기 위해서는 정부와 지자체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지난 6월 지방 선거에서도 ‘농민수당’은 최대 관심사였는데, 지난달 전남 해남군에서 전체 농가에 연 60만원을 지급하기로 결정하면서 주목을 받았다.

김 단장은 “농민수당 지급 논의 과정에서 여성 농민의 목소리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아 ‘가구당’ 지급이 됐다”면서 “아동수당은 아동이라면 누구나 주는 것이고 노인수당도 마찬가지인데, 농민수당도 농민이라면 누구나 받을 수 있도록 앞으로 언니네텃밭에서 힘을 보태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김정열 단장(가운데)이 '꾸러미' 안에 들어 있는 구성품을 직접 소개하고 있다. 언니네텃밭은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세월호가족식당, 쌍용차심리치유센터 등에 꾸러미를 기부하기도 했다.
김정열 단장(가운데)이 '꾸러미' 안에 들어 있는 구성품을 소개하고 있다. '언니네텃밭'은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세월호가족식당, 쌍용차심리치유센터 등 사회 단체에 연간 600개의 꾸러미를 기부하고 있다.

현 이사장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농업보다는 공업을 중시해 산업간 불균형이 커지고 있다”며 “한국 국민 절반 이상이 도시에 거주하는데 도시민, 소비자들, 국민이 건강하기 위해서는 농업이 역할이 중요할 뿐만 아니라, 환경과 생태계 보존 면에서도 농업이 기여하는 부분이 크다는 것을 알아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이어 현 이사장은 “도시에서는 노동자들을 위한 52시간 근무제 등이 도입됐는데, 농민들도 적정한 노동 시간만 일하고 나머지는 다른 사회적 욕구를 실현할 수 있도록 다양한 정책이 펼쳐지기를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인문예술콘서트 오늘’은 2015년부터 시작해 매월 마지막 주 목요일 관객을 맞이하는 무료 행사다. 행사일 2주 전부터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운영하는 온라인 서비스 ‘인문360°(inmun360.culture.go.kr)’에서 누구나 관람 신청이 가능하며, 모든 강연은 ‘인문360°’ 유튜브, 네이버 TV캐스트에서 영상으로 다시 볼 수 있다. 다음 회차는 소리꾼 임진택이 ‘광대는 오늘을 노래한다’를 주제로 강연을 진행한다.

사진제공.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언니네텃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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