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협동조합(생협)에 가입된 국내 가구 수가 100만 세대를 넘어선지 오래다. 생협은 유기농업을 바탕으로 친환경 유기농 제품을 유통하는 등 자원의 순환을 주요 철학으로 생활 속에서 확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런 생협에 비상이 걸렸다. 플라스틱 쓰레기, 기후변화 등 환경문제의 심각성이 커지면서 친환경 소비에도 무심코 포함된 쓰레기나 환경문제가 부각되고 있어서다. 생명 가치 존중을 삶속에서 실현하겠다는 생협이 환경문제를 소홀히 다룬 것 아니냐는 자성이다. 대안 마련을 위한 생협의 고민과 논의를 들어본다. 

허경희 행복중심생협 상무이사

행복중심생협연합회(이하 ‘행복중심생협’)는 ‘여성민우회생협연합회’에서 출발했다. 허경희 행복중심생협 상무이사는 “생협의 본질은 근본적으로 환경 문제와 엮여있을 수밖에 없다”며 “조합원들이 생활재의 환경부하(환경오염물질 배출)가 적었으면 좋겠다고 일찍부터 요구해왔다”고 한다. 행복중심생협은 환경위원회를 주축으로 조합원들의 생활실천을 고무하고 있다. 이들이 실질적인 자원순환에 제시하는 처방전은 무엇인지 허 이사가 전했다.

- 생협 내부에서 자원순환 실천을 어떻게 시작했고, 포장재에 대해서는 어떤 내부 규정이 있나?

▶생활재를 공급하기 시작한 90년대 말부터 우유곽재사용휴지, 재사용식용유로 만든 비누 등 우리가 공급할 수 있는 재활용 생활재들을 공급하며 자원순환을 시작했다. 기본적인 실천운동으로는 동북생협 등 매장에는 장바구니를 비치하고 조합원들이 대여, 반납해 비닐 사용을 줄이도록 하고 있다. 생협이 공급하는 생활재의 포장재 환경기준을 확립한 것은 2006년 생활재 선정원칙을 개정하면서다. 

<행복중심생협의 포장기준>
1) 재활용, 재사용이 가능한 재질로 한다.
2) 일회성 포장지는 환경부하를 최소화하도록 한다.
3) 상품의 품질과 형태를 유지하는 포장은 인정하나, 과대포장은 지양한다.

- 포장기준을 준수하기 위해 구체적으로 어떤 노력을 하는가?

내부 환경위원회에서 재활용 효율이 높은 포장으로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을 논의한다. 예를 들어, 플라스틱 트레이를 없애고 단순포장으로 전환할 수 없는지, 음료나 우유 용기는 플라스틱이 아니라 종이나 병 재질로 바꿀 수 있는지, 과일 박스는 100% 종이로 공급할 수 있는지, 반투명한 페트병 대신 투명한 페트병에 담긴 제품으로 대체할 수 있는지 등을 확인한다. 

 

- 이상적인 포장기준을 제시하고 환경위원회에서 자가진단을 하고 있는 것 같다. 포장형태를 다 바꾸기에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을 것 같은데.

▶ 식품의 형태와 품질을 보존하기 위해 특정 포장을 고수할 수밖에 없는 경우가 그렇다. 첨가물이 들어가지 않은 쿠키 같은 경우에는 트레이포장을 하지 않으면 가루로 배송되어 버린다. 생협은 첨가물이 들어있지 않은 먹거리를 많이 공급한다. 또, 소규모 생산지 측에 재활용률 높은 포장으로 바꾸라고 요구할 수도 없다. 생협이 생산지에 규제 없는 부분을 바꾸라고 요구하고 합의해야 하는데, 생산 설비 교체에는 엄청난 비용과 시간이 들기 때문에 합의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시중의 제품들이 어떤 포장재를 사용했는지 고려해 입점할 뿐이다. 

- 그렇다면 자원순환이 진일보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 정부가 생산 단계부터 재활용률 높은 포장을 만들어내도록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이를 법으로 시행하는 것이 선과제이다. 환경 분야에서는 정부의 규제만큼 실효가 큰 것이 없다. 시행한지 얼마 안된 카페 내 일회용컵 사용 금지만 봐도 일회용품 사용 절감이 크다. 시민의 실천활동만으로는 ‘실질적인’ 자원순환에 한계가 있다. 

 "재활용이 정말 자원의 순환으로 연결되고 있을까?
재활용품으로 수거한 쓰레기의 재활용 비율은 예상보다 매우 낮았다.
  재활용을 위해 분리수거한 쓰레기는 재활용이 아닌 진짜 쓰레기였다."  

-박미경 행복중심 서울 동북생협 조합원의 환경강좌 후기


 

- 정부가 구체적으로 어떤 규정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 포장 용기 종류마다 하나하나 자세한 제작 가이드라인이 있어야 한다. 우리나라 페트병은 페트병 하나에서 재활용되는 부분이 너무 적다. 병 입구와 몸통 부분의 재질이 다르기 때문이다. 간장병도 몸통은 페트, 손잡이 부분은 플라스틱이다. 버릴 때 이를 분리하기가 굉장히 어려운데, 분리가 쉬운 디자인으로 제작하도록 해야 한다. 병 라벨에 본드를 사용하거나 제품 정보를 포장용기에 직접 인쇄하는 등 재활용률을 낮추는 생산공정도 금지할 필요가 있다. 자원순환 제도 선진국인 일본은 2003년부터 환경성에서 이런 규제를 시행해왔다. 우리나라는 한참 늦은 편이다. 법제화를 통한 제품 개선이 선행되어야 생협과 시민의 생활 속 실천이 100%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 생산 단계부터 재활용을 고려해야 한다는 얘긴데, 그렇다면 생협의 역할은 무엇인가?

▶ 현재 생협이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부분까지 비판받으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생협과 시민 차원의 실천과제를 최대한 발굴하고 시행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내부 실천과제 설정과 진행에 대해서는 생협끼리 정보를 공유하고 있고, 앞으로도 이어갈 것이다. 법제화에 있어서도 생협의 연대가 필요하다. 우리들(생협)은 다른 생협, 소비자협회 등 다른 단체들과 연대 협의체를 구성해서 생산 가이드라인 제정을 의제화해야 한다. 또, 소규모 생산지에 포장공정을 바꿔달라고 요구하기는 힘들어도, 생협들이 공동으로 입점하고 있는 생산지에는 전체 생협 차원에서 요구해볼 수 있다.

행복중심생협은 16년부터 내부 탈핵위원회를 '환경위원회'로 개편하고 환경강좌를 진행하고 있다. 

- 시민 실천과제는 어떻게 발굴하고 실행하고 있는가?

▶ 생협 매장에 장바구니를 비치하고 생활재 공급박스를 재활용한다. 이는 모두 조합원의 반납으로 이루어지는데 박스 회수율이 높다. 생활재도 100% 생분해되는 것으로 찾아 공급한다. 지퍼백, 일회용장갑, 도마, 고무장갑 등 생분해 제품은 생각보다 다양하다. 가격대는 많이 비싸지 않다. 하지만 생분해인 만큼 아주 튼튼하지는 않은데, 조합원들이 환경을 보호하는 대가로 감안하고 쓰고 있다. 조합원들과 지역주민의 인식제고도 실천의 중요한 부분이라, 16년부터 <지구를 지키는 원더우먼 만들기> 등 환경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특히 4월 쓰레기 대란 이후 8월에는 재활용품이 수거되고 분류되어 재활용되는 과정과 낮은 재활용률 실태를 알리는 강의를 진행했었다. 여성의 건강과 쓰레기 문제가 결합된 생리대 문제가 불거진 이후에는, 이슈에 대한 강의와 면 생리대 만들기 등 친환경 생활재 배움터 강좌를 열었다. 환경강좌는 오픈강좌라서 조합원이 아닌 지역주민들도 모두 수강할 수 있다. 

- 내부적으로 정책을 협의할 때 의사소통은 어떻게 진행하는가? 

▶ 조합원에게 물어보고, 알게 하고, 이에 대해 합의하고 정책으로 만든다. 공개토론회를 열어 조합원들의 의견을 반영하고, 생활재위원회, 환경위원회에서 강좌 계획, 실천 방안 등을 확립한다. 생활재선정원칙도 이런 방식으로 논의해 만들었다. 

- 앞으로의 활동 계획은?

▶ 생협 공동 생산지에 포장공정을 재활용률을 높이는 쪽으로 바꿔달라고 요구하기 위해 내부 환경위원회가 11월부터 제품을 생산지별로 전수조사할 예정이다. 생산공정 변경에 따라 추가 비용이 발생하면 조합원들이 이를 감내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합의가 필요하다. 이에 앞서 조합원들의 인식 제고를 위해 10월에 포장 현황을 논의하는 공개토론회를 열 계획이다. 자원순환 법제화를 위한 서명운동도 계획하고 있다. 생협 간 연대는 아직 구체적인 계획이 나오지 않았는데, 생협 대표들이 만나서 이야기해야 한다. 환경은 급속도로 나빠지고 있다. 더 이상 미룰 문제가 아니다.

 

사진 제공. 행복중심생협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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