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가치가 화두다. 현 정부의 핵심 철학으로 사회적 가치가 선포되면서 공공기관 경영평가제도에서도 공공성·사회적 가치가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많은 공공기관들이 사회적경제 조직과 협력하는 등 발걸음이 빨라졌다. 개별 공기업의 고유한 사업 가치가 여러 사회적 경제 분야와 만나 사회적 가치로 확대되도록 하기 위해서다. 본지는 사회적경제와 동행에 나선 대표적인 공공기관을 만나본다.

“금융은 기업의 혈맥(血脈)이에요. 그럼에도 사회적경제는 그동안 피가 잘 통하지 않았죠.” 

박학양 신용보증기금 이사는 최근 화두가 되고 있는 사회적금융의 현황을 이렇게 묘사했다. 사회적경제, 사회적 가치 이슈들은 결국 금융의 문제로 귀결되기에 그만큼 금융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금융기관들이 최근 사회적금융 활성화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는 이유기도 하다. 

그 중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곳이 신용보증기금(이하 신보)이다. 40여 년간 중소기업 금융지원에 나섰던 신보는 사회적경제기업의 자금조달을 돕기 위해 올해 초 전국에 8개 사회적경제 전담팀을 설치하고, 매년 1,000억원씩 2022년까지 5년 간 사회적경제기업에 신용보증 5,000억원을 공급할 계획을 발표했다. 

신보의 이러한 행보는 올해가 처음은 아니다. 2012년 일찍이 '사회적기업 신용보증제도를' 도입했다. 육성법이 생긴 이후지만 국내에 사회적금융이 태동하기 전이다. 박 이사는 이 제도를 만든 장본인이기도 하다.  사회적금융 활성화를 위해 금융허브를 자처하고 나선 박 이사를 지난달 20일 서울혁신파크 내 설치된 신용보증기금 사회적경제존에서 만났다.   

박학양 신용보증기금 이사

- 사회적 가치 창출이 화두가 되면서 금융기관들도 사회적금융 활성화에 적극 나서고 있다. 

▶ 공공기관 평가에 사회적 가치 기준이 늘면서 안할 수가 없는 분위기다. 신용보증기금도 예년보다 더 공격적으로 나서고는 있지만, 신보가 사회적금융에 관심을 가진 건 훨씬 오래 전부터다. 신보는 2012년 사회적기업 신용보증제도를 도입했다. 당시 민간 금융에서는 자체 담보가 없는 조직에 금융지원이 어려웠다. 신보 설립 자체가 담보가 없는 중소기업의 채무 보증을 하는 것이기에 사회적 가치 창출과 맞닿아 있었다. 더욱이 취약계층을 고용하고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사회적경제도 우리 고객이기 때문에 다른 금융기관에 앞서서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 2012년이면 금융 분야에서는 정말 초기다.  

▶ 맞다. 사회적경제 금융 지원 프로그램에 있어서는 우리가 산 증인이다.(웃음) 그때는 사회적경제가 지금보다 더 주변부였다. 정부도 의지가 크지 않았고, 금융쪽에서도 큰 시장들을 주로 상대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작은 시장인 사회적경제 분야를 보지 못하는 실정이었다. 더구나 영세·취약하다는 이미지와 더불어 인증 후 인건비 지원을 받고는 간판을 내리는데도 있다 보니 ‘민간 시장에서 적응은 어렵겠다’는 부정적 인식이 지금보다 컸다. 이런 분위기다 보니 우리 내부에서도 전문 인력 양성이라든지 홍보를 적극적으로 하지 못했다. 2017년까지 5년 지원 금액이 534억원에 불과했다. 올해만 8월까지 660억원을 지원한 것에 비하면 정말 미약했다. 

신보는 2012년 사회적기업 신용보증제도를 처음 도입하고 올해부터는 본격적으로 사회적경제 금융지원을 하고 있다.(사진.서울시사회적경제지원센터)

- 지난 2월 금융위원회에서 '사회적금융 활성화 방안'을 발표하면서, 신보의 움직임도 더 활발해졌다. 

▶ 2012년부터 시작은 했지만 본격화 한 것은 올해가 첫해다.  금융계에서는 가장 먼저 사회적경제기업에 특화해 ‘사회적경제기업 보증프로그램’을 개발했다. 기업 신용 등급을 산출하는 일반 기업과 달리 사회적 가치, 혁신 성과 등을 반영한 별도 평가 체계를 적용해 5년 이상의 장기보증서 발급을 원칙으로 보증액도 최대 1억원에서 3억원으로 늘렸다. 또한 사회적경제기업들이 종전보다 비용 부담을 줄이고 장기자금을 마련할 수 있도록 보증료를 0.5%로, 보증 비율은 100%로 우대하도록 설계했다. 보증 외에도 컨설팅, 매출채권보험 인수 우대 등도 지원하고 있다. 

신용보증기금 사회적경제기업 보증프로그램

기존 규모가 큰 중소기업에만 지원하던 ‘사회적경제기업 전용 유동화보증(P-CBO) 프로그램’도 도입했다. 자기자본 규모와 관계없이 매출액의 1/2까지 최대 3억원의 회사채를 최장 5년간 발행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최상위 등급 회사채 수준의 낮은 금리를 적용했다. 이는 그동안 대출에만 의존하던 사회적경제기업의 자금 조달 방식이 회사채·투자 등 직접 금융 시장으로 확장되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 결과 올해 2월부터 8월까지 449개 업체에 660억원을 지원했다. 연말까지 1000억원을 넘을 것으로 예상한다. 2022년까지 5년 동안 신용보증 5,000억원 공급을 계획했는데 지금 추세면 가능할 듯하다.  

사회적경제 지원이 대폭 늘면서 진입하려는 기업들에 대한 인큐베이팅 등 가이드 역할도 한다. 신보 내 창업기업 육성 플랫폼인 스타트업 네스트(Start-up NEST)에 올해 하반기부터는 처음으로 10개 소셜벤처를 선정해서 지원 한다. 내년에는 연간 200여개 기업 중 10% 정도는 사회적경제기업에 참여 기회를 줄 계획이다. 보증·투자 등 금융 지원은 신보가, 액셀러레이팅·컨설팅·기술자문·해외 진출 등 비금융 서비스 지원은 해당 분야 전문기관이 담당해 시너지를 내고자 한다. 이러한 사업들을 더 잘하기 위해 올해부터 8개 영업본부에 사회적경제 전담팀을 설치했다. 사회적경제 이해가 없으면 지원이 어렵기에 직원들의 전문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

- 최근 서울혁신파크에 '신용보증기금 사회적경제존'을 설치했다. 

▶ 서울혁신파크에 사회적경제존을 만든 건 상징성이 크다. 이왕이면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활동하는 분들이 더 가깝고 편하게 접근할 수 있는 곳에 신보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서울시와 서울혁신파크가 적극적으로 협조해줘서 감사하게 생각한다. 신보에서는 서울 서부와 동부 영업본부에서 매주 사회적경제존으로 파견 나가서 금융 상담은 물론 우수한 기업을 발굴해 금융?비금융 서비스를 지원할 계획이다. 도시재생, 사회주택, 신재생에너지 사업 등 사회혁신프로젝트에 지원하는 새로운 보증상품도 현재 구상하고 있다. 

신보가 서울혁신파크에 설치한 '신용보증기금 사회적경제존' 

- 상반기에는 사회적기업진흥원과 함께 ‘표준 사회적성과 평가 모형’ 개발에도 나섰는데.     

▶ 사회적성과 평가 모형의 경우 민간(SK 등)이 만들었거나 인증을 위한 평가 기준 등 사회가치 평가 모델은 일부 있지만 표준화된 기준은 국내는 물론 국제적으로도 없다. 이번에 진흥원과 함께 개발 중인 평가 모형은 사회적금융에 적합한 사회가치 평가 기준을 개발한다는 점에서 차별성을 가진다. 모형 개발도 중요하지만 개발 과정 및 결과가 나왔을 때 사회적 합의가 더 중요하다고 본다. 이에 연구 과정에서 외부 전문가(금융전문가, 법률전문가, 회계전문가 등) 자문이라든지 당사자 조직의 의견을 많이 들으려 하고 있다. 얼마 전에는 사회적 가치 측정 리스트 20개를 설정하고 중간보고를 진행했는데, 현실적인 목소리를 반영하고 보증에서 중요한 지표가 무엇인지를 전문가 설문을 통해 압축해나가고자 했다. 11월경에는 열린 공청회도 개최해 여러 의견들을 연구 결과에 반영할 예정이다.  현재 계획으로는 올 연말까지 연구용역을 끝내고 내년도에는 실질적으로 모델링해서 빠르면 내년 하반기부터는 사회적 가치를 평가해서 사회적경제기업에 대한 지원 한도 등을 정할 생각이다.
 
향후 이 평가 모델이 안정화되면 일반 기업에도 적용하는 걸 고려중이다. 일반 기업 중에서도 사회적 가치 창출에 힘쓰는 기업들이 많다. 그러나 수익 극대화를 기업의 최우선 가치로 삼는 일반 기업과 비교해보면 사회적경제기업의 경우 사회적 가치 창출을 위해 지출된 비용의 영향으로 금융 지원을 위한 기업신용평가에서는 다소 불리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환경에서 사회적 가치 평가모델이 안정화 되면 일반 기업의 사회적 가치도 평가해서 상대적으로 우수한 기업에는 인센티브를 주는 등 불이익을 해소하는 방안을 찾을 수 있다. 더 나아가서는 사회적 가치 창출이 사회적경제기업의 미션에 머물지 않고 모든 기업의 경영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핵심가치로 자리 잡고, 일반 금융기관들도 사회적경제 분야가 가진 사회적 가치에 대해 새로운 인식을 가질 수 있게 될 거라 기대한다.  

- 올해 정말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이르긴 하지만 외부에서 평가는 어떤가.  

▶ 사회적경제 분야에서는 긍정적이다. 일반적으로 기업들이 사업하며 가장 어려움을 겪는 것 중 하나가 금융 접근성이다. 수익은 적지만 분명 사회에 필요한 비즈니스인데, 일반 금융시장에서 알아주지 않는다는 비주류의 설움을 사회적경제기업들이 금융계에서도 많이 느꼈기 때문이다. 신보가 나서면서 사회적경제기업에 필요한 시기에 필요한 금액을 지원해주기 시작하니 기업들 입장에서는 자신의 가치를 알아주고 시장의 한 주체로 대접 받는다는 생각에 반가움이 크더라. 우리를 통해 작게나마 어려움이 해소되는 것 같아 기쁘다. 

7월 대구에서 열린 사회적경제박람회에 참여한 신보

- 신보 내부 분위기는.

▶ 지난 9월 5일 국회에서 있었던 사회적경제 교육포럼 발제자료를 보면 2017년 국민 인식 조사한 결과 사회적경제에 대해 86% 이상의 국민들이 들어는 봤지만 잘 모른다고 대답했다. 육성법이 생기고 10년이 지났지만 아직 인식이 낮다. 그에 비하면 신보 직원들의 사회적경제에 대한 인식은 높은 편이다. 신보의 역할 자체가 중소기업 및 사회적 약자 등을 아우르는 금융지원기관이기에, 사회적경제와의 협력 또한 낯설지 않다는 게 대체적인 분위기다. 
 
다만 그동안 직원 대상의 사회적 가치 확산을 위한 별도 프로그램이 없었기에, 7월에 사회적가치추진센터 설립을 시작으로 21일에는 사회적가치추진위원회를 발족하고 정책간담회를 진행한다. 위원회에는 내부위원 6명을 비롯해 송경용 국제사회적경제협의체 공동의장(위원장), 송치승 원광대학교 경영학과 교수, 이미영 페어트레이드코리아 대표, 이원재 LAB2050 정책연구소장 4명이 참여해 사회적 가치 실현을 위한 계획 수립, 경영 관련 사회적가치 연계 등 고민할 계획이다. 

- 사회적경제기업들과 협력하는 과정에서 기대하는 점이 있다면. 

▶ 두 가지다.  하나는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비즈니스 모델이 지금보다 고도화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내가 사회에 도움 되는 일을 하더라도 상대가 알아주고 수지가 맞아야 의미가 있다. 지속가능성이 중요한 이유다. 사회적경제도 경제적 가치를 추구하기에 시장을 잘 알아야 한다. 그동안은 금융에서 최소한으로 요구해도 “우리에게 강요하느냐”는 반응이었다. 그만큼 간극이 있다는 얘기다. 공공기관들과 사회적경제도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시장 내에서 사회적 가치를 확산시키고 힘을 얻으려면 이제 기업 가치가 1조원 넘는 유니콘 기업들이 사회적경제 내에서도 슬슬 나와야 할 때다. 그런 측면에서 비즈니스를 강화하고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 우리도 적극 돕겠다. 

또 하나는 정부에서 적극 지원에 나설 때는 생태계 내 거품이 낄 가능성이 높다. 과거 김대중 대통령 시기에도 벤처 집중 육성에 나서면서 벤처버블이 생긴 바 있다. 이런 점을 고려해 생태계 정화를 위해 사회적경제 내에서도 자정이 가능하도록 공동의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 

5월에 신보가 주최한 사회적경제 페스티벌 ‘체인지 앤 임팩'(사진. 서울시사회적경제지원센터)

- 올해 들어 사회적금융에 대한 관심이 높다. 국내 사회적금융 활성화를 위한 과제가 있다면. 

▶ 금융은 기업의 혈맥(血脈)이다. 그동안 사회적경제가 피가 잘 통하지 않는 상황에 있었다. 상호금융(농협, 신협) 기관들이 피를 잘 통하도록 역할을 했어야 하는데, 그게 잘 되지 않았다. 신보를 통해 최근 조금씩 수혈하고 있지만 아직은 규모가 작고 태동기다. 시장을 잘 이해하는 중계기관이 반드시 필요하다. 

외국은 사회적금융만 전담하는 기관들이 많지만 국내에는 이 시장을 잘 아는 전문 중계 금융기관이 거의 없다. 몇 개 있지만 현재는 대부업, 공제업으로 되어있거나 지원 양이 극히 적다. 규모를 키우려면 제도권 금융을 통하지 않고는 어렵다. 사회적금융 활성화 방안에 따라 설립 추진 중인 사회가치연대기금이 빠른 시간에 자리 잡아 도매기금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하고 사회적금융에 특화된 중계기관들의 활성화가 이루어져한다. 

- 그런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신보의 역할은 어떠해야 한다고 보는가.

▶사회적경제, 사회적 가치의 이슈들은 결국 금융의 문제로 귀착된다. 그 매개 역할을 신보가 하고자 한다. 신보는 1976년 국내 최고 중소기업전문 종합지원기관으로 시작해 경제 패러다임을 대기업에서 중소기업으로 바꾸는 게임 체인저로서 역할을 자처해왔다. 이러한 성과를 바탕으로 앞으로는 사회적금융 활성화를 위해 허브기관이 되고자 한다. 일반 금융은 허들이 높다. 사회적금융를 활성화하려면 초기에는 정책금융기관인 신보가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데이터가 쌓이고 성공 사례가 나오기 시작하면 그때 일반 금융기관들도 믿고 사회적경제에 투자하고 지원할 수 있다. 그때까지 신보 역할이 중요하다고 본다.  
 
우리의 최종 목표는 사회적경제가 주변부에 머물지 않고 시장 속으로 들어와 일반 기업들과 당당하게 경쟁하고 혁신적인 성과를 만들어 내도록 돕는 것이다. 그런 과정을 통해 많은 성공 사례가 발굴되면 사회적경제기업도 시장에서 주인공으로 인정 받고 사회적 가치도 존중되는 따뜻한 경제가 널리 확산되지 않을까 기대한다.

박 이사는 사회적경제 생태계가 강화되고 사회적경제기업들의 경쟁력을 높이는데 금융허브 역할을 하겠다고 밝혔다.

 

사진. 권선영(이로운넷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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