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재생, 마을기업 등 사회적경제가 양적으로 팽창하고 있는데, 초심으로 돌아가 나에게 묻고 서로에게 질문해봤으면 해요.”

김신양 한국사회적경제연구회 회장이 최근 공동번역서 『지역관리기업, 사회관계를 엮다』와 직접 집필한 안내서 『마을에서 함께 읽는 지역관리기업 이야기』를 동시에 펴내면서 밝힌 출간 이유다. 

그는 “국내 사회적경제 조직과 지원조직이 ‘사회’를 말하고 있지만, 정작 당사자들은 서로를 살피고 돌보는 관계를 소홀히 하고 있다”며 ‘사회 관계를 엮다’는 목적을 지향하며 운영하는 지역관리기업의 실천은 우리에게 사회적경제를 하는 근본적인 이유에 대해 묻고 있다고 밝혔다.  

김 회장은 국내에 사회적경제가 정착하기 이전부터 사회적경제 분야를 연구한 인물이다. 프랑스 파리10대학 경제·조직·사회과에서 공부했으며, 『한국 사회적경제의 역사(공저), 『깊은 협동을 위한 작은 안내서』 등을 집필하고, 『다른세상을 위한 7가지 대안』을 공동 번역했다. 

사회적기업 출판사 착한책가게와 함께 두 권의 지역관리기업 책을 낸 김 회장을 지난 6일 만났다.   

‘지역관리기업’이라는 용어가 국내에서는 생소하다.  출간 이유를 설명해 달라.

지역관리기업은 1980년 프랑스에서 사용되기 시작한 용어다. 한 마을에 사는 다양한 주체들이 협동해서 운영되는 결사체이다. 프랑스 북부 작은 도시인 후베의 알마갸르에서 일어난 도심정비사업으로 삶의 터전에서 내몰린 주민들이 저항운동을 시작한 게 계기가 됐다. 주민 주도의 ‘도시민중작업장’이 만들어졌고, 작은 마을의 용기 있는 실천이 불러온 반향은 컸다. 지역의 단체와 연구자들까지 결합해 새로운 조직이 탄생했는데, 그게 바로 ‘지역관리기업’이었다. 

몇 년 전부터 ‘도시재생’이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실천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거기서 활동하는 이들이 힘들어 하는 모습을 보았다. 주민들과 함께 하는 일보다 지자체 공무원과 일하는 게 힘들다는 이유였다. 도시재생사업에 대한 공동의 목표가 정해지지 않은 상황에서 기존의 개발 위주 방식으로 눈에 보이는 실적 쌓기에 정신없는 공무원에 대한 현장의 문제의식이 컸다. 주민 참여로 지역의 관계를 만들어가고, 그 힘으로 도시재생이 이루어지지 않는 현실을 보며, 지역관리기업의 실천이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줄 거라 판단했다. 

프랑스의 지역관리기업은 내가 직접 방문하고 경험했던 곳이다. 어려운 조건에 놓인 주민들이 주체가 되어 지역을 관리하고 살고 싶은 지역으로 만들어 나가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문제제기 보다는 좋은 사례 혹은 다른 방향을 보여주는 것이 우리를 성찰하는데 더 좋겠다고 생각해 책을 내게 냈다.  

번역서(왼쪽)와 김신양 회장이 직접 집필한 책 

책 두 권을 동시에 냈는데.     

하나는 사회학자인 마르끄 하쯔펠트가 쓴 책의 번역서고, 하나는 내가 직접 집필한 책이다. 처음에는 지역관리기업이 국내 소개되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국제협동조합연맹에서 일하는 엄형식 씨와 함께 『지역관리기업, 사회관계를 엮다』를 번역했다. 지역관리기업 설립과 운영을 위한 방법을 소개하고 있다. 그것만으로는 독자들의 이해가 부족할 것 같아 안내서를 함께 읽으면 좋을 것 같아 집필했다. 『마을에서 함께 읽는 지역관리기업 이야기』는 ‘프랑스의 지역관리기업을 우리 현실과 어떻게 만나게 할까’라는 관점에서 쓴 책이다. 

자활기업이나 커뮤니티비즈니스 같은 개념이 떠오르지만, 책을 보면 그것과는 다르다고 얘기한다. 

지역관리기업의 가장 큰 특징은 주민 참여 자체가 궁극적인 목적이라는 것이다. 지역관리기업은 지역주민뿐 아니라 지역단체, 지자체, 사회주택이 공동으로 참여해 이사회를 구성하고 협동해서 운영한다. 이런 점에서 보면 사회적협동조합과 유사하다. 그러나 일반적인 사회적경제기업들은 지역사업을 한다 해도 지역 전체를 아우르지는 못한다. 반면 지역관리기업은 목적 자체가 사람들 간의 관계를 통해 서로 돕고 주고받는 공동체를 지향하기에 지역 전체가 사업 공간이자 지원에서부터 사업 수행까지 전 과정에 주민이 주체가 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또한 지역관리기업은 주민의 필요에 의해서만 움직인다. 첫 기업이 탄생한지 40여년이 다 돼감에도 지역관리기업은 여전히 제도화 되지 않았다. 즉, 정부 정책에 의해 움직이지 않는다는 얘기다. 지역관리기업이라는 인증도 정부가 아니라 전국네트워크로부터 받는다. 

기업 설립에 있어서도 지역 주체들 스스로가 필요성을 느낄 때만 만든다. 지역관리기업 하나를 만드는데 보통 2년 정도 준비 기간을 거치는데, 전문가 진단, 의견수렴 등을 비롯해 지역의 필요가 있는지 세심하게 고려하기 때문이다. 1980년 1호 기업이 생기고 38년이 지난 지금도 지역관리기업이 140개에 불과한 이유도 바로 여기서 찾을 수 있다. 그 수는 많지 않지만 지역을 바꾸고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은 상당히 크다. 

무엇보다 이러한 모든 것이 ‘관계’에서 나온다는 게 지역관리기업의 핵심이다. 번역서의 제목을 ‘사회관계를 엮다’로 표현한 이유도 그런 연유에서다. 지역관리기업은 주민들이 일상을 보내는 마을이 단지 잠만 자는 곳이 아니라 자신에게 필요하고 의미 있는 곳이어야 한다는 점에 주목한다. 예로 자활지원사업을 할 때도 마을 주민을 채용한다. 사업 주체를 뽑을 때도 자격증이나 기술 보다는 마을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느냐를 중요한 자질로 본다. 관계가 변화하지 않으면 일자리를 창출하고 사회적기업이 설립되어도 결국 지역사회 내 고립된 섬으로 존재할 뿐, 지역사회를 변화시킬 힘이 되지는 못한다는 시사점을 던져준다.

지역관리기업 도서 출판기념회 및 정기포럼(사진. 착한책가게 페이스북)

우리나라도 사회적경제 영역에서 민관 거버넌스를 추구하지만 쉽지 않다. 지역관리기업에 주민뿐 아니라 지자체도 참여하던데.    

지자체나 공공 부문과의 관계 문제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지역관리기업을 방문해서도 가장 궁금해 하는 부분 중 하나다. 주로 관계는 좋은지, 지원 후 간섭이 심하지는 않는지 등이다. 그만큼 우리가 민관 협력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의미기도 하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지역관리기업의 민관 거버넌스는 ‘괜찮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공통된 대답이다. 이유는 지역관리기업에서 일하는 이들은 모두 지역주민이자 기업의 회원이고 운영 주체들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주민들이 가진 힘을 믿고 서로 신뢰 관계가 돈독하다. 이런 바탕 속에 있기에 지역관리기업은 지역에서 꼭 필요한 일을 하고 사업을 위탁·수주하더라도 꼬투리 잡힐 일 없이 잘 해낸다는 것이다. 또한 공공 부문으로부터 지원을 받더라도 전국네트워크 차원의 자체 인증 제도를 통해 지속적으로 주체들의 의식과 가치를 점검하는 등의 강력한 활동이 이루어지기에 독립적이면서도 유연한 모델이 나올 수 있는 듯하다. 

여기서 우리가 고민해야 할 지점이 나온다. 행정을 끌어내는 힘은 결국 주민에게 있다. 2008년 지역관리기업 전국네트워크를 방문했을 때 당시 사무총장인 부께나이씨는 “개별 사회적기업이 정부와 상대하는 건 어렵다. 집단 힘으로 가야한다. 주민을 조직하면 정치적 힘을 가진다. 사회적기업이 어떤 식으로든 주민을 개입시켜 힘을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즉, 정부나 지자체와 평등한 파트너십을 가지려면 주민이 조직화되지 않으면 경제적 힘도 정치적 힘도 가질 수 없다는걸 지역관리기업의 설립자들과 경험자들은 깊이 깨닫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그런 풍토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 이건 단순히 행정만의 문제는 아니다. 현장도 고민해야 할 지점이다. 

이러한 시사점을 던져줄 만한 곳이 국내에도 있나.  

서울 성북구 장수마을 사례를 들 수 있겠다. 이곳은 ‘개발이 된다’, ‘안된다’하며 정책이 바뀌는 동안 주민들만 피해를 입은 곳이다. 2009년 무렵 다양한 공간에서 활동하던 이들이 ‘대안개발연구모임’이라는 것을 만들어 이 지역에서 활동하기 시작했다. 시작은 외부에서 온 활동가들이 중심이 된 연구모임이었지만 이후에는 마을 주민이 참여하는 마을기업 ‘동네목수’로 확장됐다. 동네목수는 주민들의 집을 수리하고 자조모임을 만들고 주민들 간의 소통을 도모하는 등 지역사회 활성화에 기여하며 주민협의체를 만드는 데 기여했다. 그 결과 장수마을은 다른 지역과는 달리 젠트리피케이션이으로 주민들이 내몰리지 않고 계속 그 지역에서 살 수 있게 되었다. 

그렇다고 장수마을 사례를 모범 사례로 소개하고 싶지는 않다. 아직 진행형이고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 현재 동네목수도 어려움을 많이 겪고 활동을 접은 상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네목수의 활동과 장수마을의 현재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분명 크다.  

2012년 성공회대 시민사회복지대학원 학생들과 장수마을을 찾은 김신양 회장(뒷줄 왼쪽에서 두번째).

지역관리기업의 원칙과 가치를 지켜나가기 위한 노력이 중요할 것 같다. 프랑스에서는 이를 가능하도록 만드는 힘이 어디서 나오나. 

지역관리기업의 가치와 규칙의 기준을 담은 것이 바로 헌장과 매니페스토다. 헌장은 지역관리기업이 정부 정책이 아니라 ‘지역의 다양한 파트너들의 의지에서 나온 결과’로 지역의 운동임을, 매니페스토는 연대적인 지역개발을 위한 기업으로서의 정체성을 분명히 제시한다.     

그러나 이 두 가지가 있다고 저절로 공동의 정체성이 유지되지는 않는다. 이것들이 가능하도록 문서가 작동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춰야 하는데, 이들은 각 지역관리기업 헌장에 구체적인 지침을 담고 그 결과에 따라 전국네트워크가 부여하는 라벨의 부여 여부를 결정한다. 라벨을 부여받았더라도 지역관리기업의 가치와 규칙을 따르지 않을 때는 재심사를 통해 회수할 수도 있다. 이러한 장치들은 기업 스스로가 이미지를 관리하고 자정 능력을 가지는 수단이 된다.  

더불어 교육도 중요하다. 지역관리기업의 경우 우리처럼 1회적인 교육이 아니라 시민의식을 가진 주체로 깨어나기 위한 교육을 지속적으로 한다. 무엇보다 설립 전에 지역관리기업을 만들고자 하는 주체들은 전국네트워크로부터 지원을 받아 지역의 주체로 서는 과정을 가진다. 또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하는 상임이사는 업무를 시작하기 전 선배 상임이사에게서 6개월 간 연수를 받는다. 즉, 사람에게 많은 투자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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